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만히 앉아 조용히 하도록 하는 건 경건이 아니다.
아이들을 예배의 동역자로 존중할 때 아이들은 예배에 집중하고 즐기게 된다.
우리가 이스라엘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가정’이다. 특별히 아비들의 마음이 자녀들에게로 돌이켜지고, 자녀들의 마음이 아비들을 향해 돌이켜지는 것에 힘을 쏟는 것이 또 하나의 원뉴맨 사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교회에는 아이들이 참 많다. 이것이 교회의 큰 복이요 메시지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어린아이들은 나팔을 불거나 깃발을 흔들며 찬양하고, 청소년들은 청년부 형이나 누나들과 함께 예배팀 보컬이나 악기 또는 미디어 사역 등으로 섬긴다. 처음엔 혼잡하고 예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린 시절 예배당 입구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격리되어 예배를 드리는 게 당연한 교회를 다녔었다.
어린이들의 활기를 예배의 방해 요소로 생각한 결과는 참혹하다. 지난 20년간 한국 교회 주일학교 대부분의 부서는 70퍼센트나 수적으로 감소했다. 원했던 대로 아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거룩해졌는가? 나는 그 적막이 공포스럽다.
우리 교회 예배는 아이들이 있어서 활력이 넘친다. 아이들이 방해가 되지 않냐는 질문도 있는데 아이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강대상 위로도 올라갔다가 엄마 아빠에게 오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들을 방해가 되는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예배의 동역자로 존중하자 놀랍게도 아이들이 예배에 집중하고 예배를 즐긴다. 아이들을 가만히 앉아 있게 하고 조용히 하도록 하는 게 경건이 아니다. 나는 설교하다가도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초콜릿을 주고, 조는 학생이 있어도 깨우지 않고 미소로 축복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어른들이나 목사인 나를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때때로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하는 방문자들이 두 가지에 놀라는데, 아이들이 무척 많은 것과 그 아이들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데도 질서가 잡혀 있다는 데 놀란다.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자기 눈높이와 생각에 가두어 두려고 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고 서로가 불만족스러워지는 것이다.
출애굽기 10장에 보면 메뚜기 재앙이 나온다. 그 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줄 테니, 아이들은 두고 가라고 한다. 그 이유가 굉장한데,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출 10:10)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직역해서 풀면 “보라 그것이 태양신 라에 대한 반역 행위다”라는 뜻이 된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애굽의 바로는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들과 분리된 예배를 원한다. 그래야 예배가 힘을 잃기 때문이다. 이 완악함에 대한 재앙의 결과는 바로 메뚜기 재앙이다. 이것은 바로 다음세대의 싹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재앙이다. 계시록에도 메뚜기 재앙이 나오는데 출애굽기와 그대로 연결된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_요한계시록 9:3
황충(메뚜기)은 굉장히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자녀들을 먹어치우는 적그리스도의 군대이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_요엘 1:4
요엘 선지자도 이와 같이 메뚜기떼의 여러 이름들이 조직적이고도 단계적으로 남은 것(자녀들)을 먹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_요엘 1:3
말세에 적그리스도는 자녀들을 공략하는 것으로 전략을 삼고 있는데, 교회와 성도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항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유대인 교회와 가정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그들이 언제나 자녀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삶이 바쁘고 분주하지만 안식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부러운 일이었다. 자녀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우리는 제단의 불을 지킬 수 있다.
교회의 예배도 시끄럽다고 아이들을 격리시키고 부모와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고 부모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강대상 쪽으로 불러 세우고 어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굉장히 좋은 예배 교육이 된다.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선봉에 서야 대적의 군대인 황충을 이길 수 있다.
너무나 잘 갖춰진 시스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콘텐츠로 아이들의 예배의 싹을 먹어치우는 그 괴물들은 ‘잠깐’, ‘가볍게’, ‘언제나’ 예배를 파괴한다. 청소년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스마트폰만 공허하게 쳐다보는 예배처럼 끔찍한 말세의 징조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중고등학생들 수련회를 하면서 모두를 예배팀으로 세워 예배 인도를 하도록 했다. 교회에 있는 마이크란 마이크는 모두 끌어모아 한 명 한 명에게 다 마이크를 쥐어준다. 노래에 영 자신이 없다는 친구는 오히려 솔로를 시켜서 하나님이 그 목소리를 받으시도록 드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잘해서 감동도 있지만, 때로는 변성기에 음치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드리는 떨리는 입술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른다.
악기도 그때그때 기존 예배팀 청년들이 원하는 친구들에게 가르쳐서 곁에서 도와주며 연주하게 한다. 연습이나 사역을 할 때면 꼭 치킨이나 떡볶이같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먹는다. 이것이 게임이나 SNS보다 더 재미있고 더 실제적인 삶이라는 것을 그들이 감각적으로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이렇게 함께 예배하는 것이 아비들과 자녀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돌이키는 가장 중요한 문을 연다. 결국 한마음으로 만나는 지점은 우리가 같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항상 우선이고, 돌격대 역할을 한다. 그러면 하늘이 열리고 지혜와 권세가 부어진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_누가복음 10:21
- 한 새사람, 강대위
한 새사람그리스도 안에서 전에 원수 되었던 사람과도 화목하게 된 사람
규장강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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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마가복음 10장 15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언 22장 6절
† 기도 하나님,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나의 눈높이와 생각에 가두어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게 하소서. 자녀들과 연합하며, 함께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예배에 있어 아이들을 방해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동역자로 존중합시다. 부모와 자녀가, 어른과 어린아이가 서로 평가하지 않고 함께 예배할 때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됨을 기억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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