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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경주문화 답사기행 매년 12월에는 독신인 딸이 나이많은 부모에게 나름의 효도여행을 기획한다. 직장에 매인 바쁜 몸이지만 휴일을 끼워 1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국내 때로는 일본여행도 기획한다. 우리 부부는 여행에는 척척 손발이 잘 맞는다. 부모를 닮았는지 딸도 여행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자주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이번은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간 경주여행을 기획하여 날자를 조율한다. 나야 어느날이든 무조건 좋다. 그래서 확정잡은 날자가 12월 21일~22일 1박2일이고 출발은 수서역 SRT 08:05 출발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기에 아예 딸집(개포동)에서 자고 새벽에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전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겨울철이라 7시가 넘었는데도 깜깜하다. 아파트 마당을 걷다가 집사람이 계단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행이 시작도 하기 전에 파투나는 것 아닌가 싶어 놀라고 당황했다. 다행히 발목을 다치거나 한 게 아니라 역에서 약과 반창고를 사서 처리하기로 하고 예정대로 탑승을 마쳤다. 예정시각 정시에 출발한 열차는 동탄, 평택지제, 천안아산,오송 대전을 지나 김천과 서대구 동대구를 거쳐 신경주역에 도착한다. 딸과 집사람이 같이 앉고 내 옆은 비어 있었는데 동탄에서 어떤 젊은 여인이 탔다. 젊었을 때야 옆자리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라도 부담이 되고 자리가 비었으면 하고 바란다. 옆 여인은 좌석에 앉아서부터 줄곧 스마트폰으로 온전히 전 시간을 떼우고 바깥 빛이 거슬리는지 나에게 양해도 없이 창문을 내려버린다. 모처럼 차창 밖으로 경치를 보고 싶었으나 기분 상할까 싶어 그냥 참았다. 책도 가져 오지 않았으니 나도 스마트폰 밖에 도구가 없다. 딸이 전해주는 과일과 과자로 심심풀이 군것질로 겨우 시간을 떼웠다. 드디어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2년전 고교동창 모임에서 친구들과 같이 당일치기로 이곳 경주에 왔던 기억이 새롭다. 신경주 역사가 워낙 외딴 곳에 위치해 관광지나 시내 까지는 차로 30분가량 걸린다. 딸이 사전에 알아서 시간계획을 세웠던 대로 진행된다. 버스로 첫 목적지 대릉원으로 갔다. 대릉원(大陵苑)과 천마총(天馬塚) 대릉원 대릉원은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옛 신라 왕과 왕비 왕족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 밀집지역을 의미한다. 2011년 7월에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약 150여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대릉원을 좁게 보는 해석에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는 황남동 고분군 쪽을 뜻하는데, 경주 역사유적지구에는 5개의 지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넓은 의미의 대릉원 일원에서 현재까지 6개의 황금관이 출토되었는데 이번 APEC 기간에 경주박물관에서 6점(중앙박물관 소장 2점, 경주박물관 3점, 청주박물관 1점)이 동시 전시되어 화제가 되었었다. 대릉원 후문으로 입장하면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이 단연 시선을 끈다. 대릉원 대표사진으로 알려진 고분이다. 천마총부터 관람하고 대릉원 일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천마총은 황남동에 위치한 신라 왕릉급 고분인데, 과거에는 경주 155호분 이라고 불렸지만, 1973년 대대적인 발굴 이후로는 출토품 중 하나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天馬圖)에서 이름을 따 천마총이라 불린다. 무덤의 주인은 알 수 없으나 건축 시기는 연구 성과들을 기초로 주로 6세기 초에 축조했다고 본다. 발굴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과 지원으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발굴작업의 기술 관계로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 대신 가까이 있는 155호 고분 부터 출토했는데 대박이 터졌다고 한다. 천마종 장니 천마도를 비롯해 천마총 금관, 천마총 관모, 천마총 금제 허리띠 등 국보 4점과 천마총 금제 관식, 천마종 목걸이, 천마종 유리잔 등 보물 6점을 비롯 부장품 만도 1만점이 넘었다고 한다. 천마총 내부를 구경했다. 피장자의 키는 160cm의 키에 황금신발이 놓여 있고 위의 여러 국보 보물급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천마도는 자작나무 수피로 만들어 천 수백년 간 산성 토양 속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다. 천마총 맞은편 연못 건너편에 위치한 대릉원에서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은 남분과 북분이 연결된 쌍릉으로 120m에 달하는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천마총 발굴에 이어 1973년 6월 북관부터 시작하여 다음해 2월까지 1년6개월 동안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다. 황남대총 유물은 북분에서 출토된 국보인 금관, 금허리띠 보물인 은관을 포함 금펄찌 등 58,000여점의 금, 은, 청동, 토기, 유리제품으로 다양한 지역의 유물이 섞여 신라의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대릉원 산책 천마총 내부 구경을 마치고 황남대총을 지나 산책길에 나섰다. 높다란 키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단연 시선을 끈다, 그 옆에는 노란 모과를 달고 있는 모과나무도 있고, 조금 더 가니 새빨간 열매가 빽빽히 달린 산수유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우리집에도 산수유 나무가 있어서 겨울철 하얀 눈이 내려도 빨간 열매가 너무 보기 좋아 봄철 노란 산수유꽃 이상으로 사랑 받는다. 그러나 우리집은 새들이 열매를 다 따먹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 배롱나무 군락지도 지나면서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배롱나무에 여름철이면 피처럼 빨간 목백일홍 꽃도 눈에 선하게 연상된다. 대릉원 지도 상에서 표시된 미추왕릉을 찾아간다. 미추왕은 신라 13대 왕으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이다. 삼국사기에 미추왕은 재위 23년에 돌아가시니 대릉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일대를 대릉원 이라고 부르고 미추왕릉은 유일하게 피장자가 미추왕임이 밝혀져 왕릉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총(塚)이라고 부르는 것은 왕릉으로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니다 보니 대릉원 정문이 보인다. 대릉원은 무료 입장이라 어디서든 입장이 가능하다. 대릉원 정문을 나와 황리단 길에 들어선다. 웬 빵집이 이리도 많은지? 경주 황남빵은 소문이 나서 사기도 힘든다고 한다. 황남빵의 원조는 황남동에서 최영화 장인이 1939년에 최초로 시작했는데 이에 파생된 경주빵이란 이름으로 종류가 수없이 많이 니왔다. 최영화 빵, 이상복(최영화 장인의 수제자) 빵 등 이름도 다르고 찰보리, 문양 등 특색있는 제품이 다양하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이상복 경주빵집이 있었다. 점심은 인터넷으로 맛집 검색된 도솔마을"로 향한다. 식당 도솔마을 외관도 화려한 간판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식집답게 예쁘게 꾸며 놓았고 마당, 화장실도 옛 고옥을 찾아온 듯 정감이 간다. 식사 메뉴는 단일 메뉴로 '수리산 정식'이고 모듬전, 파전, 가오리 무침, 가자미 구이, 떡갈비 등이 부찬으로 주문할 수 있다. 우리는 수리상 정식에 가자미구이를 시켜 먹었는데 가성비가 좋다, 관광지 바가지 요금을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기분좋은 맛점을 했다. 사장은 추운 날씨에도 바깥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어서 잘 먹고 간다고 마음의 인사를 했다. 첨성대 점심을 마치고 오후 일정의 첫 방문지는 첨성대이다. 대릉원 정문에서 2~3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신라시대의 천문기구로 신라 왕궁 터인 반월성의 북서쪽 성곽에서 약 300m 지점에 위치한다. 첨성대는 우리나라 국보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한반도 고대 건축물 중 유일하게 후대에 복원이나 재건 없이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첨성대 석재는 화강석이고 표면은 잘 다듬어져 있다. 높이는 9.51m 구조는 아래 기단부, 그 위에 술병형의 원통부, 다시 그 위에 정자석 정상부 등 크게 3부분으로 나눈다. 1980년대 초 딸아이가 초등학생일 무렵 필자의 선친은 경주여고 교장으로 재직했다. 여름방학이면 애들과 같이 이곳 경주를 매년 왔는데 교장 관사가 첨성대 바로 앞이라 대문만 나서면 첨성대가 보였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딸은 당시의 기억을 정확히 하고 있었다. 고모와 같이 첨성대와 석빙고 등으로 놀러 다녔단다. 첨성대 옆으로 벌레 모양의 전기차가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비단벌레 전동차라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단벌래를 형상화한 친환경 전기자동차인데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 대릉원 일대를 순회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비단벌레 날개 모양의 유물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동궁과 월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다. 기온을 낮추려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다니는 것도 의욕이 떨어진다. 동궁과 월지는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안압지(雁鴨池)이다.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이란 뜻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궁궐 유적으로 이곳은 본래 신라의 별궁으로 신라의 태자가 살던 곳이다. 법궁인 경주 월성의 동쪽에 있다고 동궁이라고 불렸다. 신라시대 경주의 왕궁 모습을 재현하는 실내 영상관을 먼저 찾았다. 신라왕궁 영상관에서는 신라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부터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야간 영상물을 감상했다, 야간 관광지로 유명한데 영상물 감상으로 대치했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나 날씨가 추워서 1970년대에 복원한 3채의 별궁을 구경하고, 가로 5.5m 세로 4m의 '동궁과 월지의 모형도'를 보면서 원래의 동궁을 상상해본다. 13개 동(棟)의 건물과 156칸의 회랑 그리고 아름다운 월지(月池: 달이 비치는 연못)로 구성되어 있다. 황룡사 9층목탑과 역사문화관 황룡사가 위치했던 황룡사지(皇龍寺址)와 황룡사 역사문화관을 찾아 간다. 황룡마룻길이 있어 편리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된 삼국시대 최대 사찰이다. 황룡사 9층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법사의 권유로 백제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된 약 80m의 거대 목탑으로 주변 9개국을 제압하고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건립되었으나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황룡사 터에 주춧돌과 모형만 남아있는 신라의 상징이자 호국불교의 상징물이다. 1976년 황룡사지의 발굴 작업으로 2m 크기의 치미, 신라 삼보 중 유일한 잔존 유물인 장육존상 머리의 나발(머리카락)편을 비롯하여 4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황룡사지 터에는 발굴된 주춧돌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쌓여 있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들어갔다. 노인들은 입장이 무료였지만 딸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역사관에서 황룡사 건축과 9층 목탑 계획안, 몽골 침입에 의한 소실, 황룡사지 발굴 이야기, 복원 이야기, 장육존상 불두의 형상 등을 공부했다. 재미로 포토 체험존에서 촬영도 해 본다. 영상관에서 3D 안경을 쓰고 입체 영상물도 관람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문화관 내에 세워놓은 황룡사 9층목탑 모형(1/10)을 감상했다. 삼국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 만이 아니라 아름답기도 최상인 것 같다. 분황사(芬皇寺) 황룡사지에서 분황사까지는 걸어서 10여분 거리이다. 논둑길이라 걷는 수 밖에 없다. 분황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당시(634)에 창건한 사찰이다. 한자 풀이대로 향기가 나는 황제의 사찰이란 이름대로 신라 최초의 여왕이 왕위에 오른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절이다. 분황사는 자장대사와 원효대사가 머물며 불법을 설파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분황사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단연 사찰 중앙에 위엄있게 서 있는 국보 제30호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으며, 기단부 사자상과 인왕상 조각, 1층 감실 등이 특징인 신라 석탑의 걸작품이다. 탑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연꽃 장식이 있다. 신라시대 전형적인 3층 석탑과는 다른 독특한 모양새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은 모습인데 전탑(塼塔)의 양식을 모방한 석탑이다. 숙소 대명 소노캄(SONO CALM)은 보문단지 호수옆에 있다. 입숙 절차를 밟으려고 보니 줄이 한없이 길다. 세상은 줄의 연속이다. 줄을 잘 서야 하고 잘 잡아야 편하게 산다고 한다. 그러나 올바른 줄이라야지 나쁜 줄은 안된다. 딸이 수속을 밟고 방으로 들어갔다. 바쁜 일정을 보냈다.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는 간단히 하기로 했다. '교리'라는 김밥과 국수집이다. 이집 상호는 유명해서 여기도 줄이 길게 서는 집이라는데 시기가 겨울이라서인지 손님이 적다. 김밥에는 계란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김밥보다 국수가 너무 구수하고 맛있다. 멸치 다시가 많은지 옛날 시골에서 먹던 맛이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문 호수에는 "천년의 역사 피어오르다" 라는 아름다운 색상의 작품이 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멀리 다리에도 네온 불빛이 장식을 하고 있었다. 샤워후 드라마을 보고 일찍 취침에 들었다. 황룡사지 9층 목탑 모형도(1/10) 2일차 숙소 옆 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딸과 같이 보문단지 호수변 벚꽃길을 산책했다. 벚꽃철에는 대단하겠다 싶다. 굵은 벗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호수변 산책길은 하필 기온의 급강하로 춥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40여분 걷고 체크아웃 수속을 마치고 이틀째 여정에 들어갔다. 60여년만에 찾은 석굴암 석굴암과 불국사 어디를 먼저 갈까 생각타가 아무래도 석굴암을 택했다. 몇년 만에 가는지 계산이 어렵다. 불국사는 2년전 고교 동기생들과 당일치기로 다녀온 일이 있지만 석굴암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갔던 기억이 어렴풋 하다 .1957년인지 58년인지 67년이 넘은 햇수다. 카카오 택시로 불국사를 지나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른다. APEC 큰 행사를 치룬 경주에 관해 궁금하던차 택시 기사에게 물었더니 어찌나 장황하게 늘어놓던지--보안,교통,관광객, 외국인 등 끊임없는 설명이 이어진다. 아슬아슬한 운전이 염려되고 괜히 물었다 싶다. 인천과 제주와의 경합에서 경주가 이겼다는 것도 대단하고 규모가 적은 소도시에서 그래도 이만큼 성과를 내었다니 정말 기적 같다. 소노캄 숙소에서 석굴암까지는 18km 택시로 30여분 거리다. 석굴암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계단길로 160여걸음 5~6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석굴만 있을 거로 예상했는데 사찰 건물이 있고 마당에는 알록달록 연등이 빼곡하다. 석굴암 본존불이 있는 본전 앞에는 유리벽이 있어 내부 촬영이 금지되고 있었다. 비닐로 칸막이를 한 예불하는 장소에는 기도하는 신도들이 가득하다. 불교신자인 집사람이 입장을 원하니 미리 예약한 사람만 입장이 된단다. 바깥에서 서서 예불에 참가하는 수 밖에 없다.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좋다. 화창한 날에는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은 사진 촬영이 안되어 인터넷에 올라있는 사진(오세윤 작가)을 인용해 올린디. 본존불은 우리나라 국보로 1,58m의 좌대 위에 크기가 3.26m로 석굴 자체는 순전히 인공석굴로 셰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집사람이 우리 식구 이름을 기와에 적어 가족 건강과 소원성취를 비는 기와불사를 하였다. 불국사로 가는 버스가 매시 정각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12시 버스를 타기로 하고 남은 시간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며 보냈다. 석굴암 가는 길 연등이 많이 달려있다. 석굴암 본존불 신라의 자랑 불국사 점심시간이라 불국사 주차장 인근 식당에서 전골과 비빔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불국사 일주문을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른다. 식사부터 하여 배를 든든히 한 것이 잘 한 것 같다. 불국사를 다 돌자면 꽤나 시간이 걸릴테니-- 일주문을 들어서며 경건한 마음을 다진다. 어느 사찰이나 일주문은 속세의 번뇌를 벗고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현판에는 '佛國寺'라는 해서로 힘찬 글씨가 오소독스함을 자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사찰이나 일주문의 현판에는 oo山 oo寺 라고 표기하는데? 궁금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AI에게 답은 구하니-- 원래 불국사 일주문은 현재 불국사 출구쪽에 있는 불이문(不二門)자리에 있었고 현판글씨는 吐含山 佛國寺였다. 정비작업에 의해 일주문을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불국사는 토함산을 생략했다고 함). 2년전에 동창들과 다녀온 덕분에 생소하지 않고 위치나 동선을 안내할 수 있었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김대성이 죽고 난 후 나라에서 맡아 완공하였다, 이후 왜의 침입으로 전부 불타고 수년에 걸친 발굴조사와 복원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보탑, 석가탑을 비롯해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 등에서 볼 수 있듯 신라 장인들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예술적인 솜씨는 대단하여 이들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반송(盤松)이 반긴다. 그림자는 더 크다. 반송 위로 파란 하늘과 흰 뭉게 구름이 떠 있다. 도무지 겨울 풍경이 아니다. 두 연못과 다리를 지나 천왕문에서 험상궂은 얼굴과 갑옷을 입은 네명의 사천왕이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본당 아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으로 향하는 자하문이 높게 보인다. 자하문과 연결된 청운교 백운교 두개의 다리가 계단 위로 세워져 있다. 자하문 좌우에 누각인 범영루(우경루)와 좌경루가 위치한다. 자하문 반대 서편에는 극락전으로 가는 안양문이 있고 계단을 오르며 두개의 다리 연화교와 칠보교가 연결된다. 자하문과 안양문은 대웅전과 극락전으로 출입하는 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막아놓아 출입이 안된다. 예전 중, 고 수학여행 당시는 청운교 백운교 다리 위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앉고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좌경루 옆으로 긴 회랑을 통해 대웅전과 대웅전 뒤에 위치한 무설전으로 출입을 하게 된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그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높이 솟아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 석가탑과 다보탑은 불국사 대웅전 마당에 있는 쌍탑으로,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를 상징하며, 법화경의 '견보탑품' 내용을 형상화 했다. 석가탑(국보 제21호)은 균형잡힌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다보탑(국보 제20호)은 화려하고 독특한 구조로 석가모니의 설법을 증명하는 다보여래를 표현하여 각각 부처의 본질과 찬탄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석가탑은 단순하고 정형화된 신라양식의 3층석탑으로 목조 건축울 모방한 듯한 안정적인 비례와 구조, 소박한 모습인데 반해 다보탑은 네모난 기단 위에 8각형 탑신, 4개의 계단, 10개의 난간, 사각형과 원형을 결합한 독특한 모습이다. 석가탑은 민간설화로 전해 내려온 석공 아사달과 그 연인 아사녀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면서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으로 반출된 고귀한 유산의 행방이 묘연하다. 대웅전 불국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불국사의 중심 법당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기단 위에 조선 후기 양식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 얹힌 구조이며, 신라의 김대성이 창건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살된 후 여러 차례 중창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보물 제 1744호 건축물이다. 불교신자인 집사람이 대웅전에서 기도를 하는 동안 대웅전 뒤쪽에 있는 무설전, 그 뒤편에 있는 관음전, 비로전, 나한전을 차례로 구경하였다. 무설전(無說殿: 경전 강의장)은 신라 문무왕 10년에 왕명으로 세우고 법화경을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관음전(觀音殿)은 관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는 전각이고, 비로전(毘盧殿)은 비로자나 화엄불국토의 주인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나한전(羅漢殿)은 부처님 제자 16분의 나한을 모신 법당으로 비로전 서쪽에 위치한다. 극락전 대웅전 서쪽으로 한계단 낮은 곳에 극락전이 있다. 역시 신라 김대성이 불국사 건립 시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석조 기단만 남고 불에 탔다. 조선후기에 중창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 국보로 지정된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된 연화교와 칠보교를 거쳐 안양문을 통해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으나 현재는 출입이 안되고 측면 회랑을 통해서만 출입이 되다. 극락전 마당 석등 앞에 놓여있는 복돼지상을 만지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긴줄이 시선을 끈다. 원래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져 있던 작은 돼지 조각을 발견하여 이를 모형으로 만들어 앞뜰에 만질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복돼지상 앞에서 소원을 빌고 돼지 코나 등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들 믿는다. 하도 많이 만져서 복돼지상의 코 부분이 유난히 반짝인다. 귀경 1박2일의 경주 문화답사 기행은 모두 끝났다. 그래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고 경주는 이웃 고향이라 자주는 못 왔지만 어딘지 친근감이 있고 애정이 가는 도시다. APEC을 통해서 전세계가 경주의 아름다운 모습과 시민들의 친절함에 반했듯이 필자도 비록 짧은 여행이지만 경주가 외치는 '역사를 품은 도시' 이면서 또 '미래를 담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이제 귀경길만 남았는데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다. 박물관 구경을 했으면 좋겠지만 관람시간이 길어 안되겠고, 경주 시내 중앙시장을 가기로 했다. 마침 5일장날이라고 하니 구경거리가 있을 것 같다. 버스로 시장 앞에 내리니 시장 바깥까지 난전을 펴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다녔으니 몸도 피곤하다. 빵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신경주역으로 갔다. 역광장에 도착하여 가게에서 저녁식사용으로 햄버거를 준비했다. 먹고 가기엔 시간이 이르고 서울 가서 먹자니 늦고~ 5시 18분 출발이다. 자리에 앉아 1박2일의 여정을 순서대로 챙겨본다. 너무나 빡빡한 스케쥴로 다닌 것 같다. 늘 느린 여행을 다짐하지만 욕심 때문인지 그게 잘 안된다. 빨리빨리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긴 수많은 사진들 정리도 해야 하고 여행기도 쓰야 하고 ~여행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미루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불과 2시간 반만에 수서역에 도착했다. 이렇게라도 다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데-- 딸이 여행을 부추기고 주도 해줘서 너무 고맙다. |

첫댓글 국민학교 6학년때 경주 수학여행 왔었는데, 그 때는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산길을 걸어갔지요. 다람쥐도 함께 달리고.... 석굴암 본존불을 한바퀴 돌아 나왔죠. 암자는 나중에 보수한 뒤에 생겼을겁니다.
석굴암 본존불 위에 돔처럼 화강암들을 올렸는데, 한 가운데 큰 원형의 돌은 석굴암 만들 당시에 깨졌다고 합니다. 공사 책임자가 눈물로 통곡하며, 새로 만들것을 걱정 하던 중에 꿈에 보살님이 나타나 그만하면 되었다.
그냥 깨진 돌도 괜찮다고 해서 그대로 올렸다고 합니다. 기중기도 없고, 돔 아래를 기둥으로 받치고 그 큰 돌들을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리는 것은 현대 기술로도 너무나 어려운 공사 입니다.
가족여행이야말로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추억의 장면, 두고두고 새록새록 생각나는 달콤한 샘물이지요. 저희 부부는 10여년전 당일치기로 동궁과 월지 야경까지 보고 왔지요(신경주-서울역 21시반 열차). 여행기 올리느라 수고 많았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