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로 한 날은 더구나 일찍 깨지요.
새벽 세시 반에 깨어 어쩌구 저쩌구 정리할 것 좀 하고, 세수하고 전철 바꿔 타고, 신사역 근처에서 함께 떠나기로 한 이들과 합류했습니다. 9인승의 무어라고 하는 차인데, 모두 열덟 명이었습니다.민속을 공부하는 남자 분들로서 초면이 두 분, 세 분은 구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나까지 셋. 참 괜찮은 구성이었습니다.
떠나기 전 슈퍼에 들러 내가 먹을 오징어와 음료수, 과자 등등을 샀습니다.
아침 일곱시 반에 떠나기로 한 것이 30분 늦어 8시 출발. 정확히 말해 <벼낟가리 쓰러뜨리기>라고 했습니다. 대개는 부농의 농가에서 주도가 되어 한 해의 풍년을 기리는 제사사의 일종이었습니다. 벼낟가리를 상징하는, 높이 십여 미터의 볏짚으로 엮은 구조물을 세운 꼭대기에 대나무, 또는 소나무를 세우고, 그 달포 전의 <벼낟가리 세우기> -그러니까, 벼낟가리 세우기가 더먼저 -에서 매달아둔 곡식알을 꺼내 풍, 흉년을 점차는 세시풍습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꺼내 본 볍씨가 퉁퉁 불어 있으면 풍년이 들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하룻쯤 물에 불려 매달아 놓기도 한대요)
하루 종일 당진 세 곳 마을을 찾아가 <쓰러뜨리기>를 했는데 가는 곳마다 풍년이었습니다.대게 그렇듯이 마을 행사 뒤에는 먹을 것, 마실 것이 있게 마련, 쓰러뜨리고 먹고, 쓰러뜨리고 먹고, 또 쓰러뜨리고 먹고...함께 간 민속학자들께서는 '쓰러뜨리고 먹는 일'을 퍽 즐거워 했습니다. 물론 나도 신났지요.
돌아오는 길에는 비 내리는 서해 바다를 둘러 볼 겸, 삽교 근처의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조개구이에 맑은 이슬.
아, 기뻐라! 눈은 내리고, 양말이랑 바짓가랑이랑 다 적셔 좀 춥긴 했지만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 인사동 모처. 모처에 들러 노래 부르고, 떠들고 막 그러다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잤습니다.
참아라, 참아라, 참나무! 가 통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낼 부터는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리고 안 나가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