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년 전식(全埴) 고신(告身)
·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 영조 이금(李衿)
수취 : 전식(全埴)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乾隆二十一年(1756)
· 형태사항 54.3 X 78.8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10.0*10.0, 施命之寶)
· 원소장처 강릉 정선전씨
· 현소장처 오죽헌시립박물관
연결자료
· 1765년 전식(全埴) 준호구(準戶口)
· 1804년 전종권(全宗權) 준호구(準戶口)
· 1822년 전종권(全宗權) 준호구(準戶口)
· 1825년 전종권(全宗權) 준호구(準戶口)
· 1828년 전종권(全宗權) 준호구(準戶口)
· 1837년 전희봉(全希鳳) 준호구(準戶口)
· 1840년 전희봉(全希鳳) 준호구(準戶口)
· 1843년 전양묵(全養默) 준호구(準戶口)
· 1846년 전양묵(全養默) 준호구(準戶口)
· 1852년 전우(全瑀) 준호구(準戶口)
· 1855년 전재춘(全在春) 준호구(準戶口)
· 1773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4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4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4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4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3년 전택리(全宅理) 고신(告身)
· 1774년 전씨(全氏) 추증교지(追贈敎旨)
· 1774년 전식(全埴) 추증교지(追贈敎旨)
· 1774년 정씨(丁氏) 추증교지(追贈敎旨)
· 1774년 전선응(全宣應) 고신(告身)
· 1774년 신씨(辛氏) 추증교지(追贈敎旨)
· 1849년 전양눌(全養訥) 준호구(準戶口)
· 1852년 전양눌(全養訥) 준호구(準戶口)
· 1780년 전종반(全宗磐) 홍패(紅牌)
· 1855년 전양눌(全養訥) 준호구(準戶口)
· 1790년 전종권(全宗權) 홍패(紅牌)
· 1861년 전양눌(全養訥) 준호구(準戶口)
· 1823년 전희봉(全希鳳) 홍패(紅牌)
· 1873년 전재익(全在翼) 준호구(準戶口)
· 1820년 전양묵(全養默) 홍패(紅牌)
· 1876년 전재익(全在翼) 준호구(準戶口)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56년(영조 32) 정월에 국왕이 전식(全埴)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하는 고신(告身)이다.
절충장군은 무관 벼슬 정3품 당상관의 첫째 품계이고, 첨지중추부사는 중추부(中樞府)의 정3품 벼슬을 이른다. 따라서 이 고신을 통해 전식이 정3품의 품계와 관직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문서의 왼쪽에는 교지를 내리는 날짜를 기재하고, 그 우측에는 가설(加設)이라 기재하여 정원 외 관직을 더 마련하여 임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56년(영조 32) 정월에 영조가 全埴을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하는 告身이다.
조선시대의 임명장에는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四品以上告身, 五品以下告身과 그 외에 差帖의 성격을 가진 口傳差帖과 官長의 임명 差帖, 군대의 장이 소속부하를 임명한 傳令 등이 있다.
고신의 문서형식은 경국대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의 오른쪽에는 '敎旨'라 명시하고, 가운데에는 관직을 받는 이의 이름과 무슨 품계에 무슨 벼슬을 받는지 적는다. 왼쪽에는 교지를 내리는 年月日을 기록하는데, 年과 月사이에 施命之寶를 답인한다. 그리고 날짜 좌측에 임명하는 사유를 본문의 글씨보다 작은 크기로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기재되어 있다. 먼저 문서의 오른쪽에 '敎旨'가 명시되어 있고, 전식을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여기에서 절충장군은 무관 벼슬 정3품 당상관의 첫째 품계이고, 첨지중추부사는 中樞府의 정3품직을 이른다. 따라서 이 고신을 통해 전식이 정3품의 품계와 관직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서의 왼쪽에는 문서 발급일이 乾隆 21년 정월로 기재되어 있고, 그 우측에는 加設이라 기재하여 정원 외 관직을 더 마련하여 임명한 것을 밝히고 있다.
전식과 관련된 문서는 이 고신 외에 1765년에 전식이 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가 현전한다. 이 준호구에 따르면 전식은 1687년(숙종 13, 정묘)생으로 본관은 정선이며, 江陵府 北面二里 林堂里에 거주하였다. 부친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全宣應이고, 생부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全宣益이다. 전식은 아들 둘이 있었는데, 全宅理와 全宅瑾이다.
참고문헌
유지영,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정구복,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고문서연구9,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정지연
[출처] 한국학자료센터 강원권역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