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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성전 Rev. dhleepaul(M.div) .
- 날자: 2026.10.11 주일 낮 예배
- 말씀: 고전1:18/찬323.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제목: 전도는 구원받은 자의 능력이자 영광입니다.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찬양: 서로 사랑하자 -by 오세영/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ㄴ
-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1장의 요약
고린도전서 1장은 영적으로 은사가 있었지만 파벌과 '미성숙함'( μωρίαν, morian, foolish)으로 인해 분열된 교회에게 바울이 쓴 편지를 엽니다. 인사와 감사 인사 후, 편지에서 가장 긴 부분인 첫 네 장이 시작되는데, 이 부분은 코린도 교회 내 분열과 분열에 관한 내용이다.
바울은 여전히 이 어려움을 겪은 교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그 보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린도인들이 때때로 미성숙해 보일지라도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신자들은 바울, 아볼로, 베드로와 같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두고 다투었고, 그 분열은 고린도인들이 교사들의 수사적 능력을 평가한 데 기반했다.
바울의 치유는 십자가에 다시 집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 예수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고 그리스인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평판 좋은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범죄자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세상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핵심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주로 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으니,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자랑할 수 있습니다. 다툼과 내분은 영적 미성숙의 징후입니다.
- 문제의 소재
기독교 신자들 또는 비 기독교 신자들 모두가 주님의 말씀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 전파에 온 생애를 바친 사도 바울은 그가 전도할 때마다 절실히 체험한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울 자신으로부터 복음 아닌 다른 것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기록된 말씀이 바로 그 사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이고 헬라인이고 간에 이들이 바울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표적’ 보여 주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믿기에 앞서 뭔가를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주님께서 병자를 즉석에서 고쳐주셨듯이 사도 바울에게서도 신유 따위의 기적을 행사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실은 바울을 시험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의심이 많습니다. 네가 뭔데 하나님을 빙자하여 주 예수라는 사람을 선포하느냐 만일 그런 자격이 있다면 무슨 표적을 나타내봐라!!!
반면에 헬라인들은 어떤 ‘지혜’로운 것을 바울에게서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사도 바울의 전도의 내용이 사물의 이치(철학)에 맞는가 정당한가 진리인가를 그네들의 명철?로 판단하여 옳고 맞다고 인정할 수 있으면 맞고 틀리면 말고 하는 식이었던 것입니다. 틀리면 비난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모든 아덴(아테네) 사람들은, 일은 노예가 하고 있으니까, 날이면 날마다 아레오바고라는 집회 장소에 모여서 「가장 새로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았다」(행 17:2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레오파고스(그리스어: Άρειος Πάγος)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 기구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고대 그리스어: Ἄρειος Πάγος)라는 말은 ‘아레스 신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의도적 살인에 대한 재판 법정으로서의 기능도 했다. 아레스는 이곳에서 포세이돈의 아들인 핼리로티오스를 살해한 혐의로 신들에게 재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오직 세상 지혜일 뿐이었습니다. 단지 복음만을 전하기 위하여 그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던 사도 바울에게서, 이처럼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들대로, 헬라인은 헬라인들대로 그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울이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기독 전도자들이 만나게 되는 전도 대상들은 이처럼 복음 아닌 다른 것, 전혀 엉뚱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들인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갖가지 필요나 욕구를 목사나 교회가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면 신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불치의 병이 나아야 하고, 벼락부자가 되어야 하며, 세상 만사가 다 자기 뜻대로 되어 나가야 마땅하다고 기대하면서 나아옵니다.
우리 기독신자들 앞에 있는 전도의 대상은 이처럼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참 전도하기 쉽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직 자기네들의 욕구와 지식을 만족시켜 주기만을 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전도해야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1. 자기 것을 자랑하지 말라
“자기 지혜, 자기 힘, 자기 재물을 자랑하지 말라!” (렘9:23)
지혜와 힘과 재물은 인간의 자랑거리이건만,
자기의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렘9:23).
스스로를 자랑하면서 얻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악한 것입니다 (약4:16).
인간은 자랑거리가 있을 때 기쁨을 누리고, 자기 손으로 한 일들을 통해 성취감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특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성취할 때 (요일2:16), 큰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자신이 자랑하는 것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재물을 신뢰하고 자기의 많은 부를 자랑하는 자들 중에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형제를 구속할 수 없으며 (시49:6-7), 하나님께 대속물을 바쳐서 영원히 살게 할 자가 없으며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할 자도 없습니다 (시49:7-9). 자신이 가진 것으로 영원한 것을 살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생명이 다하는 날, 모든 것을 두고 가는 존재입니다. 돌아가시는 분들 즉, 천국 환송예배 때에 보면 숨을 멈추신 분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화장로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한줌 흙이 되어 나오시는 것을 똑똑이들 보셨다면 아멘입니다.
뭘 가지고 갔습니까? 뭐가 남았습니까? 뭘 얻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주신 영은 하늘로 몸은 한 줌 흙으로
전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의 말씀입니다. 전도자란 주님의 말씀 즉,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여 구원의 서정에 이르게 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전도자로 세상에 오셨듯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으니 또한 주님의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하는 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2. 주님의 공의와 명철을 자랑하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9:24) 우리는 주를 아는 것을 자랑하고,
주님의 인자함과 그분의 공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주의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춘 사실을 자랑해야 합니다 (시85:10). 십자가에서 주님의 손과 발이 못에 박혔고,
벌거벗겨진 채 나무에 매달리는 수치를 감담했고,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모욕을 받으며 고통 속에 죽어갔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큰 승리가 되었고, 비극이 아니라 큰 영광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를 통해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분,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구원을 완성하신 분,
이분을 믿은 자들은 자랑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으로 인해 죄사함 받고, 구원 받고,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 있는 것들을 인간이 자기 지혜, 자기 힘, 자기 재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을 자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적인 자랑거리를 다 버리고, 친히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오히려 큰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오히려 멸시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극한 고난을 ‘앞에 놓인 기쁨과 영광’으로 인해 극복했습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롬8:18). 장차 받을 영광이야 말로 큰 자랑이 됩니다.
그것을 알기에 환난까지도 기뻐하며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롬5:3).
마음의 기쁨은 고난이 없어져야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품 때문에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참을성이 많아야 고난을 이겨내는 것도 아닙니다.
3. 주님의 제자(弟子)가 되는 길- 눅14:25-35절,
1) 주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고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2) 모든 인간관계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와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려면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 즉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아버지는 죽은 자가 장사를 치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 8장 18절~22절)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쳐 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 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이 부르실 때 그물과 부모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던 것처럼 모든 인간관계를 버릴 때만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자기 목숨까지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12: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을 목숨을 주님을 위해 드리면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제자는 자기의 모든 소유와 인간관계와 자기 목숨까지도 다 버리는 희생을 통해서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후사를 받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제 주님 당부의 말씀으로 저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 마치는 말씀 -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라
약4:16 이제 너희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나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한 것이니라.
요일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고린도 성도 대부분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지혜나 재물, 학벌, 혈통이 없어서 멸시받는 자들이었습니다. 한편,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에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자랑할 만한 혈통이었고(빌 3:5). 그는 바리새인으로 당시 최고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엄한 율법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세상에 내놓을만한 신분과 학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랑하고 신뢰할 만한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던 분쟁의 원인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대로 답습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다고 밤낮 고백하면서도 은근히, 때론 노골적으로 세상의 것을 가까이하려 합니다(약 4:4).
세상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악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랑이란 자기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자랑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한자로는 '誇'라고 쓰고 그 의미는 '자랑할 과'입니다. 흔히들 '과시'라고 합니다. 거들먹거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것을 과시라고 합니다. 있는 것도 삼가해야 하는 세상 일을 말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은 데 없는 것까지 들춰내면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요즘 정치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 만나인은 자랑이라는 오만에서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히는 겸양의 미덕을 앞세워 복음의 진리를 널리 세상에 알리는 사도바울처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고 구원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듣는 자가 없고 듣지 못하면 구원의 도를 깨달을 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합니다.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가 전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전도하시러 오셨습니다. 막 1:38에 보면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이하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전도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훈련시키셔서 능력을 주시고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전도에 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소원이므로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의 소원도 전도입니다. 마 10장에 보면 전도하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 받은 사람들은 전도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부어지자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성도들은 부지런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은 전도자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전도는 성령님의 소원이므로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고난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면 영광입니다.
롬8:18 말씀에서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라고 자족하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축원드리면서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