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비추는 전남 목포의 바다. 그 물결을 따라서 곱고 애틋한 이야기가 흐른다.
바다가 있다. 시린 바람이 무시로 쓸고 지나가도 수면에 번지는 물결은 잔잔해 봄날 나뭇가지 같다. 망울인 양 물결에 매달린 배들이 땅과 땅 사이를 흔들어 바다에 줄을 긋는다. 배가 오가는 자취를 따라 망울이 터지고 잎이 벌어진다. 멀리서는 울창하게 핀 섬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머금듯 수평선을 휘감아 덮었다. 풍경은 이렇게 약동하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다는 묵묵해서 높게 자라난 자신의 길고 긴 여정을 내비칠 뿐이다. 깊이 뿌리내려 굳건한 나무, 목포에는 바다의 이야기가 있다.
북항스테이션을 출발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왕복 거리가 6.46킬로미터로 한국에서 손꼽힐 만큼 길다.
목포해상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바다
어느 도시든 역사에 굽이가 없겠느냐만 한때 목포엔 시대의 격랑이 통째 몰아쳤다. 조선 시대까지는 유달산 자락이 중심인 그리 크지 않은 고을이었다. 서해와 내륙을 잇는 영산강 뱃길의 들머리이기에 요충지로 주목받았어도 한반도 흥망사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다 1897년 목포항이 열렸다. 부산, 원산, 인천에 이은 네 번째 개항장이었으며, 외세가 강요해서가 아닌 왕이 칙령을 내려 도모한 첫 번째 개항장이었다. 정부는 해관을 설치해 관세 수입을 늘리고자 했고 감리서를 두어 자주국으로서 외교를 꾀했다. 나라가 나라의 주권을 빼앗는 광풍이 세상을 할퀴던 시절, 목포는 존립으로 가는 들머리가 되었다.
하지만 희망은 여러 갈래로 퍼질지언정 역사는 외길을 걷는다. 익히 아는 바대로 우리가 주시한 목포를 침략자 또한 눈여겨보았다. 항구를 저열한 욕망의 도구로 삼은 일제가 제 나라 사람과 시설을 부어 넣었다. 목포는 손꼽히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으나 숱한 이가 내쫓겨 터전을 겉돌았다. 시대의 격랑은 사무치도록 격렬했다.
해발 228미터 유달산은 해발고도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한 조망을 선사한다. 전망대와 정자가 곳곳에 자리해 쉬엄쉬엄 구경하기 좋다.
다시 바다는 묵묵하다. 북항스테이션에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을 넘어 나아간다. 최고 155미터 상공에선 다 아스라해 풍경이 하나로 다가온다. 유달산에서 양을산에 이르는 광활한 공간에 도시가 그득하고 영산강은 삼학도에서부터 서서히 바다로 빠진다.
대양에서 몰려오는 파랑을 끊어 내는 섬들이 목포대교와 육지 틈새 바다를 고요히 어른다. 바람이 수면에 계속 줄무늬를 그리건만,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목포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격렬했던 옛일을 저기 두어 개, 다른 어디엔 더 많이 간직하고도 다만 오늘을 해사하게 보여 준다. 어찌 아니 아름다울까. 한낮의 볕살이 때맞춰 바다에 내려앉는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왕복 거리가 무려 6.46킬로미터다. 주탑의 최고 높이 155미터 역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 길이와 고도를 통해 짐작은 되어도, 케이블카가 선사하는 비경은 이렇듯 예상을 가볍게 넘어선다. 북항스테이션에서 출발해 유달산 정상부와 고하도를 거쳐 기점으로 돌아오는 40분간 목포를 고이 보여 주는 것이다. 유달산과 고하도에도 스테이션이 놓인 덕분에 각각 하차한 뒤 걸어서 주변을 감상할 수 있다.
공중에서 감탄스럽게 마주한 목포의 속살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유달산을 오른다. 정상은 해발 228미터로 이 땅의 산으로서 높다고 말하긴 어렵다. 더구나 스테이션은 중턱에 자리하기에 목적지인 마당바위는 여기서 가깝다. 굳은 겨울 산을 밟아 갔다. 길옆이 돌과 나무로 연이어 겉모양을 바꾸며 얼마간 시야를 가린다. 능선이 낮아지고, 숲이 물러나고, 바라보이는 경계가 확장하는 어느 때 마침내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왕복 40분이 소요된다. 북항스테이션은 물론이고 유달산과 고하도에서도 탑승할 수 있다.
유달산이 건네는 목포의 비경
정상인 일등바위 바로 아래, 이곳에선 무엇도 눈길을 막지 않는다. 서쪽엔 해가 빛을 내려 물들이는 바다, 동쪽엔 대지가 보살피는 인간의 삶이 가없이 펼쳐진다. 빛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를 목도하면서 차마 고개 돌리지 못해 오래 서 있었다. 한 시절 치열하게 흔들리고도 이토록 영화로워 눈물겨운 도시가 등 뒤에서 따듯한 숨결을 보낸다.
눈길이 닿는 데마다 무해한 풍경이 날아드는 유달산을 감히 해발만으로 말하겠는가. 바다는 바다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순백 같은 저를 기대 의지하니, 유달산은 가장 무구한 산일지 모른다. 낱낱이 이어지는 모든 정경 앞에서 뒤엉킨 마음은 해로운 감정들을 떨친다. 멀리 등마루 위를 통과하는 케이블카 하나가 억센 갯바람에 기우뚱하다 곧 자세를 바로잡고 경관을 가로지른다. 목포가 기어코 찬란한 것처럼. 그 품에서, 우리도 목포가 되어 간다.
목포문학관은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과 관련한 유품과 자료를 전시한다. 문예대학 등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땅과 사람이 함께 쓴 글, 목포문학관
극작가 김우진·차범석, 소설가 박화성, 문학평론가 김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이미 가슴은 벅차오른다. 당대에 명성을 드날리고도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껏 찬사를 받는 문인들을 목포가 길렀다. 수탈당한 과거로부터 유달산의 꿋꿋한 현재까지, 넘어지고 일어나고 전진하는 이곳 사람들의 궤적이 양분이 되었으리라. 삼학도 인근에서 2007년 문을 연 목포문학관은 그런 네 거장의 삶을 유족과 지인이 기증한 유품·자료로 내보인다.
1층 만남의 홀 왼쪽은 차범석관이다. 민중을 세심히 들여다본 선생은 <산불> <불모지> 등에서 억압과 그에 따른 고통을 철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수많은 잡상인이 득실거리는 현실 속에서 오늘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답을 모색한 흔적이 저 원고지들에 남았다. 질문은 여전히 매섭게 시대를 꿰뚫는다. 언젠가 뜻이 모인 대답이 반대로 우리의 아둔함을 꿰뚫어 주기를, 질문을 다시 모두에게 던지고 차범석관을 나선다.
박화성 선생은 일제강점기, 그를 이어 산업화가 지상 목표였던 시기를 “펜 하나로 꿈을 그려 낸 세한의 송백”인 듯 굳게 살았다. 부조리를 조리로 포장하는 세상이었다. 여성에게 세상이 강제한 굴레를 <추석 전야> <벼랑에 피는 꽃> 등 작품 속 각성하는 여성을 통해 부수어 갔다. 성별 양상으로 치부해 외면하는 세간 한구석 좁은 견해를 벗어난 문제의식은, 차범석 선생과 같이 오늘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킨다.
글이 빼곡한 목포문학관을 걸으며 극예술을 선도한 김우진, 평론을 문학으로 끌어올린 김현 선생의 삶을 내리읽는다. 저마다 일가를 이룬 발군의 혼이 목포에서 피어났다. 유달산을 닮은 향기가 문학관 앞 영산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번진다. 세한의 송백과 다름없이 굳게, 그래서 기어코 찬란한 길을 향해서.
삼학도크루즈는 삼학도 계류장에서 출항해 목포대교 인근 바다까지 간다.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은 두 차례, 금요일과 주말엔 세 차례 운행한다.
목포와 눈을 맞추고, 삼학도크루즈
하늘이 붉은 햇무리에 젖어 든다. 차가운 공기가 동녘에서 어둠을 잡아당긴다. 가매지는 바다는 더 짙은 내음을 땅으로 흘려보낸다. 밤이 오고 있다. 오차 없이 뜨고 지는 해를 날마다 목격하면서도 내일을 의심하는 우리의 미련스러운 오차. 불멸할까 봐 두렵게 여기는 어둠이이야말로 뜨겁게 산 이날을 보상하는 휴식이자 담날이 오리라는 약속이었던 것을. 봉우리 셋이 옹기종기한 삼학도에 들어 밤을 준비한다. 공기는 차가우나 어둠이 곱다.
삼학도 계류장에 도착해 삼학도크루즈를 탔다. 이른 오후에도 운항하지만 케이블카의 하늘과 유달산의 땅, 그리고 바다를 차례로 만나고 싶어 이 시간을 선택했다. 눈높이를 맞춰 가는 동안 목포는 점점 깊어지겠으니. 오후 5시, 배가 부두를 떠난다. 선내에서 몸을 녹이다 부두를 다 빠져나갈 즈음 뱃마루로 나왔다. 겨울이 오롯하다. 옷깃을 여미고 숨을 들이쉰다. 사느란 기운이 손끝까지 퍼져 몸이 움츠러든다.
뱃마루에 머무르기로 한다. 편하자고 비켜나서 마주하지 못한 순간 중 몇몇은 아마 그다음을 결정짓는 계기였을 것이다. 바다는 시나브로 어두워지는데, 집집이 불을 밝힌 도시가 환하다. 어스름이 사근사근 유달산 서쪽으로 제 몸을 옮기고, 어스름보다 검으나 밤은 아닌 하늘이 반대편을 휩싼다. 배는 계속 저녁과 밤의 갈림목을 항해한다. 유달산, 고하도 곁을 스치고는 목포대교에 다다를 무렵 서쪽이 전부 검어졌다. 밤이 왔다. 사방이 빛을 낸다. 목포를 완전하게 마주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오후 5시에 출항하는 삼학도크루즈를 타면 목포대교로 가는 동안 낙조를, 부두로 돌아오는 동안 밤하늘을 감상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어둠 안에서 땅이 바다에 배어들고 바다는 하늘에 스며들어 목포는 오로지 빛이다. 조명을 켠 목포대교와 목포해상케이블카, 육지에 점점이 뜬 마을의 불빛, 하늘엔 달빛. 밤바다는 더욱 묵묵해 배가 미끄러지는 소리만 흩어지고 있다. 여기는 야단스러울 만큼 휘황해서 유흥하기 좋아도 헤어지면 잊히는 거리와 다르다.
이 밤, 이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억지스레 입꼬리를 올린 표정도, 과장해 떠벌리는 이야기도 없다. 목포의 빛은 잠잠한 밤바다를 감돌며 조금씩 마음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땅이다. 바다는 가만가만 모두 비추어 흐른다. 헤어져도 기억할 지금.
바다, 별 그리고 약속
배는 목포대교 인근 바다에서 방향을 바꿔 삼학도로 돌아간다. “보이지? 저기야.” 뱃마루에 서서 함께 풍경을 바라본 낯모르는 누군가가 일행에게 말했다. 다시금 함께 고하도 한편을 바라본다. 아득한 그곳에 정말 세월호가 있었다. 2017년 바닷속에서 올라온 세월호는 목포로 인양됐고 3년 뒤 고하도에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위에서 계획해 지시하고 아래에서 받드는 행정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2020년, 그해 목포 주민들은 스스로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야 한다 믿었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보다 차가워진 공기가 삼학도 가는 배에 눈처럼 내린다. 밤의 도시가 별빛 같아서 우리는 차가운 공기 속을 오래도록 지켰다. 삼학도에 가까워지자 배는 엔진을 끄고 물결에 저를 맡겨 느리게 나아갔다. 도시가 천천하게 영롱해지는 광경은 정녕 아름다웠다. 약속해 주듯이 그렇게, 목포의 밤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