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경제관료, 언론인, 정치인, 정무직 공무원.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장관을, 박근혜 정부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이명박근혜 인사. 한때 친박계 좌장(座長)으로 맏형인 서청원 전 의원과 더불어 친박계 핵심인물로 꼽혔었다.
2. 생애
1955년 음력 2월 27일(양력 3월 21일)에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 신천동(現 경산시 신천동) 146번지에서 태어났다. 경산 남성초등학교, 경산중학교, 대구고등학교(15회)를 졸업 후 1975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75학번)에 입학하여 재학 중이던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1979년 2월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3월 10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1980년 4월 21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1980년부터 경상북도 청도군청에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공직 생활을 시작, 1980년부터 1994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에서 근무하였다. 경제기획원 근무 중인 1985년에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1987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91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재정경제원 국고국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선임연구원(Senior Economist)으로 일하였다. 1997년 귀국하여 문민정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보좌관을 거쳐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마지막으로 1999년 5월 퇴직하였다.
2.1. 정치 활동
퇴직 후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여 논설위원, 편집국 부국장을 지내다가, 2002년 9월 이회창 캠프에 경제특별보좌관으로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4년 경산시·청도군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6월부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과 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비록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도 박근혜를 지지하던 친박이기는 하지만, 이내 이명박에게도 기용되어 이명박 선대위의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총괄 간사를 맡게 된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를 역임하였으며, 2009년 9월 19일 이명박 정부의 지식경제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친박이지만 계파 색이 짙지 않다'고 평가받았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 후 2013년 5월 15일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고, 원내대표 임기 후인 2014년 7월 15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임명되어 친정인 기획재정부에 돌아오게 되었다. 2015년 4월 20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사퇴하자, 6월 17일까지 국무총리 권한 대행직을 수행했다.
경제부총리로서 초이노믹스로 불리는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다만 그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평은 나쁜 편이다.
한국여자프로농구 제6대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총재직 수락 당시 부천 신세계 쿨캣이 해체 또는 연맹 탈퇴의 기로에 섰는데, 이 위기를 하나은행의 인수로 해결하여 여자프로농구가 6구단 체제를 유지하는 데 공헌했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과 대구, 경북 지역의 과학 기술 연구를 진흥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대표적인 친박계(삼성동계) 인사로 계파 좌장급으로 분류되며, 2016년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 의원 모임인 이른바 진박 9인회의 일원이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에 연루되어 2018년 1월 4일 이우현과 함께 구속되었다. 2018년 6월 29일에 뇌물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2019년 1월 17일 항소심과 2019년 7월 11일 대법원에서 모두 원심이 그대로 확정되어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 이 여파로 의원직 상실과 함께 자유한국당에서 출당 조치되었고, 형기를 마친 후에도 국민의힘에 복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옥중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저 같은 사람의 잘못이 크며 누구든지 탄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고, 자유한국당이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서 보수 세력의 통합을 강조하고 스스로가 정치적 희생양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1억 원은 의정 활동비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2022년 3월 17일에 가석방되었다. 즉, 사면받은 게 아니므로 출소 후 형기 만료일인 2023년 1월 3일까지는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가석방되어 잔여 형기 동안 복역해야 된다는 것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을 통해 사면되었다. 정치 활동에는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자발찌는 2023년 1월까지었는데, 사면은 2022년 12월말이라 2주도 안되는 기간이 단축된 것이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이다.
출소한 후 2023년 6월 30일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김용태, 이기인 등 친이준석계 정치인들과 함께 강남의 모 식당에서 만찬을 즐긴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최경환은 이준석계에게 보수 연합군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수 연합군에는 과거 정적이었던 유승민, 정병국, 유의동 등 친유 정치인들도 포함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24년 1월 29일에 이전 지역구였던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원도 아닌데 국민의힘 로고를 붙이고 거짓 홍보를 하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에 최경환 후보 측은 캠프 관계자들의 단순한 실수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역의 거물은 거물이라고 총선을 앞두고 경산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현역 윤두현 의원을 크게 앞섰으며, 이 결과에 실망한 윤두현 의원은 결국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조지연 전 대통령실 행정관을 단수공천하여 조지연과 최경환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그러나 조지연 후보에게 불과 1.16%p 차이로 밀려 결국 매우 아쉽게 낙선하고 말았다. 무소속 최경환·도태우·장예찬, '복당' 꿈꿨지만 여당 텃밭서 참패 이 선거로 본인의 정치 인생 첫 패배를 당했다. 다만, 교도소까지 갔다오고 나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42.27%의 득표율을 얻으며, 4선 의원을 지낸 지역답게 지지 기반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총선 후반부 영남권의 보수결집 현상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대로라면 국민의힘은 텃밭인 PK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게 일정부분 의석을 내주며 개헌저지선인 100석도 간당할 것으로 보였으나, 개헌저지선 붕괴 위기감으로 인해 보수층이 막판에 대거 결집하였고, 이는 영남권 의석을 사수하여 간신히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설령 최경환이 당선되었어도 말이 무소속이지 국민의힘에 입당하거나 국민의힘과 합을 맞춰 의정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2025년 5월 15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문수 대선 후보 체제에서 장예찬 전 최고위원과 함께 국민의힘 복당이 승인되었다.
2026년 1월,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대구경북 통합에 대해서는 졸속통합 이라며 "대구경북 소멸의 주범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선 결코 안될 것"이라는 표현으로 반대를 했다. 이후 김재원 최고위원에 밀려 경북지사 최종결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2026년 4월 1일,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예비후보를 지지 선언을 하였다.
3. 여담
동명이인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최경환 전 의원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TK 출신에 TK 지역구이면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경제관료로 재직하다가 퇴임 후 정치인 생활을 한 다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보수 정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했다는 점,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추경호와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이름 초성도 ㅊㄱ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