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분시돌(狼奔豕突)
이리처럼 내달리고 멧돼지처럼 돌진한다는 뜻으로, 나쁜 무리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말이다.
狼 : 이리 낭(犭/7)
奔 : 달릴 분(大/5)
豕 : 돼지 시(豕/0)
突 : 갑자기 돌(穴/4)
다산이 영남 선비 이인행(李仁行)에게 준 친필 글씨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긴 글을 간추려 읽는다.
편당(偏黨)이 나뉘면 반드시 기이한 재앙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일만 논해보겠다. 동인과 서인이 나뉘자 기축년의 옥사가 일어났고, 남인과 북인이 갈리매 북인은 마침내 큰 살육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노론과 소론이 나뉘고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이 갈라서자, 죽이고 치는 계교를 펼쳐, 밀치고 배척하여 떨치지 못하였다.
말의 날카로움은 창보다 예리하고, 마음자리는 가시 돋친 납가새나 명아주보다 험하다. 뜻을 같이하는 자는 부추겨서 드넓은 길로 내보내 돕고, 뜻을 달리하는 자는 밀쳐서 구렁텅이에 몸을 빠뜨린다.
헛것을 꾸미니 패금(貝錦)으로 글을 이루고, 기운을 부리자 화살과 돌멩이가 비오듯 한다. 듣는 이가 하품하고 기지개 켜는 것은 돌아보지 않고, 논하는 자가 꾸짖어 물리치는 것도 생각지 않는다.
선배의 충후한 풍도는 잃어버리고, 시속의 경박한 자태만 받아들인다. 병장기를 각자 마음속에 숨겨놓고, 덫을 놓아 눈앞에서도 알 수가 없다. 그 솟구쳐 부딪치는 연유를 들어보면 모두 젊은이들이 객기를 부려서 마침내 이에 이른 것이다.
만약 나이가 많은 덕 높은 이가 이들을 야단쳐서 금지시켜 감히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했다면 그 흐름이 어찌 마침내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
번번이 나는 옳고 저쪽은 그르다면서 늘 자기는 펴고 남은 꺾으려 든다면 되겠는가? 내가 비록 백 번 옳고 저가 비록 백 번 그르다 해도, 서로 끊임없이 공격한다면 벌써 더러운 것과 결백한 것이 같아지고 만다."
190년 전에 쓴 글인데, 눈앞의 일을 예견해 말한 듯 생생하다.
멧돼지가 도심을 출몰하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못 된다. 먹잇감을 찾아 아파트 단지와 운동장을 횡행하다, 먹이를 얻지도 못한 채 엽총에 맞아 비명에 죽는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낭분시돌(狼奔豕突)이란 말이 있다. 이리 승냥이가 길길이 날뛰고 멧돼지가 저돌적(猪突的)으로 돌진하는 형국을 말한다. 무리 지어 패악을 부리며 길길이 날뛰느라 소란스러운 상태를 일컫는다. 오랑캐가 중원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피를 본 이리는 눈에 뵈는 것이 없다. 굶주린 멧돼지는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다. 도심에 뛰어든 멧돼지는 이치로 달래서 산속으로 돌려보낼 방법이 없다.
▶️ 狼(이리 랑/낭)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良(량, 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狼(랑)은 ①이리(늑대. 갯과의 포유 동물) ②짐승의 이름 ③별의 이름, 천랑성(天狼星: 시리우스) ④사납다, 거칠고 고약하다 ⑤어지럽다 ⑥허둥지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리 패(狽)이다. 용례로는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을 낭자(狼藉), 이리처럼 욕심이 많고 도리에 어긋남을 낭려(狼戾), 옛날 전쟁 때 신호로 쓰던 불을 낭연(狼煙), 이리의 똥을 태워서 그 연기로 올리는 봉화를 낭봉(狼烽), 이리의 똥을 낭분(狼糞), 화포의 한 가지를 낭기(狼機), 족제비의 꼬리를 낭미(狼尾), 족제비를 낭서(狼鼠), 사납고 모짊을 낭완(狼頑), 멀리 떨어진 변방을 낭황(狼荒), 성미가 워낙 고약하여 쉽게 뉘우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낭질(狼疾), 이리와 같이 배부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꾸 욕심을 냄을 낭탐(狼貪), 성질이 이리처럼 거칠고 마구 덤벼들기를 잘 함을 낭항(狼抗), 계획하거나 기대한 일이 실패하거나 어긋나 딱하게 됨을 낭패(狼狽), 이리는 뒤를 잘 돌아본다는 뜻으로 경계하려고 또는 무서워서 뒤를 돌아봄을 낭고(狼顧), 이리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인정도 없고 탐욕만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낭심(狼心), 난감한 처지에 있음을 낭패불감(狼狽不堪),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같이 탐내고 범처럼 노려봄을 이르는 말을 낭탐호시(狼貪虎視), 흉악한 무리들이 모략을 꾸미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낭패위간(狼狽爲奸) 등에 쓰인다.
▶️ 奔(달릴 분)은 ❶회의문자로 고자(古字)는 夭(요; 사람이 달리는 모양)와 세개의 止(지; 발)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양손을 흔들며 달리는 모양인 글자로 힘차게 계속하여 달린다는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奔자는 '달리다'나 '급히 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奔자는 大(클 대)자와 卉(풀 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奔자의 금문을 보면 팔을 좌우로 휘두르며 달리는 사람과 아래로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止자가 여러 개 그려진 것은 매우 바삐 달려가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止자가 艸(풀 초)자로 바뀌었고 해서에서는 이것이 다시 卉자로 표현되면서 지금의 奔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奔(분)은 ①달리다 ②급히 가다 ③빠르다 ④향해 가다, 급히 향해 가다 ⑤달아나다, 도망쳐 내닫다, 패주(敗走)하다 ⑥도망(逃亡)가다 ⑦예를 갖추지 않고 혼인(婚姻)하다 ⑧야합(野合)하다, 공서(共棲)하다 ⑨빨리 ⑩유성(流星)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달릴 주(走), 달릴 치(馳), 달릴 빙(騁), 달릴 취(驟), 몰 구(驅)이다. 용례로는 이리저리 바쁨을 비유하는 말을 분주(奔走), 매우 바쁨을 분망(奔忙), 달려가서 알림을 분고(奔告), 물건값이 갑자기 뛰어 오름을 분등(奔騰), 물건값이 갑자기 내림을 분락(奔落), 힘차게 내달림으로 거리낌이나 얽매임이 없이 제멋대로 임을 분방(奔放), 뛰어서 도망함 또는 제 마음대로 행동함을 분일(奔逸), 지지 않으려고 몹시 다투는 일을 분경(奔競), 내달리듯 빠르고 힘차게 흐름을 분류(奔流), 빨리 닫는 말을 분마(奔馬),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바삐 돌아다님을 분명(奔命), 달아나 뿔뿔이 흩어짐을 분산(奔散), 먼 곳에서 어버이의 죽음을 듣고 집으로 급히 돌아감을 분상(奔喪), 세게 쏟아져 나옴을 분출(奔出), 세찬 물결을 분파(奔波), 달려가서 위로의 인사를 함을 분위(奔慰), 도망하여 숨음을 분닉(奔匿), 달려 가서 문안이나 위문을 드림을 분문(奔問), 패하여 달아남을 분붕(奔崩),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지둥 뛰어다님을 분황(奔遑), 기운차게 물이 흘러 들어감을 분주(奔注), 어떤 일을 꾀하여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광분(狂奔), 앞을 다투어 달림을 경분(競奔), 놀라서 달아남을 경분(驚奔), 힘차게 내달림을 방분(放奔), 빨리 달아남을 쾌분(快奔), 도망하여 달아남을 출분(出奔), 천둥소리가 퍼지는 것처럼 빨리 달아남을 뇌분(雷奔), 뛰어서 달아남 또는 물가가 치솟아 몹시 오름을 등분(騰奔), 남녀가 야합함이나 음탕한 행동을 함을 음분(淫奔), 세력 있는 사람을 찾아 다니며 벼슬을 구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분경매작(奔競媒爵), 부산하게 바빠서 겨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분주불가(奔走不暇),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뜻으로 사방으로 이리저리 바삐 돌아 다님을 일컫는 말을 동분서주(東奔西走),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이 자유로움을 이르는 말을 자유분방(自由奔放), 물결처럼 밀리고 오이덩굴처럼 갈라진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의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여러 갈래로 나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파분과열(波奔瓜裂), 바람에 물결이 밀리고 풀이 쓰러진다는 뜻으로 뭇사람이 시국의 형편이나 추세에 휩쓸려 따름을 이르는 말을 파분초언(波奔草偃), 여러 가지 생각이 아주 빠르게 잇달아 떠오르거나 연상 작용이 매우 빨라서 생각이 일정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을 관념분일(觀念奔逸) 등에 쓰인다.
▶️ 豕(돼지 시)는 ❶상형문자로 豖(시)의 본자(本字)이다. 돼지의 머리, 네 다리와 꼬리의 모양을 본떴다. ❷상형문자로 豕자는 '돼지'를 그린 글자이다. 豕자는 인간이 사육하던 돼지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豕자를 보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돼지가 이미지그려져 있었다. 돼지는 체질이 건강해 어느 기후나 풍토에도 잘 적응하며, 짧은 기간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가축이기도 하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肉(고기 육)자만으로도 돼지고기를 뜻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자에는 유달리 돼지와 관련된 글자가 많다. 豕자도 그러한 글자 중 하나로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돼지나 몸집이 큰 동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豕(시)는 돼지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돼지 해(亥), 돼지 저(猪)이다. 용례로는 돼지의 우리를 시권(豕圈), 돼지처럼 식식 숨을 쉼을 시식(豕息), 모양이 솥과 같이 생겼으며 밑에 달린 세 개의 발이 돼지 대가리처럼 생긴 제기의 한 가지를 시정(豕鼎), 욕심이 많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돼지 같은 마음을 시심(豕心), 돼지 입과 같다는 뜻으로 인상印象에 욕심이 많아 보이는 사람의 비유한 말을 시훼(豕喙), 큰 돼지를 봉시(封豕), 우리 안의 돼지를 권시(圈豕), 문견이 좁은 사람이 흔히 있는 사실을 자기 혼자 신기하게 생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연시(燕豕), 약재로 단풍나무의 뿌리에서 생기는 버섯을 시탁(豕槖), 교외에 나가서 천지의 신에게 교제郊祭를 지낼 때 희생으로 쓰는 돼지를 교시(郊豕), 견문이 넓지 못한 사람이 신기하게 여기고 떠드는 것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흔한 것인 경우에 쓰이는 말을 요동시(遼東豕), 돼지처럼 대하고 짐승처럼 기른다는 뜻으로 사람을 예로써 대우하지 않고 짐승같이 대한다는 말을 시교수축(豕交獸畜),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魯와 魚 그리고 亥와 豕는 글자 모양이 비슷해 잘못 쓰는 오류를 범하기 쉬움을 이르는 말을 노어해시(魯魚亥豕), 글씨가 서로 엇비슷하여 쓸 때에 잘못 써서 다른 뜻으로 잘못 전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해시지와(亥豕之譌), 뱀처럼 모로 가다가 돼지처럼 갑자기 돌진한다는 말을 사횡시돌(蛇橫豕突), 식욕이 왕성한 큰 돼지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는 긴 뱀이라는 뜻으로 탐욕한 악인을 두고 이르는 말을 봉시장사(封豕長蛇) 등에 쓰인다.
▶️ 突(갑자기 돌)은 ❶회의문자로 宊(돌)의 속자(俗字)이다. 穴(혈)과 犬(견; 개)로 이루어졌다. 개가 구멍에서 뛰어 나온다는 뜻이 전(轉)하여 힘차게 내밀다, 갑자기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突자는 '갑자기'나 '쑥 나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突자는 穴(구멍 혈)자와 犬(개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동굴과 개를 함께 그린 것이 왜 '갑자기'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동굴은 깊고 어두운 곳이기 때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突자는 어두운 동굴에서 개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갑자기'를 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突(돌)은 성(姓)의 하나로 ①갑자기 ②갑작스럽다 ③내밀다 ④쑥 나오다 ⑤부딪치다 ⑥구멍을 파서 뚫다 ⑦굴뚝 ⑧대머리 ⑨사나운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갑자기 졸(猝), 갑자기 홀(忽)이다. 용례로는 어떤 곳이나 상태에 기세 있게 뛰어드는 것을 돌입(突入), 무찔러 깨뜨림이나 뚫어 깨뜨림을 돌파(突破), 갑자기 쑥 나옴이나 툭 튀어나옴을 돌출(突出), 갑작스러움이나 갑자기를 돌연(突然), 갑자기 거세게 일어나는 바람을 돌풍(突風), 갑자기 일어남을 돌기(突起), 거침없이 곧장 나아감을 돌진(突進), 일이 뜻밖에 일어남을 돌발(突發), 적진을 향하여 거침없이 나아가 침을 돌격(突擊), 갑자기 변함을 돌변(突變), 툭 불거진 모퉁이나 끝을 돌각(突角), 세차게 돌진하여 지나감을 돌과(突過), 치솟음이나 쭈뼛하게 섬을 돌립(突立), 펄쩍 뛰어 남을 돌비(突飛), 돌진하여 싸움을 돌전(突戰), 글을 거침없이 외움을 돌송(突誦), 쌍방의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서로 맞섬을 충돌(衝突), 올차서 꺼리는 마음이 없음을 당돌(唐突), 세차게 부딪침을 격돌(激突), 방에 고래를 켜고 구들장을 놓고 흙을 발라 바닥을 만들고 불에 때어 덥게 만드는 장치를 온돌(溫突), 주인의 허락 없이 남의 집안에 쑥 들어감을 일컫는 말을 내정돌입(內庭突入), 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부딪침을 일컫는 말을 좌충우돌(左衝右突), 평지에 산이 우뚝 솟음으로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옴을 비유하는 말을 평지돌출(平地突出),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미리 방지하라는 말을 곡돌사신(曲突徙薪)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