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눅16:8,9)
8 As a result the master of this dishonest manager praised him for doing such a shrewd thing; because the people of this world are much more shrewd in handling their affairs than the people who belong to the light.”
9 And Jesus went on to say, “And so I tell you: make friends for yourselves with worldly wealth, so that when it gives out, you will be welcomed in the eternal home.
성경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을 알려주십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간과하고 있었지만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제대로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또 부모이신 하나님께서 일일이 세상을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이 땅에 섭리하시는지 우리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구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제 사과가 되었습니다.
사과 농사 지역이 점점 고랭지로 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온난화라고 합니다.
예전에 없던 심한 가뭄과 홍수를 볼 수 있습니다.
온난화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온난화라니 지구 온도가 일 년에 한 10°C 변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0년인가에 0.5°정도 오른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체온보다 1°-2°만 더 올라도 죽게 생겼다고 끙끙 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1°를 가지고 이 땅을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섭리는 놀랍게 섬세하십니다.
섬세하신 그 분의 손길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새벽기도를 가는 것입니다.
깃털같이 많은 날들 중 단 한 시간이라도 그 분의 손길을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하루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중에서 성경이 중점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종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사람을 흙으로 사라지게 하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또 섭리하셨지만 또 우리의 종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도 사는 영생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구원이라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창의 요양원에 앉아 있습니다.
손을 들어 보세요.
이 손은 누가 만드셨습니까?
또 그 분의 손길이 우리 몸을 정확히 36.5°로 유지시켜주고 계십니다.
체온계를 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라는 우리의 미래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물리적인 잣대로 재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확인시켜주시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이 믿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소명이 그 나라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영원히 산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 나라를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큰 회사에 불량한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회사에서 꽤 고위직이었습니다.
그가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만 들키고 만 것입니다.
이제 그는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 쫓겨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일생 동안 그는 농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장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용노동을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얘들 대학 졸업은 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고민 고민하다가 한 일입니다.
그는 그의 회사에 500만 원 빚을 진 가난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빚을 200으로 깎아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워했습니다.
다음에는 1,000만 원 빚을 진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자녀가 병들어서 병원비 내느라고 빚을 갚지 못한 것입니다.
그 빚을 500만 원으로 깎아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연신 절을 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람은 고마워하는 그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위로까지 해주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한 이 일이 옳은 일인가요 아닌가요?
틀림없이 옳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돈도 아닙니다.
회사가 받을 돈을 제 돈인 것처럼 마구 깎아주고 다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의 빚을 깎아주고 다녔던습니다.
그 일만 하고 다녔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더 서두르며.......
그 회사의 사장님이 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 회사의 사장님은 “그 놈 참 똑똑하다.”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혹시 큰일 날지 모른다며 은행에 저금합니다.
통장에 많은 돈이 모아졌을수록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이 아닙니다.
통장에 관계를 저금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이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더니 그 해에 딸이 대학교에 입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500만 원 탕감받았던 그 사람이 이 사람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더니 딸 입학금을 내주고 간 것입니다.
이번에는 위암으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입니다.
300만 원 탕감받았던 그 사람이 병원에 나타난 것입니다.
병원비를 다 내주고 간 것입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말까지 하고 갔습니다.
이 사람의 선택이 옳았던 것입니다.
그 회사 사장님이 그 나쁜 사람을 칭찬했던 이유는 그가 소유가 아닌 관계를 저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믿는 사람의 큰 차이를 말하라면 세상은 통장에 들어있는 1억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죽은 사람이 챙겨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 그 관계를 믿는 것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합니다.
우리 마누라 천국 갈 때 치마끈 붙들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믿는다는 것에 말이 되는 일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영희인지 순희인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하늘을 향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썩을 동아줄과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온 것입니다.
호랑이는 어떤 동아줄을 잡았습니까?
바보같이 썩을 것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한 3-4m 올라가는 듯하더니 그대로 수수밭에 떨어져서 지금도 수숫대를 확인해 보세요.
그 호랑이 피 때문에 붉은빛이 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의 줄을 잡아야 사는 것입니다.
썩을 것을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10개월 동안 고생시키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하는 일입니다.
배고프면 마구 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는 것이 다 해결됩니다.
기저귀에 똥을 싸도 그렇게 합니다.
대학교 입학해서는 그 고지서를 부모에게 들이밀면 아버지는 두소리 하지 않으십니다.
그 자녀가 이웃집 아저씨에게 그 일을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밤새 잠도 못 자고 고생하더니 좋은 대학 다니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그 돈을 내주시는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배고프면 우는 것 고지서를 부담없이 내미는 것들을 우리는 신뢰의 행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부모로 여기는 바로 그 행위 그 믿음을 최고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 노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 부모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그 여부를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부모이셨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여러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인정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방금도 이 요양원에 오늘 처음 오신 어르신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난생처음으로 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들으시고 “아니고, 여태껏 뭐했나! 그 하나님을 모르다니.......” 그렇게 하나님을 인정하시면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시는 그 한마디가 우리를 죽음에서 영생으로 자리를 옮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죽어도 영원히 사는 나라를 보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아주 나쁜 놈
아주 뻔뻔한 놈
회사 돈을 제 돈처럼 자신을 위해 쓰는 놈
그 회사의 사장이 그 사람을 칭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칭찬을 받은 이유는 그가 쫓겨날 상황을 가장 현명하게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종말을 가장 현명하게 대처한 사람입니다.
그 관계를 여러분의 저금통장에 저금하시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쉬운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정적입니다.
아멘 한마디면 영생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이없이 쉽다 보니 사람들에게 어려운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드랜드 피아노 정도를 기부했어야지.......’
그런 것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신 분은 또 하나님께 그 믿음을 구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제가로 부르는 찬송의 3절 가사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하지 믿음 주소서~~~”
그 쉬운 믿음을 내 입이 고백하도록 구하십시오.
아멘은 엄청난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