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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미술
Art After 20th Century
미술이야기- 20세기 이후의 미술
0. 서언
20세기는 양차대전의 광기, 카메라와 미디어 등 기계복제수단 그리고 물질적 비결정론에 대한 인류의 충격과 자존심회복을 위한 대행진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독가스로 상징되는 1차대전은 8백만, 원폭으로 대표되는 2차대전은 4천만을 학살했다. 세계대전은 파충류적인 적개심으로 인류를 박멸할 수 있는가를 시험한 광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두 번째, 카메라는 인간을 닮게 그려왔던 미술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초상화가들은 붓을 꺾느냐, 사진사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미술가들은 사진앞에 하늘의 재능을 받은 위대한 예술가가 무릎을 꿇을 수 있느냐 하고 부르짖었다.
세 번째, 물질적 비결정론이란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등의 물리적 세계가 정신세계의 새로운 형태를 규정한다는 이론이다. 상대성이론은 물리법칙을 좌우하는 어떤 좌표계도 대등하며 절대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양자론은 좌표와 운동량간의 교환관계에서 물리량이 정해진다고 본다. 따라서 20세기의 미술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존재와 본질에 대한 추구가 인간을 매체로 시험되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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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전반-
먼저 모리스 드니는 입체를 평면으로 그리는 그림을 배격하자고 외쳤다. 디드로는 그림이란 태양이나 나무가 아니라 물감덩어리라 했다.
일찍이 북구의 르네상스에서 뒤러는 소묘기계를 만든 일이 있었다. 기계에 맺힌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필름에 옮기면 사진이 된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미술가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다.
미술가들은 카메라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작업을 내세웠다. 20세기의 1/4분기에는 소묘, 종이붙이기, 수공예, 발견된 물건 전시하기 등과 함께 인간의 인상, 표현, 꿈, 이지를 내세운 작업에 열을 올렸다. 2/4분기에는 물리학이론과 기계문명에 의한 대량학살의 충격에서 물질, 행위, 개념 등이 중요한 착안점이 되었다. 이러한 작업들의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전반기의 미술에는 주의(ism)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 주장하는 바에 따라 예술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을만큼 예술의 전통이 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즘들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상황 및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따라 시각지향성, 물질지향성, 행위지향성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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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각지향성-인상
시각지향성의 첫 번째 이즘이라 할 수 있는 인상주의는 인간의 시각에 의해 포착되는 자연과 인간의 인상을 색채로 화면에 옮겼다. 살롱의 전통을 깨뜨리고 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갔다. 유화물감은 대량생산되어 주석튜브에 휴대가능하므로써 인상파혁명의 시발이 된다. 인상주의는 카메라가 볼 수 없는 시각, 사진으로서는 만들 수 없는 구성, 기계뭉치가 할 수 없는 해석을 내세웠다. 르누아르는 숲속 연못의 누드나 거울 속에 비친 카페를 그려 시각의 혁명적 전환을 꾀한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견인차였다. 풀밭위의 식사를 낙선전에 출품하므로써 미술가들이 살롱에서의 독립을 공표했다. 피리부는 소년에서 배경을 납작하게 처리하여 평면인 화면을 평면으로 환원하는 촉매역할을 했다.
모네는 햇빛 아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과 인간을 그렸다. 루앵 성당이나 건초더미를 그릴 때 실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은 카메라의 선명한 눈과 대비가 된다. 형체에 매달리는 카메라 대신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수련 등의 그림을 그렸다.
후기인상주의는 인상주의가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비난했다. 세잔은 인상주의를 굳건하고 기념비적이며 심오한 것으로 만들어나간다. 세잔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나 사과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름의 구성요소들을 화면 속에 구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교차하여 색채원근법을 시도하므로써 르네상스의 형체와 색채는 화면의 논리를 따라 구축되었다. 화면이 자율적으로 요구하는대로 구성한다는 이 자세는 세잔을 20세기 미술의 대부로 추앙하게 만든다. 대부의 아들들로는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를 든다.
쇠라의 점묘주의, 고생의 까만 윤곽선을 두른 끌로아조네, 고흐의 열정적인 붓터치 등은 화면의 역동적이면서도 구축적인 질서를 재구성한다. 모두 기계복제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투라 할 만하다. 그 인간이란 인류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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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각지향성-추상
칸딘스키, 몬드리안, 뒤샹, 피카소 등 20세기를 움직인 대가들이 모두 이러한 물리적 이론에 따라 추상화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물리이론이 실재하는 이 세계에서 도출되듯 20세기 전반기의 추상화는 구상의 형체를 식별할 수 있는 비구상이라 할만하다.
표현주의는 비결정론에 영향을 받은 칸딘스키의 청기사그룹이 주축이 되어 인간의 감정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시각화했다. 표현주의는 마티스가 이끄는 야수파와 함께 색채의 주관적 표현성과 정신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표현주의와 야수파는 에드와르 뭉크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80년대에는 신표현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이목을 유럽으로 이끌었다.
마티스는 단순화한 색면과 굴곡이 심한 윤곽선으로 고갱이 체계화한 원시적인 형태를 묘사한다. 음악에서처럼 하모니, 멜로디, 리듬을 살리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남은 것이 현상학에서 말하는 본질이라는 사상일 것이다. 말년에 루마티스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반스 제단 벽화에서처럼 종이오려붙이기로 선과 볼륨을 함께 살려낸다.
칸딘스키는 실증적으로 뜨거운 추상화를 체계세운다.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면서 그림에서 대상이 필요한가 하고 생각하다가 해질 무렵 거꾸로 걸린 집 그림에서 색면만을 뽑아 추상수채화를 만든다. 핵분열이론과 불교인식론과 양자물리학 및 음악과 내적필연성이 조합된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적인 차가운 추상과 대립되어 오히려 세계적인 지지를 얻는다.
몬드리안의 철학은 물리법칙을 연상케하는 단순화와 재해석에 있었다. 그림의 밀물은 수직선, 썰물은 수직선, 노랑은 태양광선, 빨강은 노랑과 파랑의 통합색이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의 풍경화이다. 몬드리안의 세계는 조형의 최소단위를 구현한다는 미니멀, 딱딱한 윤곽선을 가지는 색면의 하드엣쥐로 연결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입체주의는 카메라가 찍어내지 못하는 3차원시각을 화면에 조형화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세잔의 영향으로 대상을 원기둥과 공과 원뿔로 분해한다. 스페인 태생의 피카소는 파리출생의 브라크를 업고 입체주의의 대가로 군림했다. 19세기말 피카소의 세탁선이라 명명된 작업실 등이 살롱을 대신하여 20세기 미술이 전개된다.
세잔의 형체분석과 단순화 영향을 반영한 아비뇽 홍등가의 아가씨들은 이국정서와 죽음이라는 개념을 형체로 환원한 표현을 선보였다. 세악사에서는 피에로와 광대와 수도승의 가면을 오려 파피에콜레, 즉 종이붙이기를 시도했다. 화면에 그림을 그려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실재감을 충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 손자는 마네 할아버지의 개혁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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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각지향성-초현실
꿈을 다룬 세계에는 샤갈의 향수와 에른스트의 자동기술법,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이 있다.
샤갈은 워드워즈의 말처럼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영생을 깨닫는 노래를 그림으로 옮겼다. 그러나 샤갈의 고향인 비데브스크의 향수를 그렸다는 나와 고향에는 입체주의와 광선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자리잡았다. 화면은 입체주의이론을 따라 분할된다. 린드버그의 대서양횡단에 대한 충격을 색채로 옮긴 들로네의 광선주의 역시 샤갈의 화면에 도입된다. 프로펠러에 의해 깨어지는 대서양의 태양의 모습이 그것이다. 거꾸로 그려진 사람 등 초현실주의적인 꿈과 그 단편이 객관화되어 그려진다.
초현실주의는 일차대전 후의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한다. 자동기술법은 아무 생각없이 끄적거리는 낙서처럼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어떤 의미있는 형상이 눈에 띄면 오딧세우스의 귀환처럼 그 주제를 중심으로 화면을 재구성한다. 에른스트는 동전베끼기같은 프로타쥬를 창안했다. 도밍게스는 물감을 짠 종이를 접었다 펴는 데칼코마니를 만들었다. 그것들을 주제가 있는 이야기로 그려낸다. 미로는 풍선에 그림을 그리고 부풀린 것 같은 인물과 실내풍경을 그린다. 달리는 편집광적 비판의 기법을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이끌어냈다. 끈질긴 기억에서 언젠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치즈처럼 늘어진 시계가 나무에 걸쳐 있다. 카메라가 그려낼 수 없는 꿈을 그린다는 자부심이 초현실주의에는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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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질지향성- 다다-설치-환경
이어 20세기 미술의 2/4분기에는 물질, 행위, 개념이 득세하는 시대가 온다.
미래주의는 물질문명을 지향한다. 로마라는 조상의 무덤과 유적에 짓눌린 예술가들이 길거리로 나서서 이념을 향해 주먹다짐과 싸움을 벌인다고 표현된다. 마리네티는 달리는 말의 발은 스무개이며 삼각형으로 그려질 수 있다. 또 거대한 머플러로 장식하고 뱀이 쉭쉭거리는 날숨을 닮은 폭발음을 내며 유성처럼 달리는 스포츠카의 모터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답다고 선언한다.
다다는 물질지향성을 통하여 기계복제에 대한 인간적 대안을 보여준다. 뒤샹은 20세기 미술의 전형 혹은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노총각들이 벗기기까지 한 새색씨라는 작품은 남녀를 연상케하는 소도구와 분위기를 대형유리판 사이에 설치해 무한성욕을 암시하는 n차원의 반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명화중독증을 개량한다면서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렸다. 소변기는 나중에 발견된 오브제라는 미학을 낳아 미국 네오다다의 원조가 된다. 물질지향성의 다른 예로는 슈비터스를 들 수 있다. 재활용 폐기물로 집과 극장을 지었다. 나중에 예술가들이 흉내내어 환경미술, 설치미술로 발전시켰다.
설치미술은 개념미술로 피폐해진 미국화단에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보로프스키는 흑인들의 낙서에서 따온 인물을 커다랗게 겔로폼으로 만들어 설치한다. 환경미술은 슈비터스의 폐기물구조와 초현실주의에서 비롯된다. 키엔홀츠는 주립병원의 모습을 본따고 환자까지 모방한다. 크레솔도 뿌렸다. 올덴버그는 상점을 통째 사들여 작품화한다. 시걸은 움직이는 사람을 정지시킨 후 석고로 떠낸다. 대지미술은 전시장 바닥에 흙을 깔았던 아르떼 포베라라는 가난한 화가들 대신 그 흙이 있는 현장으로 뛰어나간 미술이다. 크리스토는 30만 평방미터의 로프로 시드니 해안선을 포장했다. 1 킬로 높이의 콜로라도의 계곡에 커텐을 쳤다. 하이저는 2천 4백톤의 화산암과 사암을 파혜쳐 바람과 비에 묻힐때까지를 작품화한다. 스미드슨은 450미터의 나선형 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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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행위지향성-케이지, 카프로, 퍼포먼스
유럽에서 이브 클렝은 인체측정학이라는 고상한 제목의 행위에서 파란 물감을 모델들에게 묻힌 후 바닥의 캔버스에 굴르게 한다. 유방과 배꼽이 마치 사람얼굴처럼 보인다.
유럽에서 격렬한 행위의 결과를 화면으로 보여주는 앙포르멜은 자발적인 테크닉을 위해 구상적이고 기하적인 그림을 거부한다는 취지로 시작된다. 마띠외는 소방복을 입고 불 속을 뛰어다니며 커다란 붓으로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
독일의 보이스는 미술을 방언, 혹은 암호통신처럼 만든다. 이차대전 때 독일공군으로 참전했다가 크리미아에 격추당해 타타르인들의 담요와 굳기름으로 살아난 보이스는 그것들을 미술의 언어로 내세운다. 지역적인 상식을 개인적인 해석으로 언어화한 것이다.
미국에서 백남준을 키워준 음악가 죤 케이지는 동양정신을 빌린다. 노자의 무용지용-쓸모없음이 오히려 쓸모가 있다는 사상을 빌어 4분 31초의 침묵연주를 했다. 주역의 점치는 방법을 빌어 동전을 던져 음표와 쉼표를 결정했다. 케이지의 단선적 행위미술은 이벤트라 불렀다. 반면 알란 카프로의 복합적 행위는 해프닝이라 한다.
행위미술이란 신체나 행위가 인간의 시각과 감정에 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적활동이라 정의된다. 카프로의 정의에 의하면 해프닝은 논리적이 아닌 다양한 요소들이 시네플렉스 영화관에서처럼 공존하는 구조라 이야기한다. 플럭서스는 백남준이 참가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룹이며 연극처럼 반복되는 부조리행위를 일삼는다.
퍼포먼스는 해프닝이나 이벤트 등의 미술행위가 생활 속으로 파고 드는 행위이며 그림을 무대에 올리는 방식 중의 하나라 정의한다. 크리스 버든은 투명한 보관함 속에서 5일간 튜브를 통해 먹고 싸면서 생활한다. 로리 앤더슨은 이동하는 미국인에서 단조롭게 디지털화한 음성해설과 대형화면에서 여자와 나란히 서서 손을 들고 있는 남자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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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세기 후반-3/4분기 미국
20세기 후반중에서 3/4분기는 이차대전 이후 미국의 전횡, 4/4분기는 중세에 이은 제2의 암흑시대라 할 수 있다. 2차대전 후 인류의 정신과 문화도 경제력과 경찰력에 통제되어야 한다는 정글의 논리가 팽배했다. 그렇게 우리가 지켜보았던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세계미술을 접수하면서 미술은 이즘이라는 말 대신에 아트라는 접미사를 달고 나타난다.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 짧은 미국인들에게 해괴한 그림이나 행위를 미술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개척시대나 기계문명시대의 회색 도시풍경, 불자동차에 그려진 숫자 등을 그리던 미국이 초현실주의화가들의 전시인 1913년의 아머리쇼와 1945년 이후 미국이주에 자극받아 내세운 화가가 잭슨폴록이다.
폴록은 드리핑 기법으로 나바호 인디언의 모래그림 기법을 빌어 서부 사막의 나무등걸을 재현했다. 페인트통에 구멍을 뚫고 휘저으면서 가끔 모래와 유리조각을 뿌리기도 했다. 드쿠닝과 함께 액션 페인팅, 혹은 추상표현주의라 분류되었다.
폴록의 신화는 하드엣쥐와 색면추상이라는 전면회화로 이어진다. 켈리 등의 하드엣쥐는 마스킹 테입으로 막고 물감을 칠한 후 물감을 떼면 딱딱한 색면이 만들어진다. 루이스 등의 색면추상은 물감을 묽게 타서 캔버스 위에 비비거나 희석액을 써서 번지게 한다. 그리고선 큐비즘의 화면이나 유화보다 더 낮은 층으로 화면에 접근하는 본질회귀의 승리라 했다. 미국주도 미술의 얄팍한 합리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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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세기후반- 4/4분기-
미국은 영국의 팝아트를 표절하여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의 상표를 붙여 세계로 전파했다. 팝아트라는 이름으로 야스퍼 존스는 음료수 캔이나 전구를 주물로 떴다. 그림이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우상으로 보고 그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역원근법의 성조기처럼 암호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올덴버그는 나무로 만든 미제 빨래집게를 기념비처럼 크게 확대했다. 리히텐스타인은 미국 만화의 망점까지 솜방망이로 확대하여 그렸다.
컴바인 페인팅은 라우젠버그가 주도했다. 스타코 등의 만능접착제로 주위에 있는 아무 것이나 붙여나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것을 죤 케이지는 초점확산이라 표현했다.
미국인이 척박한 문화적 바탕에서 세계미술을 암흑기로 몰아넣은 주범 중에 개념미술이 있다. 앤디 워홀은 재난을 당한 유명인사의 초상사진을 전화로 지시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다. 후에블러는 쓰레기같은 예술계에 아무것도 더하기 싫다는 발언이 예술이라 했다. 솔 르윗은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에 대한 개념 때문에 개념미술을 주저하는 예술가들에게 제약을 두는 것은 전통적인 제약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라는 등의 35개 선언문을 만들었다.
개념미술은 맹물같은 미국인이 만든 증류수와 같다. 이상적인 물처럼 생각되지만 사람이 마시면 설사를 한다.
세계미술은 미국이 이끄는 제2의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40년간 장티푸스를 앓은 환자처럼 초췌한 몰골이다. 결산해보건대 미국에서 3/4분기에 일어난 예술사조는 1/4분기 유럽미술의 재탕이었다. 앞쪽은 유럽미술, 뒤쪽은 유럽미술을 번안 내지 복사한 미국미술이다.
초현실주의->추상표현주의, 다다->아상블라쥬|팝아트|네오다다|해프닝|오브제|레디메이드, 바우하우스실험->키네틱, 몬드리안과 다다->미니멀, 표현주의->신표현주의, 메르츠아트->설치미술|정크아트|키치,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비디오아트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미국미술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을 떠난 미술, 미술가가 필요없는 미술, 대중이 단지 분위기로 포함될 뿐인 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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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어
개념미술 이후 유럽에서 신표현주의와 신구상주의가 잠시 반짝했지만 세계미술을 열병에서 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20세기는 미국이 주도한 제2의 암흑기를 지나면서 3차대전이라도 치른 것 같은 몰골로 21세기를 맞았다. 21세기에 미술관은 텅 빈 전시장만 지킬 것인가. 미술가들은 미술의 몰락을 관망만 할 것인가. 대중은 미술촉진의 새로운 촉매가 될 것인가. 2003년이 되어서도 그 전망이 밝지는 않다.
아인슈타인은 3차대전이후에 인간은 돌도끼로 싸울 것이라 했다. 미술가들은 제2의 암흑시대 이후 구석기시대로 돌아갔다. 펭크의 그림에는 마치 구석기로의 회귀를 의미하듯 돌도끼를 들고 있는 인간이 그려진다. 그렇게 인류는 기계와 말장난과 예술의 파괴에 맞서 다시 피와 땀과 눈물을 화면에 쏟았다.
신표현주의의 그림은 동굴벽화에서 꼬챙이로 그렸던 그림과 같았다. 그러고 보면 결국 그것이 인간이었다. 그 보통인간 중에서 뛰어난 보통인간이 만드는 미술만을 미술로 수용해왔던 인류의 해묵은 관행일 것이다. 나아가 현생인류가 주역으로 군림하는 한 테크놀로지나 뉴로 컴퓨터의 신경망회로, 나아가 외계인의 찬란한 문명이 있다한들 감히 우리를 넘볼 수 있겠느냐는 다부진 각오일 것이다. 그것이 이름하여 그레코 로망의 인간척을 표방한 현생인류의 텃세일 것이다.
2003-202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