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보험 설계사
전 호준
올 한해 샬-롬 기억 학교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와 꺼 놓았던 휴대폰을 켜니 메시지가 왔다는 표시가 떴다. 궁금한 마음으로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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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샬-롬 기억 학교에 다녀온 것을 알았나? 내 나이를 알고 보낸 것일까? 아니면 분별없이 한 건 잡아보려 미끼를 던져 본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 수업을 마치고 돌아서는 발길이 뭔가 허전하고 안타까웠는데 노후대책 정보에 고맙다는 생각보다. 괜히 짜증이 나고 섬뜩한 기분에 얼른 창을 닫아 버렸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기회가 주어져 인지 기능장애 노인들의 쉼터인 샬-롬 기억 학교에 글쓰기 학습 봉사활동을 지난해 이어 올해도 했다.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면 평일보다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여느 날 보다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나름의 옷차림에도 신경을 쓴다. 어쩌면 노인이 노인을 지도한다는 선입견보다. 모두가 한때는 잘나가던 형님들이요. 젊고 아름다운 내로라. 하시던 누님들이다. 5.60년대 가난을 몸소 겪으며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흘린 피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어쩜 나 자신 가끔 깜박하는 건망증에 그 들과 도긴개긴이니, 그들 앞에 서는 것이 주제넘고 조심스럽다.
퇴직이 가까워지면 모두 퇴직 후 생활에 고민하게 된다. 일종의 노후대책이다. 말이 쉬워 대책이지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듯 늙음에 무슨 대책이 따로 있을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일까?
삼시 세끼 안거르고 오 척 이 한 몸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등 따시고 배부르면 뭘 더 바랄까? 문제는 건강이다.
나이 들면 찾아오는 성인병 암, 당뇨, 고혈압, 치매 등 생각하기도 싫은 놈들이지만 오는 놈을 막을 방법은 창조주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제 발로 찾아오는 달갑잖은 친구이지만, 어쩌라! 안 오시면 천만다행, 오면 동행자로 받아들여 어르고 다독이다.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천명(天命)이라면 이 또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
간혹 노인들이 고독사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지만 인생은 늘 혼자다. 황천길에 동행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쌍둥이가 아니면 올 때도 혼자 왔기에 갈 때도 혼자 가는 게 당연하다. 간혹 동반 자살자나 사고사도 죽는 순간 영혼은 뿔뿔이 제 갈 길을 간다고 한다. 결국,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때론 외로움을 승화시키는 연습도 필요하지 않을까?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느 할아버지는 상당히 건강해 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 나오시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리 의술이 좋고 만병통치 명약도 늙음과 죽음 앞에는 백약이 무효다.
할머니 한 분은 유모차 같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겨우 다니시는데도 지난해 이어 봉사활동 내내 늘 그 모습이다. 할머님의 자리는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 가운뎃줄 맨 뒤쪽 왼쪽이다. 다른 분들은 가끔 자리가 바뀌는데 이분의 자리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합죽한 입은 항상 무엇을 씹으시는 듯 계속 우물우물하신다. 알 수도 물어볼 수도 없는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글자는 아예 모르신다. 그저 컴퓨터 그래픽스로 작성한 그림에 색칠하시는 것이 전부다. 크레용 하나를 들면 온통 그림 전체에 아무렇게나 황칠을 하신다.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 나뭇잎은 녹색 하늘은 파란색 하면서 조금만 도와드리면 다른 어르신들과는 달리 딴말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발하신다. 인지 기능 저하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아의 경지에서 감사하는 마음만은 몸에 배신 것 같다.
연륜이 앗아버린 쭈그러지고 사위어가는 얼굴이지만 그분의 눈동자에서 행복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평생을 꼬박꼬박 가슴에 넣어둔 감사 보험 혜택이란 생각을 해본다.
감사하는 마음의 큰 보험이 할머니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 언제부턴가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한마디 짧은 대답에 가습이 뭉클해진다. 치매 보험이 아닌 할머니의 감사 보험설계사 자격을 전수하려 애써 보지만 아직은 멀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평안과 행복은 늘 함께한다. 감사 보험 하나만 확실히 챙기면 나의 노후대책은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또한, 사후를 위한 신앙생활에 귀의해 천당이든 극락이든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와 종파를 떠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유유자적 신의 가호를 기다리는 마음이면 이보다 더한 노후대책이 있을까? 손오공이 제 아무리 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인데, 나 같은 중생이 뛰어본들 벼룩이니, 무얼 더 바랄까? 감사 보험 설계사 자격증 하나면 족 할 것같다. 2019. 9. 27
첫댓글 그동안 어르신들 노노케어 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노노케어를 통하여 아주 그럴싸한 노후대책을 하나 세우신 것 같습니다. 감사보험설계사 새로운 참신한 신종 직업 같기도 합니다. 인생의 생로병사를 생각하며 좋은 글 음미하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샬롬 기억학교에서 치매노인들을 위하여 교육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감사한 일입니다. 노후대책으로 제일 좋습니다. 또한 내가 평소에 만족하고 모든일에 고마워 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좀은 썰렁한 얘기지만 우리 주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이자 실상입니다.
그리고 거기 참가했던 우리 회원 모두의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사회공헌활동 우수사례 수기 공모전'에 꼭 출품바랍니다.
월요일 만나서 '공모'관련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함께 가슴아파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큰 보험이란 말씀 세겨듣겠습니다. 생노병사라고 했는데 늙음도 병마와 동거하다 한 세상 여행길을 끝내는 인생길 좀 더 긍정적인 마음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노후의 큰 보험임에 틀림없나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올 봄부터 샬롬 기억학교에서 글쓰기 봉사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매일 그곳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은 그래도 행복한 분입니다. 지금 상태 그대로 건강과 인지기능을 유지하셨으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병이 치매라는 병마입니다. 경증환자가 어느날 보이지 않았습니다.중증환자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만이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처지의 암담함, 가족의 부재가 실감됩니다.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상입니다.저도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가 가장큰 보험이라고 함을 동감하겠습니다.
기억학교 봉사활동을 하시며 만난 치매노인들과 체험과 소회를 풀어주신 글에서 선생님의 따뜻한 인간의 정이 느껴집니다. 치매와 더불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끝내 죽음으로 이끄는 성인병들, 안 오시면 천만다행, 오면 동행자로 받아들여 어르고 다독이다.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천명(天命)...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천명에 의한 내 몸과 마음의 평화이니 감사와 기도의 생활이 그나마 약 인듯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삶의 현주소를 잘 그려내신 글이기에 더욱 와닿습니다.
감사보험설계사라는 말이 무척 신선하고 창의적이고 공감이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