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해설
[개관정리]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참여적, 상징적, 서정적, 지성적, 애국적
◆ 표현
* 상징에 의한 심상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의 전개
*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아의 모습을 확인하려 함.
◆ 중요 시어 및 시구풀이
*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 왕조의 유물. 식민지 치하의 치욕스런 민족적 현실
(녹 : 민족(망국), 개인(적극적이고 의롭게 살지 못한 부끄러움) )
* 내 얼굴 → 욕된 망국인의 모습(무기력한 자아)
* 어느 왕조 → 일제에 망한 조선 왕조
* 이다지도 욕될까
→ 감당할 수 없는 치욕감
무능한 조상들에 대한 반감 및 젊은 나이로 헛되이 보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 한 줄에 줄이자 → 부끄럽고 무의미한 삶이었기에,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 이십사년 일개월 → 지나온 삶의 전부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 지난 삶(기쁨없는 삶=죄악)에 대한 뼈저린 회한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현재의 참회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
* 부끄런 고백
→ 역사적 시련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 고백이나 하였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
* 밤이면 밤마다 → 민족의 현실이 암울할수록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 온몸으로, 혼신의 노력
* 거울을 닦는 행위
→ 투철한 자아성찰
흐트러진 민족의 현실을 가다듬어, 민족적 자아를 되찾고 시대적 양심을 실현하려는 노력
* 운석 → 별의 잔해(별똥)로서, '죽음'을 연상케하는 시어
파괴와 소멸과 절망의 세계(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 슬픈 사람의 뒷모양
→ 암담한 현실 상황 속에서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참회하는 망국인의
슬픈 뒷모습
◆ 주제 ⇒ 투철한 역사인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성찰(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참회)
◆'거울'의 이미지 : 자기애착 · 나르시시즘(자홀감), 자의식 분열의 매개체, 자기 참회 ·
자아성찰의 매개체
⇒ 이 작품에서 거울은 1연에서 보듯이 역사의 유물로 남겨진 '구리 거울'이자,
4연에서 보듯이 '나의 거울'이다. 거울을 대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을 위한 일인데,
작자가 마주한 거울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우리 역사에 대한 참회를
동반하게 된다. 욕된 현재를 참회하고,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부끄러웠던 지난날에
대한 참회록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4연에 나타난 것처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욕된 자아의 각성 → 암울한 현실 속에서 꿈도 없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자책하고 반성함.
◆ 2연 : 현재의 참회 → 자신의 삶을 한 마디 참회의 글로 대신하려는 각오를 다짐
◆ 3연 : 미래의 참회 →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미래의 희망에 대한 다짐과 역사 발전에
대한 신뢰를 표출함.
◆ 4연 : 끊임없는 자아성찰 →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행위로써 강인한 의지를 다짐
◆ 5연 : 망국인의 슬픈 자화상 → 미래를 향한 시적 화자의 운명적인 삶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적 화자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그 속에서 '왕조의 유물'과 '내 얼굴'을 발견한다. 이 '거울'은 그 자체가 '나'이면서 나를 비춰 주는 거울로, 그는 거울을 통해 과거의 삶을 성찰하고 참회할 뿐 아니라, '그 어느 즐거운 날'인 미래에 비추어 현재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거울은 단순히 내면적 자아 성찰의 도구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매개물이요 미래 전망의 창구(窓口)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서정적 자아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망국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서 출발한다. 푸른 녹이 낄 정도로 방치되고, 무관심했던 삶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며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이라는 자아의 삶의 기간에 대해 다소 처량한, 그러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참회의 내용은 짧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가는 미래의 내 모습도 결국 또 참회록을 쓸 상황이 되고 말거라는 위기감도 드러나 있다. 내일이나 모레의 '즐거운 날'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세이면서 삶의 반전을 꾀하는 부분이다. 다시 또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다짐 속에 암담한 현실의 밤을 자신을 성찰하는 노력으로 지새운다. 성찰의 매체가 된 거울을 닦음으로써 욕된 자아와 결별하고 도덕적인 자아를 만나려는 것이다. 손 바닥 발바닥이 드러내듯 온 몸으로 노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슬픈 사람은 상황에서 비쳐진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빛을 잃은 우주 공간의 운석 위에 있다. 자신의 내적 성찰을 통한 사람은 도덕적이다. 희망을 예비하는 일은 이렇게 도덕적이어야 한다. 거울 속의 나는 적극적 의지의 자아이며 내적 갈등이 해소된 모습이다.
◆ 윤동주와 창씨개명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말미에는 이 시를 쓴 날짜가 1942년 1월 24일로 적혀 있다. 물론 이 날짜는 그 이전부터 숱한 생각을 되풀이하며 써 오던 작품을 마침내 완성해서 최종적으로 적어 놓은 것이겠다. 윤동주는 '참회록'을 완성하기 한 달 전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1941년 12월 27일)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1941년 12월 8일, 일제는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급박한 시국에 따른 학제 단축으로 졸업이 2~3개월 정도 앞당겨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서울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와 겨울을 보내면서 '참회록'을 쓴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로 와서 모교인 연희전문학교에 '평소동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계출하였던 바, 연전 학적부에 그 계출한 날짜가 정확히 1942년 1월 29일로 기록되어 있다.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려면 도항 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할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동주가 동경에 있는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것은 1942년 4월 2일이었다. '참회록'은 이러한 행적과 관련된 시인의 고뇌가 가득히 어려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 불과 닷새 전에 이 시를 완성해서 적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치욕스럽게도 창씨개명계를 내야 했던 그 즈음의 시인의 내면을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 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인 시가 곧 '참회록'이라는 것이다.
-류양선, '윤동주의 '참회록' 분석', "한국 현대 문학 연구" 제25집, 한국현대문학회, 2008
[작가소개]
윤동주[ 尹東柱 ]
<요약>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출생-사망 : 1917.12.30 ~ 1945.2.16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북간도(北間島)
주요작품 : 〈서시(序詩)〉,〈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네이버 지식백과] 윤동주 [尹東柱] (두산백과)
[출처] 십자가(윤동주)|작성자 옥토끼
첫댓글 유물로 보는 나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건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