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
민수기 19장 11-13절「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레위기 21장을 통해서 시체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첫째,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몸의 정결을 위해서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시체, 죽은 자는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시체와 연합되어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시체를 만진다는 것은 영적으로 죄의 몸과 다시 연결되므로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제사장이 시체를 만지게 되면 칠일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늘의 안식이 없는 것이다. 칠일은 창조의 칠일을 의미하듯이, 세상에 갇힌 자는 안식이 없으며,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자가 된다. 그러나 칠일째가 되면, 곧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안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의 가족이 죽었을 때는 허용되었다.『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시체인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이 부활생명을 가진 거룩한 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셋째 날과 일곱째 날”, 창조 셋째 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날의 뿌림은 자신의 죄를 기억시켜 그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게 하여, 속죄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도록하는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는 죄를 자각케하는 율법의 기능과 흡사하다. 갈라디아서 3장 23-25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삼일이라는 기간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으로서 정결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결의 기간이 끝나면 부활생명을 먹게 된다.
셋째 날은 성소로 보면 떡상이다. 출애굽 당시 맛나와 연결된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제자들은 먹을 떡을 사러 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서 참 양식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출애굽기에서 맛나를 통해서 하늘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절기로는 초실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4-5장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늘의 보좌와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일곱째 날의 뿌림은 부정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감격을 예표한다.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따라서 시체를 만지므로 더럽혀진 자는 이러한 의식적 정결례를 치루지 않고 아무도 깨끗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 두 번의 뿌림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과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은 셋째 날의 피뿌림이고, 일곱 째 날의 피 뿌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창조 일곱째 날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배치가 완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결케 할 것이라(이트핫타)” 이트핫타는 빗나가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서 '범죄하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여기서는 죄로부터의 떠남을 상징하는 외적 의식을 가리킨다. 즉 정결이란 말은 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는 것은 죄의 몸에 대해서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물세례를 의미한다. 물은 정결하게 하는 물로서, 물에 들어가는 세례 의식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이뤄진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시체와 접촉함으로 인해 부정케 된 자가 정결례를 실시하지 않고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가는 것은 거룩한 공동체를 부패케 하는 것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선민이자 거룩한 공동체가 누리는 모든 특권에서 제외되어 진 밖으로 축출되며, 각종 제사와 축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동시에, 장차 유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에서의 분깃마저 상실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정결 의식, 즉 물세례로서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하면 성령세례로 예수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다. 부활생명을 받는 것이 거룩이며, 성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