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287년부터 212년까지 생존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플루타크의 영웅전에 나와있는 그의 최후는 매우 유명하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참인 즈음, 로마 함대는 아르키메데스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시라쿠사를 공격했다.
로마군의 지휘관 마르켈루스는 여덟 척의 군함을 연결하여 그 위에 높다란 하프형의 대를 만들어 대포를 설치하였다.
자만심에 들뜬 마르켈루스는 자신들의 명성만으로도, 많은 배를 보기만 하여도 시라쿠사인들이 항복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라쿠사인들은 아르키메데스가 만들어 낸 거대한 투석기로 몇 톤이 넘는 돌을 연이어 쏘아 로마군의 배를 파괴하였다.
또, 기다랗게 생긴 기중기와 쇠로 된 갈고리로 성벽 너머에 가까이 오는 배를 잡아 휘둘러서 바윗돌에 던져 가루로 만들어 버리거나 침몰하게 하였다.
그 후 정면 공격을 단념한 로마군은 배후에서 시라쿠사로 쳐들어왔다.
여신 아르메데스의 축제일에, 시라쿠사인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로마병정은 단칼에 아르키메데스를 죽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아르키메데스를 만나고 싶어했던 마르켈루스는 그의 소원대로 비석에 원뿔, 원기둥, 구가 각각 내접해있는 그림을 새겨주었다.
수학자 화이트헤드는 수학을 발달시키지 못한 로마를 빗대어 '로마에는 수학의 작도에 몰두했기 때문에 생명을 잃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도형을 …
아르키메데스는 학문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 원에 내접.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변의 길이를 재어 원주율을 소수 다섯째 자리까지 구하였으며, 평면도형에 대한 연구, 구와 원기둥에 대한 연구 등 도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가 죽는 순간에도 도형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자신이 발견한 기하학적 도형에 대하여 대단한 긍지를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평소에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 새겨달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가 죽은지 137년이 지난 기원전 75년 키케로가 로마의 감찰관으로 시칠리아 섬에 왔을 때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였다고 한다.
모든 공동묘지의 묘비를 조사하던 중 덤불과 관목이 우거진 사이로 조금 튀어나온 그 묘비를 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비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는데 1965년 한 호텔의 기초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굴착용 증기삽에 한 묘비가 떠올라왔는데 그 위에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또 아르키메데스는 지칠 줄 모르는 발명가였다.
그가 발명한 가장 유명한 기계는 물-스쿠루인데 그것은 들에 물을 뿌리거나 배에 찬 물을 빼내기 위한 것으로 이집트에서는 오늘날에도 이용된다고 한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끌어올릴 수 있는 커다란 배를 합성 도르래장치를 이용하여 혼자서 간단히 끌어올린 다음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지탱할 곳을 나에게 달라. 그러면 지구를 움직여 보일 것이다.
그가 커다란 볼록렌즈를 사용하여 로마 군의 배를 불태우고 투석기, 기중기 등의 병기를 발명하여 조국을 지키며, 스쿠루를 발명하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발명을 한 것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일 것이다.
유레카, 유레카!
현대인들은 누구나 그리스어 한 마디는 알고 있다.
바로 아르키메데스가 외쳤다는 'Eureka'이다. 유레카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벌거벗고 길거리를 달리는 아르키메데스일 것이다.
이 사건은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 그는 왜 길거리를 벌거벗고 달렸을까?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것이다.
당시 아르키메데스를 아끼고 후원하던 히에론 왕은 금세공인에게 금으로 왕관을 만들게 하였다.
금세공인이 왕관을 만들어 왔을 때 왕은 그가 금을 빼돌리고 다른 물질을 섞어 왕관을 만들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었다.(의심은 과학의 출발점이다.)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자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 졌는지 다른 물질이 섞였는지 알아낼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온갖 생각을 다해도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던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가서도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그가 공중 목욕탕에서 몸을 물에 담그자 물이 넘쳤다.
그 순간 '부력의 원리'(정수 역학의 제1법칙이 된다.)가 섬광처럼 번뜩였고, 그는 너무 기뻐 '가장 빠른 방법으로' 왕관이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 뿐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어떤 물체가 액체에 잠기면 그 물체의 무게는 그것이 밀어낸 액체의 무게와 똑같은 힘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한 쪽 접시 위에는 왕관을 놓고 또 다른 접시 위에는 똑같은 무게의 금을 얹어놓은 다음 이것을 그대로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왕관을 담은 접시가 위로 떠올랐고 그래서 왕관 속에 금보다 밀도가 작은 다른 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실험을 하기 위하여 집에 빨리 돌아왔을 뿐이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