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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스크랩 미국의 도로 시스템에 관한 짧은 설명 하나
권종상 추천 0 조회 29 11.06.30 12: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의 방송국에서, 미국 도로 시스템의 체제에 대해 문의가 왔어요. 하긴 오래 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주제이긴 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아예 포스팅을 하나 써 보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제 모습을 담아서 보내주십사 했는데, 뭐 여긴 한국처럼 스마트폰이 대세인 나라도 아니고... 정말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강국인데 소프트웨어는 영 아니다 싶기도 하고... 특히 정치 쪽 프로그램들은 전혀 세계 대세와는 상관없는 후진국형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각설하고, 암튼 주제로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대중교통은 큰 도시 몇개, 그것도 정말 손으로 꼽을만한 몇몇 도시에서만 발달되어 있고 대부분이 자가운전자들입니다. 때문에 길의 시스템은 어떤 길치라도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원칙과 운용 방식이 분명하죠. 때문에 이걸 소프트웨어로 접속시켜도 참 깔끔합니다. 그러나 사실 미국의 길의 구조 정도라면 굳이 네비게이션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저는 그래서 제 자신을 '뇌비게이션'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

 

미국은 50개 주로 이뤄져 있습니다만, 본토엔 48개의 주가 있죠. 어쨌든 그 주와 주 사이를 이어주는 도로를 인터스테이트 도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경우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라고 하며 미국의 동서와 남북을 연결시켜주는데, 보통은 '인터스테이트'의 제일 앞 글자인 I 를 맨 앞에 놓고 도로 번호를 그 다음에 붙입니다. 시애틀을 관통하는 인터스테이트 도로는 두 개가 있습니다. 5번 도로와 90번 도로죠. 그래서 보통 아이 파이브, 아이 나인티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I-5, I-90 하는 식이죠. 여기서 '홀수의 도로'는 일반적으로 남북을 잇는 도로를 뜻합니다. 그리고 짝수의 도로는 동서를 잇는 도로죠. 대표적인 클래식 하이웨이인 66번 도로 역시 '동서간을 잇는 도로'인 것이죠.

 

그렇게 주와 주 사이를 잇는 도로들은 때로는 다른 도로와 겹치기도 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하면서 미국을 그물망처럼 엮습니다. 이보다 작은, 우리나라의 국도에 해당되는 도로가 '주 도로', 즉 '스테이트 하이웨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주 도로의 표지판엔 자기 주를 상징하는 심벌이 있고 그 심벌 안에 번호가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워싱턴 주 같은 경우엔 조지 워싱턴의 두상 안에 번호가 들어가 있는 식이죠. 그 체계는 비슷합니다.

 

미국 집의 번짓수를 보면 사실 그 집이 대략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가 나오는 셈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소 하나로 예를 들어볼까요?

예: Jacob Midland

3721 S. 180th St. #B-221

Seattle, WA 98188

위의 주소를 보면 맨 앞의 번호가 홀수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워싱턴주의 경우는 길의 남쪽에, 혹은 길의 서쪽에 있는 집들에 홀수 번지수를 부여합니다. 즉, 길의 북쪽이나 동쪽에 위치한 집들엔 짝수 번호수를 부여한다는 것이죠.

로컬 도로 시스템에서, 동서를 이으며 가는 길은 '스트릿'으로 불리웁니다. 위 예를 들은 주소에서 St. 는 바로 '스트릿'을 뜻합니다. 남북을 잇는 도로는 일반적으로 '애비뉴'라고 불리우며, 약어로는 'Ave'를 씁니다. 물론 동서와 남북을 잇지 않는 대각선 길은 일반적으로 '블러버드'라고 불리우며 'Blvd'라는 약어로 쓰입니다. 꼬불길도 물론 있겠지요. 그런 길을 보통 '로드'라고 부르며 약자로는 'Rd' 를 씁니다. 특정한 주소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그 끝나는 말이 '서클' 또는 '플레이스'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곳들은 끝이 딱 막히는 길들이죠.

 

저 주소의 뒷쪽에 위치한 #B-221 은 미들랜드 씨가 사는 곳이 아파트 아니면 콘도미니엄임을 뜻하죠. 단독 주택엔 붙지 않습니다. B동 221호에 사시니, 아마 2층에 사실 듯 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소만 봐도 대략 어디쯤으로 어떻게 가면 되겠다 하는 게 바로 나오는 것이지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저 주소 두째 줄에 보면 숫자 3721과 180 사이에 S 자 하나가 나옵니다. '사우스', 즉 '남쪽'을 나타내는 겁니다. 보통은 대도시의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으면 N을, 남쪽에 있으면 S를 붙입니다. 물론 대도시의 동쪽과 서쪽에 있으면 어떻게 변화가 될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스트릿 번호가 해당 방향으로 갈수록 점점 커집니다. S가 붙은 지역은 계속 남쪽으로 향할 수록 180가, 181가, 182가 하는 식으로 블럭을 지나갈 때마다 그 블럭 번호가 커집니다. 다운타운의 북쪽에서는 북쪽으로 갈 수록 그 번호가 커집니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대략 주소만 알아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할 지가 분명해진다는 것이죠.

 

길에 대해서 일단 큰 원칙들만 알려드렸습니다. 미국의 길 체제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욱 분명해져야 했지만, 이들의 생각 체계의 근원을 이루는 프래그머티즘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지형을 따라 꾸불거리는 길은 바닷가나 물가와 산길을 제외하고는 별로 만들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이 나라의 지형과 풍부함 같은 것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지금의 이 도로 체제가 잡히고 직접 공사에 옮겨진 것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의 추진 하에 이뤄진 것이며,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린 아직도 그때부터 만들어진 도로 시스템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실로 1백년을 내다본 대계였던 것이죠. 물론 인구가 이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또 완전 다른 변수이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길의 시스템이 바뀐다니 반갑게 들립니다. 단, 우리나라처럼 골목길이 많은 곳에서 전혀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살리지 않고 무조건 구미국가식의 도로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채용한다면 그것 역시 또다른 바보짓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시스템 중에서도 장점은 두되, 미국의 시스템을 차용하되 일부 원칙만을 차용하는 식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길 정비를 한다는 것이 또다른 '무차별한 삽질의 핑곗거리'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될 거란 생각도 들구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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