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호 기자
사진기자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멀티미디어영상부에서 사진과 영상 등을 취재하며 대구, 부산 등 영남지역 주재기자로 활동했습니다.
2014년부터 본사에서 국회 출입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기사1273건
[더 한장] 흐르는 물처럼, 잠시 머무는 시간
초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어느 주말 저녁, 청계천에는 또 하나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위 사이를 세차게 굽이치는 물길만이 아니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의 느린 시간도, 산책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도 저마다의 리듬으로 함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서울야외도서관 ‘책 읽는 맑은 냇가’는 도심 한복판에 다정한 쉼표를 찍어두었습니다. 냇가 계단을 따...
[더 한장] 노을이 머무는 처마 끝에서
빌딩 숲의 분주한 소음을 잠시 뒤로한 채, 광화문 처마 아래서 유월의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루의 끝자락, 하늘은 대담한 화가가 붓을 휘두른 것처럼 짙은 먹색 구름과 찬란한 주황빛 석양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 나간 전통 기와의 실루엣은 빌딩 숲이 줄 수 없는 고즈넉한 위로를 건네고, 멀리 인왕산 능선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더 한장] 달빛은 국경을 모른다
5월의 마지막 밤, 전 세계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도, 언어도, 종교도, 정치도 달랐지만 이날 밤만큼은 모두가 하나의 피사체를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바로 블루문(Blue Moon)이다. 블루문은 양력 기준으로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뜰 때, 두 번째 보름달을 가리키는 천문 용어다. 이름과 달리 실제 달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
[더 한장] 빛으로 새긴 이름들
“괜히 울컥하네...”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감탄사에 그런 생각을 가졌던 마음이 죄송스러웠다. 요즘은 어떤 공간이든, 어떤 기념물이든 만들어지기만 하면 정치적 해석부터 따라붙는다. 특히 선거를 앞두거나 사회 분위기가 예민할 때는 더 그렇다....
[더 한장] 365일 '어린이날'이었으면...
“받아, 선물!” 잠깐의 정적, 그리고 곧바로 터지는 웃음과 환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렛츠플레이’ 행사가 끝날 무렵, 전시된 레고 자동차 모형을 건네받은 아이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기쁨이 번졌다. 5월 5일, 어린이날의 한 장면이다. 이날 하루, 도시는 아이들의 것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은 ‘레고(LEGO)’ 행사로 가득 찼고, 경복궁 앞마당에는...
[더 한장] 국민이 맡긴 '빈자리'
의사봉 소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 있음’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가 경제의 방향을 책임질 중앙은행 수장을 검증하는 자리답게 의원들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후보자의 답변은 신중했다. 전문성과 도덕성, 정책 철학까지 하나하나 검증하는 긴장감이 회의장을 채웠다. 그런데 사진기자의 시선은...
[더 한장] 밤에 피어난 '봄'
봄은 낮에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난 4일 저녁 충남 당진시 면천면 골정저수지는 또 다른 계절을 열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번지는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분홍과 보랏빛, 그리고 푸른 색채가 겹겹이 스며들며 벚꽃은 낮보다 더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보다 먼저, 물 위에 번진 색들이 봄의 깊이를 말해준다. ...
[더 한장] 기다리던 '봄'이 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쟁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국회에도 ‘봄’은 어김없이 도착한다. 차갑게 식어 있던 겨울의 흔적 위로, 노란 수선화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의원동산 한켠, 가지런히 심어진 꽃들은 단순한 식재를 넘어 ‘봄’이라는 글자가 되어 땅 위에 새겨진다. 말보다 먼저 계절이 도착했고, 사람보다 먼저 풍경이 변했다. 건조한 갈색의 흙과 마른 잔디 사이에서 ...
[더 한장] 시나브로 찾아온 봄향기
‘봄’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지 않는다. 겨울 끝자락 어디쯤에서 조용히 문을 두드리듯, 그렇게 시나브로 다가온다. 지난 한 주 사이, 전국 곳곳에서 전해진 꽃 소식은 그 조용한 변화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먼저 제주도 산방산 인근 들판에는 노란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봄의 문을 활짝 열었다.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노란 물결은 계절이 이미 남쪽에서...
[더 한장] 학사모 아래 맺힌 시간의 '보석'
검은 학사모가 가지런히 놓인 강당 안, 고개 숙인 얼굴들 사이로 손수건이 천천히 눈가를 훔친다. 여느 초·중·고생들의 졸업식과는 다른 결의 울음이다. 이 눈물은 아쉬움이 아니라, 오래 미뤄두었던 약속을 스스로에게 끝내 지켜낸 사람들의 기쁨의 눈물이다. 누군가는 어린 동생의 학비를 위해 교복 대신 공장 작업복을 입었고, 누군가는 결혼과 육아, 생계를 이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