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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자 속의 배달역사
한국어 중에서 한자(漢字)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해당합니다. 그 나머지 30%중에서도 각종 외래어를 빼고 나면 순우리말로는 한국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한문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야 우리 민족은 보다 심도 깊은 사상이나 의사의 전달이 가능해진 것인가?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은 겨우 ‘자자, 먹자, 가자’와 같은 식의 단순한 감정이나 정서의 전달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기존에 있던 순우리말이 점차로 한자어에 밀려나면서 현재와 같은 언어 군(群)이 형성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서 보다 심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 간의 교류나 지배와 피지배 등과 같은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서 새로 유입(流入)된 단어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소리 값은 물론이고, 의미도 점차로 변하게 되어 원형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사용되어지기도 합니다. 비단 외래어뿐만 아니라, 본래 있던 고유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는 언어의 일반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만 년 이상 사용해 왔을 수도 있는 고유어가 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외래어에 의하여 완전히 잠식(蠶食)되는 경우라면 분명한 역사적 배경이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고대에 있었던 로마의 침략과 기독교를 통하여 유입된 라틴어의 영향, 게르만족의 이동에 따른 직접적인 접촉 등, 그에 맞는 언어의 변화는 물론이고 민족의 혈연 자체의 변화도 함께 추정(推定)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70%라는 엄청난 언어의 변화에 맞물리는 별다른 역사적 배경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을 고대 중국어인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을 우리 조상들이 차용(借用)해 왔다는 식으로 사고(思考)해 온 것이긴 하지만, 이 현상은 분명 언어학적으로는 미스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플라워(flower)'는 귀화(歸化)한 외국어 즉, 외래어(外來語)로 등재(登載)되어 있습니다. 플라워는 한국 단어입니다. 그와 아울러 수 만 년을 사용해 왔을 수도 있는 고유어(固有語)인 ‘꽃’도 나란히 등재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의미를 가진 두 단어 중 나중에 새로 유입된 ‘플라워’가 ‘꽃’을 밀어내 버리고 우리 민족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리게 할 가능성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강압적이거나 물리적인 어떤 조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불가능 합니다.
‘수단(手段), 수법(手法), 수완(手腕)’과 같은 단어들은 분명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단어입니다. 이 세 단어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手]와 ‘그럴 수 없다’에서의 [수], 마찬가지로 이치(理致), 이유(理由), 이론(理論)은 분명히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단어들입니다. 이 세 단어에 공통으로 있는 [理]와 ‘그럴 리 없다’에서의 [리]는 한자어(漢字語)를 받아들인 결과가 아닙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여기서 주장(主張)하고 싶은 것은 우리민족의 어떤 고대(古代)에 한자와 한문이 처음 유입되기 시작 했을 때, 기존에 있던 고유어와 소리 값은 물론이고, 어감(語感)마저도 동일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문이 한(漢)나라에 의하여 처음 우리나라로 전파가 되었다는 기본의 정의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莫[막], 或[혹], 各[각], 孰[숙]과 같은 한자의 고대 원음은 현재 우리나라의 한자음과 거의 동일하지만, 당시의 한족의 입말에서는 발음되기 어려운 종성(終聲) [ㄱ] 발음입니다. 즉, 한족들에게 이런 발음은 입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한자라는 문자언어를 읽을 때에만 존재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독법(讀法)은 원(元)나라 이후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중국어에서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는 단 한 번도 일치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먼 태고(太古)에 한자를 처음 발생시킨 민족은 한족과는 발음 체계 자체(自體)가 다른 민족이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미스터리는 가설(假說)을 세우고 그 가설을 논증해 가는 과정으로 풀리기도 합니다.
북방어(北方語) 가설.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의 정의.
고대(1만년~5천년 전)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 교착어(膠着語)를 구사하던 어떤 민족이 그들의 입말을 축약(縮約)하는 형태의 문자를 만들었다. 이 민족을 북방민족(北方民族)으로, 그들이 개발한 문자를 북방어(北方語)라고 가칭한다.
이 북방어는 한족(漢族)에게 전해졌으며, 수 천 년 이상을 한족은 이 원형(原形)의 북방어를 자신들의 언어 습관에 맞도록 개작(改作)하고 또 새로운 문자들을 개발하여, 대략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이르러서 새로운 형태의 문자 언어의 기초를 닦는데, 이것이 현재 한문(漢文)이라는 용어로 불리어지고 있는 변종북방어(變種北方語)이다.
춘추전국이라는 대 혼란기를 통일제국의 구축이라는 성공으로 마감한 결과 구심점(求心點) 있는 명령체계에서 오는 강력한 군사력, 혼란기를 통한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 더 없이 많은 인구 등으로 인하여 한족은 주변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그에 따라 이 변종북방어는 아시아 전체의 공통어로 자리 잡게 되고 문학과 사상과 같은 인간의 사고를 표현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급속히 발전한다.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 변종북방어의 기본체계는 한족의 언어사고와는 물론이고 발음체계와도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기에 ‘백화문(白話文) 운동’을 일으켜 그들 스스로 한문을 타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수 천 년 이상을 신봉해온 이 북방어의 지배력은 그들에게 막대한 것이어서 일본처럼 새로운 표음문자(表音文字)를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기존의 복합적이고 난해한 문법 구조를 그들의 언어 사고에 맞게 단순화 시키고, 복잡한 자형을 간략화 시킨 정도에 그치고 만다. 이것은 언어의 발전 혹은 진화라기보다는 더 많은 퇴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백화문의 작가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지하고 선양한다.
한족만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만리장성의 부자재가 민가(民家)의 가축우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방치하면서도 이민족의 고대 유적지에 관해서는 관련의 1급 국가 요원을 파견하여서 통제하고 그들의 역사에 맞도록 오/훼손한다. 이것은 원형북방어와도 관련이 있다. 이런 한족의 역사 왜곡은 2천년 이상 된 내력이기도 하다.
한족에 있어서 문자 언어는 그들의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수 천 년을 그들의 정신세계를 억압해온 것이기도 한 딜레마이다.
원형북방어가 한족에게 전해지는 과정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강압에 의한 지배가 아닌 추종에 의한 관계이며 그 기간은 장구(長久)한 세월이다. 단순한 지역적인 인접이나 교류에 의한 것이었다면, 실사(實詞)나 단어류(單語類)의 차용에 그쳐야하지만, 어형은 물론 문법구조상의 변화를 동반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가설은 앞으로의 연구 결과에 의하여 조금씩 수정하거나 변경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한문이라는 언어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시기로 구분을 하는데, ①전(前)고전(주나라와 그 이전), ②후(後)고전(춘추전국), ③고전(한나라 이후에서 백화문)의 세 시기로 구분을 하는데, 여러 방향에서 동일한 언어의 일반적인 변화라고 보기 어려운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문법의 변화가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기점은 한(漢)나라가 집권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한나라를 기점으로 한문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이 한나라 때부터 현재의 한족(漢族)이 중국대륙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점이며, 한문과 한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북방어를 도용(盜用)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 논증(論證)을 시작하겠습니다.
갑골문자(甲骨文字), 그 신화의 열쇠
- 정확한 갑골문자의 분석은 북방어가 발생한 지역과 민족의 범위를 축소시켜 줍니다. 갑골문 자형(字形)에 대한 분석(分析)은 발굴지역인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현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더 많은 자형들이 분명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석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한자뿐만 아니라 갑골문자까지 중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기록되었다는 관점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바꾼다면 이 4천년 전설(傳說)은 현실(現實)로 다가옵니다.
적지 않은 갑골문 자형이 한국어가 아니면 풀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너무나 오래된 문자들이라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신화로 보여 지지만, 순우리말에서 현실(現實)이 되는 자형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몇 글자들만 간추려 설명하겠습니다.
天 하늘 천
기존의 자형 풀이
1. 사람[大]의 머리 위에 一을 그어서 ‘하늘’을 나타냄.
2. 사람의 머리 부분을 크게 강조해 보여, ‘위, 꼭대기’의 뜻에서 ‘하늘’의 뜻을 나타냄.
갑골문 자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첫 번째 자형은 사람이 팔다리를 벌리고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형태인 大와 상부의 口[큰입 구]의 합자입니다. 이 사각형의 도형은 나중에 가로획으로 변하는데, 이는 한자 자형 변화의 일반적인 한 형태(形態)입니다. 즉, 단순화(單純化)의 한 형식입니다.
고대 은(殷)나라 사람들은 왜 하늘을 사람의 머리 위 공간으로 표현한 것인가?
문자언어의 가장 기본은 음성언어에 있습니다. 즉 음성언어의 소리 값을 나타내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기호(記號)가 문자언어로서 통용(通用)되기 위해서는 동일 언어권의 사람들에게 개연성(蓋然性)이 발생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기(上記)의 자형 분석 내용은 단순하게 글자 자체만을 가지고 한 분석입니다.
한국어에서의 ‘하늘’은 ‘한(크다)+울(울타리)’ 즉, ‘한울’의 변음입니다. 순우리말 음에서 ‘한’은 ‘크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대전(大田)=한밭)
大(한)+口(울, 울타리, 우리)=한울≒하늘
첫 번째 갑골문 자형은 한국어‘하늘’을 형상화(形象化) 한 것으로 보입니다. 大의 고대 원음(原音)은 [한/흔/큰/칸] 과 유사하였으며, 口[큰입 구]는 [에울 위]로도 훈독(訓讀)되는데, 여기서의 [위]음은 한국어 [우리(울타리)]의 ‘우+리’에서 ‘ㄹ'이 탈락한 포합음(抱合音)으로 보여 집니다. 이후의 자형은 자형이 단순화(기호화)되어 가는 형태들입니다. 자형의 단순화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土 흙토
기존의 자형분석
1. 토중(土中)에서 초목의 싹이 나는 곳. 따라서 ‘흙’의 뜻이 됨.
2. 토지의 신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기둥 꼴로 굳힌 흙의 모양을 본뜸.
3. 지면 위로 솟아난 흙덩이 모양.
상기의 자형 분석 중 1은 현재의 자형에 의한 것이며, 2의 경우에는 제단의 모양을 연상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부의 평평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야 그 위에 제물을 올려 놓고 제사를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단의 모양을 형상화한 示[보일 시]는 세로의 획 위에 가로의 한 획으로 평평한 부분을 나타냈으며, 다시 그 위에 한 획을 더 그어 제물을 올려놓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土의 자형이 흙으로 쌓아올린 제단의 형상이라고 할 때에는 그런 제단의 형태가 갑골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제단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갑골문 사람들이 흙으로 쌓아올린 제단을 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土의 자형은 제단과는 무관합니다.
土의 갑골문 자형 중 아래의 가로획은 ‘땅’의 뜻이며, 가운데의 배가 불룩한 마름모 형태의 도형은 ‘덩어리’의 뜻이며, 주변의 점들은 그 덩어리가 돌이나 나무처럼 딱딱하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바스러지거나 뭉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국어 표현의 ‘흙덩이’나 ‘땅덩이’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黃 누를 황
기존의 자형분석
1. (갑골문) ‘大+口’의 합으로, 口는 사람이 허리에 찬 옥으로 옥의 빛이 노란색에서 ‘노랗다’의 의미를 나타냄.
2.‘田[밭 전]+光[빛 광]’의 합으로, 田이 땅을 의미하고, 光이 그 색을 지시하여, ‘땅의 빛’에서 ‘노랗다’의 의미를 나타냄. 『설문(說文)』
3. 사람(관리나 무당 등)이 허리에 찬 둥근 노란색의 옥에서 ‘노랗다’의 의미를 나타냄.
4. 패옥(佩玉)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璜[패옥 황]의 본자(本字).
黃 자의 자원은 상기의 분석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알 수 없다’가 일반적인 견해(見解)입니다. 갑골문 시대에 왜 노란색 패옥을 찬 것인지? 사람이 허리에 찬 패옥을 가지고 ‘노란색’의 의미를 도출해 낸다면, 그러한 복식(服飾)이 아주 대중적(大衆的)이거나, 일반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갑골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런 복식 제도가 있었다는 근거(根據)는 없습니다.
설문(說文)에서의 자형 분석은 ‘노란색’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 黃자가 가지는 다른 의미들에는 전혀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黃이 가지는 현재의 의미는 ‘노란색’에 그치고 말지만, 한나라 이전에 나타나는 의미(意味)들로는 ‘노란색, 땅, 악취’ 등이 있습니다. 황려(黃廬[초막 려])는 ‘노란색의 초막’의 의미가 아니라, 직역하여‘땅 집’의 의미로, ‘지하세계’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며, 황구(黃口)는 ‘노란색의 부리’외에도 ‘악취 나는 입’의 뜻으로,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서로 전혀 무관한 의미를 동일한 형태의 문자로 표기한다는 것은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아니라 음을 따른 표음문자(表音文字)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순우리말에서 ‘누리’는 ‘세상’의 뜻입니다. 동사로서 ‘누리다’의 예에서처럼 ‘누리’는 어감상 천지자연(天地自然)이라는 객관적인 자연 현상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활의 터전으로서 살아가는 곳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누린내’의 경우에는 ‘악취’의 뜻입니다. 악취이긴 하지만 아주 고약하고 괴로운 냄새가 아니라 비린내 비슷한 비교적 약한 악취의 뜻이기도 합니다. ‘누런색’은 말 그대로 노란색의 뜻입니다. 이 서로 전혀 무관한 세 단어는 ‘누+ㄹ’의 동음(同音)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리, 누런색, 누린내’의 세 단어는 ‘누+ㄹ'이라는 동음을 가지고 있으며, 黃 자가 가지는 의미들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갑골문 자형은 터전을 의미하는 田[밭 전]이나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사각형 위에 그 보다 더 크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상형인 大를 그려 놓고 있습니다. ‘누리다, 누비다’라는 순우리말을 그대로 이미지화 한 자형인 것입니다.
어떤 언어이든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린내, 누리, 누리다’는 서로 다른 의미를 동일 혹은 유사한 음가(音價)에 의하여 하나의 문자〔黃〕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여기서는 군어(群語 ; 단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리 값이 유사, 동일한 단어들을 하나의 문자로 표기하는 방식)라고 임시(臨時)로 정의 내립니다. 갑골문자에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들을 이 동음이의어에 의하여 하나의 자형으로 표현한 군어의 개념으로 적용시킬 수 있냐 없냐는 갑골문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과 시발점을 찾아가는 핵심 열쇠입니다.
이 군어(群語)의 개념은 갑골문자를 연구해 나가는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
妻 아내 처
꿇어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를 위로 올려 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⑥은 오른손의 상형) 사람이 꿇어앉은 채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형태는 ‘여자’의 뜻으로 ‘女’자입니다.
이 글자는 예법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에서 결혼하다, 혹은 시집가다에 대한 관용(慣用) 표현으로 ‘머리를 올리다’라고 있습니다. 妻의 갑골문 자형으로, ‘아내, 시집보내다’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고대에 그런 예법을 가진 민족에 의해서 일 것입니다.우리나라 외에 한자 문화권의 어떤 나라에서 그러한 예법과 언어로서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더 조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象 코끼리 상
象 자는 코끼리와 모양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코끼리’와 ‘모양’이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미를 동일한 자형으로 표기한 이유는 처음 이 문자를 만든 사람들의 입말, 즉 소리 값을 따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象의 갑골문 자형은 듬직한 몸통에 긴 코를 가진 코끼리의 형상입니다. 순우리말의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에서처럼 ‘~아지’는 동물의 새끼를 뜻하는 접미사(接尾辭)입니다. 만약 우리 민족이 아주 먼 과거에 코끼리가 서식(棲息)하는 곳에서 살았고, 그 코끼리를 가축(家畜)으로 키우며, 건축이나 물건의 운반 등에 이용하였다면, 코끼리의 새끼에도 ‘~아지’를 붙여서 불렀을 것입니다. 개, 소, 말의 예에서처럼 코끼리의 새끼는 ‘꼬아지’정도로 불렀을 것입니다. 코끼리의 새끼를 뜻하는 ‘꼬아지’는 순우리말에서 모양이나 형상을 뜻하는 ‘꼬라지’와 음이 유사합니다. 꼬아지는 꼴아지(꼬라지)로 발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둘의 의미를 코끼리의 형상으로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시 군어(群語)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秋 가을 추
가을을 뜻하는 秋의 갑골문 자형은 ‘귀뚜라미’의 형상입니다. 말 그대로 ‘귀뚜라미 우니 가을이다’라는 메타포로서 가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러한 가을에 대한 은유는 한국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환경만 맞추어진다면, 인종과 어족(語族)을 초월한 표현 방식일 것입니다만 유독 한국어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을에 대한 메타포는 역시 ‘귀뚜라미 우니 가을이구나!’입니다.
亢 목/높을 항
亢자에 대한 기존의 자형 풀이는 경동맥(頸動脈)이나 결후(結喉-목젓)의 상형이라고 합니다. 亢자가 가지는 의미들로는 ‘극진하다, 높다, 거만하다, 저항하다’ 등이 있는데, 이 의미들을 기존의 자형 풀이로 유추(類推)해 내기는 곤란합니다.
亢의 갑골문 자형은 정면을 향하고 두 다리와 팔을 펼치고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인 大에서 한쪽 다리가 꺾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의태어(擬態語)를 나타낸 것입니다. <도1>과 같은 형태라면 ‘발로 차다, 걷다’ 등과 같은 의미가 도출(導出) 될 것이며, <도2>와 같은 형태는 ‘무릎을 꿇거나 뛰어 오르다’의 의미가 도출될 것입니다. 다리의 관절 부분이 꺾어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어 의태어에 대한 표음문자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 자형의 그림과 같은 순우리말에 해당(該當)되는 의태어로는 ‘까딱까딱’, ‘끄덕끄덕’ 등이 있습니다. 또한 나타내는 의미들과도 거의 흡사한 용례들이 있습니다.
극진하다 ; 아주 깍듯하게 대접한다.
거만하다 ; 네놈이 누구 앞이라고 까딱거리느냐?
저항하다 ; 우리가 한 번 꺾어보자.
亢자는 동일/유사 소리 값에 대한 군어(群語)로 사용된 글자입니다.
前後左右 전후좌우
左의 갑골문자 右의 갑골문자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의 기준은 사람의 몸이어야 합니다. 왼쪽과 오른쪽을 뜻하는 左와 右의 갑골문 자형은 각각 왼손과 오른손의 상형입니다. 하지만 前과 後는 현재의 자형 설명으로서는 어떤 개연성을 가지기엔 난해합니다.
기존의 자형 분석.
前 ; 1 칼로 베고 나아가다, 가지런히 자르다의 뜻으로 剪[자를 전]의 원자(原字).
2 수로를 배로 가는 모양에서 ‘나아가다, 앞’의 뜻을 나타냄.
3 배의 앞에 있는 발로 가장 먼저 상륙한다는 의미에서 ‘앞’의 뜻을 나타냄.
- 갑골문 자형에서 ① 부분은 行[다닐 행]자로 ‘가다’의 뜻이며, ② 부분은 발의 모양으로 止[그칠 지]이며, ③ 부분은 배의 형상으로 알려져 있는 舟[배 주]자입니다.
後 ; 1 길을 갈 때 실이 발에 어리어 걸음이 더뎌지는 것에서 ‘뒤’의 뜻을 나타냄.
2 어린 사람이 좀 떨어져서 걷는 것에서 ‘뒤’의 뜻을 나타냄.
- 갑골문 자형에서 ④ 부분은 行자의 우측 부분이 생략된 형태인 彳[조금걸을 척]자이며, ⑤ 부분은 실타래나 애벌레의 상형으로 알려져 있는 幺[작을 요]자이며, ⑥ 부분은 오른손의 상형인 又자입니다.
음성언어를 한글과 영어와 같은 소리 값의 기호 체계가 아닌 상형문자로 도안(圖案)을 하고 통용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있어야 합니다. 즉 개연성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前과 後에 대한 기존의 자형 분석은 이런 개연성과는 무관한 주관적이거나 작위적(作爲的)인 느낌마저도 듭니다.
전후좌우와 같은 개념들은 어족과 민족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또 그 개념의 중심은 사람의 몸에 있습니다. 좌와 우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이미 그 중심이 사람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데, 전과 후는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형(字形)들을 순우리말의 입장에서 전(前)과 후(後)를 설명하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개연성이 발생합니다. 우선 이 전과 후의 갑골문 자형이 이루는 요소는 모두 사람의 몸을 의미한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③과 ⑤ 부분입니다. 이 두 부분은 사람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몸 중에서 ‘배’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③은 일반적인 배의 형상이며, ⑤는 뒤돌아보기 위하여 뒤틀린 배의 의미입니다. 발의 형상으로 알려져 있는 ②(止)는 위치와 방향의 표기로 사용된 것으로 몸을 정상적으로 한 상태에서 발이 향하는 쪽의 뜻이며, ⑥ 역시 위치와 방향의 표기로 사용된 것으로 배를 뒤틀었을 때 손이 향하는 곳의 의미입니다. ①과 ④는 ‘길(行 )’의 뜻으로 ‘사람이 갈 때’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설명하여, 前자는 똑바로 선 몸(배)에서 발이 향하는 방향에서 ‘앞’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며, 後는 몸(배)을 뒤틀었을 때, 손이 향하는 곳에서 ‘뒤’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③ 부분은 실제로는 사람 몸의 배가 아닌, 옷감천의 ‘베’나 그 베를 감아두는 ‘베틀’의 상형입니다. ⑤ 부분은 띠처럼 긴 천[베]을 꼬아놓은 형태의 상형입니다.
갑골문자의 나라인 은(殷)나라 사람들의 입말에서 사람 몸의 ‘배’, 선박으로서의 ‘배’와 옷감을 만드는 천으로서의 ‘베’는 모두 한국어에서처럼 동일한 음으로 발음 되었습니다. 前의 ③부분과 後의 ⑤ 부분은 본래는 옷감으로서의 ‘베’의 뜻이지만, 표음문자로 사용되어 사람 몸의 ‘배’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들에 대한 논증은 다음의 글자들에서 이어집니다.
受 주고받을 수
受의 갑골문 자형은 ‘爪[손톱 조]⑩+舟[배 주]+又[또 우]’로 일반적으로 분석합니다. 舟는 前의 ③ 부분과 같은 형태입니다. 이 분석에 의한다면, ‘손으로 선박을 주고받다’는 뜻에서 ‘주고받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고받다’는 개념을 문자로 표기한다면, 당시의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주고받는 대상(對象)을 나타냈을 것입니다. 갑골문의 사람인 은나라는 해상민족이 아닙니다. 설사 해상민족이었다 하더라도 배[선박]를 일상적으로 주고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의 의하면 은나라 사람들은 농사를 체계적으로 지었으며, 직물(織物)의 제조가 주력(主力) 산업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직물은 비단을 말합니다. 직물의 경우에는 고급기술을 습득하여야만 가능하며, 또 노동력이 집약(集約)되기 때문에 상당한 고가의 제품이며, 따라서 물건을 주고받을 때 가치척도의 표준, 즉 화폐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비단 은나라에서만의 일이 아니며, 고대에서 근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각종 세금이나 개인 간의 거래에서 현대의 화폐 대용으로서 직물을 사용해 왔습니다.
受에 보이는 舟 자형은 선박으로서의 [배]가 아닌, 직물로서의 [베]나 베를 감아놓은 [베틀]의 형상입니다.
倉 곳집 창
倉의 갑골문자
倉의 갑골문 자형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의 형상입니다. 세 가지 자형에서 공히 위부분과 아래 부분을 띄워놓고 있는데, 이것은 벽면구조가 아닌 원두막과 같이 벽이 없이 기둥만 세워져 있거나 아니면 원활한 통풍을 위한 구조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⑦ 부분은 片[조각 편]자로 목재를 의미하며, ⑧ 부분은 탈곡된 곡식을 의미합니다. ③은 역시 舟자로 알려진 것으로 선박으로서의 [배]가 아닌 직물로서의 [베]입니다. 선박을 저런 식으로 보관하지는 않습니다.
般 옮길/즐거워할 반
般의 갑골문자
갑골문 자형은 ‘舟+殳[몽둥이 수]’입니다. 殳는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형상으로 ‘치다, 때리다, 부수다’등의 의미를 함의하는 글자에 사용됩니다. 기존의 자형 분석은 ‘배를 움직이게 하다’에서 ‘돌다, 옮기다, 나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은나라 때에 황하 강을 중심으로 물물교환이나 무역교류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활발하였다면, 이런 개념이 성립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물건을 운반(運般)한다’는 개념이 바로 배가 연상될 만큼 일상이 황하 강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야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런 역사적인 소명 자료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 般에는 ‘반락(般樂)’, 즉 ‘즐거워하다’의 의미도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엔 기존의 풀이로는 불가능합니다.
즐겁다는 의미로서의 般은 아주 유쾌하다든지 통쾌함의 의미가 아니라, 일상에서 오는 ‘편안한 즐거움’정도의 어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표현 중에 이와 흡사한 어감으로 사용되는 것으로,‘배를 두들기며 즐거워하다’라는 관용구(慣用句)가 있습니다.
般의 갑골문 자형의 ③ 부분을 선박의 [배]가 아니라, 사람 몸의 [배]로 본다면, 이 자형은 순우리말 표현인 ‘배를 두들기다’를 형상화 한 것이 됩니다. 또, ③ 부분을 직물의 [베]로 보고, 이 직물 혹은 풀 등으로 짠 가마니 등으로 본다면, 물건을 옮기기 위하여 꾸려놓은 베보따리일 것입니다. 이 베보따리를 몽둥이에 걸고 옮기는 것에서, ‘운반’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방식의 ‘운반’은 사용되고 있습니다. 좁고 긴 천류의 양쪽 끝에 장대를 끼워 앞뒤로 두 사람이 서서 들어 올려서 옮기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 한국어에서, 배[ship], 베[cloth], 배[belly]는 거의 유사한 음으로 발화됩니다. 갑골문의 나라인 은나라의 사람들도 ship, cloth, belly는 동일한 음이거나 거의 유사한 음으로 발화되었다는 것이며, 본래는 각각 형태가 다른 상형문자로 표기되다가 일종의 사회적 약속에 의하여, ③의 형태로 통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형문자가 대표적 상형성의 표음문자로 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갑골문 이전의 문자가 존재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문자와 언어가 여기서 말하는 ‘북방어(北方語)’인 것입니다.
기존의 역사적 사료(史料)에 의하면 은제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각기 다른 민족들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이루어진 거대(巨大) 국가였습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언어가 달랐습니다. 또한 은제국은 제후국의 왕위나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는 최상위층의 계층, 즉 로열패밀리가 존재 했습니다. 이 최상위 지배층과 배달민족(倍達民族)과는 분명히 언어적인 일치(一致)가 있습니다.
服 옷 복
服의 갑골문자
갑골문 자형에서 舟가 ‘선박’의 의미가 아니라 옷감으로서의 ‘베’의 뜻이라는 것은 이 服자에서 더욱 분명해 집니다. 服의 갑골문 자형에 보이는 좌측 부분은 舟이며, 가운데는 사람이 무릎을 꿇어앉아 있는 형상(⑨㔾)이며, 우측 부분은 손의 상형으로 알려져 있는 右 자입니다.
좌측 부분을 기존의 정의대로 ‘선박’으로 본다면, 이 글자가 나타내는 가장 기본 뜻인 ‘옷’의 의미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주장처럼, 옷감의 ‘베’로 본다면, ‘옷감(舟-베)을 사람의 몸(㔾-꿇어앉은 사람)에 맞도록 마름(右)하다’로 ‘옷’의 의미가 나타납니다. 이 服의 자형과 그 나타내는 의미를 이민족인 한족이 표음문자가 아닌 표의문자로 잘못 차용하면서 그 의미를 이해 할 수 없게 되자, ‘옷’의 의미로는 갑골문 자형에 없는 複 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며, 복종하다는 의미로는 服을 사용하여 의미를 분화하게 됩니다.
舟 배 주
舟의 갑골문자
舟는 명사로서 ‘선박’의 의미 외에 형용사로서, ‘띠다’, 즉 ‘어떤 현상이나 징후가 나타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띠다’의 어감은 한국어에서 ‘몸에 밴 습관’, ‘땀에 밴 옷’에서의 형용사 ‘배이다’와 완전히 일치하는 용법입니다. 갑골문 사람들의 입말에서 ‘사람 몸의 복부’, ‘선박’, ‘옷감’과 ‘징후가 나타나다’는 네 가지 의미는 하나의 음가로 구현되고 있었습니다.
舟 자의 본 발음은 [배/베]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舟 자에 대한 자원 풀이는 한국어로만 완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문법구조
한문은 고립어(孤立語)이며 한국어는 첨가어(添加語)입니다. 첨가어는 조사나 접사가 덧붙여져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를 말하며 교착어(膠着語)라고도 합니다. 고립어는 각 낱말 형태가 일반적으로 하나의 형태소[morpheme]로 이루어진 언어로 단어는 실질적 의미를 나타낼 뿐 어미변화(語尾變化)나 접사(接辭)가 없고, 문법적 기능은 주로 어순(語順)에 따라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한국어는 문자언어와 음성언어가 거의 일치합니다. 즉 한글은 각각의 낱소리를 세세(細細)하게 따르는 소리 값의 기호체계입니다. 하지만 한문의 경우에는 낱낱의 소리 값을 따른 것이 아니라, 앞의 갑골문 자형 풀이에서 잠시 나왔지만, 군어(群語)입니다. 문자 언어로서 한문은 분명 고립어 체계이지만, 한자를 처음 만든 어떤 민족의 음성언어가 고립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군어의 개념으로 문자를 만든다면 세상 모든 언어가 다 고립어 체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莫大 클 수가 없다
‘莫+형용사’ 구문(句文)은 한(漢)나라를 기준으로 큰 변화가 발생하는데, 한 나라 이전의 莫은 한국어로 ‘~ㄹ 수 없다’와 꼭 맞아집니다. 한나라 이후로 들어서면서 莫은 부정사의 강조형으로, ‘결코’의 어기를 함의합니다.
한나라 이전의 ‘莫+형용사’에서 莫이 부정하는 것은 다음에 오는 형용사가 아닙니다. ‘莫大’에서 莫은 大의 부정이 아니며(不大는 ‘크지 않다’로 不이 大를 부정하는 구조입니다), 大는 莫의 대비적 기준으로 다음에 오는 상황에 대한 가정적인 불가함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莫大한 피해가 발생했다’에서 ‘大’는 ‘피해’의 기준이 됩니다. ‘클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의 뜻입니다. ‘最大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객관적인 상황의 기술로 ‘전자에 비교해서’라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만, ‘莫’은 가정과 미완의 상을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어에서의 ‘ㄹ+의존명사’는 미완시제로 사용되지만, 가정의 경우에 사용될 경우에는 강조의 상을 가지게 됩니다. ‘莫’이 이와 똑 같은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漢)나라 이후로 들어서면서 이 ‘莫’은 ‘부정사의 강조형’으로, ‘결코, 절대’의 어기를 가지는 형태로 다음에 오는 형용사를 부정하는 의미로 문법이 달라집니다.
이는 ‘無(/毋)+之’의 개념입니다. 여기서의 之는 의존명사로서 다음에 오는 형용사나 동사 성분을 명사형으로 전성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어에서 ‘없다’라는 술어는 형용사를 보어나 목적어로 취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없다(×)’, 보어나 목적어는 항상 명사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울 수 없다(○)’에서처럼 의존명사 ‘수’가 덧붙여져야 합니다.
한(漢)나라 이전의 문장에서 나타나는莫은 부정사에 조사가 덧붙여진 형태입니다. 고립어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문법구조이며 표기할 수 없는 방식의 문자입니다.
‘莫+형용사’의 한나라 이전의 문법구조는 한국어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구현되고 한국 사람이라면 아주 간편하게 조어(造語)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설명하였듯이 한국어의 ‘~ㄹ 수 없다’에 그대로 적용시켜서 어순만 바꾸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으로 ‘莫美’라고 한다면, ‘(더) 아름다울 수 없다’로 ‘앞으로 비견 가능한 그 어떤 것도 이것 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의 의미가 됩니다. 즉,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가정적인 상황에 대한 미완으로 강조의 표현을 나타냅니다. 이는 한국어의 표현과 완전히 일치하는 구조입니다. 이 ‘莫+형용사’ 결구는 분명 고대 중국 땅에서 한국 땅으로 전해진 조어이긴 하지만, 중국어에서 한국어로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어순(語順)입니다. 이 어순은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작의 양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한문학계의 최고 권위자의 한 사람인 「왕력(王力)」의 표현을 빌자면, ‘원시한문은 현재의 술어-목적어 구조가 아닌 목적어-술어 구조였다『중국어 어법 발전사』’고 합니다. 이 ‘莫+형용사’는 형용사를 보어로 취하여 위하여 술어 성분이 의존명사를 포합한 형태이며, 원시적인 형태는 ‘형용사+莫’으로 한국어와 어순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天地玄黃.하늘땅은 까마득한 누리다.
천자문의 첫 구문입니다.
천자문은 한문 문화권의 모든 국가는 물론이고, 서구에도 출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玄黃’은 하나의 관용구로서 ‘하늘과 땅의 색’이라고 자전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만, 왜 하필이면 ‘검고 누르다’고 하는지는 상당한 난제(難題)가 있는 형용(形容)입니다. 땅의 색을 노란색으로 한 것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정서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하늘의 색은 그에 대응하여 靑[푸를 청]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늘을 대우주(大宇宙)로 파악하여 그 끝없어 빛이 닿을 수 없는 공간으로서의 ‘검은색’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현대물리학에 의한 그런 관념이 거의 3천 년에 가까운 주역의 저술 시기(이 문장은 주역에도 나옵니다. 天玄而地黃. 『周易·坤卦』)에까지 있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 검다가 왜 하늘의 색에 대한 형용인가에 대한 설명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에서는 ‘검다’라는 색을 나타내는 형용사의 파생의미로서 독특한 용도가 있는데, 그것은 아득히 멀거나 도무지 닿을 수 없음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까마득함’입니다.
또 黃에는 색명으로서 yellow 외에 ‘땅’의 의미와 ‘악취’의 의미도 있습니다. 황려(黃廬[초막 려])는 땅 밑이나 지하세계를 의미하며, 인신되어 구천(九天)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黃은 ‘땅’의 의미입니다. 노란색을 의미한다면, 황려(黃廬)는 ‘노란초막’으로 갈대나 풀로 만든 초가집이나 흙담집을 의미해야 하지만, 황려(黃廬)의 본래 의미는 ‘땅 집(동굴 집)’입니다. 황구(黃口)라고 하면 ‘노란 입’으로 새의 부리, 그 중에서도 새끼 새의 부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악취 나는 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악취는 아주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비린내 비슷한 냄새로 주로 젖비린내를 말합니다. 그래서 황구(黃口)는 아직 어리거나 하는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비유어로 사용됩니다.
한국어에서, ‘누르다(yellow)', '누리(world)', '누린내(bad smell)'는 서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지만, ‘누ㄹ-’로 발음상의 동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黃의 인신(引伸)된 의미와 완전 일치하는 경우입니다(현대 중국어에서 黃은 색명의 의미만 남아 있지, 땅과 악취의 의미는 없습니다).
玄黃을 ‘검고 누르다’라고 한다면, 이 천자문 첫 문장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관용구로 외워야 하겠지만, ‘까마득한 누리(땅/세상)’라고 한다면 한국 사람에게는 직설적인 입말 그대로의 표현일 것입니다.
현조(玄祖)는 한문 사전 상으로는 조상(祖上)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현대 중국인에게는 일종의 강식(强式)으로 그냥 외워야 하는 관용구일 뿐입니다. 즉 왜 ‘검은 할아버지’가 조상의 의미인지는 구어(口語)로 활용하는 형태가 아닙니다. 영어로 ‘black grandfather’, 혹은 ‘black father’라고 한다면 이 역시 조상에 대한 메타포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까마득한 할아버지’로 글자 그대로의 직역이 가능합니다.
문자나 단어가 기본 의미에서 확장된 메타포가 입말에서 사용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어떤 고대 언어의 기원을 밝혀내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천자문의天地玄黃과 주역의 天玄而地黃은 한국 사람만이 직독(直讀) 직해(直解) 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明心寶鑑』
선을 행하는 것에 하늘이 복으로써 보답할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에 하늘이 재앙으로써 보답할 것이다.
명심보감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者’의 용법입니다. 이 者의 일반적인 분석은 명사접미사로서 ‘사람’을 뜻한다고 해 왔습니다. 확인해 본 바로는 한국어판의 모든 서적들에서 현대 중국어판 및 영어판, 일본어판까지 모두 ‘사람’으로 분석을 하여. 전체 문장의 풀이를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보답한다’입니다. 이 풀이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한문 문법에서 주어 다음에 보어가 나타날 수 있는가입니다. 爲善者가 명사구로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한다면 풀이 상 다음에 오는 天은 보어가 됩니다. 이 보어가 다시 목적어 ‘以福’를 취하고 동사 ‘報’의 행위의 주체가 됩니다. 하지만 한문에서 이런 문법구조는 발생하지 못합니다.
이 문장은 공자(孔子)가 한 말로 전해지고 있는데, 왜 공자는 이렇게까지 무미건조한 말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교화하려고 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의 사람인 공자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말만으로도 충분히 훈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순 없습니다. 이 하늘에 대한 개념은 인류의 문명과 거의 함께 해 온 모든 정의의 귀결점으로 작용해 오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사람이나 공자 시대의 사람이나 이런 유의 말을 어떤 교육적인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공자가 활약했던 춘추시대는 주나라 말기 하늘의 아들로 여겨져 오던 천자(天子)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절대 귀결점이던 하늘의 의미는 상당히 퇴조를 한 상태로 여기저기서 반란(反亂) 혹은 혁명의 형태로 일련의 집단들이 이 ‘하늘’의 개념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하고 나왔는데, 그것이 도(道)이며, 그러한 집단들 중 대표적인 것이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가 이런 말을 하고, 이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기록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문장이 가정적 상황에 견주어서 계고(戒告)하는 형식이라면 공자는 물론이고 현대인까지도 얼마든지 발화(發話)할 수 있을 것입니다.
者와 之의 문법적 개념을 기존과는 달리해서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者는 ‘之+也’의 포합음(抱合音)이며, ‘之’는 한국어의 의존명사 ‘것’에 해당하며, ‘也’는 한국어의 조사 ‘~에’에 해당합니다. ‘爲善者’는 ‘선을 행하는 것에’가 되어, ‘爲善’이라는 하나의 문장(절)을 의존명사와 조사의 결합체인 ‘者’가 다음에 오는 독립된 문장 ‘天報福’에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단문과 단문을 연결해서 복합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접속사적인 문법구조의 의존명사 ‘者’가 앞 문장을 다음 문장의 한 성분화(주어) 시켜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존명사에 의한 절 결합 방식은 어떤 한국어 학자는 오로지 한국어만의 한 특수성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어의 절 결합 방식에서 앞 문장을 의존명사로 명사화 시켰을 때, 자연스럽게 뒤 문장도 그에 맞추어 명사화 시켜줍니다.
1.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보답한다.
2. 선을 행하는 것이라면, 하늘이 복을 보답할 것이다.
‘天報之以福’에서 ‘之’는 앞 문장이 者(之+也)에 의해서 성분화(成分化) 됨으로써 다음 문장도 역시 하나의 문장 성분화 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以福은 직역하여, ‘복을 사용하다’입니다. ‘하늘이 복을 보답한다’라는 한국어 문장을 한문으로 표현한다면, ‘天報福’ 이 세 글자이면 충분합니다.이 구문이 단순서술문으로 사용되었다면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앞 문장에 받아 뒤 문장에 나타난 상조사 ‘之’의 출현으로 명사간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용도이며, 다른 의미로의 풀이(天報之福 ; 천보의 복, 혹은 동사 報가 이중 목적어를 취한 형태)가 되는 중의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생략해 버릴 수도 있고 드러내어서 별도의 어기를 조성해 나가는 유동성(流動性)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국어의 활용의 방식과 거의 유사한 발화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한문은 고립어라는 일반적인 정의에 대치되는 형식입니다.
이 문장의 화제(話題) ‘爲善’은 분명한 참고 사항이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가정적 상황으로서 발화한 내용입니다. ‘爲善’은 분명 가정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관념상 진실, 즉 심정적인 진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가정조사를 사용하는 방식인 완곡법에 의하여 문장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는 한국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만약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보답한다’는 문장은 한국어의 문법상 오류는 없지만, 관념상 사용하지 않는 문장입니다. ‘若爲善 則天報福’과 같은 한문 문장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만약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보답한다’와 같은 문장은 한국어로 ‘선을 행하는 것(경우)에 하늘이 복으로써 보답할 것이다’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ㄹ 것이다’는 미래에 대한 가정적인 상황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報之’에서 ‘之’가 의존명사로서 한국어의 ‘~ㄹ 것이다’와 꼭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지시성의 의존명사로서 가정적인 상황을 이끌어 오는 문법 구조는 한국어만의 특수성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한문에서도 한국어의 특수성이 그대로 적용시킬 수가 있습니다.
한국어 ; 선을 행하다 + 하늘이 복을 보답한다=선을 행하는 것에 하늘이 복을 보답하는 것이다
한문 ; 爲善 + 天報福 = 爲善者 天報之以福.
‘동목구+者’에서 者는 명사접미사로 본다면 어족(語族)을 초월한 단순 서술문에 지나지 않지만, ‘의존명사+조사’의 형태인 ‘之也’의 합이라는 것은 한자와 한문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한국어와 같은 첨가어를 구사하였던 민족이 됩니다. 다른 모든 ‘동목구+者’에서도 ‘者’를 이와 같은 문법 개념으로 풀이를 하면, 한국어상의 특수성으로 존재하는 ‘의존명사+조사’에 의하여 발생하는 상과 시제에 그대로 적응되는 의미들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爲善者 天報之以福’라는 한문 문장은 한문이 중국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증거자료이기도 하며 첨가어적인 사고, 그 중에서도 한국어가 아니면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기도 합니다.
결론
상기의갑골문 자형 풀이에서 논증이 되었듯이, 은 제국 당시 사람들의 입말에서, 舟[배 주]로 지칭되는 단어의 소리 값은 (1)선박, (2)옷감, (3)사람 몸의 복부, (4)현상이나 증후가 나타나다는 의미의 형용사와의 소리 값과 일치했습니다.
한국어에서 상기의 네 가지 의미는 [배/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한국어 외에도 이와 동일한 소리 값과 의미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어가 또 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형북방어는 고대 배달어입니다. 북방어와 갑골문자와의 관계는 계승, 혹은 분파, 아니면 문명(文明)의 차용일 수 있습니다.
※ 華夏蠻貊 罔不率俾.
화하와 만맥이 모두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위의 문장은 『서경(書經)』의 「무성(武成)」편에 나오는 글귀로 주나라가 폭군인 은나라 주임금을 물리치고, 천자의 나라로 성립되고 난 다음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의 華夏는 현대 중국인의 선조로 알려져 있는 ‘한족’을 스스로가 높이어 부르는 용어입니다. 직역하여, ‘빛나고 크다’. 華夏를 이 정의에 따라 이 문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천자국(天子國) 은나라의 폭압에 맞서 주나라를 당시의 제후국이었던 다른 많은 한족은 물론이고 변방의 오랑캐들마저도 주나라를 따르고 섬겼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라에서 은나라, 다시 주나라로 이어지는 대제국의 흥망성쇠가 모두 한족에 의한 것이었다는 일종의 선입견에 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의 사람이 3천 년 전의 일을 기록하였다면, 그 기록의 진실과 왜곡 범위를 알아내기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어떤 사실을 투영하고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오직 언어학적인 견해로 이 문장을 접하고 분석을 한다면, 이 문장에는 분명 3가지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나라와 華夏와 蠻貊의 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華夏와 蠻貊이 모두 섬겼던 주나라는 과연 누구인가? 한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이 문장 속에는 주나라 창건 전에 이미 중국 대륙은 다수의 민족들이 공통체를 이루고 있었음도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주나라 말기에 발생한 춘추전국의 여러 영웅들과 제가백가들은 모두 누구인가? 그들 모두가 한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중국은 고대 중국 땅에 있었던 일련의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하여 동북공정이란 전혀 새로운 역사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기저가 되는 것으로 갈석산의 위치입니다. 한사군이 현재의 평양에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며, 그곳에 갈석산이 있다는 주장에서부터입니다.
※ 樂浪郡 遂城縣 有碣石山 長城所起.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기점이 된 곳이다.
『사기(史記)』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편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이 문장에 의해서라면 갈석산은 평양의 대동강 유역이 아닌 대륙 동북의 난하 유역에 있는 것입니다. 낙랑군의 위치도 난하 유역이 됩니다.
※ 夾右碣山入于河.
갈산을 우측에 끼고서 황하로 들어온다.
『서경(書經)』의 「우공(禹貢)」편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문장 상으로 갈석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겠지만, 평양과는 전혀 무관한 곳임은 분명합니다.
분명한 역사 사료이긴 하지만, 풀이하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괴변을 발생시켜 새로운 억지 주장을 펼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 천 년 쌓이고 싸인 거서들 더미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문장은 또 얼마든지 있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장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 혹은 날조가 가능하지만, 행간과 자간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언어인류학에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하은주에서 진시황까지는 언어학적으로 한족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새로 나라를 창업(創業)하고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단군조선 배달민족의 후예임을 드세운 것입니다. 이 조선이라는 국호에서 朝[아침 조]자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의 모든 나라에서 최고통치기관의 대명사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朝의 우측 부분 月[달 월]자는 이전의 자형에서는 舟[배 주]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의 갑골문 자형 분석에서 충분히 논증 되었듯이 ‘배/베’라는 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음자(表音字)로 사용된 것이며, 또 肉[고기 육]자가 글자의 변[邊, 좌측 세로 부분]에 사용될 경우는 月자로 쓰이고, ‘육달월 변’이라고 지칭합니다.(ex. 腸[창자 장]에서 月은 肉의 변형입니다) 이 月과 肉은 갑골문에서도 이미 혼용되고 있는데, 이 혼용의 조건은 소릿값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에서 ‘달’은 밤하늘에 빛나는 달 외에도 ‘껍질이 살갗에서 벗겨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肉은 일반적으로 ‘저민/썬 고기’의 상형이라고 합니다. 朝의 우측 부분인 月이 ‘배’와 ‘달’이라는 음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것이며, 좌측 부분은 早[이를 조], 旦[아침 단]의 상부에 十자 모양을 덧붙인 것으로, 이는 ‘(아침 해가 벌겋게) 달아오르다’라는 한국어의 관용 표현에서 ‘달’이란 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음자(表音字)로 사용된 것입니다.
고조선(古朝鮮)을 뜻하는 고유명사(固有名詞)로 시작되어, 최고통치기관의 대명사(代名詞)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이 朝 자(字)는 다름이 아니라 [배달]이라는 소릿값을 나타내기 위한 상형성(象形性)의 표음문자(表音文字)인 것입니다.
이 북방어(北方語) 가설(假說)은 앞으로 또 추가 논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