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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부임한 후에 처음으로 하는 부흥회였고, 또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셨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긴장도 많이 됐습니다.
그런데 부흥에 이틀 전에 제가 운전을 하며 가던 중에 갑자기 차가 길에서 멈추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 차 앞뒤에 차가 없었습니다. 만약 제 차 뒤로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면 큰 교통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보험회사와 연락하여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제 차를 수리해 준다는 정비소를 찾지 못하고 결국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제 차를 폐차해야 했습니다.
상실감이 꽤 컸습니다. 그러나 슬픔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부흥회를 준비했습니다. 부흥회 첫날 본당에서 분주하게 부흥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제 첫째 아들 해서가 오른쪽 무릎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아침에 멀쩡하게 학교에 간 아이가 학교에서 넘어지지도 않았고, 어디에 부딪힌 적도 없는데 오후에 구대를 먹고 난 후부터 갑자기 그렇게 됐다는 겁니다.
걱정이 되어서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MBTI의 t인 제 아내는 대문자 f인 제게 무서운 카톡을 계속 보냈습니다. 잠깐 삐끗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점점 더 못 걷는 거 보니까 소아 류마티스일 수도 있고, 무릎에 염증이 생긴 걸 수도 있어 제 심장은 더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부흥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해설을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저는 부흥회에 집중하게 해주세요.
마음을 잘 추슬렀습니다. 찬양과 말씀 시간이 은혜 가운데 진행이 되고 드디어 제가 맡은 기도의 시간이 되어서 저는 강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기도회를 인도하려는 순간 멀쩡하던 전기가 갑자기 나갔습니다. 찬양을 다 같이 한 곡 부르고 제가 말씀을 들으면서 정리한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도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전이 됐다가 전기가 들어오고 다시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고 이렇게 몇 번 반복이 되니까 저는 도저히 계획대로 기도회를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기도회를 잘 인도하지 못해서 첫날 부흥회 때 성도님들이 은혜를 충분히 받지 못하신 건 아닐까 하여서 마음이 매우 좋지 않고 속이 상했습니다.
힘든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해서는 여전히 잘 걷지를 못했습니다. 다음 날 응급실에 다녀왔는데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흥의 둘째 날 마지막 날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흥에 마지막 날까지도 다리를 못 펴고 잘 걷지 못하던 아이가 부흥회가 마친 그다음 날이 되자 아침에 멀쩡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저는 설교 원고를 작성하여서 통역팀과 c4c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엊그제부터 해서가 또다시 무릎이 아프고 다리를 펴지 못하고 발을 땅에 잘 디디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련회 때마다 또 아프리카 선교를 갔을 때에도, 그리고 오늘과 같이 담임 목사님의 출타 중에 주일 예배 설교를 해야 할 때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반복하여서 여러 번 했습니다. 악한 영들은 제 마음을 빼앗아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역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어떻게든 저를 실족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연약한 저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제가 그 위기들을 잘 이겨내게 도와주시고, 다시 한 번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인 시편 27편을 기록한 시인은 악인들에 둘러싸여서 큰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본문 2절과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접들, 악인들은 시인의 대적들이고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인의 살을 먹으려고 시인에게 접근했습니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찾아 찢어먹기 위해 어슬렁거리듯이 악인들은 야수처럼 시인에게 다가와 살을 뜯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을 뜯으려고 했는지가 본문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그들은 위증자이고 악을 토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시인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악을 행하였습니다. 악한 말과 악한 행동으로 시인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며 난폭하고 잔인하게 시인을 괴롭혔습니다. 시인은 그들에 의해 살이 뜯어 먹히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3절에서는 군대와 같이 많은 원수들이 시인을 대적하여 진영을 갖추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군대가 시인을 치려고 에워싸고 있습니다. 시인은 사방으로 포위를 당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에 의해 대적들과 원수들에 의해 전쟁과 같은 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시인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전혀 두렵지 않고 여전히 태연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대적들이 실족하여 넘어질 것이고,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을 넘어뜨리실 것이고, 그들의 악한 계획을 물리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인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한 것일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매일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비방하는 자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우리도 시인과 같이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동하고 좌절합니다.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기 때문입니다. 내 대접과 원수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덤비는데, 틈만 보이면 나를 끌어내리려고 어슬렁거리는데 어찌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하루 그저 열심히 살아가지만 마음이 불안할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악한 대접과 원수들이 살을 뜯어먹으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도 태어날 수 있는 믿음을 갖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인은 큰 환란 가운데에서도 강한 믿음과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숨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문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CCTV를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방공호를 아무리 깊이 파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해하려고 작정하는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테러와 전쟁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소도 없습니다.
요나 1장 3절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배를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셔서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매우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이 재앙이 요나로 인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요나는 배를 타면 안전하게 다시스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 폭풍은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무사히 다시스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는 아주 위험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곳이라 생각했던 깊은 바다에서 하나님은 요나를 가장 안전한 물고기 뱃속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다 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배 위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물고기 뱃속이 바다 위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 있던 배 미침보다 파도로부터 요나를 지키시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물고기 뱃속이 훨씬 안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고 숨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본문의 시인도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의 초망 속에 비밀을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로다고 고백합니다. 원수들이 시인을 죽이려고 군대를 모아서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시인을 하나님의 초막 속에 비밀이 지키시고 하나님의 장막 속에 은밀히 숨겨주셨습니다. 대적들이 절대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피난처에 시인을 꽁꽁 숨겨서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은 성막을 의미합니다. 성막에 있는 은밀한 곳은 바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1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의 대제사장 한 사람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만약 이러한 법을 어길 경우 지성서에 들어간 사람은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은밀한 장소인 지성서에 신을 숨겨주신다면 그것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시인을 높은 바위 위에 두십니다. 높은 바위 위에 세워진 요새는 전쟁 중에 대적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인을 가장 안전한 곳에 지키시고 숨겨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환란 날에 반드시 지키시고 숨겨주십니다. 그 어떤 악한 영, 악한 사람들이 악랄한 공격을 퍼부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숨겨주시고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초막과 하나님의 장막을 넓게 펼치셔서 우리를 숨기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어야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키시고, 숨기시는 그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문의 7절과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8절은 제가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라 하였나이다.
아멘, 우리는 이미 앞에서 시인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시인은 부모에게까지 버림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편이 되어줘야 하는 그 부모에게조차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시인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10절 하반절에 그가 고백한 것처럼 아무도 시인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를 영접해 주었습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돌보고 보호하고 양육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버린다고 하여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 우리를 외면할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고 양육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소리 내어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8절 9절에서 시인은 주님의 얼굴을 찾기를 구하니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이시어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까지 그를 버리시면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시인이 큰 환란 가운데서 절박한 기도를 한 이유는 지금까지 그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 때문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적이 군대와 같이 몰려들고 가족까지 자신을 버린 상황에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고는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니요. 아닌데요. 저는 기도 안 하고도 잘 사는데요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도를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그냥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냥 하나님이 주신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놓고 부르짖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상태를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해 힘겨워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주님 살려주십시오라고 소리내어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 예레미야 29장 11절부터 13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아멘, 아멘,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기도하여서 문제를 해결받고 주의 은혜와 긍휼 안에 거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우리를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11절과 13절을 같이 읽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아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선택을 할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잘 결정하는 것인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의 도를 가르치신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옳은 인생길로 갈 수 있도록 바른 생활 방식과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옳은 길로만 가기는 어렵고, 바르게만 살기도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그대로 살도록 이끌어주실 때에만 틀리지 않은 인생길로 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인은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강구합니다. 원수들은 위증자이고 악을 토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시인이 죄악의 길에 빠져들기를 바라고 거짓말이라도 만들어내서 시인을 고소할 내용을 찾는 자들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이러한 원수들을 생각하셔서 자신을 평탄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강구합니다.
평탄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굴곡이 없는 땅을 가리킬 때도 쓰이지만, 정직, 공평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평탄한 길로 야를 인도하소서라는 말은 굴곡이 없는 순탄한 길로 인도해 달라는 의미이기보다는 위증자이고 악을 토하는 원수들에게 고소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도록 정직하고 공평한 길로 나아가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숨을 쉬듯 악행을 저지르는 그 원수들을 상대하다 보면 우리는 그들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그들처럼 사악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처럼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들처럼 포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에게 도를 배워서 정직하고 공평한 길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로마서 8장 28절을 우리 선포하듯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우리 다시 한 번 선포하듯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 뒤에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결국은 선한 결과를 맺도록 해주십니다. 나쁜 사람들이 아무리 거짓말로 우리를 위험에 빠뜨려도, 악한 사람들이 어떤 악행으로 우리에게 큰 손해를 입혀도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선한 결과를 누리도록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의 도를 배웁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길로 걸어갑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공평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문 4절과 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아멘 시인은 큰 환란 속에서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이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평생 동안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여호와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좀 당황스럽습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쟁과 같은 상황 속에서 구하는 소원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바라는 그 한 가지 일이 지금 겪고 있는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의 한 가지 소원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 앞에서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떤 위협 앞에서도 시인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어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었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만 참된 안전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예배가 시인의 단 한 가지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찬양이 시인의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험난한 삶 가운데에서 무엇이 여러분의 단 한 가지 소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배가 우리의 단 한 가지 소원이 되고, 찬양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당해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한 사람들로부터 건져내시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우리들을 구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다니엘의 새 친구들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줄은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와 찬양 중에 우리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한없이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난이 찾아오면 두려움에 빠지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머리가 원수 위에 들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은 패배를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머리를 들 것입니다. 즉 시인은 원수로부터 승리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미리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미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의 머리가 원수 위에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하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배가 단 한 가지의 소원이 되고, 찬양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
한 번 더 읽겠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아멘 우리도 모두 삶 가운데에서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 그 문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선한 결과를 우리에게 주실 그 하나님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흔들리지만 어렵지만 두렵지만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본문 1절에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빛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피난처가 되신다. 어두운 세상 속 험난한 삶 가운데에서 빛이시고 구원이시고 생명의 능력 되시는 하나님만 믿고 소망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 파리 선한 장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