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감(靈感, inspiration) (성령론)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들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1571-1610)는 작품의 영감을 ‘보통 사람들’에게서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그린 <마태오의 소명>이라는 그림을 보면 16세기 로마의 한 선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라는 그림에는 폭행, 탈옥에 연루되었던 현재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담아 놓기도 했습니다.
흔히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의 계기가 되는 동인이나 자극을 ‘영감’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래서 영감이란 말을 들으면 작가나 음악가들이 펜 하나를 들고 영감이 안 떠올라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지요. 하지만 이러한 영감은 창작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하는 모든 자극과 동력이 바로 영감이니까요.
교회 안에서 영감은 그리스어 ‘θεόπνευστος(Theopneustos)’에서 그 어원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뜻하는 ‘theós’와 ‘숨’을 의미하는 ‘pnéō’를 조합하여 ‘하느님께서 숨결을 불어 넣음’이라고 정의합니다. 특히,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사실, 성경을 쓰게 한 이 영감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한 설명은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영감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했고, 그 관계 안에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성경의 다양한 문학 유형이 탄생했고, 이 다양성의 원천이 바로 성령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고, 파라클레토스 영을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에서는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표현하였고, 교부들은 성화로 이끄시는 분이라고 묘사합니다. 영감은 이처럼 스스로에게서 얻어지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확실한 감도(感導)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 어디서 영감을 받을까요? 신앙인이 영감을 받는 시간과 장소는 바로 기도와 성찬례가 거행되는 곳과 때입니다. 분심과 깨어 있음을 오가는 중에도 우리는 줄곧 마음을 모으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한 결심을 합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그저 감상에서 끝나길 바라지 않고, 그림에 묘사된 상황에 직접 참여하기를 바랐습니다. 소탈한 일상과 사건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계시헌장은 말씀의 기록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그 말씀을 알아듣는 것 역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12항) 우리 삶의 중요한 원천을 얻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알아듣는 장소에 스스로를 옮겨 놓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영감을 얻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감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 전인걸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