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마지막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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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억!"
마지막병사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은 녹색머리의 장군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은 피로 물
들어져 있었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전군! 집합!"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그러자 집의 뒤나 여러 어두운 곳에서 정이라고는 절대 찾을
수 없는 눈을 한 병사들이 천천히 나온다. 녹색머리의 장군은 그들을 한번 훝어보다니 말했다.
"사상자는 없군."
그들의 답은 없다. 오직 퀭한 눈으로 그들의 대장을 바라보고 있다. 녹색머리 장군은 몸을 돌리며 말한다.
"이번 목표는 숫자 1000의 군대다. 모두들...... 죽지마라."
"우오오오오!"
병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100명도 채 안되는 숫자이건만 1000명보다 더욱 큰 목소리를 내고 있
다. 녹색머리의 장군, 란티아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들에게는 말한필도 없다. 그저
걸어서 적을 향해 나가고 죽이는 것이다. 방금 전에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500명의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습격
도 아니다. 가운데로 처들어가서 모두를 몰살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피에 굶주린 늑대같았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젠스에게.
편지를 벌써 몇번이나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너에게는 답장하나도 없구나. 가다가 모두 죽어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너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상처나 입지 않고 잘 있나 모르겠구나. 이제 조금
만 있으면 이 거대한 섬은 우리가 다 점령하게 되어. 너는 이제 왕궁을 떠나 이런 이야기는 못듣고 있겠구나.
우리 바슈그렘이 이제는 최고의 강국이 되는 것이지. 이미 자이드라의 땅들은 모두 점령했지. 아...... 같은 이야
기를 매번 편지에다 적는구나...... 나도 참...... 그때 작문실력 좀 키워놓을 것을 그랬나? 후훗......
이제 도시 하나가 남았어. 그곳은 1000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어. 후......
내가 처음시작하던 숫자와 같네. 이제는 100명 안으로 줄어버렸지만. 그들은 올바른 세계로 갔겠지? 넌 신이니
까 제대로 인도해주길 바래. 후훗......
이제 내가 무엇으로 불리고 있는지 아니? '피의 병사들을 이끄는 녹색머리의 악마'로는군. 참...... 내 병사들이
좀 포악하긴 하지만 피의 병사라니...... 정말 그런 표현을 생각해낸 음유시인을 없애고 싶을 정도군. 나의 지명
도 전혀 맘에 안드는걸. 제대로 지어주면 안되나? 후......
네가 보고 싶다. 뭘 하고 있는지...... 후...... 넌 신이니까 내 얼굴을 자주 보겠지? 어? 그럼 앞의 이야기는 필
요없겠는걸. 후...... 웃지마. 내 생각이 좀 짧았을 뿐이니까.
이제...... 바슈그렘이 이 섬을 모두 다 점령하고 나면...... 우리 한번 만나도록 하자. 우리 얼굴 못 본지 벌써
몇년이잖아. 너도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니? 나는 네 얼굴이 너무 보고 싶구나. 친구야.
난 이제 내 머리에 물들은 붉은색이나 빼려 가야겠다. 너무 싸웠는지 이제는 내 머리가 붉은 머리가 되어가
려고 해. 참......
그럼...... 난 이만 줄일게. 그럼 잘 지내.
너의 친구 란티아가.
란티아는 천천히 편지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이와 같은 내용을 벌써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을 보낼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젠스를 만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버린 그였다.
젠스...... 한번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그의 얼굴을 보면 자신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란티아였다.
그는 천천히 흐느꼈다. 선두에 나서서 적들을 하나하나 몸소 베어나가던 기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의 흐느낌은 너무 컸기에 밖에까지 들려왔으나 병사들은 미동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할 일만을 생
각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그들의 신경은 이미 힘들다는 것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오직 자신들이 할 일만 다
하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그들은 자신들의 신경을 모두 죽여버렸다.
이것이 '피의 병사'의 실체였다.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은 어린 소녀같이 여린...... 그들은...... 마치 세상에 불만
을 품은 것처럼...... 하나하나 베어나갔다.
"젠스."
"응?"
"피의 병사에 대해 아나?"
"......응. 란티아가 끌고 있는 군대라지."
"맞어. 1000명의 병사로 그 큰 섬을 모두 점령해버린 엄청난 놈들이지."
"후...... 근데 그건 왜?"
"갑자기 생각나서......"
젠스는 피식 웃었다.
"훗, 그래? 우리 대련 한번 할까?"
"그래? 좋아. 너랑 대련은 오랜만인데?"
"후훗, 좋아. 그럼 간다!"
젠스의 무색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마이샤는 이미 소리만 듣고도 무색검을 피할 수 있게 되
었다. 이곳에서 머물면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젠스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란티아보다 더.
"어이구...... 힘이 남아도는 군, 남아돌아."
"응? 형, 웬일이야?"
"이봐, 난 이 언덕에 올라오면 안되나? 왜 그런걸 묻는거야."
"그냥. 헤헤헤."
"......"
라이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준비해."
순간 달려나가려던 마이샤의 몸은 굳어버렸다.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이샤는 아주 잘알고 있었다. 물론
젠스도 마찬가지였다. 젠스는 손을 잠시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그럼......"
"그 녀석들로부터의 도전장이다. 준비해."
모두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이샤는 자신의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천천히 언덕아래로 내려왔다.
어제 저녁 순간이동 마법으로 그들의 도전장이 날라왔다. 전투 장소는 커크리스 산. 커크리스 산의 정상은 평
탄한 지역이다. 그들은 그곳을 전투 장소로 삼은 것 같았다. 라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을 생각하자 그녀
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라이샤는 팬던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민트......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얼씨구?」
"으엑!"
나이라세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라이샤를 바라보았다.
「이런때에도 여자생각이라니...... 참 너도 태평한 놈이다.」
"나이라세...... 제발 뒤에서 기척없이 나타나 놀래키는 행동은 그만두지 않겠어?"
「싫어. 나의 하나뿐인 취미를 방해할 생각이냐?」
"후......"
라이샤는 나이라세를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이대로 그를 상대하고 있다면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다.
나이라세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어가는 것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 기술뿐인것 같았다. 대체 나이를 그렇
게 먹었는 데도 아직 행동은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모의 말을 지독시리 안듣는 꼬마 남자아이.
그때의 아이가 제일 무섭다는 사람도 꽤나 된다.
라이샤는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이라세는 이미 나미란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내어 사라졌다. 나미는 아마
후라이팬으로 그를 때리겠지. 퉁가리가 천상계로 가고 나미는 이상스럽게도 요리나 집안일을 많이 하였다. 왜
그런지는 아무리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모두들 그저 그러려니 하며 그냥 두었던 것이다. 나미를 떠올리자
라이샤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근육질의 팔에 빨랫감을 걸어두고 빨래를 너는 나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
다.
라이샤는 붉은검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붉은검을 들지 않았다.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기때문이다.
라이샤는 붉은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이드라스. 듣고 있다면 답해."
「네. 말하십쇼.」
붉은검이 잠시 떨리더니 말이 들려왔다. 라이샤는 여전히 붉은검을 보고 말했다.
"내일 전투에서는 절대 끼어들지 말도록 해. 특히 실체화되는 것은 자제하도록 해. 내일은 나의 힘만으로 싸
울것이다."
「......고집쟁이...... 주인님. 네, 알겠습니다.」
"후...... 주인보고 고집쟁이라고 하는 녀석은 너뿐일거다. 그리고 붉은검.
너도 들었지? 끼어들지 마."
붉은검이 또 다시 들썩였다.
「싫은데.」
카이드라스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샤는 이 반응을 예상했는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친구로써의 처음인 부탁이다. 듣지 않을건가?"
「응? 친구로써의 처음인 부탁이라...... 그래도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내가 너를 친구로 인
정하지 않기 때문일까?」
"......바보소리 말고. 내일 나타나면 너랑 절교하겠어."
「맘대로 해. 그러면 너만 손해지. 힘이 절반으로 떨어질텐데 뭐.」
"내일 싸움에서는 그녀, 샤이와의 싸움에서는 너는 힘을 아끼도록 해. 너는 카이젤의 싸움만을 위해 힘을 비
축해."
「......네 힘만으로는 샤이를 쓰러뜨릴 수 없어.」
"알아. 하지만 이기겠어."
「역시...... 넌 고집쟁이에 앞뒤가 꼭 막힌 병신자식이야. 휴...... 내가 왜 너 같은 놈을 친구로 인정했는지......
아~~~ 후회된다.」
"......"
라이샤는 가만히 붉은검을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이 보면 기절할 정도의 살기를 뿜었지만 붉은검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을 뿐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라이샤는 한숨을 쉬며......
"휴...... 역시 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이야.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방출했는데 넌 어떻게 그런 반응이냐?"
「훗...... 초강력 미모의 파워다.」
"초강력 미모? 불덩어리가?"
「......」
"불덩어리 주제에 그런 말을 하기가 껄끄럽지 않은가? 후...... 불덩어리는 불덩어리 답게 불의 힘으로 라고
해. 바보."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카이드라스가 붉은검에 들어가면서 붉은검 자체가 지니고 있던 실체화 모습은 사라졌다. 아마 굉장한 미모를
지닌 녀석이었을테다. 그러지 않고는 붉은 검이 저렇게 발광할 이유가 없으니까. 라이샤가 생각하기에도 카이
드라스는 제대로 바라보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 왠지 불덩어리라는 것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붉은검의 발광소리(?)를 들으며 라이샤의 밝은 웃음소리가 하늘 저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매우 즐거워 하네."
"우리 형은 바보니까."
"그렇군."
그들은 언덕 위의 나무 앞에 앉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집은 작았다. 여러 사고를 겪으면서 하나하
나 방이 날아가버렸던 것이었다. 라이샤가 실험을 한답시고 설치다가 자신의 방을 날려먹었고 마이샤도 역시
검을 휘두르다 실수로 방을 하나 날렸다. 왜 방안에서 검을 휘둘렸냐고 나중에 많은 잔소리들을 듣기는 했지
만 마이샤는 기쁜 얼굴이었었다. 이샤형제의 방날리기만 아니었으면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갈뻔 했다. 가끔씩 '
물'을 노리러 오는 마족들이 약간 있기는 했지만.
젠스는 천천히 무색검을 만지며 말했다.
"나의 수호신은 어디있을까......"
"수호신?"
"너의 하이네같은 녀석 말이야."
"아, 보좌관?"
"응."
"아버지 말로는 이미 너의 보좌관은 깨어났다고 하던데?"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는걸......"
"그 녀석도 말 지지리 안듣는 녀석인가 보다. 주인의 부름에 답도 안하는걸 봐서 말야."
"그렇지? 후훗......"
젠스는 무색검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젠스에게는 점차 무색검이 붉은색으로 표시
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보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붉은색이라도 자신의 검이 보이자 안심되
었다.
"퉁가리는...... 언제 올까......"
"곧 오겠지. 내일이 결전인것을 그도 알고 있을 거야. 위에서 계속 가이샤님이 관전하고 계시니까."
"그게 가능할까...... 세라핌이란 존재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천사가 창조주를 막는다는 것이...... 나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
"훗...... 그건 직접보지 않고는 정말 아무도 믿지를 않을거야. 정말 희귀한 광경이니까. 나도 얼마 보지는 못했
는데 세라핌은 정말 우리 아버지를 꽉 잡고 있었어.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지."
"필살 무적의 잔소리로 말야?"
"훗...... 너도 아는구나. 세라핌의 특제 필살 무적 잔소리...... 최강의 필살기지. 아버지는 이 공격을 절대로 막
아내지 못해. 말없이 일보던 곳으로 돌아가시지."
"헤...... 나도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은걸......"
마이샤는 미소지었다.
젠스는 웃었다.
라이샤도 웃었다.
자이커는 새를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나미는 음식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퉁가리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란티아는 피가 얼굴로 튀어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