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고 보물 같은 우리 동네! 임곡동 ∼
내가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영원한 고향 임곡. 호남의 대동맥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이 흐르고,임곡의 명산 용진산, 백우산 등 천혜의 아름다운 생태자연환경이 어울러진 곳. 고봉 기대승 선생과 윤상원 열사를 배출한 인재의 고장.월봉서원, 신용동 오층석탑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고 보물 같은 임곡 !
<진정한 토론과 교류, 조선 최고의 사상 로멘스! 임곡동 광곡마을 월봉서원>
백우산의 넓은 산골이 있다하여 옛이름을 「너부실」이라 하였고,그후 漢字名인 광곡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올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고, 오늘날 진정한 토론과 교류에 관한 귀감이 되고 있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나눈, 조선 최고의 사상 로멘스가 있었던, 월봉서원(빙월당)이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임곡역 등 임곡시가지에 있는 임곡동 행정복지센터 등>
원래의 임곡이라 하여 붙여진 원임곡마을에서 급격한 인구의 팽창으로 1914년 신임곡마을을 분리하였다가, 임곡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1976년경 신임곡마을에서 구신임곡마을이 다시 분리되었다고 한다. 임곡시가지에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임곡역을 비롯하여 유일한 의료기관인 연세의원과 종로당약국, 농자재판매소, 임곡복지문화관 그리고 임곡동 행정복지센터 등이 있다.
<물놀이와 녹음이 아름다운 산책길! 임곡동 복영마을 임곡교 아래 황룡강 생태하천>
황룡강과 용진산 사이에 있어 피서하기 호적한 곳이라 하여 피서동이라 불리웠으나 그뒤 마을운세가 장구(長久)할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복영마을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복영길과 용진로가 만나는 임곡교 아래 호남의 대동맥이자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아껴둔 보물 같은 생태하천으로, 무더운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한 아이들의 물놀이와, 숲의 녹음 그늘이 있는 산책로가 있어서 여름피서지로 떠오르는 임곡의 명소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민주의 꽃! 임곡동 천동마을 윤상원 열사 생가>
원래 마을 이름은 우물이 있는 마을이란 뜻의 「샘골」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고쳐 천동(泉洞)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도청에 남아 계엄군과 싸우다 장열하게 산화한 시대의 들불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민주의 꽃! 윤상원 열사 생가가 5·18민주화운동 주요현장의 5·18사적지로 추가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려본다.
<전형적인 신라 탑의 형식으로 사리를 보관하는사리장치 발견!
임곡동 신촌마을 신용동 오층석탑>
원래는 소고룡(召古龍)이라 하였으나 조선조초기 1520년경 행주기씨 덕성군 기진공이 들어오면서부터 신촌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용동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원래의 기단부가 파괴되어 1981년 옛 모습으로 다시 만들 때에 1층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으며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는 금동사리병, 연꽃모양 판, 나무로 깍은 작은 탑, 대나무 조각 등이 나왔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삼공과 바꿀 수 없다는 임곡동 내등마을 불환정,
삼공은 옛 동양에서 최고위 3개직을 말함>
어등산 밑에 위치한 마을로 어등산수가 마을에 임한다하여 등림이라 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임자(臨字)를 임자(任字)로 고쳐 부르고 그 위치가 등임사의 제일 안쪽에 있다하여 내등마을이라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불환정은 어등산 북쪽 기슭에 조선중기의 유명한 처사로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로지 학문연구와 자연감상에 몰두하여 아름다운 이 강산을 삼공과 바꿀 수 없다는 삼공불환차강산의 고시를 인용하여 붙여진 정자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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