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1월 1일 러시아가 투르크에 선전포고하였고 11월 5일 영국과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투르크 군대가 러시아 영토 카프카스(오늘날의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로 진격하자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투르크에 대한 견제 공격을 요청했다. 영국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공격하여 러시아로 가는 바닷길을 열자고 제안했다. 서부전선의 전황이 급박한 육군은 그만한 병력이 없다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자 처칠은 해군 단독작전을 추진했다.
영불 연합함대는 1915년 2월 19일부터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의 투르크 요새들에 함포사격을 가한 뒤 해병대가 쿰칼레(Kum Kale)에 상륙했다. 쿰칼레는 해협의 아시아 쪽 해안으로 고대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예상과 달리 투르크의 완강한 저항으로 해병대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처칠은 대공세를 준비했다. 15인치 주포를 탑재한 최신예 전함 퀸엘리자베스를 포함해 영국 전함 12척과 프랑스 전함 4척에 순양함 24척, 구축함 25척, 소해정 수십 척이 동원되었다.
3월 18일, 함대는 다르다넬스 해협에 진입하여 투르크 육상 포대와 포격전을 벌이며 전진했다. 전투 결과 전함 3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어 전투력을 잃었으며 그밖에도 4척이 파손되었다. 영국 해군 역사상 이런 참패는 처음이었다. 작전 실패에 책임을 지고 처칠과 해군총사령관 피셔가 사임했다.
전함 퀸엘리자베스
예상치 못한 참패에 격분한 영불 수뇌부는 육군을 투입하여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하기로 했다. 투르크군의 배치에 관한 확실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작전계획이 급하게 수립되어 육군 7만 명이 동원되었다. 상륙 지역으로는 갈리폴리 반도가 선택되었다. 4월 25일 새벽에 세 지점에서 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프랑스군이 쿰칼레에 상륙하고, 갈리폴리 반도 남단 헬레스 곶에 영국군 29사단이 상륙했다. 이곳에서 10마일 북쪽 해안에 호주와 뉴질랜드 출신으로 편성된 앤잭(ANZAC) 부대가 상륙했다.
갈리폴리 반도의 해안은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상륙 작전에 대단히 불리했다. 앤잭 부대가 상륙한 장소는 가파른 비탈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협소한 해안이었다. 능선으로 이어진 산꼭대기에서는 해변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상륙부대는 산꼭대기를 점령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전진했으나 중턱에 이르렀을 때 투르크군의 총탄이 쏟아졌다. 투르크 대령 무스타파 케말은 산 뒤쪽에 주둔하고 있다가 함포 소리를 듣자마자 선두에서 부대를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 영국군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 영국군은 불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계속했고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남쪽 헬레스 곶에서도 고전의 연속이었다.
영국군은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8월 7일 앤잭 북쪽 수블라 만(Suvla Bay)에 상륙했으나 여기서도 무스타파 케말에게 저지당했다. 케말은 이제 북부지역 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참호전이 계속되어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침내 영국군은 12월 28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해서 1916년 1월 8일에 마지막 부대가 떠났다. 8개월 넘게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군 사상자는 26만 5천 명이었다. 투르크는 비슷한 손실을 입었지만 승리를 차지했고 무스타파 케말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앤잭 부대 상륙 해안
영국군 상륙 모습
영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