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처럼 / 최미숙
2023년 9월 29일 추석날 손자가 태어났다. 아들 내외는 처음 며칠, 태명인 ‘당당이’라고 부르더니 우리더러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다. 그게 어디 쉬운가. 평생 갈 것인데 허투루 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부탁하니 부부가 알아서 하란다. 아들이 작명소를 찾아갔는지 다음 날 가족 카톡에 도윤, 도율, 대윤, 리율. 리욱이라는 이름 다섯 개가 올라온다. 어떤 게 좋은지 의견을 물었다. 발음하기 쉬운 도윤으로 하자는 쪽이 많았다. 그렇게 손자는 길 도(道), 빛날 윤(昀), 강도윤(姜道昀)으로 불리게 됐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이제는 착 달라붙어 자연스럽게 나온다.
우리 아이들 이름은 시아버지가 순천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사주 집에서 지었다고 들었다. 우리뿐 아니라 형님네 아이 모두 아버님이 알아서 했다. 아들은 주(周)자 돌림이고, 딸들은 제각각이다. 흔하고 놀림 받을 만큼은 아니어서 고맙게 받아들였다. 큰딸 이름은 강여경(姜余炅)으로 촌스럽지 않고 부드러워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이름이 상자다. 반 친구들은 그냥 박스(box)라고 불렀다. 학기 초 자기 소개할 때 친구들은 이름이 그게 뭐냐며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그래도 화를 내거나 삐진 적도 없었고, 그냥 웃어넘겼다. 나중에 대학생이 돼 그때 일을 물으니 초등학교 때부터 놀림을 받아서 그러려니 했단다. 그래도 흔하디흔해 누가 누군지 구분도 못하는 내 이름보다는 훨씬 나았다.
처음으로 고백하지만 나는 마흔이 넘도록, 오랫동안 이름(최미숙)에 열등감을 지닌 채 생활했다. 너무 흔해 싫었다. 학교 다닐 적 우리 반에는 같은 이름이 몇 명씩은 꼭 있었다. 심지어는 큰 미숙이 작은 미숙이로 불리 운 적도 있다. ‘일상의 글쓰기’ 반에도 셋이나 된다. 이러니 좋아했겠는가. 새 학기가 되거나 학교를 옮겨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칠판에 적고는 얼른 지워버린다. 또 하필 엄마 아버지 둘 다 성이 최 씨다. 사춘기 때는 그것도 창피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엄마 성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같은 성씨라고 하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꼭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찝찝했다. 그래서 본은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금이야 동성이 부부가 되는 일이 흔하디흔하지만 70년대 후반만 해도 드물었다.
사춘기 적에는 희귀하고 여리여리한 이름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엄마에게 곱고 귀한 이름도 많은데 흔해 빠진 ‘미숙’이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부르기도 쉽고 얼마나 예쁘냐는 것이다. 어이없어 웃고 말았지만, 열등감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가끔은 최씨 성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더 멋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성 뒤에 이것저것 조합해 불러 보고는 멋쩍어 피식 웃고 말았다. 남 앞에서는 안 그런 척하면서 나이들어서까지 이름으로 예민하게 구는 내가 싫었다. 이름을 바꿀 용기가 없으면 무언가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름과 성이 같은 사람을 검색했다. 그 사람들이 무엇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그동안 신경도 쓰지 않았던 내 주변 성이 다른 미숙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여겨봤다. 수준 이하는 없었고, 다 열심히 잘살고 있었다. 또, 검색한 최미숙 대부분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마음을 바꿨다. 아름다울 미(美), 빛날 숙(淑), 엄마가 부르기 쉽고 예쁘다고 했던 내 이름에 긍지를 가지기로 했다. 내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숙이라는 이름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학생들 앞에서도 금방 지우지 않고, 부끄럽게 여겼던 지난날을 얘기하며 뜻풀이까지 해 준다. 사회에 크게 이름을 날린 유명 인사는 아닐지라도 내면이 아름답고 맑은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내 이름처럼.
첫댓글 선생님, 정자도 있습니다. 하하. 저 중학교 때 정자가 네 명 있었네요. 김정자, 박정자, 진정자 그리고 임정자. 소식 들어보니, 다 개명 했더군요. 저만 빼고요. 그냥 제 이름으로 삽니다. 곧을 정(貞)이 마음에 들어서.
하하하. "정자도 있습니다."에 잠깐 웃습니다.
복향옥이도 있습니다. 하하.
"그래도 복향옥이 젤 낫다야. 복향정, 복향루, 복향각보다 복향옥이라 다행이야." 라고 해서 얼마나 무안하던지요.
@복향옥 '복향옥'은 성이 복씨여서 이름 향옥과 어울립니다. 정자나 미숙이는 흔하답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빛나셨군요. 게다가, 좋은 선생님으로 계셔서 제 마음이 덩달아 훈훈해집니다.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순' 촌스러워도 내 이름이니 저는 아끼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미숙, 예쁜 이름입니다.
수준 이하는 없었고, 다 열심히 잘살고 있었다. 또, 검색한 최미숙 대부분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재밌습니다.
강도윤, 최미숙 이름이 참 좋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잠시 혼란에 빠져 고민 많이 했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름에 어울리고 좋아요.
선생님과 같은 이름 여기 있습니다. 우리 이름처럼 남은 인생도 아름답고 맑게 엮어 가게요.
하하, 그래요. 이름 값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