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민수기 19장 14-22절「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장막에서 사람(아담)이 죽을(무트) 때의 법(토라)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히브리어 성경을 다시 번역하면,
זֹ֚את הַתֹּורָ֔ה אָדָ֖ם כִּֽי־יָמ֣וּת בְּאֹ֑הֶל כָּל־הַבָּ֤א אֶל־הָאֹ֨הֶל֙ וְכָל־אֲשֶׁ֣ר בָּאֹ֔הֶל יִטְמָ֖א שִׁבְעַ֥ת יָמִֽים׃
“이것은 율법인데, 장막 안에서 죽은 사람, 장막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 장막 안에 있는 모든 자는 칠일간 부정할 것이다.”
시체는 부정하며, 주검이 있는 장막에 출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정하다고 취급되었다. 이것은 시체가 죄의 결과로서, 명백히 노출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늘의 안식이 없다. 칠일은 창조의 칠일을 의미하듯이, 세상에 갇힌 자는 안식이 없으며,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자가 된다. 그러나 칠일째가 되면, 곧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안식을 얻게 된다.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여기서 뚜껑(차미드 파틸)이란 끈의 덮개란 말로, 끈으로 그릇의 입구를 동여맨 덮개를 가리킨다. 철저히 밀봉하지 않은 그룻으로 볼 수 있다. 뚜껑을 덮지 않은 그릇이 주검으로 인해 부패케 되는 이유는 주검의 냄새가 그 그릇 안으로 스며들어 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성물을 토기 그릇에 삶았을 경우, 그 흡수성으로 인해 깨뜨린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위기 6장 28절「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וּכְלִי־חֶ֛רֶשׂ אֲשֶׁ֥ר תְּבֻשַּׁל־בֹּ֖ו יִשָּׁבֵ֑ר וְאִם־בִּכְלִ֤י נְחֹ֨שֶׁת֙ בֻּשָּׁ֔לָה וּמֹרַ֥ק וְשֻׁטַּ֖ף בַּמָּֽיִם׃
토기는 속죄제 제물을 삶는 그릇인데, 속죄제 제물로 죄가 대속이 되어 완전히 죽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들어있는 그릇이다. 그런데, 토기는 내용물이 스며드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깨어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는 스며들지 않는다. 다만 씻어버리면 내용물이 다 제거되는 것이다. 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고, 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주검으로 상징된 죄를 매우 가증스럽게 여기도록 함으로써 영적으로 성결을 유지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죄의 결과인 죽음과 연관된 그 무엇에나 접촉하게 되면 부정을 면치 못했다. 특히 여기서 무덤에 접촉하게 되면 부정을 면하지 못한다는 이 규정 때문에, 가나안 정착 이후 유대인들은 무덤에 흰 회칠을 함으로써 부정을 모면케 하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다.
마태복음 23장 27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불사른 재는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만든 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고, 흐르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수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부활생명으로 거듭나는 것과 같이, 불사른 암송아지의 재를 이 물 속에 섞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하여 죄인이 정결함을 얻고 또한 부활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예표한 것이다.
시체로 오염된 자를 정결케 하는 행위는 비록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정결한 자는 누구든지 암송아지 잿물을 우슬초에 찍어 뿌림으로써 수행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세례는 목사가 하지만, 거듭난 성도도 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레위기 14장 4절에서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우슬초는 양의 피를 바르던 붓이다. 죄 사함에 동원된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21-22절에서『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셋째 날과 일곱째 날”, 셋째 날의 뿌림은 자신의 죄를 기억시켜 그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게 하여, 속죄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도록 하며, 부활생명으로 나아감을 깨닫게 하는 목적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삼일이라는 기간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으로서 정결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결의 기간이 끝나면 부활생명을 먹게 된다. 일곱째 날의 뿌림은 부정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감격을 예표한다.
부정케 된 자가 3일째의 결례와 7일째의 결례를 마치고,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새로운 한 날이 시작되는 그날 밤에야 비로소 정결케 되었다.
“정결케 할 것이라(이트핫타)” 이트핫타는 빗나가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서 '범죄하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여기서는 죄로부터의 떠남을 상징하는 외적 의식을 가리킨다. 즉 정결이란 말은 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는 것은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남을 상징한다.
“그는 자기 옷을 빨고(카바스) 물로 몸을 씻을(라하츠)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카바스는 짓밟다, 씻다 등의 의미이며, 옷을 빨 때, 발로 밟고 물로 행궈 세탁하는 것이다. 단순히 새탁의 의미보다,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을 의미하며, 라하츠는 죄를 씻는 의미를 갖는다. 라하츠는 목욕하다의 의미다. 따라서 이는 물세례를 상징한다.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죄의 몸에 대해서 죽음을 의미한다. 물은 정결하게 하는 물로서, 물에 들어가는 세례 의식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이뤄진 거룩한 공동체이다. 시체와 접촉함으로 인해 부정케 된 자가 정결례를 실시하지 않고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자기의 옷을 빠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지만,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오는 죄의 몸에 대한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가 있는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이는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