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마이너'의 감성이 각인되어 있지만, 태도는 억눌려 있지 않으며 눈빛이 따뜻하다. 그와 이미 여러 번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의 표현이라면 그는 "이땅에 태어나 마땅히 소주를 같이 마실 만한 사람"이다.
'이끼, 미생'의 작가 윤태호(69년생)를 분당 오리역 부근에 자리한 화실에서 그의 벗 손종수 상무와 함께 찾아가 만났다. 만화가 윤태호는 분당 부근에 터를 잡고 15년을 살았고, 이곳 화실은 4년이 됐다.
윤태호에게 '마이너리티'의 기운은 그의 작품마다 따라다니고 있다. 바둑을 모티브로 삼은 미생은 그의 작품중 상대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 본인의 '성인개그만화'마저도 미생보다 훨씬 우울한 느낌을 줬다는 게 윤태호 작가의 말이다.
포털싸이트 다음에 연재되는 만화 '미생(未生)'은 입소문을 타면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3년의 고민과 준비가 있었던 작품이고 기원을 따지면 10년이 걸린 스토리다. 여러가지 바둑용어 중에서도 '아직 살아있지 못한 상태'인 '미생'을 고른 작가의 시선부터가 벌써 남다르다.
일단 이런 작품을 내놓은 윤태호를 먼저 '느껴'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무척 아파했던 부분에 대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비교적 친절하게 자신을 꺼내 놓았다.
"온전히 느끼기 시작한 건 고1 때부터다. 그 전엔 어려서 인지를 못했다. 특별히 나만 더 못 산다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광주로 이사오면서부터 모든 생활 하나하나가 돈이 들어가는 생활이 됐다. 집을 팔고 온 것도 목격했다. 아버지가 집값 흥정하는 거를 똑똑히 봤다. 집 팔고 오는 게 수치스런 상황이었고, 사춘기가 겹친 고2,3때라 아주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왜 이럴까?'하는 아주 낮은 자존감이었다. 나는 가난하고, 피부가 또 안좋아서 열등한 마음이 심했다. 그래서 타인을 보면 더욱 관찰하게 됐다. 어린시절 화상을 입은 아이가 있었는데 얼굴엔 화상이 심했지만 몸은 깨끗했다. 그때 난 '저 몸과 바꾼다면 얼굴에 화상이 있어도 좋아'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어릴 때는 시골에서 멱을 감더라도 난 피부가 안좋아서 같이 놀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안좋은 피부를 감추려 목을 움츠리고 걸었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자주 그렇게 다닌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서 '나'보다 좋은 점을 찾고, 나 자신을 비하하는 자학적인 습관이 생겼다."
- 대표작인 이끼를 보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면이 강렬하기까지 하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영상으로 사람의 상상력을 후벼파는 느낌이 든다. 가령 작품 '이끼'에서 주인공 류해국이 이영지를 만나는 첫 장면, 남자들은 그 영상에 모두 움찔할 거다. 이런 거, 경험으로 만드는 것인가?
"각각 경험의 층위가 있을 것이다. 그런 구체적인 경우는 구조적으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이 이영지란 여자를 처음 만날 때 남자와 여자기 때문에 관계를 만들 고리가 필요했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 시절을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다른 그룹에 스며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어떻게 재미있는 필요한 사람이 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쓸데없는 개그나 농담, 괜히 그림을 그려주고 보여주고 하며 관심의 범주안에 있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지?' 하는 고민이 항상 있었다."
분당 윤태호 화실에선 일주일에 세 번의 작품을 마감한다. 다음에 연재하는 '미생'이 두 번, 한겨레에 연재하는 '내부자들'이 한 번이다. 윤태호는 상업적 흥행에 성공한 작가지만 자신의 성공에 안주해 있지는 않다. 이전의 성공한 만화가들과는 달리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만화가들의 작업환경과 지적재산권, 만화 콘텐츠의 공정한 유통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세종대에는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한다.
- 포털에 연재되는 웹툰이 방심위에 의해 유해매체로 지정되자 윤태호는 강풀 등의 만화가들과 함께 1인 시위에 나섰다. 지금까지 상업적 성공을 거둔 만화가들 중에선 찾아보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웹툰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유해매체로 지정했다. 만화가 비대위를 조직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1인 시위를 하며 후배들을 독려하고 열심히 했더니 성과가 있었다. 관련정부 부처에서 ?후 부랴부랴 일을 정리했다. 관련부처들이 한쪽은 만화를 장려하면서 한쪽은 마구 규제를 하고 쓰레기 취급을 하니 그건 아니다."
- 음. 등장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 있는 건가, 이끼의 '류해국'의 어린시절이 마치 미생의 주인공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까 류해국이 결혼전의 모습같기도 하던데?
"하하, 장그래(미생의 주인공)는 내가 그릴 수 있는 스마트한 사람의 최선의 캐릭터였다. 순하게 보이지만 류해국보다는 조금 더 뾰족하게 보일 거다. 주인공이 가진 그런 성격을 내가 좋아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보는 성격이다. 류해국은 실존 모델이 있었다. 자기의 사건기록을 인터넷에 꼼꼼하게 연재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생의 경우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님과 한국기원 박장우 부장님의 의견도 들었고 황인성, 김지은 등 연구생 출신, 홍맑은샘 초단의 아버지 A7사의 홍시범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생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자연스레 나왔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제안이 3년전에 있었다. '바둑의 고수가 세상에 대해 일갈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전 2000년 초반에 제가 내기바둑이란 소재를 너무나 하고 싶어서 에세이들을 많이 사서 읽었다. 노승일 선생의 '관철동사람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글, 거의 모든 글을 읽었는데 결국 포기했다. 내기바둑에서 벌어지는 절묘한 수 싸움을 그리고 싶었지만 내 급수가 너무 낮아서였다. 크... 하하하. 포기해야겠다. 안되겠다."
"그 다음엔 경영관련, 창업만화에 꽂혀서 음식점, 주식회사창업, 벤처창업 관련 책들을 엄청나게 읽고, 메모하고 자료를 모았다. 회계사까지 만나 인터뷰하면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나이스하게 현실과 접목시켜 보여주려 했다. 역시 힘들더라."
"이런 과정을 거쳐 '바둑과 샐러리맨'이라는 주제가 잡혔다. YES! 그렇지만 이게 마음에 너무 걸렸다. 내가 고수라는 사람들의 품격, 그 지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둑고수가 작품에서 할말에 대한 콸러티(Quality)에 자신이 없었다. 프로가 아닌 연구생만해도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구름 위의 사람들이라 보통과는 다르지 않은가. 바둑의 고수라면 일단 짐작도 못할 것이라 봤다. 편견인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런 마음이 있었다."
"출판사가 내게 제안한 일이다보니 그런 부분도 힘들었다. 출판사에선 예를 들어 식객, 혹은 타짜 같은 작품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뭔소리인가 봤더니 결론, 히트치는 작품이더라 하하하, 아예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 "
"'이건 내 일이야' 하는 그런 게 있어야 매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이끼를 끝내고 3년동안 고민을 한 것은 결국 너희(출산사)의 제안 때문이 아니라, '이건 내 일이야' 하고 느끼는 감정적인 추스림까지 걸린 3년이었다"
- 바둑의 전문가를 많이 만나셨다. 그중에서도 입단하지 못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말하자면 주류 속의 비주류, 전문가 그룹에서의 마이너를 택하셨다. 이유가 있나?
"보통 대학 전공을 택할 때, 시험점수 봐서 전공을 골랐지 전공 봐서 대학을 택한 사람이 있나? 난 그것이 인생의 첫번째 실패라고 본다.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얹혀진 것이다. 그러다 졸업 때가 되면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회사에 들어간다. 그런 사람은 두번째 인생의 실패를 맛 본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없이 상황에 따라 얹혀진 것이라면 합격과 취업이 모두 인생의 실패가 된다.
연구생 출신 주인공은 입단을 못한 개성적인 사람이다. 바둑을 정말 열심히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패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입단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정했을 때 보통의 샐러리맨들과 개념적으로 같은 지점이 된다."
"결혼도 세번째 실패가 될 수 있다. 그냥 장난하다 엮여서, 그냥 별로 마음에 없지만 매몰차지 못해서 결혼하면 그것도 실패 아닌가? 달리 보면 성공인가? 하하하하"
-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의 영향을 어느 순간 많이 받았다. 80년 후반 90년 초반의 드래곤볼, 슬램덩크는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만화는 초반구성이 치밀하다가 마지막에 질질 끄는 단점이 있었다. 기발함 등의 장점에 비해 너무 심하게 끌어간다. 그에 비해 윤태호의 작품은 끝맺음이 확실한 게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닮았다. 끝낼 때 끝낸다. 시작과 끝이 명료하다. 인기가 있다면 좀 더 끌고 가고 싶은 생각도 생길 텐데?
"음, 일본은 만화 하나가 산업이다. 한 작품의 부가수익이 몇 백억이라서 갑자기 연재를 끊는다는 것은 산업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다. 한국은 작품을 그냥 끝낸다는 것이 고료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의미 외에는 없다. 환경의 차이다."
"또 예전과 달리 만화가 하나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타이틀 안된다. 이끼 연재에 한 3년 들였고, 그게 끝난 후 미생 준비 3년이었다. 벌써 6년이다. 한 작품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신중할 수밖에 없다. 손을 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거나 하면 고민도 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즐거움을 상쇄하고도 남을까? 그건 아니다."
아내의 생각은 작가의 생각과 다르다고 한다. 또 '미생'이란 작품이 기존 작품과 달리 매우 밝은 편(?)이라 아내가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아내의 뜻을 따라 정말 장기간 끄는 작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끝낼 때 끝낼 것이라 예상 가능하다.
"아내는 '미생 빨리 끝내면 죽을 줄 알아.' 그런다. 미생은 내가 그리는 만화 중 최초의 긍정적인 만화라 볼 수 있다. 아내도 그래서 좋아한다. 아슬아슬한 느낌의 조바심이 없어서 정말 좋다고 한다. 이전의 내 개그만화도 내용자체는 어두운 개그였다."
"그냥 끌고 갈 것인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고, 만화가로서 사는 즐거움, 여러 장르를 그리는 즐거움을 채워햐 한다. 이 바닥의 생리는 에너지가 왔을 때 후욱하고 끌어당기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미생은 바둑만화지만 바둑 장면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러나 장면에는 바둑이 없지만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들은 바둑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바둑을 상상한다'. 작가의 생각이 얼만큼 깊었냐는 것을 반증한다. 이어지는 윤태호 작가의 말이다.
"미생을 시작하면서 핵심 화두로 생각하면서 힘을 냈던 것이 하나 있다. (만화 속 바둑 자체의 비중이다.) 바둑만화에서 바둑이 좀 덜 나왔으면 좋겠다는 조언(역설), 정말 힘이 됐다.(바둑을) 어설프게 건드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가령, 특히 사활문제 이런 거, 독자가 바둑을 모르면 거기의 바둑돌 숫자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종수 상무가 이 장면에서 흐뭇해한다. 바로 그런 조언을 한 사람이며 오늘의 인터뷰를 주선한 사람이다.
- 아까와 비슷한 질문인데, 만화 속 디테일들은 경험인가? 가령 전에 남편이 개그하는 만화 있잖은가, 직장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인가? 그리고 이끼에서 '덕천'이 할머니의 죽음, 시신을 마주한 그때를 회고하는 장면들도 그렇다. 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디테일이다.
"혼자 자는 남편은 '문장백과 대사전'이라는 책을 보고 상상한 것이다. 가령 동서고금을 통해 사랑과 관련한 발언, 명언들이 소개되어 있고 이것을 토대로 스토리 쓰는 훈련을 한 것이다. 성인잡지에 연재됐는데 섹시코드가 유행한 때라 그냥 그렇게 해본 것이다.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를 훈련한 작품이다."
"이끼에서 덕천이 죽은 할머니의 손가락을 보고 주무르다 그만 부러뜨리고 겁에 질린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네살짜리 동생이 죽었다. 어린 아이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아랫목에 눕혀 놨다. 동생이 거기 누워 있고 손을 잡았다. 서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너무 이상해서 손을 주물렀다. 손이 비틀려 있었다. 죽은 동생의 손을 펴주려 했더니 손이 뚜둑 부러지려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동생 옆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무서움이 스물스물 스며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방을 나오면서도 그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글쎄, 창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경험치는 어디까지일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영역은 감정이입을 해야한다. 가령 '미생'에 나오는 운송장을 예로 들어볼까? 운송장에 대해 더 이해를 하고 싶다면 '운송장 사고!'를 검색한다. 그러면 그것이 한 개인에게 어떤 부분인가. 이거 하나 잘 못하면 어떤 의미인 거고 거기에 관련된 사람은 어떤 책임을 지나를 알 수 있다. 고참 사원이라면 알음알음 넘어가겠지만, 신입이라면 엄청난 사건일 거다."
"미생에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대리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을 다시 가서 공부를 할까, 직장을 계속 다닐까 고민한다. 집에 불켜진 것을 보지만 집에 가기 싫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들어가긴 싫은 거다. 그곳엔 아빠로서의 역할이 있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으니 집에 들어가기 힘들다.
만화가 직업이라는 건 마감이라는 게 없다. 퇴근이라는 게 없다보니 집에 가더라도 놀아주더라도 정말 편한 마음으로 놀아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대사를 썼는데 호응이 많았다.
일요일, 많은 아빠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자기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가족,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내들의 모임에 올라오는 인터넷 글을 보면 남편 덕분에 행복하다는 글은 거의 안올라온다."
"미생의 테마 중 하나는 그것이다. 나 혹은 가정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데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에 가정이 희생 당하고 있다. 그것을 되돌리자 그런 게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목소리 엄마들의 목소리가 미생에서 중요하다. 물론 그래도 야근할 사람은 야근을 해야할 것이다. 만화 한 편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겠나 하겠지만 그렇게 느끼고 가는 것이 다르다. "
- 윤태호 작품의 특징이랄까? 물샐틈 없이 꽉 짜인 스토리다. 마치 2시간 분량의 잘 만든 영화처럼 꽉 짜인 라인이다. 영화 이론이나 영상 문법을 따로 공부한 것인가? 독학이더라도 그런 학습이 없다면 어려울 것 같다. 전문 소설가도 그렇게 쓰기는 힘들 것 같다.
"이끼는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그런 면이 강하다. 그리고 내가 한창 배울 때 만화이론서가 없다보니 영화이론을 봤다. 만화, 영화, 드라마는 모두 영상문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또 영화이론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감독님들이 가끔씩 영화공부하셨어요? 하고 물어오기도 하고 기자들은 '만화가 영화적이다'라고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영상적'일 겁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우리는 하나의 사진, 활자, 문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흘러가듯이 생각한다. 난 만화에서 그런 영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게 바로 영상문법이다. 따라서 영상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누구나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본다. "
소설의 경우도 가령 '7년의 밤(정유정)'은 굉장히 영상적이다. 반면 정통소설이라 하면 문체도 내용의 일부로 본다. 해서 건조하게 뭔가를 묘사하기 위한 문예소설류의 문체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상적이어서 더 좋다, 혹은 그러지 않아서 좀 아쉽다 그런 것은 (내겐) 아니다. 내 경우엔 영상적인 장점을 더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그렇게 보면 된다. "
- 이번 '미생'에서 일본만화 시마과장이 성취한 영역을 '넘어서고 싶다'라고 밝혔었다. 음 시마과장은 좀 야한데, 미생은 그런 구석이 없지롱. ^^
"시마과장을 보려면 당시의 일본의 시대적 정황을 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환경을 보고 당시의 시마과장을 보면 반칙이다, 시마과장은 일본 대 버블의 시기를 살아가며,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일본이 배경이다. 샐러리맨임에도 직장내 정치에 따라 칼날 위에 선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편에 속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지킨 직장인 시마의 이야기다. 그땐 이게 대단한 미덕이자 올바름이었다. 그런 이해없이 내용 일부분에 치우쳐 여자나 후리고 다닌 만화'시마과장'으로 보면 반칙이다. 후후후 (사실 미생에서 장그래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 쓸 거냐고 물어 보려는 의도였다. 곧 나오겠지. )
이어지는 말에서 현재 연재중인 미생의 모습과 향후 나올 미생의 모습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만화 시마과장에서 디테일에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디테일, 실무에 관련한 디테일도 그렇다. 저의 디테일은 낭만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리얼리티와 낭만, 이게 전해졌을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때, 독자들이 이게 우리의 사는 모습이야 라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저런 일이 가능해?라는 댓글이 있어도, 누군가 저런 일 있었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댓글이 달리면 되는 것이다."
- 어느 만화가의 인터뷰에 만화가 인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는데, 단지 마감이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화가로서 힘든 점이라면?
"자기 직업을 갖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한다는 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항상 힘들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하려 한다. 그들에게 대체가 안되려면 정말 잘해야 한다. 나이와 경력이 있는 만큼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만만치 않다. 작품의 매 회 마감은 굉장히 힘들지만 젊은 신인작가들과 동등하게 어깨싸움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쾌감이 있다. 제 스스로 제 지면을 지켜냈을 때 행복하다. "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왜 이러지?, 왜 이럴까? 하며 거울 앞에서 자존감을 한 없이 비하했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양보없는 부분이 하나씩 있다. 나같은 경우는 그림이다. 이게 무너지면 저란 존재가 모래처럼 사라질 것 같다."
- 윤태호의 만화를 보면 누구나 '작품'이란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만화또한 예술이며 우리가 문학이나 미술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듯 만화또한 그렇다. 윤태호의 작품, 그러니까 펜이든 붓이든 혹은 연필이든 무엇으로 그렸든, 혹은 그것이 완성품이건 미완성품이건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같이 전시하자 라는 적은 많았지만 직접 작업물을 사자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림 파일이 아니라 종이에 한 것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이해될만큼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이 너무 힘들게 시작이 되고, 연재한 작품들은 찰나에 끝나며 끝과 시작의 텀이 너무 길어 불필요한 아르바이트가 많았다. 그런 즐거운 일은 상상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그리고 절대 그런 생각은 안했고, 사고자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음. 영화제작분들께는 선물로 주는 그런 그림을 그려 준 적이 있다. 미국의 팝아트는 예술의 권위를 희롱하는 형식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만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했지만 복제가 가능한 그런 시대의 지점을 표현한다. 저로선 "만화가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하는 입장이다. 뭐, 아니어도 좋다. 마치 내 만화에 '만화지만 좋네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조치훈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처럼 (그래봤자 만화, 그래도 만화)... 언젠가 미생에서도 조치훈의 말이 나올 것이다. "
손종수 상무의 리액션이 적절하게 터진다. "그것은 조치훈이니까 할 수 있는 말, 지금은 윤태호니까 할 수 있는 말"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가 가진 사회적인 가치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가령 만화는 '극과 극'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만화산업으로서 엄청나게 띄우다가도 어느 순간 청소년에게 해가 된다는 식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윤태호의 시선을 보자.
"만화와 바둑은 다른 점이 있다. 바둑에는 '쓰레기의 영역 '은 거의 없잖나. 그러나 영화,만화,소설 등 이런 분야는 오로지 돈만을 위한 탐욕적인 존재가 있다. 바둑에는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태생적인 부분이 있다. 공식 바둑에 존재하는 형식미는 대단히 절차적이다.
바둑엔 기보가 있다. 그 기보가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확인,탐구,업데이트 되는 과정이 있다. 굉장히 합리적인 절차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절차를 목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 어린아이들에게 수순의 의미와 근거를 알려준다. 이렇게 왜 그랬는지를 묻고 논리를 캐묻는 분야가 많지 않다. 그래서 '바둑을 공부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엇나가기가 매우 힘들것이다'고 느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러리라고 본다. "
일정 수준이 되면 자기 바둑을 복기하잖나. 그건 실패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매순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보같은 자기의 순간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둑은 장구한 기간동안 지속되 왔다. 한국만화는 근대화 이후 30년의 역사기 때문에 많이 다르다."
윤태호의 피와 살
윤태호의 스승은 만화가 허영만과 조운학 두 사람이다. 허영만 화실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조운학 화실에서 문하생으로 일었다. 윤태호는 조운학 작가가 아가페를 연재 할 때 허영만을 떠나 조운학 화실에 들어갔다. 허영만 화실에서 배운 것과 조운학 화실에서 배운 것은 서로 다르지만 또한 윤태호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마치 바둑황제 조훈현이 일본의 세고이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지만, 실전스승 '괴물 슈코'를 둔 것과 비슷하다.
- 허영만 문하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허영만 문하를 떠난 것은 너무 바빠서 혼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다. 당시 허영만 화실은 6개 매체에 연재를 했는데 문하생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다. 문하생으로서 칭찬받는 것도 좋았지만, 전 25살에 데뷔를 하고 싶었다. 연습자체를 못 하겠어서 조운학 화실로 옮겼다. 전 허영만, 조운학 둘 다 이야기를 하는데 허영만 선생이 더 유명하니까 언론에서 조운학 선생을 빼고'허영만' 선생만 소개한 경우가 많아 그렇다.
조운학 화실에서 2년 반 정도 있었다. 허영만 화실에선 데생을 허영만 선생이 직접했기에 배울 기회가 없었다. 조운학 화실에서 20대의 저에게 데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2~3살의 문하생에게 주어지던 기회였다. 조운학 선생이 선배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썼다. 조 선생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태호 데생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라" 라고 하며 제게 기회를 주셨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선생의 뜻이 확고하니까."
"그래서 전 이렇게 말한다. 내 피와 테마를 만든 것은 허영만이며 근육(살)을 만든 것은 조운학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조운학 화실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그 영향이 더 큰 것 아니냐고도 하지만 허영만 만화만 보고 허영만 처럼 되고 싶어서 만화가가 됐다. 설령 문하생이 못되었어도 그는 내 스승이다.조운학이 실전을 가르친 사범님이라면 허영만은 무림 일대 종파의 당주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허 선생님이 정말 대단한 것이, 88년도에도 나 같은 문하생과도 '경쟁'을 했다. 문하생들이 가진 색다른 책이 있으면 일본까지 가서라도 똑같은 책을 샀다. 문하생 누군가가 폭파씬의 연기를 정말 잘 그린다 싶으면 그 문하생을 위해 그런 씬이 나오게끔 데생을 했다. 문하생과 함께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 했다. "
"그리고 문하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항상 칭찬했다.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태호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좋다.' 그러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동기 부여가 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허영만 선생이 물어보고 제자들은 신나서 이야기해주는 풍토가 있었다. 저도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신문기사도 더 읽고 문학도 더 읽고 그랬다. 그러나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우리가 결국엔 활용당하는 거야 라는 농담도 문하생들끼린 했다. 하하하. 그땐 다들 무지했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허영만같은 선생님은 정말 드물었다. "
- 요즘도 도제식의 문하생 제도가 있나? "세상은 문명화됐다. 지금은 보통의 화실문화를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다 알 수 있다.전에는 문하생이 아니면 도저히 한편의 만화가 어떻게 나오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일본 만화가들의 작업영상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혼자서 작업하는 게 가능한 시대다. 거기에 전공(만화)을 했으면 배운 것도 많다. 학교에서 가르치려면 선생이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니 힘들다, 하하하(세종대에 강의를 나간다)"
- 윤태호 화실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미생하기 전에 4년 동안 문하생들에게 계속 월급을 줬다.그러다보니 빚이 생겼다. 으하하하"
- 제1회 응씨배 결승5국은 145수에 끝났다. 그 기보 수순에 따라 한 회씩 연재를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145회로 미생은 끝나는 것인가?
"90회면 단행본 5권분량이 된다. 그러나 145수는 어쩔 수 없이 가야할 것 같다. 와이프의 목표는 300수를 넘기는 것이다."
" 만화를 보면 '미생'의 의미는 처음에는 취직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다. 그러나 살아간다는게 미생인 거다. 재벌회장이 왜그리 탐욕을 부리는 건지, 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게 역설적으로 미생이다."
여기까지의 말씀만으로도 그는 인생의 고수, 바둑의 고수일 것만 같다. 기력을 묻는 질문에 "7급까지는 핥아보고 내려왔다"는 유머가 돌아온다. 바둑에 관한 편견이 처음에 미생의 흥행을 방해(?)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처음에 미생이 '바둑만화'라고 광고가 크게 나갔다. 그러자 여성, 어린아이, 젊은이들이 처음부터 아예 만화를 안봤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보는 사람이 늘었다. 윤태호 작가는 바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거 - '바둑이란 어려운 거'.
그에게는 언제나 현장의 조언을 해주는 취재원들이 많다. 미생을 위한 취재 때 그렇게 만나고 싶었지만 못만났던 수능 준비하는 연구생 출신들도 메일을 주고 받고 샐러리맨 2명(종합상사맨) 조언도 역시 같이 듣고 있다. 최근엔 강남역에서 종합상사맨들과 6시간 미팅을 갖고 새벽 2시까지 저녁도 먹고 술도 조금 하고 했다.
집에 오는 택시에서 윤태호는 만화에 걸린 댓글을 봤다. 입단을 하지 못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다른 어떤 길을 걸어가는 연구생 출신의 것이었다. 내용은 미생을 보며 느낀 것, "바둑외의 다른 길을 택한 그것이 틀린 길은 아닌 것 같아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윤태호는 그 댓글을 보고 택시안에서 펑펑 울었다.
"연구생들의 이야기를 이미 들었으니까. 그렇게 어마어마한 패배감을 느끼고, 저도 그런 정서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두렵고, 나도 자식이 있으니까....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바둑이, 그리고 당신의 체험이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축구선수라면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난 그런 거에 가깝다. 정말 짠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미생은 긍정적인 작품이지만 윤태호가 가진 마이너의 정서는 그의 말마따나 "버릴 수 있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각인이 되어 있다".
독자들의 댓글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좀 다르다. 주인공 장그래의 웃는 모습에 꽤 민감하게 반응 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반응도 그렇다. - "귀여워, 그런데 웃어도 슬퍼 보여요."
윤태호가 그런 반응에 대해 말한다. "장그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미 큰 슬픔이 있는 사람인데 그 색채가 얼굴에 나올 수 밖에 없다."
장그래의 웃음 이야기가 나오니 웃을 때마다 수염이 더욱 인상적이다.
수염을 언제 길렀냐고 물었더니 "아이 손 잡고 놀이터 다닐 때부터"라는 영상화된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의 회사원들이 없는 그런 평일에 아이와 밖에 나가면 보통 '노는 아빠'로 바라본다. 정말 뜬금없이 아파트 단지내에서 만난 어떤 다른 아이가 윤태호에게 그랬단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있어요. 우리집에는 돈이 많아요(아이의 뜻, 당신은 백수에요)"
웬지 과장같지만 윤태호는 이런 만화같은 사건으로 인해 수염을 길렀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오'라고 얼굴에 그려진 영상(=수염)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 "수염 기르는데도 처음엔 좀 용기가 필요하다. 정체를 수염으로 밝힐 생각으로 억지로 길렀으니까." - 쐐기를 박은 것은 허영만 선생이다. 고우영 장례식에서 만난 허영만 선생이 '수염이 어울리네'라고 웃자 수염은 정말 윤태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화실에서, 등장 인물의 기본과 한계를 파악하고, 취재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림작업 만큼이나 중요하다
일상의 어마어마한 스토리(취재) 관리는 기본적으로 녹취와 메모에 의지한다. 취재능력은 보통 기자 못지 않다. 미생은 회사를 다룬다. 회사의 조직에 대한 개념파악을 위해 취재원과 같이 앉아서 윤태호는 마인드 맵까지 일일이 그렸다.
"멍청하게만 듣고 있으면 책상앞에서 쓸 게 없다. 나를 중학생 취급해라. 부끄럽지 않고 다 물어야 한다. 현장에선 쓰는 언어가 다르다. 리스크와 크라이시스가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물어야 한다. 둘이 대체 뭐가 달라요? "
또 하나 인물 설정을 위해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무슨 고민이 있나? 허락된 한계치가 어디까지인가?
인물을 놓고 한계지점을 놓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만화가 허영만과 이현세는 술을 좋아하지만 취향과 한계가 분명하다. 그 둘을 부딪치게 하면 재밌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허영만 "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밤을 새며 술을 먹는것은 불가하다" 이현세 "내일 아침의 일 때문에 마음 통한 사람과의 술을 마다하면 그것은 이현세가 아니다"
이 둘이 만나 술을 마신다면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 역시 인물의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 자기 직급의 책임영역 어디까지인지?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과 지점은? 고민은 무엇인가? 리더십? 승진? 동일한 직급과의 비교 스트레스? 연말 기조실에서 1년의 성과를 봤을 때 떨어지지 않을까? 여기 회의에서 강하게 나갔어야 할까?
윤태호의 표현으론 이러한 모든 '멍청한 질문들'이 작품의 현실성을 강화했다.
"모든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반말을 찍찍합니까? "굳이 존대를 하는 상사도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오면 정말 좋은 것이다. 활용의 폭을 정할 수 있다.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 다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여지와 '절대 그럴 수 없다'라는 한계를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좋은 만화'가 되기도 어렵고 '좋은 만화가'가 되기 또한 너무 어렵다. 어떤 사람을 2시간 이상 인터뷰하는 것은 대단히 피곤하다. 인터뷰 받는 사람도 피곤할 수 있다. 소재를 위해 강남역에 튀어나가 6시간 이상씩 인터뷰를 하고 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 윤태호 작가와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 대화 중간에도 윤작가는 상대를 인터뷰하듯, 혹은 대화에 스며들듯 관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좋은 만화가가 되는 과정.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좋은 만화, 좋은 만화가에 대한 윤태호의 시각을 물었다.
"(좋은 만화가가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이 지나면 재능의 수준이 아니다.매력의 문제다. 그림을 별로 못 그리거나 내용이 떨어져도 그 작품이 매력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작품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꼼꼼한 자료조사를 하고 그렸어도 매력이 없으면 출판사나 포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잘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독자가 막연히 난 이 친구(작가)가 좋아 이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독자의 취향, 그러니까 만화를 읽는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작품이 정말 매력적인 것이다. "
"가령 메가쇼킹의 탐구생활, 조석의 '마음의 소리'같은 작품에 그런 매력이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문화교양적인 것, 기호까지도 독자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건 작가의 취향에 대한 품격을 독자가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만들었다는 작품에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취향을 무시한 것은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쟝르적 특성에 필요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며, 과도한 묘사를 하는 작품도 있는데 그런 작품은 실패다. "
- 마이너 정서를 공유한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하긴 이땅의 대학 합격생과 취업 합격생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것이었다면 대다수는 마이너가 아닐까도 싶은데.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이라는 게 있을 거다, 그걸 찾아야지, 남이 설정한 행복 싸이즈를 메꾸려고 찾지말자. 미생에서 말하려던 거도 그런거다.
저도 20대에는 허영만처럼 히트작가가 되어서 , 빌딩도 세우고하는 그런 꿈도 꿨다.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살다보니 저는 그런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정과 직장이 균형이 이뤄진 과정에서 소소한 것, 술도 마시고,사람도 만나고 하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물론 그것을 영위하기에도 팍팍한 환경이라 많은 것을 희생하다보니 삶이 힘들다.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도 실은 쉽지 않다.
철저하게 '마이너'의 감성이 각인되어 있지만, 태도는 억눌려 있지 않으며 눈빛이 따뜻하다. 그와 이미 여러 번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의 표현이라면 그는 "이땅에 태어나 마땅히 소주를 같이 마실 만한 사람"이다.
'이끼, 미생'의 작가 윤태호(69년생)를 분당 오리역 부근에 자리한 화실에서 그의 벗 손종수 상무와 함께 찾아가 만났다. 만화가 윤태호는 분당 부근에 터를 잡고 15년을 살았고, 이곳 화실은 4년이 됐다.
윤태호에게 '마이너리티'의 기운은 그의 작품마다 따라다니고 있다. 바둑을 모티브로 삼은 미생은 그의 작품중 상대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 본인의 '성인개그만화'마저도 미생보다 훨씬 우울한 느낌을 줬다는 게 윤태호 작가의 말이다.
포털싸이트 다음에 연재되는 만화 '미생(未生)'은 입소문을 타면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3년의 고민과 준비가 있었던 작품이고 기원을 따지면 10년이 걸린 스토리다. 여러가지 바둑용어 중에서도 '아직 살아있지 못한 상태'인 '미생'을 고른 작가의 시선부터가 벌써 남다르다.
일단 이런 작품을 내놓은 윤태호를 먼저 '느껴'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무척 아파했던 부분에 대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비교적 친절하게 자신을 꺼내 놓았다.
"온전히 느끼기 시작한 건 고1 때부터다. 그 전엔 어려서 인지를 못했다. 특별히 나만 더 못 산다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광주로 이사오면서부터 모든 생활 하나하나가 돈이 들어가는 생활이 됐다. 집을 팔고 온 것도 목격했다. 아버지가 집값 흥정하는 거를 똑똑히 봤다. 집 팔고 오는 게 수치스런 상황이었고, 사춘기가 겹친 고2,3때라 아주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왜 이럴까?'하는 아주 낮은 자존감이었다. 나는 가난하고, 피부가 또 안좋아서 열등한 마음이 심했다. 그래서 타인을 보면 더욱 관찰하게 됐다. 어린시절 화상을 입은 아이가 있었는데 얼굴엔 화상이 심했지만 몸은 깨끗했다. 그때 난 '저 몸과 바꾼다면 얼굴에 화상이 있어도 좋아'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어릴 때는 시골에서 멱을 감더라도 난 피부가 안좋아서 같이 놀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안좋은 피부를 감추려 목을 움츠리고 걸었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자주 그렇게 다닌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서 '나'보다 좋은 점을 찾고, 나 자신을 비하하는 자학적인 습관이 생겼다."
- 대표작인 이끼를 보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면이 강렬하기까지 하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영상으로 사람의 상상력을 후벼파는 느낌이 든다. 가령 작품 '이끼'에서 주인공 류해국이 이영지를 만나는 첫 장면, 남자들은 그 영상에 모두 움찔할 거다. 이런 거, 경험으로 만드는 것인가?
"각각 경험의 층위가 있을 것이다. 그런 구체적인 경우는 구조적으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이 이영지란 여자를 처음 만날 때 남자와 여자기 때문에 관계를 만들 고리가 필요했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 시절을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다른 그룹에 스며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어떻게 재미있는 필요한 사람이 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쓸데없는 개그나 농담, 괜히 그림을 그려주고 보여주고 하며 관심의 범주안에 있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지?' 하는 고민이 항상 있었다."
분당 윤태호 화실에선 일주일에 세 번의 작품을 마감한다. 다음에 연재하는 '미생'이 두 번, 한겨레에 연재하는 '내부자들'이 한 번이다. 윤태호는 상업적 흥행에 성공한 작가지만 자신의 성공에 안주해 있지는 않다. 이전의 성공한 만화가들과는 달리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만화가들의 작업환경과 지적재산권, 만화 콘텐츠의 공정한 유통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세종대에는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한다.
- 포털에 연재되는 웹툰이 방심위에 의해 유해매체로 지정되자 윤태호는 강풀 등의 만화가들과 함께 1인 시위에 나섰다. 지금까지 상업적 성공을 거둔 만화가들 중에선 찾아보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웹툰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유해매체로 지정했다. 만화가 비대위를 조직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1인 시위를 하며 후배들을 독려하고 열심히 했더니 성과가 있었다. 관련정부 부처에서 ?후 부랴부랴 일을 정리했다. 관련부처들이 한쪽은 만화를 장려하면서 한쪽은 마구 규제를 하고 쓰레기 취급을 하니 그건 아니다."
- 음. 등장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 있는 건가, 이끼의 '류해국'의 어린시절이 마치 미생의 주인공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까 류해국이 결혼전의 모습같기도 하던데?
"하하, 장그래(미생의 주인공)는 내가 그릴 수 있는 스마트한 사람의 최선의 캐릭터였다. 순하게 보이지만 류해국보다는 조금 더 뾰족하게 보일 거다. 주인공이 가진 그런 성격을 내가 좋아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보는 성격이다. 류해국은 실존 모델이 있었다. 자기의 사건기록을 인터넷에 꼼꼼하게 연재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생의 경우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님과 한국기원 박장우 부장님의 의견도 들었고 황인성, 김지은 등 연구생 출신, 홍맑은샘 초단의 아버지 A7사의 홍시범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생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자연스레 나왔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제안이 3년전에 있었다. '바둑의 고수가 세상에 대해 일갈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전 2000년 초반에 제가 내기바둑이란 소재를 너무나 하고 싶어서 에세이들을 많이 사서 읽었다. 노승일 선생의 '관철동사람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글, 거의 모든 글을 읽었는데 결국 포기했다. 내기바둑에서 벌어지는 절묘한 수 싸움을 그리고 싶었지만 내 급수가 너무 낮아서였다. 크... 하하하. 포기해야겠다. 안되겠다."
"그 다음엔 경영관련, 창업만화에 꽂혀서 음식점, 주식회사창업, 벤처창업 관련 책들을 엄청나게 읽고, 메모하고 자료를 모았다. 회계사까지 만나 인터뷰하면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나이스하게 현실과 접목시켜 보여주려 했다. 역시 힘들더라."
"이런 과정을 거쳐 '바둑과 샐러리맨'이라는 주제가 잡혔다. YES! 그렇지만 이게 마음에 너무 걸렸다. 내가 고수라는 사람들의 품격, 그 지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둑고수가 작품에서 할말에 대한 콸러티(Quality)에 자신이 없었다. 프로가 아닌 연구생만해도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구름 위의 사람들이라 보통과는 다르지 않은가. 바둑의 고수라면 일단 짐작도 못할 것이라 봤다. 편견인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런 마음이 있었다."
"출판사가 내게 제안한 일이다보니 그런 부분도 힘들었다. 출판사에선 예를 들어 식객, 혹은 타짜 같은 작품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뭔소리인가 봤더니 결론, 히트치는 작품이더라 하하하, 아예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 "
"'이건 내 일이야' 하는 그런 게 있어야 매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이끼를 끝내고 3년동안 고민을 한 것은 결국 너희(출산사)의 제안 때문이 아니라, '이건 내 일이야' 하고 느끼는 감정적인 추스림까지 걸린 3년이었다"
- 바둑의 전문가를 많이 만나셨다. 그중에서도 입단하지 못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말하자면 주류 속의 비주류, 전문가 그룹에서의 마이너를 택하셨다. 이유가 있나?
"보통 대학 전공을 택할 때, 시험점수 봐서 전공을 골랐지 전공 봐서 대학을 택한 사람이 있나? 난 그것이 인생의 첫번째 실패라고 본다.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얹혀진 것이다. 그러다 졸업 때가 되면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회사에 들어간다. 그런 사람은 두번째 인생의 실패를 맛 본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없이 상황에 따라 얹혀진 것이라면 합격과 취업이 모두 인생의 실패가 된다.
연구생 출신 주인공은 입단을 못한 개성적인 사람이다. 바둑을 정말 열심히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패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입단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정했을 때 보통의 샐러리맨들과 개념적으로 같은 지점이 된다."
"결혼도 세번째 실패가 될 수 있다. 그냥 장난하다 엮여서, 그냥 별로 마음에 없지만 매몰차지 못해서 결혼하면 그것도 실패 아닌가? 달리 보면 성공인가? 하하하하"
-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의 영향을 어느 순간 많이 받았다. 80년 후반 90년 초반의 드래곤볼, 슬램덩크는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만화는 초반구성이 치밀하다가 마지막에 질질 끄는 단점이 있었다. 기발함 등의 장점에 비해 너무 심하게 끌어간다. 그에 비해 윤태호의 작품은 끝맺음이 확실한 게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닮았다. 끝낼 때 끝낸다. 시작과 끝이 명료하다. 인기가 있다면 좀 더 끌고 가고 싶은 생각도 생길 텐데?
"음, 일본은 만화 하나가 산업이다. 한 작품의 부가수익이 몇 백억이라서 갑자기 연재를 끊는다는 것은 산업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다. 한국은 작품을 그냥 끝낸다는 것이 고료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의미 외에는 없다. 환경의 차이다."
"또 예전과 달리 만화가 하나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타이틀 안된다. 이끼 연재에 한 3년 들였고, 그게 끝난 후 미생 준비 3년이었다. 벌써 6년이다. 한 작품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신중할 수밖에 없다. 손을 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거나 하면 고민도 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즐거움을 상쇄하고도 남을까? 그건 아니다."
아내의 생각은 작가의 생각과 다르다고 한다. 또 '미생'이란 작품이 기존 작품과 달리 매우 밝은 편(?)이라 아내가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아내의 뜻을 따라 정말 장기간 끄는 작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끝낼 때 끝낼 것이라 예상 가능하다.
"아내는 '미생 빨리 끝내면 죽을 줄 알아.' 그런다. 미생은 내가 그리는 만화 중 최초의 긍정적인 만화라 볼 수 있다. 아내도 그래서 좋아한다. 아슬아슬한 느낌의 조바심이 없어서 정말 좋다고 한다. 이전의 내 개그만화도 내용자체는 어두운 개그였다."
"그냥 끌고 갈 것인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고, 만화가로서 사는 즐거움, 여러 장르를 그리는 즐거움을 채워햐 한다. 이 바닥의 생리는 에너지가 왔을 때 후욱하고 끌어당기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미생은 바둑만화지만 바둑 장면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러나 장면에는 바둑이 없지만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들은 바둑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바둑을 상상한다'. 작가의 생각이 얼만큼 깊었냐는 것을 반증한다. 이어지는 윤태호 작가의 말이다.
"미생을 시작하면서 핵심 화두로 생각하면서 힘을 냈던 것이 하나 있다. (만화 속 바둑 자체의 비중이다.) 바둑만화에서 바둑이 좀 덜 나왔으면 좋겠다는 조언(역설), 정말 힘이 됐다.(바둑을) 어설프게 건드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가령, 특히 사활문제 이런 거, 독자가 바둑을 모르면 거기의 바둑돌 숫자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종수 상무가 이 장면에서 흐뭇해한다. 바로 그런 조언을 한 사람이며 오늘의 인터뷰를 주선한 사람이다.
- 아까와 비슷한 질문인데, 만화 속 디테일들은 경험인가? 가령 전에 남편이 개그하는 만화 있잖은가, 직장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인가? 그리고 이끼에서 '덕천'이 할머니의 죽음, 시신을 마주한 그때를 회고하는 장면들도 그렇다. 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디테일이다.
"혼자 자는 남편은 '문장백과 대사전'이라는 책을 보고 상상한 것이다. 가령 동서고금을 통해 사랑과 관련한 발언, 명언들이 소개되어 있고 이것을 토대로 스토리 쓰는 훈련을 한 것이다. 성인잡지에 연재됐는데 섹시코드가 유행한 때라 그냥 그렇게 해본 것이다.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를 훈련한 작품이다."
"이끼에서 덕천이 죽은 할머니의 손가락을 보고 주무르다 그만 부러뜨리고 겁에 질린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네살짜리 동생이 죽었다. 어린 아이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아랫목에 눕혀 놨다. 동생이 거기 누워 있고 손을 잡았다. 서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너무 이상해서 손을 주물렀다. 손이 비틀려 있었다. 죽은 동생의 손을 펴주려 했더니 손이 뚜둑 부러지려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동생 옆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무서움이 스물스물 스며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방을 나오면서도 그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글쎄, 창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경험치는 어디까지일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영역은 감정이입을 해야한다. 가령 '미생'에 나오는 운송장을 예로 들어볼까? 운송장에 대해 더 이해를 하고 싶다면 '운송장 사고!'를 검색한다. 그러면 그것이 한 개인에게 어떤 부분인가. 이거 하나 잘 못하면 어떤 의미인 거고 거기에 관련된 사람은 어떤 책임을 지나를 알 수 있다. 고참 사원이라면 알음알음 넘어가겠지만, 신입이라면 엄청난 사건일 거다."
"미생에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대리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을 다시 가서 공부를 할까, 직장을 계속 다닐까 고민한다. 집에 불켜진 것을 보지만 집에 가기 싫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들어가긴 싫은 거다. 그곳엔 아빠로서의 역할이 있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으니 집에 들어가기 힘들다.
만화가 직업이라는 건 마감이라는 게 없다. 퇴근이라는 게 없다보니 집에 가더라도 놀아주더라도 정말 편한 마음으로 놀아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대사를 썼는데 호응이 많았다.
일요일, 많은 아빠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자기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가족,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내들의 모임에 올라오는 인터넷 글을 보면 남편 덕분에 행복하다는 글은 거의 안올라온다."
"미생의 테마 중 하나는 그것이다. 나 혹은 가정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데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에 가정이 희생 당하고 있다. 그것을 되돌리자 그런 게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목소리 엄마들의 목소리가 미생에서 중요하다. 물론 그래도 야근할 사람은 야근을 해야할 것이다. 만화 한 편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겠나 하겠지만 그렇게 느끼고 가는 것이 다르다. "
- 윤태호 작품의 특징이랄까? 물샐틈 없이 꽉 짜인 스토리다. 마치 2시간 분량의 잘 만든 영화처럼 꽉 짜인 라인이다. 영화 이론이나 영상 문법을 따로 공부한 것인가? 독학이더라도 그런 학습이 없다면 어려울 것 같다. 전문 소설가도 그렇게 쓰기는 힘들 것 같다.
"이끼는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그런 면이 강하다. 그리고 내가 한창 배울 때 만화이론서가 없다보니 영화이론을 봤다. 만화, 영화, 드라마는 모두 영상문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또 영화이론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감독님들이 가끔씩 영화공부하셨어요? 하고 물어오기도 하고 기자들은 '만화가 영화적이다'라고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영상적'일 겁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우리는 하나의 사진, 활자, 문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흘러가듯이 생각한다. 난 만화에서 그런 영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게 바로 영상문법이다. 따라서 영상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누구나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본다. "
소설의 경우도 가령 '7년의 밤(정유정)'은 굉장히 영상적이다. 반면 정통소설이라 하면 문체도 내용의 일부로 본다. 해서 건조하게 뭔가를 묘사하기 위한 문예소설류의 문체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상적이어서 더 좋다, 혹은 그러지 않아서 좀 아쉽다 그런 것은 (내겐) 아니다. 내 경우엔 영상적인 장점을 더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그렇게 보면 된다. "
- 이번 '미생'에서 일본만화 시마과장이 성취한 영역을 '넘어서고 싶다'라고 밝혔었다. 음 시마과장은 좀 야한데, 미생은 그런 구석이 없지롱. ^^
"시마과장을 보려면 당시의 일본의 시대적 정황을 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환경을 보고 당시의 시마과장을 보면 반칙이다, 시마과장은 일본 대 버블의 시기를 살아가며,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일본이 배경이다. 샐러리맨임에도 직장내 정치에 따라 칼날 위에 선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편에 속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지킨 직장인 시마의 이야기다. 그땐 이게 대단한 미덕이자 올바름이었다. 그런 이해없이 내용 일부분에 치우쳐 여자나 후리고 다닌 만화'시마과장'으로 보면 반칙이다. 후후후 (사실 미생에서 장그래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 쓸 거냐고 물어 보려는 의도였다. 곧 나오겠지. )
이어지는 말에서 현재 연재중인 미생의 모습과 향후 나올 미생의 모습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만화 시마과장에서 디테일에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디테일, 실무에 관련한 디테일도 그렇다. 저의 디테일은 낭만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리얼리티와 낭만, 이게 전해졌을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때, 독자들이 이게 우리의 사는 모습이야 라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저런 일이 가능해?라는 댓글이 있어도, 누군가 저런 일 있었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댓글이 달리면 되는 것이다."
- 어느 만화가의 인터뷰에 만화가 인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는데, 단지 마감이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화가로서 힘든 점이라면?
"자기 직업을 갖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한다는 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항상 힘들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하려 한다. 그들에게 대체가 안되려면 정말 잘해야 한다. 나이와 경력이 있는 만큼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만만치 않다. 작품의 매 회 마감은 굉장히 힘들지만 젊은 신인작가들과 동등하게 어깨싸움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쾌감이 있다. 제 스스로 제 지면을 지켜냈을 때 행복하다. "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왜 이러지?, 왜 이럴까? 하며 거울 앞에서 자존감을 한 없이 비하했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양보없는 부분이 하나씩 있다. 나같은 경우는 그림이다. 이게 무너지면 저란 존재가 모래처럼 사라질 것 같다."
- 윤태호의 만화를 보면 누구나 '작품'이란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만화또한 예술이며 우리가 문학이나 미술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듯 만화또한 그렇다. 윤태호의 작품, 그러니까 펜이든 붓이든 혹은 연필이든 무엇으로 그렸든, 혹은 그것이 완성품이건 미완성품이건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같이 전시하자 라는 적은 많았지만 직접 작업물을 사자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림 파일이 아니라 종이에 한 것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이해될만큼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이 너무 힘들게 시작이 되고, 연재한 작품들은 찰나에 끝나며 끝과 시작의 텀이 너무 길어 불필요한 아르바이트가 많았다. 그런 즐거운 일은 상상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그리고 절대 그런 생각은 안했고, 사고자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음. 영화제작분들께는 선물로 주는 그런 그림을 그려 준 적이 있다. 미국의 팝아트는 예술의 권위를 희롱하는 형식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만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했지만 복제가 가능한 그런 시대의 지점을 표현한다. 저로선 "만화가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하는 입장이다. 뭐, 아니어도 좋다. 마치 내 만화에 '만화지만 좋네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조치훈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처럼 (그래봤자 만화, 그래도 만화)... 언젠가 미생에서도 조치훈의 말이 나올 것이다. "
손종수 상무의 리액션이 적절하게 터진다. "그것은 조치훈이니까 할 수 있는 말, 지금은 윤태호니까 할 수 있는 말"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가 가진 사회적인 가치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가령 만화는 '극과 극'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만화산업으로서 엄청나게 띄우다가도 어느 순간 청소년에게 해가 된다는 식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윤태호의 시선을 보자.
"만화와 바둑은 다른 점이 있다. 바둑에는 '쓰레기의 영역 '은 거의 없잖나. 그러나 영화,만화,소설 등 이런 분야는 오로지 돈만을 위한 탐욕적인 존재가 있다. 바둑에는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태생적인 부분이 있다. 공식 바둑에 존재하는 형식미는 대단히 절차적이다.
바둑엔 기보가 있다. 그 기보가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확인,탐구,업데이트 되는 과정이 있다. 굉장히 합리적인 절차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절차를 목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 어린아이들에게 수순의 의미와 근거를 알려준다. 이렇게 왜 그랬는지를 묻고 논리를 캐묻는 분야가 많지 않다. 그래서 '바둑을 공부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엇나가기가 매우 힘들것이다'고 느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러리라고 본다. "
일정 수준이 되면 자기 바둑을 복기하잖나. 그건 실패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매순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보같은 자기의 순간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둑은 장구한 기간동안 지속되 왔다. 한국만화는 근대화 이후 30년의 역사기 때문에 많이 다르다."
윤태호의 피와 살
윤태호의 스승은 만화가 허영만과 조운학 두 사람이다. 허영만 화실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조운학 화실에서 문하생으로 일었다. 윤태호는 조운학 작가가 아가페를 연재 할 때 허영만을 떠나 조운학 화실에 들어갔다. 허영만 화실에서 배운 것과 조운학 화실에서 배운 것은 서로 다르지만 또한 윤태호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마치 바둑황제 조훈현이 일본의 세고이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지만, 실전스승 '괴물 슈코'를 둔 것과 비슷하다.
- 허영만 문하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허영만 문하를 떠난 것은 너무 바빠서 혼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다. 당시 허영만 화실은 6개 매체에 연재를 했는데 문하생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다. 문하생으로서 칭찬받는 것도 좋았지만, 전 25살에 데뷔를 하고 싶었다. 연습자체를 못 하겠어서 조운학 화실로 옮겼다. 전 허영만, 조운학 둘 다 이야기를 하는데 허영만 선생이 더 유명하니까 언론에서 조운학 선생을 빼고'허영만' 선생만 소개한 경우가 많아 그렇다.
조운학 화실에서 2년 반 정도 있었다. 허영만 화실에선 데생을 허영만 선생이 직접했기에 배울 기회가 없었다. 조운학 화실에서 20대의 저에게 데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2~3살의 문하생에게 주어지던 기회였다. 조운학 선생이 선배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썼다. 조 선생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태호 데생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라" 라고 하며 제게 기회를 주셨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선생의 뜻이 확고하니까."
"그래서 전 이렇게 말한다. 내 피와 테마를 만든 것은 허영만이며 근육(살)을 만든 것은 조운학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조운학 화실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그 영향이 더 큰 것 아니냐고도 하지만 허영만 만화만 보고 허영만 처럼 되고 싶어서 만화가가 됐다. 설령 문하생이 못되었어도 그는 내 스승이다.조운학이 실전을 가르친 사범님이라면 허영만은 무림 일대 종파의 당주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허 선생님이 정말 대단한 것이, 88년도에도 나 같은 문하생과도 '경쟁'을 했다. 문하생들이 가진 색다른 책이 있으면 일본까지 가서라도 똑같은 책을 샀다. 문하생 누군가가 폭파씬의 연기를 정말 잘 그린다 싶으면 그 문하생을 위해 그런 씬이 나오게끔 데생을 했다. 문하생과 함께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 했다. "
"그리고 문하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항상 칭찬했다.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태호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좋다.' 그러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동기 부여가 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허영만 선생이 물어보고 제자들은 신나서 이야기해주는 풍토가 있었다. 저도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신문기사도 더 읽고 문학도 더 읽고 그랬다. 그러나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우리가 결국엔 활용당하는 거야 라는 농담도 문하생들끼린 했다. 하하하. 그땐 다들 무지했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허영만같은 선생님은 정말 드물었다. "
- 요즘도 도제식의 문하생 제도가 있나? "세상은 문명화됐다. 지금은 보통의 화실문화를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다 알 수 있다.전에는 문하생이 아니면 도저히 한편의 만화가 어떻게 나오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일본 만화가들의 작업영상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혼자서 작업하는 게 가능한 시대다. 거기에 전공(만화)을 했으면 배운 것도 많다. 학교에서 가르치려면 선생이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니 힘들다, 하하하(세종대에 강의를 나간다)"
- 윤태호 화실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미생하기 전에 4년 동안 문하생들에게 계속 월급을 줬다.그러다보니 빚이 생겼다. 으하하하"
- 제1회 응씨배 결승5국은 145수에 끝났다. 그 기보 수순에 따라 한 회씩 연재를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145회로 미생은 끝나는 것인가?
"90회면 단행본 5권분량이 된다. 그러나 145수는 어쩔 수 없이 가야할 것 같다. 와이프의 목표는 300수를 넘기는 것이다."
" 만화를 보면 '미생'의 의미는 처음에는 취직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다. 그러나 살아간다는게 미생인 거다. 재벌회장이 왜그리 탐욕을 부리는 건지, 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게 역설적으로 미생이다."
여기까지의 말씀만으로도 그는 인생의 고수, 바둑의 고수일 것만 같다. 기력을 묻는 질문에 "7급까지는 핥아보고 내려왔다"는 유머가 돌아온다. 바둑에 관한 편견이 처음에 미생의 흥행을 방해(?)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처음에 미생이 '바둑만화'라고 광고가 크게 나갔다. 그러자 여성, 어린아이, 젊은이들이 처음부터 아예 만화를 안봤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보는 사람이 늘었다. 윤태호 작가는 바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거 - '바둑이란 어려운 거'.
그에게는 언제나 현장의 조언을 해주는 취재원들이 많다. 미생을 위한 취재 때 그렇게 만나고 싶었지만 못만났던 수능 준비하는 연구생 출신들도 메일을 주고 받고 샐러리맨 2명(종합상사맨) 조언도 역시 같이 듣고 있다. 최근엔 강남역에서 종합상사맨들과 6시간 미팅을 갖고 새벽 2시까지 저녁도 먹고 술도 조금 하고 했다.
집에 오는 택시에서 윤태호는 만화에 걸린 댓글을 봤다. 입단을 하지 못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다른 어떤 길을 걸어가는 연구생 출신의 것이었다. 내용은 미생을 보며 느낀 것, "바둑외의 다른 길을 택한 그것이 틀린 길은 아닌 것 같아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윤태호는 그 댓글을 보고 택시안에서 펑펑 울었다.
"연구생들의 이야기를 이미 들었으니까. 그렇게 어마어마한 패배감을 느끼고, 저도 그런 정서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두렵고, 나도 자식이 있으니까....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바둑이, 그리고 당신의 체험이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축구선수라면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난 그런 거에 가깝다. 정말 짠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미생은 긍정적인 작품이지만 윤태호가 가진 마이너의 정서는 그의 말마따나 "버릴 수 있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각인이 되어 있다".
독자들의 댓글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좀 다르다. 주인공 장그래의 웃는 모습에 꽤 민감하게 반응 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반응도 그렇다. - "귀여워, 그런데 웃어도 슬퍼 보여요."
윤태호가 그런 반응에 대해 말한다. "장그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미 큰 슬픔이 있는 사람인데 그 색채가 얼굴에 나올 수 밖에 없다."
장그래의 웃음 이야기가 나오니 웃을 때마다 수염이 더욱 인상적이다.
수염을 언제 길렀냐고 물었더니 "아이 손 잡고 놀이터 다닐 때부터"라는 영상화된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의 회사원들이 없는 그런 평일에 아이와 밖에 나가면 보통 '노는 아빠'로 바라본다. 정말 뜬금없이 아파트 단지내에서 만난 어떤 다른 아이가 윤태호에게 그랬단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있어요. 우리집에는 돈이 많아요(아이의 뜻, 당신은 백수에요)"
웬지 과장같지만 윤태호는 이런 만화같은 사건으로 인해 수염을 길렀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오'라고 얼굴에 그려진 영상(=수염)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 "수염 기르는데도 처음엔 좀 용기가 필요하다. 정체를 수염으로 밝힐 생각으로 억지로 길렀으니까." - 쐐기를 박은 것은 허영만 선생이다. 고우영 장례식에서 만난 허영만 선생이 '수염이 어울리네'라고 웃자 수염은 정말 윤태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화실에서, 등장 인물의 기본과 한계를 파악하고, 취재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림작업 만큼이나 중요하다
일상의 어마어마한 스토리(취재) 관리는 기본적으로 녹취와 메모에 의지한다. 취재능력은 보통 기자 못지 않다. 미생은 회사를 다룬다. 회사의 조직에 대한 개념파악을 위해 취재원과 같이 앉아서 윤태호는 마인드 맵까지 일일이 그렸다.
"멍청하게만 듣고 있으면 책상앞에서 쓸 게 없다. 나를 중학생 취급해라. 부끄럽지 않고 다 물어야 한다. 현장에선 쓰는 언어가 다르다. 리스크와 크라이시스가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물어야 한다. 둘이 대체 뭐가 달라요? "
또 하나 인물 설정을 위해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무슨 고민이 있나? 허락된 한계치가 어디까지인가?
인물을 놓고 한계지점을 놓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만화가 허영만과 이현세는 술을 좋아하지만 취향과 한계가 분명하다. 그 둘을 부딪치게 하면 재밌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허영만 "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밤을 새며 술을 먹는것은 불가하다" 이현세 "내일 아침의 일 때문에 마음 통한 사람과의 술을 마다하면 그것은 이현세가 아니다"
이 둘이 만나 술을 마신다면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 역시 인물의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 자기 직급의 책임영역 어디까지인지?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과 지점은? 고민은 무엇인가? 리더십? 승진? 동일한 직급과의 비교 스트레스? 연말 기조실에서 1년의 성과를 봤을 때 떨어지지 않을까? 여기 회의에서 강하게 나갔어야 할까?
윤태호의 표현으론 이러한 모든 '멍청한 질문들'이 작품의 현실성을 강화했다.
"모든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반말을 찍찍합니까? "굳이 존대를 하는 상사도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오면 정말 좋은 것이다. 활용의 폭을 정할 수 있다.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 다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여지와 '절대 그럴 수 없다'라는 한계를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좋은 만화'가 되기도 어렵고 '좋은 만화가'가 되기 또한 너무 어렵다. 어떤 사람을 2시간 이상 인터뷰하는 것은 대단히 피곤하다. 인터뷰 받는 사람도 피곤할 수 있다. 소재를 위해 강남역에 튀어나가 6시간 이상씩 인터뷰를 하고 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 윤태호 작가와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 대화 중간에도 윤작가는 상대를 인터뷰하듯, 혹은 대화에 스며들듯 관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좋은 만화가가 되는 과정.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좋은 만화, 좋은 만화가에 대한 윤태호의 시각을 물었다.
"(좋은 만화가가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이 지나면 재능의 수준이 아니다.매력의 문제다. 그림을 별로 못 그리거나 내용이 떨어져도 그 작품이 매력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작품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꼼꼼한 자료조사를 하고 그렸어도 매력이 없으면 출판사나 포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잘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독자가 막연히 난 이 친구(작가)가 좋아 이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독자의 취향, 그러니까 만화를 읽는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작품이 정말 매력적인 것이다. "
"가령 메가쇼킹의 탐구생활, 조석의 '마음의 소리'같은 작품에 그런 매력이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문화교양적인 것, 기호까지도 독자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건 작가의 취향에 대한 품격을 독자가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만들었다는 작품에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취향을 무시한 것은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쟝르적 특성에 필요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며, 과도한 묘사를 하는 작품도 있는데 그런 작품은 실패다. "
- 마이너 정서를 공유한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하긴 이땅의 대학 합격생과 취업 합격생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것이었다면 대다수는 마이너가 아닐까도 싶은데.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이라는 게 있을 거다, 그걸 찾아야지, 남이 설정한 행복 싸이즈를 메꾸려고 찾지말자. 미생에서 말하려던 거도 그런거다.
저도 20대에는 허영만처럼 히트작가가 되어서 , 빌딩도 세우고하는 그런 꿈도 꿨다.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살다보니 저는 그런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정과 직장이 균형이 이뤄진 과정에서 소소한 것, 술도 마시고,사람도 만나고 하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물론 그것을 영위하기에도 팍팍한 환경이라 많은 것을 희생하다보니 삶이 힘들다.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도 실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