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마을 : 경북 경주시 교촌길 39-2 (교동 88-5)
054-760-7880
무료관람
다리건너 월정교공영주차장 당시 무료주차
치킨이 생각나겠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는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서 교촌마을이라고 한다.
경주 최부자댁으로 들어가 봅니다.
경주 최씨 최부자의 종가로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최부자의 집안은 ㅣ도덕적 의무와 관용을 몸소 실천해 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을 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다.
이 가옥은 조선 중기 무렵
최언경 대에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779년 경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전해지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곶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ㅁ'자 모양이고 대문채는 'ㅡ'자 모양이다.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배치하지 않고 서쪽에 배치한 점, 기둥을 낮게 만들어 집의 높이를 낮춘 점, 집터를 낮게 닦은 점 등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에 대한 배려로 최부자댁의 건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최부자댁에 내려오는 여섯가지 행동지침 육훈이 전해진다.
육훈(六訓) : 여섯가지 행동지침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세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마지막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경주 최부자댁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회 고위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사회에 대한 책임을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의 육훈에도 있듯이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했다.
이렇게 과객을 잘 대접하는 가풍이 있다 보니 많은 손님들이 경주 최부잣집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최부잣집 사랑채는 항상 손님들로 넘쳐나 과객들을 집근처 하인집에 머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최부잣집의 작은 쌀통에서 쌀을 한 줌 집어 들고 하인집으로 가면 하인들은 과객들에게 잠자리와 식사가 제공되었다.
이 쌀통은 가로 세로 석 자에 높이가 넉 자 정도 되는 나무로 만든 상자로
위쪽에 지름이 다섯 치 정도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손님들이 욕심을 부려 두 손을 넣어 쌀을 많이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아 적당량을 집을 수 밖에 없다.
쌀을 쥐어 빼내는 것은 한 번만 허용되었다.
넓게 보면 고여있는 물인 바닷물이 썩지않는 이유는... 사실 3%의 소금 때문이다.
그 3%의 소금이 바닷물이 썩지 않게 하는거다.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인 경주최씨고택과 더불어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인 최부자댁에서 내려오는 경주교동법주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예쁜 카페들도 많고 체험공간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경주최부자댁은 꼭 방문해서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