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시(七步詩)
(일곱 걸음에 시를 짓다)
조식(曹植 192년 ~ 232년)
煮 豆 燃 豆 萁(자두연두기)
豆 在 釜 中 泣(두재부중읍)
本 是 同 根 生(본시근동생)
相 煎 何 太 急(상전하태급)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난 몸인데
서로 들볶기를 어찌 그리 급하게 하는가
부엌에서 지금 콩을 삶으려고 하는데 땔감이 콩깍지이다. 우리가 어릴 때에도 시골에서는 가을에 콩을 추수 한 뒤 그 줄기와 뿌리를 따로 모아두었다가 땔감이나 연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런데 솥 안에 지금 삶으려고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콩이다. 얼마 전까지도 밭에서 서로 한 형제로 태어난 몸이 아니던가, 솥 안의 콩이 서러워서 눈물을 흘린다. 세상에 이토록 비정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콩은 야속해하지만 실제 현실 세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옥수수 줄기를 태워 옥수수를 삶고, 도끼를 사용하여 도끼 자루를 베기도 한다. 그 뿐인가. 조선의 태종 이방원은 동생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일본 가마쿠라 막부를 창설한 요리모토 역시 어렵게 일본을 통일해놓고는 동생을 비롯한 공신들을 처형하다가 죽 써서 개주듯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버린다. 세계 역사에서 무수히 볼 수 있는 권력의 비정과 무상함이다. 아무튼 너무도 슬픈 나머지 콩이 울면서 우리 서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몸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볶아대기를 급하게 하는가하고 울부짖는다.
이 짧은 한편의 한시가 보기보다는 문학성, 역사성,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유명하기 이를데 없는 시이다. 지은이가 중국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 192년 ~ 232년)이다. 출처가 되는 원전인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위에 두 구가 더 있지만 보통 위와 같이 오언절구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 한 시는 너무도 유명해서 고등학교, 대학시절에 외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조조의 아들이고, 형과 아우간의 이야기인데다가 무엇보다도 천재 시인 조식이 일곱 걸음 걷는 동안 지은 시라는 고사에 의해 역사와 인구에 널리 회자되어 오고 있다. 후대 중국의 역사가는 조식을 소동파, 이백과 더불어 중국 삼대 시인으로 꼽기도 한다.
조조는 황후 외에 두 부인에게 모두 7명의 아들을 두었다. 조식은 전체 아들 중에는 다섯째이지만 본부인인 변황후에게서 태어난 네 아들 중에서는 셋째였다. 그런데 셋째 조식이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 하고, 글을 잘 짓는가 하면 똑똑하기도 하여 아버지인 조조의 사랑과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자란다. 특히 조조 자신이 시인이고 문학가일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어 글 잘 짓는 조식이 이쁘기 그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조는 조식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에 비해 맏아들인 조비(曹丕, 187 ~ 226)는 장자로써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서로 경쟁과 시샘을 하게 되는데 두 왕자에게 각기 줄을 서는 신하와 대신들도 함께 권력의 향배를 두고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조조는 죽으면서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맏아들이 조비에게 왕위를 넘긴다. 대게 역사가들의 평가가 나 있지만, 소설이나 고전, 영화 등을 보면 첫째, 대게 시인들이 술을 좋아하듯이 조식 역시 술을 좋아한 나머지 아버지의 눈밖에 벗어나는 실수를 몇 차례 하게 된다. 그리고 조식을 따르는 일부 대신조차도 장자 승계 원칙에 수긍하며, 무엇보다도 조식 자신이 그렇게 왕위 계승에 대해 치밀하게 대응하지 않았던 것 등이 이유로 조비가 왕이 되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지금도 TV의 중국 드라마(미완의 책사, 사마의) 같은 곳을 보면 아우에게 밀리는 것 같은 위기감에 젖은 어린 조비가 사마염을 찾아가 도와 달라고 울며 매달리는데 아마도 이것이 결정적 승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다른 이야기이지만 조비는 사마염을 자기편을 만들어 자신과 위나라의 일꾼으로 삼지만 결국은 사마염의 손자에 의해 위나라는 망하는 씨앗을 자초하게 된다.
아무튼 조비는 비록 왕이 되기 하였지만, 조식에 대한 콤플렉스를 떨져 버리지를 못하였다. 조식의 측근들을 죽이기도 하고, 관직에서 내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조식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대궐로 소환하기에 이른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조비의 어머니가 조비에게 친아우인 조식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만류하기도 하여 바로 죽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이미 역적의 누명을 씌워 불러놓고 그냥 없던 일로 하기도 그렇고 해서 발 아래 꿇어앉은 아우에게 아래와 같이 명령한다.
“네가 글 잘한다고 뻐기고 다니면서 나를 무시하고, 나라의 법을 우습게 여긴다는데 지금부터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한 편 지어보아라. 시의 소재는 형제로 하되 그와 관련된 글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너를 살려줄 것이다“
조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바로 왕 앞에서 일곱 걸음 걸으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한 ‘칠보시(七步詩)’가 탄생하게 되었다. 과연 소문대로 조식의 천재적 문학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어떻게 저와 같은 시를 지을 수가 있을까. 삐끗해서 한 글자만 실수해도 목숨이 바로 날아가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비록 칠보시를 지어 목숨은 구하고 풀려났지만, 왕의 견제는 계속된다. 계속되는 견제는 조비의 아들이자 제 3대 왕인 조예에 까지 이어진다. 조식은 그의 천재적 자질에도 불우한 삶을 지내다가 나이 41살에 세상을 떠난다. 그를 그토록 괴롭히던 형 조비 역시 나이 40세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권력을 잡으면 형제를 죽이고, 친인척도 살해하고, 자기를 도와준 공신들마저 반드시 처형해야 하는지 우리같은 필부들이야 어찌 알수 있으랴만 다만, 권력도 부귀도 영원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구름처럼 무상하다는 사실만큼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