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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장 넓어지는 천하 (2)
진(秦)나라 2대인 진문공(秦文公)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진문공이 부읍이라는 곳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그 들판에서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누런 뱀이 내려오는 꿈이었다. 머리는 수레바퀴만 하고 몸체는 평지까지 드리울 정도였으며, 꼬리는 하늘까지 닿아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뱀이었다.
그 뱀은 산 위에 이르러 꼼짝도 하지 않다가 진문공(秦文公)이 가까이 다가가자 별안간 어린 동자(童子)로 변했다. 동자가 진문공에게 말했다.
- 나는 상제(上帝)의 아들이오. 상제께서 그대를 백제(白帝)로 삼는다고 하셨기에 내가 전하러 온 것이오. 그대는 서방(西方)에 대한 제사를 게을리하지 마시오.
백제란 오방신장(五方神將) 중 하나로 서방의 신을 가리킨다. 가을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진문공(秦文公)이 뭐라 물으려 하는데, 어린 동자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진문공은 꿈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진문공은 점을 치는 신하를 불러 물었다.
- 내가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무슨 징조인지 점을 쳐보아라.
태사가 점을 친 후 대답했다.
- 백(白)은 서방의 빛깔입니다. 오늘날 주공께서 서방을 차지하신 것은 바로 상제(上帝)의 명입니다. 백제(白帝)를 잘 섬기시면 큰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에 진문공은 부읍에다 높은 대를 쌓고 백제묘(白帝廟)를 세운 후 흰 소를 잡아
제사를 지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진창(陳倉) 사람 하나가 사냥을 하다가 괴상하게 생긴 짐승 하나를 잡았다. 멧돼지처럼 생겼으나, 아무리 찌르고 쳐도 칼과 창이 들어가질 않았다. 사냥꾼은 하도 이상하여 진문공(白帝)에게 바치려고 끌고 갔다.
길을 가는 도중 사냥꾼은 두 동자(童子)를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사냥꾼이 끌고 가는 멧돼지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자기네들끼리 서로 말하는 것이었다.
- 저건 위라는 짐승이 아닌가. 저놈은 항상 땅 속에 엎드려 있다가 죽은 사람의 골만 뽑아먹곤 하지. 그 목을 치면 이내 죽는데, 사람들은 어리석어 그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자 끌려가던 위란 짐승이 별안간 사람 말로 사냥꾼에게 말했다.
- 저 두 동자(童子)는 사람이 아니라 꿩의 요정인데, 이름을 진보(陳寶)라고 합니다. 저 둘 중 수놈을 얻으면 왕이 되고, 암놈을 얻으면 천하패권을 장악하게 되지요.
이 말에 본색이 탄로난 두 동자(童子)는 이내 꿩으로 변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두 마리 꿩 중 수컷인 장끼는 진창산 북쪽 고개에 내려앉았다. 순간 위란 짐승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사냥꾼은 장끼가 날아간 방향인 진창산 북쪽 고개를 향해 올라갔다. 그 곳에 당도해보니 장끼는 한마리의 돌닭(石鷄)으로 변해 있었다.
사냥꾼은 그 길로 진문공(秦文公)에게 달려가 자신이 본 바를 그대로 아뢰었다.
진문공이 진창산으로 가보니 과연 꿩 모양의 돌이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는 진창산에다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니, 그것이 곧 진보사(陳寶祠)이다. 지금도 섬서성 보계현에 가면 이 사당을 볼 수 있다.
또 얼마 뒤, 다른 일이 일어났다.
옹남산(雍南山)에 엄청나게 큰 가래나무가 있었는데, 진문공(秦文公)이 그 나무를 베어 전각을 짓는 재목으로 쓰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까닭인지 톱으로 켜도 베어지지 않고, 도끼로 찍어도 날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 중에 큰 바람이 일고 폭우가 쏟아져 작업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밤이었다.
한 일꾼이 가래나무 근처에서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눈을 비비며 바라보니 가래나무 주변으로 많은 귀신들이 모여 나무에게 치하를 하고 있었다.
- 그대가 무사하니 , 참 다행이다.
- 사람들은 어리석어 나를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 한 귀신이 물었다.
- 만일 진백(秦伯)이 일꾼들의 머리를 풀게 하고, 붉은 실로 나무를 동여매면 어찌할 테요?
- ......................!
가래나무는 갑자기 벙어리라도 된 듯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날 그 일꾼은 진문공(秦文公)에게 달려가 간밤에 들었던 귀신의 말을 그대로 고했다. 진문공은 즉시 나무 베는 사람들의 머리를 풀어헤치는 한편 가래나무에 붉은 실을 친친 동여맸다. 그러자 톱날이 들어가 나무를 켜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래나무는 요란스럽게 쓰러졌다.
그때였다.
쓰러진 나무 속에서 푸른 소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사람들이 놀라는 중에 푸른 소는 나는 듯이 산을 내려가 풍수(豊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뒤였다. 풍수 가에 사는 백성들은 푸른 소가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진문공은 즉시 기병(騎兵)을 보내며 명했다.
- 그 소를 잡아오너라!
그러나 푸른 소는 몸체가 대단히 컸을 뿐 아니라 힘도 몹시 셌다. 기병들이 달려들었으나 모두 쇠뿔에 받혀 꼬꾸라졌다.
그런 중에 우연히 쇠뿔에 받혀 땅바닥에 널브러진 기병 중 한 병사의 머리가 풀어헤쳐졌다. 그 병사가 다시 말 위에 올라 소를 향해 돌진하는데, 별안간 소가 크게 두려워하며 풍수 속으로 들어가서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진문공(秦文公)은 털이 긴 소머리 형상의 투구를 만들어 모든 병사들에게 쓰게 하였다. 이러한 투구 모양은 이내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 후에는 어느 나라 군대건 간에 투구 꼭대기에 털을 장식하게 되었다.
또 진문공은 풍수 가에다 노특사(怒特祠)라는 사당을 세워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니, 오늘날 감숙성 무도현에 있는 사당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특(特)'은 황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설화가 진(秦)나라에 유독 많은 것은 진나라 사람들의 중원을 향한 의지가 어떠했는가를 잘 대변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뒤 진(秦)나라는 3대인 진영공 대에 도성을 평양인 옹성(雍城)으로 옮겨 중원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은 융족을 모조리 서쪽 사막지대로 쫓아버렸으며, 9대인 진목공(秦穆公)에 이르러서는 사방 1천여 리에 달할 정도로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