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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오늘 계속합니다. 성경의 어휘를 각각 연구함으로써 그 어휘들이 들어 있는 문장과 또 성경 전체의 내용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이 성경 연구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172번째 시간으로 '땅'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바로 '땅의 신학'입니다.
땅에 무슨 신학이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은 평범한 단어라도 그것을 신학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우리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평상시의 뜻과는 다른 좀 더 높은 차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땅입니다. 오늘 땅을 공부하면 정말 깊은 의미가 거기에 담겼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땅의 신학(Theology of Land) 혹은 'Earth'도 지구 같은 땅이고 'Land'는 토지 같은 의미의 땅입니다. 같은 단어가 때로는 'earth'로, 때로는 'land'로 번역되기도 해서 같이 쓰였습니다.
먼저 구약 성경을 딱 펴면 창세기 1장 1절과 2절에 이 땅이 언급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데, "브레시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즉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아레츠(HaAretz)'가 바로 정관사가 붙은 '그 땅(the earth)'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절이 시작할 때는 1절이 끝난 단어인 '하아레츠'를 받아서 시작합니다. "베하아레츠 하이타 토후 바보후", 즉 "그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호쉐크 알 프네이 트홈", 즉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며 1장 1절은 땅으로 끝나고 2절은 땅으로 시작합니다. 번역된 우리말은 동사가 맨 끝에 가기 때문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서양의 언어나 히브리어, 헬라어의 경우에는 우리 어순과 같지 않아서 동사가 늘 먼저 나옵니다. "태초에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이어집니다.
여기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땅'이라는 말이 성경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두 구절인데, 원래 이 땅은 히브리어로 '에레츠(Eretz)'입니다. 에레츠에다가 영어의 'the'와 같은 정관사 '하(Ha)'를 붙이면 원래 발음상 '하에레츠'가 되어야 하지만, 앞에 나오는 '하'의 모음을 닮아 '하아레츠(HaAretz)'로 부드럽게 변형되어 발음되고 표기도 그렇게 합니다. 이것이 'the earth'입니다.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LXX)의 창세기 1장 1절에도 땅이 포함되어 있는데, 헬라어로 땅은 '게(Ge)'입니다. 여기에 여성 정관사인 '헤(He)'를 붙이면 '헤 게(He Ge, 그 땅)'가 됩니다. 헬라어는 남성 '호', 여성 '헤', 중성 '토'의 세 가지 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여성 명사인 '게' 앞에는 '헤'가 붙어 'the earth'가 됩니다. 이 '게'를 로마자로 쓰면 'Ge'가 되는데, 이것이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오면 'Geo-'라는 접두사로 발음됩니다. 땅 '지(地)' 자처럼 쓰이는 것입니다. 땅을 그려내는 지학이나 지리(Geography), 지질학(Geology), 지정학(Geopolitics) 등이 다 'Geo-'로 시작하는데 이것이 다 헬라어에서 옵니다. 영어의 고유명사 남자 이름인 '조지(George)'는 원래 헬라어 '게오르고스(Georgos)'에서 왔습니다. '게'는 땅이고 '오르고스'는 일하는 자를 뜻하므로 땅에서 일하는 자, 즉 농부라는 뜻입니다. 게오르고스가 영어로 오면서 '조지'가 되었으니, 조지라는 이름의 어원도 결국 '땅에서 일하는 자, 농부'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아레츠와 헤 게가 창세기 1장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이 땅의 원어 '에레츠'는 유대 학자들이 주후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완성하여 구약 성경의 가장 권위 있는 정본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소라 본문(MT, Masoretic Text)에 무려 3,504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구약 성경에 3,504회나 에레츠가 사용되었으니 굉장히 많이 사용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인 '게(Ge)'나 '아그로스(Agros, 토지)' 등은 독일 학자 네슬레와 프랑스 학자 알란드 두 사람이 완성하여 신약의 가장 권위 있는 사본으로 꼽히는 네슬레-알란드(NA, Nestle-Aland) 본문 기준으로 총 236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은 구약보다 부피 자체가 작아서 횟수도 적습니다. 에레츠와 게를 합치면 구약과 신약 성경을 통틀어 '땅'이라는 단어가 무려 3,740회나 사용된 셈입니다.
육지나 토지라는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는데, 베들레헴 성경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말 성경을 검색해 보니 '땅'이라는 글자는 총 2,530개 절에 나옵니다. 어떤 절에는 땅이라는 단어가 두 번 이상 쓰이기도 하므로 실제 횟수는 2,530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땅이라는 단어가 우리말 성경에 20회 나오고, 창세기 2장에 10회 나와서 창세기 1장과 2장에만 도합 30회나 쓰였습니다. 땅이 있어야 사람이 살고 생물이 살고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에레츠'나 '게'는 문맥에 따라 육지(26개 절), 토지(46개 절)로 번역되기도 하고 신약에서는 '지구'라는 단어로도 한 번 나옵니다. 천지(天地)라고 할 때의 '지(地)'도 결국 땅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지'와 2절의 '땅'은 원어상 똑같은 에레츠입니다. 이만큼 땅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수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땅은 도대체 어떤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땅은 피조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셨으니 천지는 하늘과 땅이므로 땅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생겨난 피조물입니다. 땅이 없던 무(無)의 상태가 있었으나 하나님이 지으셔서 생겨난 것입니다. 둘째, 7일 창조 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였고, 3절부터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첫째 날 창조가 시작됩니다. 2절을 보면 7일 창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땅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땅이 있기는 있었으나 공허하고 혼돈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하나님께서 6일간의 후속 창조 과정을 통해 인간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환경으로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우주적인 차원의 창조를 '전(前) 창조'라 부른다면,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있도록 6일간 가꾸신 창조를 '후(後) 창조'라고 개념적으로 구분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셋째, 땅은 인간이 경작하고 다스리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셨습니다. 땅을 다스린다는 말은 기경하고 경작한다는 뜻입니다. 땅은 인간이 지배하고 정복할 대상입니다. 넷째, 생물들의 존재 바탕이자 기반입니다. 땅이 없으면 소나 말이 어떻게 공중에 떠서 살겠습니까? 존재의 기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세 가지 축복의 명령인 충만, 정복, 다스림의 무대가 바로 땅입니다.
다섯째, 창세기 6장에 내려가면 땅이 부패하고 포악해집니다. 흙덩이 자체가 균에 의해 썩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땅이라는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부패하고 죄를 지었다는 의미의 성경적 표현입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악해진 상태를 땅이 부패했다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특정한 땅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 그리고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영감적인 글에 의하면 이 무리가 약 1,000명에 달하는 거대한 행렬이었다고 합니다. 마침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일곱째, 언약의 땅입니다. 창세기 17장 7절, 8절에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네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개념이 단순한 피조물에서 존재의 터전으로, 나아가 인간의 부패로 인해 심판받는 무대에서 특정한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언약의 유산이자 기업으로 점점 깊어집니다. 이것이 땅의 신학의 기초입니다.
여기 한 인물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약 40~50년 전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한 신학 서적을 만났는데, 책 제목이 그냥 『땅』(The Land)이었습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내용은 어마어마한 신학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박사인데 조상이 독일에서 왔기에 발음상 월터 브루만, 혹은 브리그만이라 부릅니다. 1933년에 태어나 92세의 나이로 작년 2025년에 별세하셨는데, 그가 남긴 이 책은 제목처럼 신학계를 흔들 만큼 위대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이 참 매력적입니다. '선물로서의 장소, 약속으로서의 장소, 그리고 도전으로서의 장소(The Land: Place as Gift, Promise, and Challenge in Biblical Faith)'입니다. 땅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언약이고 또한 정복해야 할 도전이라는 내용을 깊이 있게 설명해 나갔습니다. 제가 아주 아끼는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이 땅에 관한 연구가 더 넓어져서 다른 학자들과 브루그만 박사가 연합하여 일곱 명의 구약 학자들이 더 깊은 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땅의 신학』(Theology of the Land)입니다. 이처럼 '땅의 신학'은 구약 신학의 아주 중대한 한 갈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의 요점과 저의 생각을 더해 땅의 신학의 핵심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땅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즉 '신적 소유권(Divine Ownership)'입니다. 땅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소유가 아닙니다. 레위기 25장 23절에 토지 매매법과 관련해 아주 명확한 선언이 나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는 나그네일 뿐이니 땅을 자자손손 대를 물려 영구히 팔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기에 땅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으며, 잠시 임대받아 관리하다가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여기서 토지로 번역된 원어도 '에레츠(땅)'입니다. 시편 24편 1절에도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여 소유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합니다.
여기 저의 동료이자 신실한 구약 학자인 이종근 교수를 잠깐 소개합니다. 이종근 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구약학을 공부해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3년에 통과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바로 『히브리 성경에서 땅의 신적 소유권에 대한 신학적 개념(The Theological Concept of Divine Ownership of Land in the Hebrew Bible)』입니다. 이처럼 성경 레위기와 고대 근동 지방의 사상에서 땅은 신의 것이며 인간은 신적 소유권 아래서 임대받아 살아가는 청지기라는 신학적 원칙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더 깊은 연구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논문이나 이종근 교수의 연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땅은 선물이자 위탁물입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에 하나님이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 가문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민수기 13장 27절에 12 정탐꾼이 돌아와 가나안 땅에 대해 보고할 때도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라며 큰 포도송이 샘플을 보여주었습니다. 약속을 믿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땅은 참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선물의 땅이었습니다.
셋째, 땅에게 안식년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은 인간이나 가축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토지(땅)도 누려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1절로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네가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년 동안 부지런히 곡식을 내느라 수고한 땅을 일곱째 해에는 아무것도 심지 말고 그대로 두어 쉬게 하라는 '휴경(休耕)'의 명령입니다. 땅을 쉬게 하는 것이 곧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고 표현할 만큼 성경은 토지의 안식을 무겁게 다루었습니다. 땅을 너무 착취하지 말고 자연 환경도 쉬게 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입니다.
넷째, 땅의 희년이 있습니다. 안식년뿐만 아니라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Jubilee)' 역시 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너희는 오십정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정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니라." 희년은 빚 때문에 다른 집의 노예가 되었던 종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 해방시키는 해이자, 생계가 어려워 임대로 넘겼던 조상의 땅을 본래 주인에게 대가 없이 되돌려 주는 '소유의 회복'의 해였습니다. 요약하면 안식년은 땅의 '휴경'을 통한 쉼이고, 희년은 '자유와 소유의 원상회복'을 뜻하는 기쁜 해였습니다. 여기에 모두 땅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땅은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3장 1절 이하에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아직 원주민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지파들이 싸워서 개척하고 차지해야 할 남은 땅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블레셋의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등 정복해야 할 도전의 무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땅을 지파별로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듯이 신정 국가에서 제비뽑기는 인간의 사사로운 편향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정해주시는 섭리에 따라 분배하는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방식이었습니다. 가나안 지도를 보면 요단강 동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자리 잡았고 요단 서편에 유다, 에브라임, 베냐민,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가 제비 뽑은 대로 공평하게 토지를 분배받았습니다.
여섯째, 땅의 회복입니다. 백성들이 범죄하여 나라를 잃고 흩어졌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 땅을 다시 회복시켜 돌아오게 하겠다고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했을 때 예레미야 24장 6절에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하셨고, 에스겔 11장 17절에도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에스겔 28장 25절에도 내 종 야곱에게 준 고국 땅에 그들이 다시 돌아와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고, 실제로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고국 땅 가나안으로 귀환하는 회복의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바벨론에서 70년 등 총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국땅에서 실향민으로 고난당하던 백성들을 고국의 땅으로 되돌리신 것이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가장 영광스러운 '새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죄악으로 저주받아 낡아진 이 땅 대신 새 창조를 선포하십니다. 이사야 65장 17절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고, 66장 22절에도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며 매 안식일과 초하루에 모든 혈육이 나아와 여호와께 예배할 신천신지의 영원한 세계를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귀환 약속을 넘어 궁극적인 새 창조의 비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예언을 이어받아 요한계시록 21장 1절, 2절에 요한이 선포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 신천신지의 소망이 바로 땅의 신학의 종착지입니다.
우리는 장차 이 거룩한 새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절, 2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침례를 받아 거듭난 성도들은 세속적인 정욕과 죄악으로 물든 이 땅의 썩어질 물질과 호화로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저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새 땅의 가치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팔복 중에서 이 땅을 차지할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명확히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은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이 상속받을 하늘의 새 땅을 의미합니다. 이 지상 세상에서는 거칠고 사나운 자들이 무력으로 남의 땅을 빼앗고 차지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새 땅을 분배받을 사람은 오직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한 자들뿐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 37편 11절의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하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혈기가 있던 모세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어져 온유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바울도 디도서 3장 2절에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영감의 글인 『성화된 생애』 14페이지에는 아주 중요한 지침이 나옵니다.
"성화의 가장 귀중한 열매는 온유의 은혜이다(The most precious fruit of sanctification is the grace of meekness)." 내가 참으로 변화되고 성화되었다는 첫 번째 확실한 증거는 내 품성이 온유하고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5페이지에도 온유는 성령께서 마음을 변화시키실 때 주시는 은혜이며, 온유한 사람은 충동적이고 성급한 천성적 기질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합니다. 아무리 과격한 천성을 타고났을지라도 성령의 은혜로 자제하며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는 온유한 품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내 곁에 오는 사람들이 칼바람 같은 날카로움이 아닌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야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거친 성격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는 결코 하늘 땅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드린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1
땅의 창조와 존재의 기반
1.땅의 창조와 존재의 기반: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며 땅(에레츠/게)을 인간과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존재의 터전이자 기반으로 선물해 주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땅이라는 단어는 원어상 3,740회, 우리말 성경에는 2,530개 절에 달할 정도로 매 장 평균 한 번 이상 무겁게 선포되는 핵심 어휘입니다.
2
죄로 인한 상실과 구국의 역사
2.죄로 인한 상실과 구국의 역사:
인간은 범죄함으로 에덴의 땅을 잃어버렸고, 그 후손들은 부패하여 땅을 더럽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도의 결과로 애굽에서 430년, 바벨론에서 70년 등 총 5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이국땅에서 실향민으로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들을 다시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되돌리시는 토지 회복의 여정(출애굽과 포로 귀환)입니다.
3
토지의 신적 소유권과 안식의 법
3.토지의 신적 소유권과 안식의 법:
레위기 25장의 선포대로 **'땅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것(신적 소유권)'**이며 인간은 잠시 빌려 쓰는 거류민이자 청지기입니다. 따라서 조상의 기업을 영구히 팔지 못하게 하셨고, 7년마다 땅을 완전히 쉬게 하는 **안식년(휴경)**과 50년마다 본래의 소유권과 자유를 무상으로 원상 복구시키는 희년 제도를 통해 토지의 신성한 안식과 분배의 질서를 규정하셨습니다.
4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
4.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
구약의 가나안 토지 회복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죄의 저주와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거룩한 **'새 하늘과 새 땅(신천신지)'**의 도래를 예표합니다. 성경은 본향 땅을 잃고 영적으로 방황하는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새 땅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행로를 기록한 책입니다.
5
새 땅의 상속자와 온유의 품성
5.새 땅의 상속자와 온유의 품성:
예수님은 사나운 자들이 무력으로 땅을 뺏는 지상 세태와 달리, 하늘의 새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사람은 오직 **'온유한 자'**뿐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마 5:5). 성화의 가장 귀중한 열매는 부드럽고 따뜻한 온유의 은혜이므로, 성도는 썩어질 이 땅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성령의 온유한 품성을 꼴지어 가야 합니다.
성경의 땅의 신학은 참으로 깊고도 장엄한 구원의 대하소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이 땅의 일시적인 재물이나 명예에 마음의 뿌리를 박지 않고, 저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천국 청지기들입니다. 지상에서 비록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내 영원한 기업과 소유지는 저 하늘 새 땅에 있다"는 확신을 품고 매일 온유하고 너그럽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마다 땅이라는 단어 속에 감추어진 이 거룩한 약속을 상기하시며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72번째 땅의 신학 강의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중요한 성경의 어휘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 핵심 요약정리
'땅'의 원어적 고증과 성경 내 빈도
구약 히브리어로는 '에레츠(Eretz, 3,504회)', 신약 헬라어로는 '게(Ge, 236회)'로 사용되어 성경 전체에 총 3,740회나 등장하는 방대한 비중의 단어입니다. 헬라어 '게'는 영어의 'Geo-(지리, 지질, 지정학)'라는 접두사의 어원이 되며, '조지(George)'라는 이름도 '땅에서 일하는 자(농부)'라는 뜻을 지닙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총 2,530개 절에 '땅, 토지, 육지, 지(地)'의 명칭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5장의 토지법과 신적 소유권
신적 소유권(Divine Ownership):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레 25:23) 하신 원칙에 따라 땅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임대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에 조상의 상속 토지를 영구히 매매하지 못하게 차단하셨습니다.
안식년과 희년: 7년마다 토지를 완전히 묵혀 쉬게 하는 안식년(휴경)을 통해 땅 여호와께 대한 안식을 누리게 하셨고,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모든 빚진 노예들의 해방(자유)과 함께 매매되었던 조상의 땅을 원주인에게 무상 복원(소유의 회복)시키는 공평한 재분배 율법을 실행하셨습니다.
구속사적 전개와 본향 귀환의 여정
죄로 인해 에덴의 땅을 잃어버린 인류의 역사는 '실향민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430년)과 바벨론(70년)에서 도합 500년간의 유수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복귀한 구약의 실제 사건들은, 성도가 죄악 세상을 탈출하여 궁극적인 하늘 가나안인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장)'으로 복귀하게 될 영적 출애굽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신학적 모형입니다.
새 땅의 상속 조건: 온유(Meekness)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완력과 투쟁으로 땅을 차지하는 세속적 방식과 달리, 하늘의 신천신지를 상속받을 성도의 절대 조건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의 품성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성화의 가장 귀중한 열매가 바로 온유의 은혜입니다.
종합적 신학 결론
성경의 땅의 신학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 마음을 심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골 3:1~2)"고 가르칩니다. 이 낡은 지구의 일시적인 결핍에 낙심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품성을 가다듬으며 창조주께서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황금 길과 새 땅을 상속받을 영적 소망을 확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