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호세아서 강해 21)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4. 30.
본문 : 호세아 4:4-5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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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생활은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는 죄악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사랑이었습니다.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특권을 상실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탕자 이스라엘을 회복과 축복의 길로 이끄십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본문 4절에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의 요점은 이스라엘 자손이 서로 싸우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다는 뜻은 너무 쉽게 다투고 싸운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신실하고 거룩한 제사장하고 다툰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사장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요 그것을 집행하는 재판관이기도 했습니다. 재판관과 다투는 자 같이 되어 그들의 권위에 항거하고 덤비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무 사람도 다투거나 책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논쟁을 시작하셨으니 오직 그의 심판에 맡겨 드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절망적인 선고입니다. 이는 마치 의사가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게 내린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레 19:17).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라는 말씀은 형제 사랑의 한 본보기입니다. 따라서 희망이 있는 한 잘못된 형제에 대해서 책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은 이미 포기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16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호 4:16-17). 이스라엘은 멍에에 익숙하지 못하여 다루기 힘든 송아지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고 반역하였습니다. 4절에 처참한 저주의 결과를 놓고 서로 책임 전가하고 책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텐데 그러나 그것은 죗값이요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누구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탓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살아있는 세계에서는 모두 내 책임입니다. 문제가 터졌다 하면 그 문제는 내 탓입니다. ‘나 때문입니다’를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본문 5절에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망받는 대상은 계속하여 ‘이스라엘 자손들’(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낮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밝은 대낮에 눈으로 얼마든지 장애물을 식별할 수 있음에도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 자손의 상태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보통 사람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올바르게 길을 찾아 백성을 인도해야 할 책임이 선지자에게 있습니다. 선지자 자신이 밤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선지자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책망의 귀중함을 깨닫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연약한 인간이기에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훈계로 알아듣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멸망이 임합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 24:20).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는 말씀은 악인의 절망적인 상태, 멸망을 뜻합니다. 흑암에 이르는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우리의 등불이 꺼져가니’라는 말씀은 신랑을 영접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9). 걸려 넘어지는 불행을 당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은 눈이 먼 상태이며 죽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인 악행으로 인해 판단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악인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제사장들, 선지자들, 방백들, 집권자들까지 넘어져 버리면 그들의 어미인 북 이스라엘 나라 수도인 사마리아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셋째, 수도 사마리아의 심판선언에도 불구하고
본문 5절에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라는 말씀은 국가적인 민족적인 징계를 의미합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파멸될 것이라는 선고입니다. 개인이 타락하면 개인이 파멸하는 법입니다. 가정이 타락하면 가정이 패가망신하는 법입니다. 국가가 타락하면 국가가 망신하는 법입니다. 4절에 ‘제사장’ 5절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책망하고 권고하여 바른길로 돌아서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신정 왕국인 이스라엘에서 제사장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지탱하고 세우는 양 기둥과 같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옳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선지자가 넘어진다는 것은 사실상 신앙공동체 이스라엘 자체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 56:10). ‘파수꾼’은 성 위 망루에서 망을 보는 사람입니다. ‘벙어리 개들’은 사나운 짐승이오면 짖어서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담당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 운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비난과 멸시와 조소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가 먼저 바로 서야 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 리더자들, 항존직이 바로 서야 합니다. 마땅히 제사장적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 2:8). 네 종류의 지도자들이 언급됩니다. ➀ 제사장들은 제사 직무와 우림과 둠빔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을 합니다. ➁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➂ 관리들은 정치지도자들입니다. ➃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않고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였습니다. 백성을 인도하여야 할 이들이 도리어 우상숭배와 같은 악영향을 미치는 일에 앞장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면 빨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땅도 회복되고 사람들과 들짐승과 새와 고기들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하고 돌아오면 삽니다. 빨리 돌아와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다투고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할 필요가 없다고 포기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내 탓이요’라는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겠습니다.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어서 걸려 넘어지는 불행을 당해도 알지 못하는
직분자들이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음을 보면서 갓개 말씀의 깃발을 높이 들겠습니다.
@ 수도 사마리아의 심판선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넘어짐은 대들보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실 저 큰 바다보다 깊이 사랑하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겠습니다.
@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 말라는 절망적인 하나님의 선고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주님, 세상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사랑만 하며 살겠습니다.
@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을 붙들고 사랑만 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님, 제가 남의 탓만 하는 자세가 아니라 ‘내 탓입니다’라는 부활 신앙이 충만한 자 되어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은혜의 말씀대로 고백되어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아십니다. 큰 사랑, 바다보다 깊은 사랑으로
나를 붙드시는 나의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 앞으로 돌아오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에
하나님께로 나의 마음을 돌이키며 나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그런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신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늘 말씀 앞에 바로 서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여호와께로 돌아가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에 풍덩 잠기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앞에 눈을 뜨고 눈먼 소경을 주님께 인도하는 믿음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받는 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그리스도인 되게 인도하소서.
@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시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는 자 되기를 힘쓰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기를 힘쓰겠습니다.
사랑받는 자의 삶을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매일 매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면 감사보다 불평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남 탓만 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겸손이 생활화되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을 힘입고 한 주간도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릴 사랑하시기를 멈추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제목 말씀과 같이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사랑이 바다보다 깊음을 알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 다투고 당신 탓이라며 책임 전가하는 일은 아담 때부터 있었지만
십자가가 살아있는 세계에서는 ‘내 책임이요 내 탓이요 나 때문입니다’를 고백하기 원합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세상에 빛과 소금 되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하고 돌아오면 산다’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저 큰 바다보다 깊은 여호와의 사랑’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수도 사마리아의 심판선언에도 불구하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