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林悌)와 한우(寒雨)의 ‘로맨틱 시화(詩話)
북쪽 하늘 맑다기에 / 임제
북쪽 하늘 맑다기에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판에는 찬 비로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조선 중기 풍류남아인 백호 임제(林悌, 1549~1587)가
기생 한우(寒雨)에게 ‘작업’을 걸면서 건넨 시입니다.
그는 강직한 성격에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었지요.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습니다.
35세 때 평안도사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개성의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 차림으로 제를 지내며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 난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무쳤난이
잔 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라는
추도시를 읊었다가 파직되기도 했지요.
이 시를 보면, 임제가 한우에게 건네는 ‘수작’이 눈에 선하죠?
길을 나설 땐 하늘이 맑다고 했는데 갑자기 찬 비를 맞았으니 얼어 잘 수밖에 없게 됐니라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유발시키는 모양새입니다.
어찌 보면 모성애를 자극하려는 희극으로도 보이는데, 그 상징이나 은유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기생 이름인 한우(寒雨)가 ‘찰 한, 비 우’이니 그대로 ‘찬비’가 아닌가요.
비 맞고 춥게 자게 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속내는 한우와 함께 잘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임제의 로맨틱한 프러포즈에 한우는 이렇게 화답했지요.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얼어 자기는커녕 원앙금, 비취 이불 덮고 따뜻하게 녹아 잘 수 있게 하겠다니
그야말로 임제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이름은 ‘찬 비’이지만
속으론 뜨거운 가슴을 지녔기에 꽁꽁 언 몸도 포근히 녹일 수 있다는 그녀의 풍류와
사랑 또한 당대 제일 시인의 격에 맞춤하지요.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주고받는 것이 필담(筆談)이라면, 시로써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시담(詩談)
혹은 시화(詩話)입니다. 시를 매개로 한 교감은 직설적인 말보다 훨씬 운치 있고 효과도 크지요.
그중에서 임제와 한우의 ‘로맨틱 시화’는 최고봉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남녀 상열지사 상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CEO나 비즈니스맨들이 영업과 협상 자리에서 얼마든지 멋진 ‘커뮤니케이션 시화’를 활용할 수 있겠지요.
시는 기업 경영자에게 최대의 성과를 올려주고, 샐러리맨들에게는 최고의 연봉을 보장해 주는 ‘영혼의
비타민’이기도 하니까요
<출처 : 한국 경제/고두현의 아침 시편>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