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부터 시작된 그 봄의 기운은 서울을 넘어 파주와 강원도로 널찍이 퍼져가고 있던 어느 주말의 이야기다. 그토록 갈망했던 꿈의 카메라와 렌즈 조합을 손에 넣고 기존에 사용하던 카메라를 전해주고자 파주에서 만남을 가졌다. 급작스레 결정된 출사는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물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꽤나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쌀살했던 공기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으며, 그 빈자리에 훈풍과 함께 마냥 즐거웠던 순간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말을 맞이해 이곳까지 나들이 객들이 한가득 자리했다. 근처에 주차를 마친 뒤, 점점 진득해져 가는 그날에 방점을 찍고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 순간 동시에 느껴지던 그 익숙한 분위기. 나는 분명 이곳에 자리한 이름 모를 구조물과 바람개비를 담고자 찾았는데, 뜻밖의 임진각과 조우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금 당황했던 모습을 담아 옆에 지인에게 관련된 질문을 던지니 그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황당했던 순간은 얇으면서도 짧게 마무리 지었으며,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이곳을 담고자 부리나케 움직였다.
1. 평화누리공원
서울 도심은 물론이거니와 근교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은 몰랐다. 주차공간은 물론이거니와 날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그 따사로움에 젖어든 채 봄을 만끽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 흥겨운 분위기에 스며들어, 목표한 곳으로 발걸음을 서서히 옮기든 와중에 적절히 불어오는 바람에 바삐 돌아가던 바람개비가 장관을 이뤘다. 일몰 직전의 그 30분.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마주한 그 경관은 자연스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같이 평화누리공원을 찾은 지인도 파주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는 소리를 연거푸 꺼냈다. 출사는 처음이었음에도 꽤 자주 드라이브를 즐기던 것으로 알았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니 이곳에 데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야외에 대략 2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한가득 꽂힌 바람개비는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 팔색조의 매력을 선사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 바람개비에 무른 노을빛의 고운 자태는 마치 호랑이의 등에 날개를 단 격과 다름이 없었다.
한창 그 화려한 자태에 빠져 촬영을 이어가다 잠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근처 카페를 찾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인파를 언급했을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아른거리던 반영을 바라보며, 지나쳐 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불쑥 건넸다. 편하게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오롯이 본인의 시간을 써줬다는데, 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내 주변에도 훈훈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바람개비 뒤쪽으로 자리한 조형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가 문득 궁금했다. 이곳에 오기 전, SNS로 접했을 대 이 구조물들을 활용해 평화누리공원의 야경을 담는 이들도 있어 보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삼각대나 다른 구비물품이 없었기에 그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해가 내려갈수록 그림자의 길이도 함께 길어졌으며, 그 끝에는 어둠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평화누리공원에 자리한 바람개비는 끝없이 바삐 돌아갈 뿐이었다.
평화누리공원은 휴전선 뒤로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끝단에 자리한 곳이다. 마침 이곳까지 왔으니, 마지막 여행지로 이곳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아 조심스레 임진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꽤 배가 고픈 상태였지만, 고맙게도 지인도 흔쾌히 응해줬다. 초등학생 시절, 안보 관광의 일환으로 땅굴 견학 이후 임진각에 올랐던 기억이 눈앞에 선하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갔지만, 훌쩍 커버린 나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많은 생각의 변화가 생겼을지 확인코자 발걸음을 서둘렀다.
2. 임진각
뜻하지 않게 찾은 임진각은 낯설거나 서글프다기보다 반가운 감정이 앞섰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감정이 앞서기보다는 이성이 머리를 주변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 이었을 때, 카페와 기념품샵을 제외하곤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없었으며, 그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조망과 사색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주린배를 달랠 수 있었지만, 더 알찬 순간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전망대로 향했다.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지고 안보관광의 마침표를 찍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임진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는 있더라도 느껴지는 먹먹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휴전선 너머에 개성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평화누리공원을 찾은 날 만큼은 애석하게도 보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망대에 올라 순간을 마무리 한 뒤, 서울로 향하고자 주차해 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벚꽃을 담고자 시작한 그날의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스러웠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임진각을 떠나 서울로 들어가고자 자유로를 탔을 때, 드넓은 주차장이 눈앞에 바로 형성되어 있었다. 본래 얼마 걸리지 않았던 거리였지만, 하루의 화양연화를 바라보며 차 안에서 담소를 이어갔다. 살아왔던 이야기와 살아갈 날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들과 오늘 하루 꽉 찬 그날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제를 막론하고 다양한 대화들이 오갔다. 이후,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나 홀로 오늘날까지 일상 속에서의 여행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시점이 바로 그날의 순간이기도 했다.
임진각에서 들었던 생각과 느낌은 그야말로 막막함과 답답함에서부터 비롯된 먹먹함이었다. 그곳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면 실향민의 애달픔과 한국전쟁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라는 바는 변함없겠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멍하니 바라보는 것 밖엔 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나 흘렀다. 요즘은 SNS에 봄의 기운을 담은 평화누리공원의 사진들이 올라오면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오롯이 안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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