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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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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568081411
기상시간이야 몸에 맞춰져 별반 차이없지만
오래간만에 느긋하게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홀수로 남은
11코스 한 구간만 걸을 예정이다.
동료들에게 추천한 곳은 송악산이다.
함께 렌트카를 타고 숙소를 나선다.
나설 때 계획은 무릉리에 내려 역방향으로 움직여
송악산을 걸을 예정인 동료들과
모슬포항에서 합류할 생각이었다.
무슨 정신이지
출발하면서 목적지로 모슬포항으로 가자한다.
모슬포항 인근 하모체육공원에서 출발하여
모슬봉에 올랐다가
무릉리 농산물을 유통, 판매하는 '외갓집'까지 이어지는
17.3킬로미터, 난이도 '중'이다.
목적지인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할 즈음
아차차, 싶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11코스 시작점에 도착한 시간이
11시를 조금 넘어섰다.
그렇게 정방향으로 출발한다.
초입 길 건너기 전 기념비가 보인다.
'오좌수 의거비'.
1887년 봄, 일본 잠수기선 14척이
가파도 주변에서 어패류를 무단으로 채취하기 시작한다.
그 해 여름 가파도에서 전복을 무단 채취하던 왜선 선원들이
모슬포에 상륙하여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더니
샘터에서 물긷는 아녀자들을 능욕하려 한다.
이에 격분한 장정 다섯이 주동하여 격투를 벌이다
한 명은 참수당하고 손이 절단당하는 등 피해를 입는다.
이 사건을 조정에 알려
맞서 싸웠던 다섯 장정들에게 좌수 벼슬을 내리고
이를 기리기 위해 의거비를 세운다.
모슬포항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오사카를 오가는 정기여객항로가 운항하기도 했다.
대정오일시장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이다.
오늘은 장날이 아니라
인기척이 없다.
읍내를 지난 길이 다시 바다에 이른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최후방인 이 곳에
1951년 3월 '육군 제 1 훈련소'가 창설된다.
그 해 가을, 같은 건물 2층에
군 위문공연단인 '군예대'가 설치된다.
당시 피난중이던
남인수, 고복수, 황금심, 신카나리아 등 가수와
황해, 구봉서 등 기라성 같은 연예인들로 구성되었다.
전선에 투입예정인 장병들을 위문하는 일이었다.
또한 수많은 군가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실제 이 건물에서 기거하던 이들은
앞 바다 해녀와 숨비소리를 들으며 노래 한 곡을 만든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황금심노래로 잘 알려진 '삼다도 소식'이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아마 연배있는 이들이라면
몇 번이고 흥얼거렸을 만한 곡이다.
'삼다도 소식 노래 기념비'다.
노랫말의 영감을 얻었을 앞 바다다.
해안가 마을에 자리잡은 용천수
'산이물'이다,
서산사 사찰 앞 정주석에
정낭 하나가 가로로 걸쳐있고
하나는 구멍에 걸친채 내려져 있다.
입구 안내문에
'목조 보살좌상 및 복장 일괄'이 봉안되어 있다는데
정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맨 밑에 걸쳐진 정낭이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같다.
정낭 앞에서 사찰만 사진에 담고 돌아선다.
삼다, 삼무로 알려진 제주도에는
거지, 도둑, 대문이 없다.
대문은 없지만
방목한 소나 말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이웃 등 외부인에게 부재여부를 알리는
정주석과 정낭을 설치하였다.
모슬포해안은 돌아나가는 길에
자갈을 덧씌운 방파제가 이색적이다.
오른쪽 모서리가 제단으로 보인다.
수호신에게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장소로 여겨진다.
대정읍 하모마을 뒤로
모슬봉이 보인다.
해안 암반 위 바위에 돌탑을 세워놓았다.
푸른창공에 하얀구름이 흩뿌려졌다.
직선으로 곧게 난 구름,
사실은 비행기가 만든 비행운이다.
음속에 가까운 전투기로 추정된다.
동일리포구 방파제가 길게
건너편 방파제에 닿을듯 이어진다.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마을 밭담길을 지나간다.
모슬봉 정상에는 레이더기지로 보이는
군사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남제주요양원 맞은 편,
연못이 보인다.
3킬로미터 경과하는 지점이다.
다시 봐도 싱그러운 풍경이다.
스프링쿨러가 길로 물을 뿌리고 있다.
두 번 우측으로 꺽어진 길이
모슬봉 둘레길로 이어진다.
제주 일주서로와 합류한다.
멀리 돌지 않는다면 정상부를 오르고 싶다.
잠시 뒤돌아 본 샛길이다.
아닌듯하여 일주서로를 따라 걷는다.
죄측 도로방향은 군사지역이니
관계자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올레 안내문이 세워져있다.
일주서로는 정상부로 오르다
군부대 앞에서 끊어지는 것 같다.
올레는 일주서로를 빠져
'모슬봉 숲길'로 들어간다.
수풀 우거진 숲길에 들어선다.
뒤로 산방산이 보이고
그 앞 크고 작은 삼각뿔 두 개 모양이 단산이다.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이라하여
'바굼지오름'이라고도 한다.
호젓하지만 편안한 숲이 계속 이어진다.
하늘이 열리는 곳,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동쪽 방향이다.
대정읍, 상모리, 칠성 등 공동묘지가
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묻힌 이들의 뜻 만큼
경치좋은 곳에서 영생하고 있을까?
죽음이 뜻하는 스러짐, 無,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절차 또한 그 당시 감정에 치우친
산 자와 죽은 자의 집착은 아닐까?
이렇게 허무한 공간을 보는 나는...
지도에서는 모슬봉정상으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멀리서, 가까이 봐도
모슬봉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모슬포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모래'를 뜻하는 제주도방언 '모살'에서 유래되었으며
'모살개오름'이라고도 한다.
'가야금을 세워놓은 모양'이라하여
마을 사람들은 '탄금봉'이라고도 부른다.
아쉽지만 발길을 올레로 옮긴다.
한라산은 오늘도 수줍은 듯
말간 얼굴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그 아래,
제주스런 광야의 모습이 펼쳐진다.
멀리 슬픈 사연을 간직한 형제섬이
밀물체 드러난 부속섬 몇 개를 보여준다.
다시 '모슬봉 내린길' 숲으로 들어서
모슬봉을 내려간다.
왼쪽 안내문 쪽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듯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이 서있다.
계단을 내려서
포장도로에 닿는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시설이다.
나무가 하늘을 가리지 않은 곳은
거의 다 공동묘지가 조성되어있다.
이름도 흔적도 시나브로 잊혀지겠지만
그 망각이 오래가길 바라는 욕심이 부질없다.
문득 얼마 전 본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죽은 자의 날이 되면
영혼의 세계도 커다란 동요가 일어난다.
산 자가 추모해야만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있고 영혼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영화 속 영혼은 모두
죽을 당시의 모습을 하고있다.
영혼이 영원할 수 있다면,
영화처럼 그런 공간이 있다면 젊고 싱싱한 모습일 때
죽고 싶은 욕심이 생길법도 하다.
기둥 두 개를 세워
와이어를 걸어 열쇠를 채워놓았다.
가족묘원으로 보인다.
근래 경험하지 못한
아주 길고 깊숙했던 여정을 마친다.
낳익은 풍경이 새로움은
방금 지나온 터널이 너무 깊었던 탓이리라.
밭담 뒤는 대부분 노지 감귤밭이다.
2차선 도로로 이어지던 길이
왼쪽으로 빠져
멀리 밭길로 돌아간다.
산담을 두른 묘지가
당신이 일구고 가꾼 밭에서 떳떳하다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던 모슬봉이
막상 그 속살을 헤짚고 나온 지금
다시 올려다 보니 경건해지는 기분이다.
제주만의 숨결이 느껴지는 길을
둘러 한참을 걷는다.
농부에게 버림받은 무우가
하얀 꽃을 만발해 의도치않은 전성기를 맞았다.
'천주교 모슬포 성당 교회묘지'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과
그 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굽어 살피고 있다.
밭길을 둘러
키 큰 종려나무가 도열한 곳이 이른다.
천주교 대정성지,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다.
다산 정약용의 조카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유교 사상과 위배된 천주교는
박멸의 대상으로 박해를 받는다.
일찌기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을 받아들인다.
16세 초시, 17세 복시에 장원급제한 남편 황사영 또한
중국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독실한 교인이다,
전교에 힘쓰던 황사영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제천 배론으로 피신한다.
박해의 실상을 기록한 책을
북경 교구로 발송하려다 발각돼 능지처참 당한다.
그의 어머니는 거제도, 처인 정 마리아는 제주도,
두 살 난 아들은 추자도 유배형에 처해진다.
아들과 생이별하고 제주목 관노로 배치된 정마리아는
이 곳에서도 주민을 교화한다.
1838년 병환으로 숨을 거두자
이웃들이 시신을 거두어 이 곳에 안장하였다.
제주선교 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묘역을 새로 단장, 성역화하였다.
올레가 다시 차도와 동행하다가
이내 밭과 마을길로 이어진다.
신평사거리를 건너간다.
그렇게 마을기를 지나
마침내 신평, 무릉 곶자왈로 들어선다.
곶자왈이 시작된다.
이 곳 신평, 무릉 곶자왈은
제주올레에 의해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 되었단다
제주 올레 노력덕분인지
'곶자왈'이라는 의미와는 달리 길이 편안하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진 곳'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수십킬로 날아온 화산 파편들이 굳어
이끼로 세월을 덮고 있다.
13킬로 미터를 통과 중 이다.
이 척박하고 험한 곳에 밭담이 있다.
그 옛날 누군가 개간하여
경계로 쌓았으리라, 짐작하며
그 가난과 고단함을 조금 이라도 헤아려본다,
화산 쇄석 송이가 바닥에 깔려있다.
이 또한 이 곳을 개간하던 이가
통행에 편리하도록 갈고 닦은 흔적이리라.
제법 넓은 개활지다.
'새왓'이라고 부른다.
'새'는 '띠'를 뜻하고 '왓'은 '밭'을 가르킨다.
즉 띠밭이다.
띠는 제주 전통 초가 지붕을 이는 재료다.
옛날에는 2년 마다 지붕을 이었으므로
천지에 풍부했던 띠를 이용해
하늘을 가리고 바람을 막았으리라.
옛날 정씨성을 가진 사람이
이 곳에 들어와 밭으로 개간하여 농사짓고 생활했다.
그래서 '정개밭'이라고 부른다.
정씨의 유언대로 이 곳에 묘를 썼다는데
곶자왈의 유일한 묘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탱자, 개복숭아, 벗나무 등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지만
묘를 찾을 수는 없었다.
후손은 타지에 나가있고
지금은 차씨가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세상은 바뀌어 띠는 잡풀이 되고
개간했던 땅은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장비라면
이 땅은 쉽고 편리하게 변모했을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법이 이 땅을 지켜내고 있다.
이 인근이 숯을 굽던 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성제 숯굿터'다.
마을이 형성될 무렵 형제가 들어와
숯을 굽기 시작했던데서 비롯되었다.
가마를 만들었던 넓은 돌은
마을 주민들이 구들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갔단다.
약 3킬로미터 내외 곶자왈,
개인적으로는 걷기 좋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함이
특히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다소 위험해 보인다.
거의 외길에 짧은 구간
올레 리본이 매달려 있어 길 잃은 염려는 거의 없어 보인다.
무릉구간 곶자왈은
사단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공모, 선정하는
2008년 제 9 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공존상을 수상하였다.
쉼터 정자가 보인다.
통신중계탑이 서있다.
곶자왈이 끝나가는 것 같다.
화산석 암반이 드러났다.
이 암반이 부스러져 토양이 되고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비와 해에 썩고 싹을 틔워
이 풍요로운 숲을 일궈 냈으리란 생각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왼쪽에 시멘트로 마감한 함이 보인다.
'쇠물통'이다.
곶자왈에 소를 방목하여 키우는데
비가 내려도 땅에 스며들어 물이 없어
이를 해결하고자 설치하였다.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 쇠물통 길이가 수 미터에 이른다.
주로 나무나 돌을 파서 만든다.
이 곳에 설치된 것은 벽돌을 쌓았다는데
시멘트로 외벽을 마감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숲길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반복되며
길게 이어진다.
3킬로미터 가량 지나 마을에 닿는다.
이곳 농가에도 노지 감귤나무에 달린
노오란 귤을 본다.
곶자왈 숲길을 벗어나 초입에
제법 큰 연못이 있다.
용천수 구남물이 넓은 연못을 이루었다.
오래 전 커다란 구나무(굴참나무)가 있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마을길을 지난다.
인향동사거리를 지나고
무릉오거리를 지난다
제주올레 12코스 시작점 표지석이 있는
무릉 외갓집이다.
제철 지역농산물을 꾸러미형태로 배송하는
회원제 농산물배송서비스를 주로 한다.
안에는 지역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이
판매및 홍보를 위해 전시되어 있으며
직접 맛볼 수있도록 카페로 운영중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 중 인 것 같다.
일행을 기다리는 정자 앞
도로 변 삼거리 바위에 '무릉동국민학교'표지가 있다.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도 자연스럽게 '초등학교'라고 할 만큼
'국민학교'라는 명칭 자체가 낳선 지금이다.
지금은 폐교되고 없어진 것 같다.
그 넒고 커다랗던 교정이 좁아보이던,
새삼 추억에 젖어본다.
몇 일 걷던 거리의 반 정도를 걸었다.
다소 편안함을 느낀다.
무리해서 걸었던 지난 여정,
새삼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동료와 만나 느긋하게 볼 일을 보고
당구 한게임 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인근 중화요리집에서 식사와 반주를 한다.
숙소로 돌아와 어묵탕을 끓이고
떡갈비, 동그랑땡을 전자렌지에 데워 한 잔 더 하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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