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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하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18 장 < 2 >)
1
성경말씀 읽기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는 믿음은 결코 생겨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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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봅니다.인간의 연약함은 신앙으로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육신 앞에서 인간은 연약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며 다시금 주를 바라보고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사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자신의
삶에 매어 산 사람이라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십일조
하고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앙으로 여김으로 신앙의 문제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교회 생활로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 일에 부지런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믿음에 전혀 문제없다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항상 세상을 향하고 육신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모습에 절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욕망을 이길 수 없음을 자각할 때
연약함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의를 더욱 의지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마음으로는 내 모든 것 다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한다 할지라도 내 육신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바른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요한복음 18 :22-23)
예수님의 당당하신 말씀을 듣던
하속 하나가 예수님을 손으로 쳤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공손하지 않게 말대꾸를 한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고 말씀 하셨습니다.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요한복음 18 :24)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신 후
예수님은 결박당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내지셨습니다.
2.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요한복음 18 :25-27)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사람들이
불빛에 비친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했지만. 베드로는 두 번째로 부인하여 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말고의 친척인 대제사장의 종 하나가.
베드로의 갈릴리 사투리를 알아보고 다시 물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글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한복음 18 :28)
종교지도자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관저에서 로마 총독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더립힘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럽힘을 받으면 유월절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않고자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뜰에도 들어가지 않는
매우 깨끗하고 거룩한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시기심과 탐욕과 명예욕으로 가득찬 더러운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보다는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겟나이다"
(요한복음 18 :29-30)
종교지도자들이 관정에
들어오지 않자 빌라도가 그들을
맞으러 밖에 나갔습니다. 빌라도는 ad 26-36년을 다스린 총독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로 예수님을
고발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악자라고 말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반역자라고
고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라고도 합니다.
유대인의 왕은
그리스도의 별칭입니다.
로마인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면 로마의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문제(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정치적인 문제(유대인의 왕)로
로마 총독부에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간악한 사단의 무리들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복음 18 :31-32)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정치적인 반역을 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에 관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데려다가 그들 스스로 종교법에 의해서 재판하라고 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사형
판결하였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저자 요한은 이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죽이지
않고 로마 법에 의해서 죽이고자 하는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평상시에 이방인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한복음 18 :33-35)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빌라도에게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발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구원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독대하는 시간,
예수님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영생을 얻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짧은 시간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빌라도 한 사람을 살리는데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구원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냐 아니냐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
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 :36)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라면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싸웠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열두 군단이나 되는 천사들이 싸워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인을 몰아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꼐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로라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한복음 18 :37-38)
예수님은 왕이라고 하면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도 왕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왕으로 증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는 진리 편에
서야한다고 하자 그는 진리가 무엇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진리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강도 바라바를 선택한 유대인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요한복음 18 :39-40)
빌라도가 예수님을 명절 특사로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유대인들은 악을 쓰며
예수님이 아니요 바라바요 바라바요 하며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외쳤습니다.
바라바는 강도입니다.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고 강도를 석방하였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진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진리 편에 서지 못하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두고 두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추악한 죄인으로 길이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교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서도 그 곳을 떠나지 아니하고 사람들 중에
있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 다 예수님을
부인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째
부인하였을 때 곧 닭이 울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베드로에 대해 예언하신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 바로 섬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고 우리의 삶 속에는 천국을 소망하는
복있는 자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 10. 29..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카나다 캘거리에서-
바른신학 바른신앙 cafe.daum.net/correcttheology
첫댓글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고 우리의 삶 속에는 천국을 소망하는
복있는 자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