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거운 쪽을 먼저 끌어당김’에 관한 문답(重者先牽問答)]
【왕생론주】
問曰:《業道經》言:「業道如秤,重者先牽」,如《觀無量壽經》言「有人造五逆十惡,具諸不善,應墮惡道,經歷多劫,受無量苦。臨命終時,遇善知識,教稱南無阿彌陀佛。如是至心,令聲不絕,具足十念,便得往生安樂淨土,即入大乘正定之聚,畢竟不退,與三塗諸苦永隔」。先牽之義,於理如何?又,曠劫以來,備造諸行有漏之法,繫屬三界;但以十念念阿彌陀佛,便出三界。繫業之義,復欲云何?
【번역】
묻기를: 《업도경(業道經)》에서 말하기를 “업도는 저울과 같아 무거운 쪽을 먼저 끌어당긴다(業道如秤,重者先牽).”라고 하였고, 예컨대 《관무량수경》에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오역과 십악 등 온갖 착하지 못한 업을 지어 마땅히 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이 지나도록 한량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임명종 시에 선지식을 만나 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쳐주었느니라.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십념을 구족하면 바로 안락정토에 왕생하여 즉시 대승의 정정취에 들어가 필경 퇴전하지 않고 영원히 삼악도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먼저 끌어당김”의 뜻이 어떻게 성립하는가? 또한, 광겁 이래 무수한 번뇌를 일으켜 온갖 악업을 다 지어 삼계 내에 계박되어 있으면서 다만 열 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는 삼계를 벗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업에 계박됨(繫業)”의 뜻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인과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왕생론주】
答曰:汝謂五逆十惡繫業等為重,以下下品人十念為輕,應為罪所牽,先墮地獄,繫在三界者,今當以義較量:輕重之義,在心、在緣、在決定,不在時節久近多少也。
云何在心?彼造罪人,自依止虛妄顛倒見生;此十念者,依善知識方便安慰,聞實相法生:一實一虛,豈得相比。譬如千歲闇室,光若暫至,即便明朗;闇豈得言,在室千歲而不去耶!是名在心。
云何在緣?彼造罪人,自依止妄想心,依煩惱虛妄果報衆生生;此十念者,依止無上信心,依阿彌陀如來方便莊嚴真實清淨無量功德名號生。譬如有人,被毒箭所中,截筋破骨;聞滅除藥鼓,即箭出毒除。《首楞嚴經》言:譬如有藥,名曰滅除。若鬥戰時,用以塗鼓,聞鼓聲者,箭出毒除。菩薩摩訶薩亦復如是,住首楞嚴三昧,聞其名者,三毒之箭自然拔出。豈可得言「彼箭深毒厲,聞鼓音聲不能拔箭去毒」耶?是名在緣。
云何在決定?彼造罪人,依止有後心、有間心生;此十念者,依止無後心、無間心生:是名決定。
較量三義,十念者重,重者先牽,能出三有。兩經一義耳。
【번역】
답하기를: 그대는 오역과 십악의 죄업을 지어 삼계에 계박된 것은 무겁고, 하품하생의 사람이 부른 열 번의 염불은 가벼워서, 마땅히 죄업에 끌려 먼저 지옥에 떨어지고 삼계에 계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지금 마땅히 (진실한) 뜻으로 (양자의 경중을) 비교해 보겠다. 경중의 (진실한) 뜻은 마음에 있고(在心), 연에 있고(在緣), 결정에 있지(在決定), 시절(시간)의 오래고 가까움과 지은 죄업 양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어찌하여 마음에 있다고 말하는가? 저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업이) 자기가 허망하고 전도된 견해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고, 이 (임종) 십념은 선지식으로부터 방편으로 위로해 주고 실상법(實相法)을 들어서 생겨난 것이므로, 하나는 진실하고 하나는 허망한데, 어찌 서로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예컨대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방 안에 빛이 잠깐만 비쳐도 금세 환하게 밝아질 터이니, 어둠이 어찌 방 안에 천 년을 있었다고 해서 물러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마음에 있음(在心)”이라고 말한다.
어찌하여 연에 있다고 말하는가? 저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업이) 자기가 망상심에 의지하고, 번뇌로 감득한 허망한 과보 중생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고, 이 (임종) 십념은 위없는 신심에 의지하고, 아미타여래의 방편장엄진실청정무량공덕의 명호(方便莊嚴眞實淸淨無量功德名號)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아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으스러졌으나, “멸제약고(滅除藥鼓)”의 소리를 듣는 즉시 화살이 뽑히고 독이 제거된다. 그런데 어찌 “저 독화살이 너무 깊이 박히고 독성이 너무 강해서 북소리를 들어도 화살이 뽑히지 않고 독이 제거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연에 있음(在緣)”이라고 말한다.
어찌하여 결정에 있다고 말하는가? 저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업이) 뒤가 있는 마음(有後心: 앞뒤를 너무 재어 우유부단한 마음), 틈새가 있는 마음(有間心: 다른 생각이 섞여 틈새가 있는 마음)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고, 이 (임종) 십념은 뒤가 없는 마음(無後心: 즉각 결정된 마음), 틈새가 없는 마음(無間心: 조금도 다른 생각으로 인한 틈새가 없는 마음)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것을 “결정에 있음(在決定)”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마음에 있음, 연에 있음, 결정에 있음) 세 가지 뜻을 비교한 결과, (임종) 십념(의 정업)이 (십악과 오역의 죄업보다) 더 무거우므로, 무거운 쪽(淨業)을 먼저 끌어당겨 삼유(삼계)를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관경》과 《업도경》은 모순되지 않고 같은 뜻이다.
*멸제약고(滅除藥鼓): “멸제”라고 부르는 약을 바른 북을 말한다. 《수능엄삼매경》에서 말하기를 “예컨대 ‘멸제’라고 부르는 약이 있다. 만일 전투할 때, 이 약을 북에다 바르면, 북소리를 들은 사람은 화살이 뽑히고 독이 제거된다. 보살마하살 역시 이와 같다. 수능엄삼매에 안주하여 그 이름을 들은 이가 있다면 삼독의 화살이 저절로 뽑힌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