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라는 진리 체계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아래 거하게 될 때, 우리의 인지구조는 지성적 안식을 얻는다. 흔히 많은 목사들의 설교는 예수를 영접한 선진 기독교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이교도 국가들을 비교하면서, 예수의 진리를 전하려 한다.
문제는 이 지성적 안식이 일종의 자기애(나르시시즘)로 변질되어, 일종의 자기 우상화에 빠지는 데 있다. 그 어떤 잘못을 해도,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는 교만이, 진리를 독점한 자들에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김홍도 목사나 김진홍 목사가 이 질병을 가장 크게 앓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예는 바로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식민지 정책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이다.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던 필리핀은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당시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저는 백악관 복도를 매일 밤 자정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며칠 밤 동안 빛과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음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신사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에게 이런 생각이 찾아 왔습니다. 곧 필리핀 전체를 차지한 다음, 그곳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양육하고 문명화하고 기독교화해야 하는 일 외에 다른 할 일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우리 동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잠자리에 들었고, 아주 깊이 숙면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화 정책으로 아태 지역의 미 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 참담하게 이용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움 없는" 기도이다. 이미 스페인 통치에 의해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예수를 믿었다[가톨릭]. 도대체 뭘 또 기독교화하려는 지 잘 모르겠지만, "교육"되고 "양육"되어 "문명화"된 사람들은 사실상 없다. 미국이 필리핀에 남겨 놓은 것은 영어 정도? 친미파[우리로 치면 친일파]가 여전히 필리핀 국부를 쥐락펴락 하고 있으며, 종속 경제는 장난 아니다. 그리고 자기 말이 아니라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쪽팔린 짓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빛과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다음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편안한 숙면을 영적으로 취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이 기도로 인해, 수없이 많은 필리핀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어떤 잘못도 지은 적이 없는데, 불면의 밤을, 고문과 고통의 밤을 그리고 양심이 찢어지는 절규의 한을 포효해야 했다. 그리스도는 정녕 제국주의자들을 위해 "죽으"셨는가? 따져 볼 일이다.
기도를 장려하는 목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기도응답의 확실성이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진영논리 즉 우리편과 니네편의 갈림길의 교차로에서 인증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도 여전히 말씀을 이용한다.
우리편이 간구하는 모든 것, 또는 실천하려는 모든 것은 결국 다 이루어져야 한다. 상대편의 입장과 아픔이 무엇이든 말이다. 따라서 위의 저 신실한 어느 거듭난 대통령의 기도도 철저히 이기적이고 철저히 자기애적이다. 그는 확신 속에서 편안히 잠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다!!!
기도가 때로는 자기 우상화를 가속시킨다. 자기 우상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될 때 더욱 심각하다.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가 부활절 설교 때, 신천지를 발견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도전정신을 본받자고 주장했다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신!! 컬럼버스에게 아메리카는 신천지였을 지 몰라도, 그 땅의 백성[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토착민; 컬럼버스는 그들이 진짜 인도 사람인 줄 알고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렀다! 서양애들이 우리 나라 점령하고는 우리를 짱깨나 쪽발이라고 불러봐라. 그럼 미친 놈들 아닌가?]에게는 재앙일 뿐이다. 도대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제국주의 정신이 예수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의 확신과 기도 속에서 언제나 그리스도는 이용당한다. 마치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철저히 이용하려 했듯이. 우리의 고백과 교회의 전능에 대한 확신을 십자가에 비춰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