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움이란/김방자
고쿠락추천 0조회 1223.08.18 08:53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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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는 날 약속된 장소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출근시간이라 지하철 4호선은 ‘하일리겐슈타트’ 역에서부터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승객이 승차했다. 일찍 서두르느라 아침 식사도 못 했는지 옆자리의 젊은 여자는 빵을 먹으며 캔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핸드폰을 보는 사람, 음악을 들으면서 흔들거리는 사람,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다. 그때 내 바로 앞좌석에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부스스한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핸드백에서 화장품을 꺼내어 화장을 시작하였다. 얼마나 바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시선은 그 여자의 화장하는 얼굴로 관심이 갔다. 안보는 척하면서도 눈 화장에서부터 변해가는 그 여인의 얼굴을 수시로 훔쳐봤다. 내가 ‘스쉐덴플랏츠’ 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녀의 얼굴화장은 진행 중이었다. 나는 1호선 차로 환승하기 위해 내려야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을까 매우 궁금하였다.
몇 년 전 한국으로 여행 갔을 때 지하철 안에서 화장하는 젊은 여성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빠른 솜씨로 변해가는 얼굴 모습을 보며 마치 화가의 붓놀림 같은 놀라운 화장 솜씨에 속으로 은근히 감탄이 나왔다. 남의 시선을 전려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얼굴 화장에만 몰두하는 행동은 우리가 젊었을 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형수술이 발달되어 기술이 세계 1위라고 한다. 눈, 코, 입, 주름, 그리고 레이저로 피부 박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얼굴형도 맞춤형이 있다니 참 희한한 세상이다. 어떤 영화배우의 얼굴과 비슷하게 해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도저히 구별이 안 되는 두 젊은 새댁이 아래 위층에 살고 있었다. 체격이 엇비슷한 그들은 쌍둥이라고 할 만큼 둘의 얼굴모습이 많이 닮아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같은 의사에게서 성형수술을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간 곳에서 내게 반갑게 인사하는 한 여인을 미처 알아보지 못해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본인의 이름을 댔다. 그제야 나는 변모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으나 조금은 혼돈스러웠다.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서 낮선 사람과 만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많이 변했지요? 돈 좀 들었어요” 라고 한다. 정말이지 그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세상이 좋다고나 할까. 성형수술은 아예 예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의사를 택해야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후회하는 수도 있다. 내 친구 한명은 쌍꺼풀 수술이 잘못되어 눈이 짝짝이가 되었지만 자기 남편 친구가 호의적으로 해준 수술이라 항의도 못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조금 낮은 코를 높이는 수술을 해서 코 모양은 예뻐졌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수술을 한 부위가 욱신거리는 날궂이를 한다고 한다. 그런 후유증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수술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늦은 후회를 한다.
성형 술은 예뻐지기 위한 성형과 젊어지기 위한 성형술이 있다. 여자라면 누구나 예뻐지려는 욕심이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물려받은 그대로의 얼굴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름진 얼굴이 싫어서 보톡스를 주사하거나 주름제거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다고 꼭 젊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등의 주름은 그대로인데 얼굴만 팽팽하면 잘못된 조립품같이 오히려 엇박자 장단이라서 더 어색할 수도 있다. 한국드라마에 나오는 어느 여배우는 주름제거 수술을 했는지 마치 석고 같은 모습이었다. 웃을 때 그녀의 표정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였다. 원래 그녀의 모습은 청순 단아했고 미소가 예쁜 탤런트였다. 자연 그대로 늙은 모습의 연기를 보여줬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것을!
‘로마의 휴일’에서 청순한 모습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유엔 아동기구’에서 헌신했으며 자비와 사랑이 넘친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늙어가고 있었다. 또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신 마리아 테레지아 수녀님은 주름지고 자글자글한 모습이지만 그녀의 티 없이 밝은 미소는 천사와도 같았고, 깊이 파인 두 눈은 항상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마치 훈장 같이 파인 주름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사랑의 메시지는 매우 강하였다.
얼굴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거울은 말끔히 잘 닦아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표정으로 자신의 미를 가꾸는 사람은 늙어가면서도 그 표정이 관리되기 때문에 역시 아름답다. 참 아름다움이란 성형수술이나 화장술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하고 맑은 표정이 아닐까?
김방자 :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지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거주하고 있는 수필가 및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