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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처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
제 6 장 상가의 생활
2. 우기
오늘의 인도는 인도양에 돌출한 역삼각형의 반도로 되어 있다.
반도라고 하면, 상당히 작은 나라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면적은 약 442평방키로미터이고 인구는 약 6억에 달하고 있다.
인도는 하나의 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북쪽에는 세계의 지붕격인 히말라야 가라코롬 대 산맥이 있고
동쪽에는 파트가이 , 아리칸의 대 밀림지대가 있으며
서쪽에는 불모지대인 힌즈크시, 슬레이만 산맥이 이어져 있다.
자연의 큰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형과 지질로 보면 인도는
남부의 데칸고원, 중부의 힌드스탄 고원,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 등 세개로 구분된다.
이들 지역은 각기 기후 풍토가 다르고 생활 양식이나 언어조차 다르다.
가장 오랜 주민은 세일론과 중부인도의 밀림에서 생활하던 미개한 종족이며,
다음으로는 남부에 많은 드라비타 종족이 이주하였으며
그 다음은 기원 전 2,000년부터 아리아계가 북서부에 진출하고 있다.
또한 티벳트 버마계의 몽고로이드계가 동부에 이주하고 있으며
그 인종 분포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때문에 언어학적으로는 인도어가 약 80종 이상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오늘날 공인되고 있는 것은 70종이며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15종으로 집약되고 공용어로 영어가 병용되고 있다.
언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유럽어(아리아어),드라비타어, 푼타어, 티벳트어, 버마어, 등이며
이 가운데서도 많이 사용되는 말은
아리아계의 여러말과 드라비타어(세일론과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쓰는 언어)이다.
언어가 많으면
전체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며 싸움의 원인이 된다.
이때문에 영국식민지가 되기 이전의 인도는
언제나 전란이 반복되어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인도의 고대사는 아리아인이 펀잡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기원 약 2,000년 전에서 1,500년 전의 옛날이다.
그 전에는 이집트 희랍, 이란 지역에서 이동하여 온 것이다.
펀잡은 서파키스탄의 북부에 해당되지만
아리아 인은 여기서 먼저 농경민족으로 정착하고
다시 인도의 북부, 서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아리아인은 자연현상에 신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결국은 바라문교의 근본 경전인 리그베타를 만들고,
인더스 , 간디스 두 강유역으로 진출한 것이다.
바라문교에 대해서는 이때까지 자세히 서술하여 왔지만
그 근본을 다시 한번 알아보면
지금부터 1만1천년 전
태양을 신으로 모시는 아가샤 대왕의 신앙이
금일의 이집트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
그 후 아몬이 나와 다시 이를 계승하였다.
다음은 그레오파로타에게 이어지고 아폴론에게 전수되어서
서파키스탄을 경유하여 인도에 정착한 것이다.
아미타의 유래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아미타의 어원은 아몬, 아멘, 아미라고 하는 것처럼
그 신앙이 각 지역에 선교 유포되어 감에 따라
그 발음이 점차 바뀌어져 인도에 왔을 때는 아미타가 되어 있었다.
아몬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고 있으나
그 뜻의 근본은 왕이나 신, 그리고 태양의 우주신을 말하며,
그때문에 신을 구현하는 자를 아몬이라 불렀다.
마치 고타마 싯다르타를 붓다 혹은 풋다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붓다라는 것은 부처이며
부처라는 것은 신의 마음을 구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즉 아미타여래를 고대 인도어에서는 나모아미붓다라고 한다.
나모'는 '나무'를 의미하고
이것은 신에게 귀의한다,귀명한다.라고 해석하고
아미타인 아몬은 지금부터 4천 수 백년 전
아프리카에서 길을 설교한 위대한 빛의 대사도인 것이다.
붓다는 부처이며,
문자 그대로 깨달은 사람,즉 붓다를 말한다.
고대 인도어에서는 '다보'라고 하였다.
이것을 직역하면 신불에게 귀의한다. 귀명한다는 것이다.
아미타여래가 되면 이것을 전술한 것과 같이 아몬을 가리키고
그 후에 아몬을 이스라엘로 전생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아미타 신앙에는 꼭 서방정토가 나온다.
서방정토라는 것은 인도에서 보면 서쪽방향,
즉 아리아인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해서 인도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아몬 신의 메카인 이집트나 이스라엘 방면을 지칭하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전래되는 동안
서방정토의 방위를 잃어 저승의 천국을 가리키게 되었으나
실제는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이야기로 당천축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자
부처가 있는 곳은 천축이라는 구름 위의 극락을 가리키게 되었다.
인도에 가기 위해서는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산맥이 가로놓여 있어 쉽게 인도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이때문에 당 천축은 사람들의 상상이 구름위에 있다고 발전하여 간 것이다.
이와같이 불교이든, 바라문교이든
그 뿌리는 하나이고 그 뿌리의 교의는 자연의 의지가 구현(자비+사랑)하게 된 셈이다.
이것이 어느 사이에 형식화되어 마침내 카스트 제도를 낳게 되었다.
즉 리그베다가 인도에 정착하게 되니
신관인 바라문 세력이 권세를 부려
신관, 무사, 서민, 노예 네 계급의 엄격한 계급제도를 만들었다,
이 때까지의 인류역사를 보면 위대한 성자가 나타났을 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통일되어 조화로 가득찬 사회가 출현하지만
그 빛이 승천하여 버리면 점차 수라의 거리로 화해 혼란하여진다.
인류는 말하자면
말법과 정법의 반복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인류사회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일까하고 누구나 의문을 품는다.
그 이유의 하나로서 인간의 가르마가 거론된다.
카르마라는 것은 업이며
어느 것에 집착하는 상념과 그 행위에 의해 거듭되는 악순환을 말한다.
이 카르마가 전생의 과정을 통해서 시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시정되어 지지 않는 한,
카르마는 윤회하기 때문에 개인적 사회적 혼란의 파문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원래 카르마라는 것은 인연이 닿아 나타나는 것이고,
처음으로 사람은 이를 알게 된다.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이해도 할 수 없고 시정도 불가능하다.
이 나타나는 모양이 크게 발전하면 말법이 되어 사회는 혼란하게 되는것이다.
더구나 카르마를 카르마로서 인정하지 않고 보아 넘기면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어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말법과 정법의 시대는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과거세의 카르마가 그대로 나타나는 일은 없다.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면
인류는 그 옛날에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우리들 인류는 현상계(이승)와 실재계(저승)를 끊임없이 왕복하면서 윤회를 반복하고 있지만
현상계(이승)의 카르마는 실재계(저승)에서 어느 정도 수정되어
다시 이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그 나머지의 카르마를 어떻게 훌륭히 수정하는가가 우리들의 과제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훌륭히 수정되는 시대를 정법의 시대라고 하고,
맹목에 빠진 시대를 말법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말법은 이와같이 심(心) 부재의 시대를 가리키지만
혼란의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구의 증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00년 전과 오늘과는 4배정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1,000년 전과 오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50년후나 100년후의 인구도 증가할 수는 있어도 줄지는 않을 것이다.
싸움의 불씨는
그 대부분이 사상이나 생활권의 문제로 인구 문제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정된 영토나 식량, 인구가 증가하면 증가한 만큼
식량을 증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의복이나 주거도 늘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반되면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이해관계란 직접적으로는 생활권이며,
생활권의 톱니바퀴는 사상이며 정치이다.
따라서 이것들이 융합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정법이 이들 문제에 중요한 관계를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는 셈인데
이와 같은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시정되어 갈 것이다.
특히 경제문제는 인간의 목적이라고 하기보다
그 목적을 다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눈 뜨게 되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문제와 얽혀, 인구 증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가 또 있다.
그것은 혼의 과정이 사람에 따라 다르며,
지상에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다른 혼이 지상의 양친을 인연으로하여 새로이 탄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혼은 지상생활의 경험이 적다.
경험이 적으면 생활에 농락되는 정도도 강하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활경험이 많고 깊으면
조화의 의의를 이해하는 것도 빠르지만
경험이 적고 얕은 자는 그 척도마저 불명하게 되기가 쉽다.
개인의 일생을 돌이켜 보아도 이와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유년기, 소년기는 마음은 순진하지만 사회사정은 잘 모른다.
따라서 자기 중심이 되기 쉽다.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 생활의 전모가 이해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파악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혼에 대해서도 연령과 지식경험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성이나 지성이 발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혼의 전생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상경험이 적은 사람. 많은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경제문제나 사회문제를 통해
사회가 조화된다거나 부조화에 빠진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면 정치적, 경제적, 혹은 종교적인 분쟁의 씨가 되는 것도
이와같은 사람의 혼의 소재에 원인이 있는 것이고
정법과 말법이 시계의 추처럼 계속 흔들린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이와 같은 데서 인과관계를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인구문제가 한계점에 이르러 더 이상 증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리 먼 장래가 아니다.
그 시대가 도래하면 지구상의 혼령의 수준도
총체적으로 높아져서 이른바 보살계라는 세계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이미 실재계(저승)에서 계획되고 미래도가 설계되어
현상계(이승)는 이에 따라 진행된다.
보살계라는 것은
보살의 마음을 가진 자가 사회의 각계 요직에 앉아
사람들을 조화로 인도하여 가는 세계인 것이다.
붓다가 태어난 2,500여 년 전,
예수가 사랑을 실천한 2,000년 전.
그리고 오늘날까지 정법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러한 정법의 전도는
결국 도래하고야 말 지상의 불국토를 지향하는 작업에 이른바 말뚝박기이며,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가올 지상 보살게의 첨병으로서
그 역할이 지워져 있다고 할 것이다.
정법과 말법이 반복되어
그 때문에 인류는 영원히 유랑의 여행을 계속한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근시안적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닌 것이다.
또 자기모순의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변증법적인 사고 방식도 잘못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나이 어린 혼령이라 하여도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단지 육체라는 옷을 입으면
마음이 육체 때문에 가리워져서
사물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경험으로 육체의 공허함이 점차로 선명하게 되고
육체를 가진 상태서도 마음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과 육체의 관계가 보다 선명해지면
마음과 육체가 조화된 훌륭함을 알 수 있게 되고,
색심불이,
즉 유형의 물질과 무형의 정신이 둘이 아니라는 것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말을 다시 앞으로 돌려 인도는 지금도 열대성 몬슨 기후이지만
그 당시에도 6월애서 10월까지가 우기이고,
1월에서 5월까지는 건기의 계절이다.
이 건기는 또 냉냉한 계절과 무더운 계절로 구분되어
3월에서 5월이 가장 덥다.
붓다가 오고 간 당시의 북인도도 강우량이 많다.
우기 기간에는 전도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비 구름이 그리드라구다 산을 덮기 시작하였다.
태양 빛이 이 비구름에 차단되자
지상은 잿빛으로 싸였으며 바람도 불어 주위의 수목이 소리를 내고 법석을 떨기 시작한다.
붓다는 큰 바위를 등에 지고 선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멀리 떨어진 시라바스디 고을에 대해 생각하였다.
이 시라바스디는 카피라바스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라바스디에서는 몬가라나가 중심이 되어 정사를 건설하고 있었다.
붓다는 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의 소식으로는
파세나디 라잔 (고사라 국왕)을 위시하여
그 의형인 제타 라잔도 많은 자재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건설공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사의 동쪽에는 동문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제타 라잔이 기진한 것이라고 전하여졌다.
지금 건설중인 정사는 카피라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만큼 붓다에게는 감회가 깊었고,
정사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줄 것을 바랬다.
붓다는 가볍게 눈을 감고 시라바스디 고을 일로 생각을 돌리고 있었다.
이때 우파뎃사가 붓다 곁으로 다가와서 두터운 승의를 가만히 어깨에 걸쳐 주는 것이엇다.
" 붓다, 비가 곧 올 것 같습니다.
때문에 오늘은 산을 내려가 베르베나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을 걸었다.
붓다는 눈을 뜨고 전방을 똑바로 보고 있는 채로
" 유행을 나간 제자들도 모두 날이 지기 전에 베르베나로 돌아 오도록 하시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는 어두웠고 재색 구름이 하늘을 덮어 지금이라도 막 비가 내릴 것 같았다.
" 이 장마가 개이면 고사라 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동행자의 선별을 우파뎃사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좀 긴 여행이 될 것이다."
붓다는 걸으면서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 보며 말하였다.
" 알겠습니다.
곧 고스타니야와 의논하여 인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보고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해 주기 바란다. "
샤리 푸트라라고 이름을 바꾼 우파뎃사는 붓다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나
붓다의 돌연한 말에 놀래면서도 붓다와 나란히 걷고 있던 고스타니야에게로 눈을 돌리면서
두 사람은 붓다의 말에 순종하고 있었다.
일행은 산을 내려가는 사이에 비를 만났다.
매마른 땅에 세차게 내리는 강한 비는 대지를 비와 모래와 먼지로 덮어갔다.
기운차게 일어나는 모래 먼지가 눈이나 콧 속으로 가차없이 들어갔고,
머리나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지 않으면 괴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이다.
그 뒤는 토사가 다음에는 발이 미끄러져 보행이 곤란해진다.
이런 비는 우기가 되면 간단없이 계속내리기 때문에
산길은 격류가 되고 도로는 강이 되고 만다.
평원지대는 이 때문에 홍수가 밀려와 사람이나 동물등을 가차없이 떠내려 보낸다.
건기때는 아무것도 아닌 초원이라도 우기가 되면 탁류가 되기 때문에
이 계절에는 지리에 자신이 없으면 밖에 나다닐 수가 없다.
붓다가 산에서 내려 왔을 때는 아직 그렇게 심한 비는 아니었다.
그래도 큰 방울의 비가 세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 용서없이 내렸다.
죽림정사로 가는 길은 이미 정해져서 비로 인한 영향은 그리 받지 않았다.
" 3개월만에 만나는 야사가 파라낫시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미 베르베나에 도착하였을까?"
" 붓다, 야사도 꼭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아니 저에게 야사의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있었습니다.
파라낫시에 유행을 나간 사람들은 이미 돌아와 있습니다만,
야사는 2,3일 늦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쯤은 돌아 올 것입니다."
고스타니야가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크샤트리야 때는 코스타니야의 눈매가 날카롭고 체격도 탄탄하게 보였다.
때문에 보기만 해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으나
그러한 그도 이제는 완전히 평안을 얻어 인상에서부터 말씨까지 달라져 있었다.
법은 나의 길,
이 길 이외는 없다고 제자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온화한 코스타니야로 변해 있었다.
마음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고 한다.
마음 만이 모든 모습의 근원인 것이다.
붓다의 제자의 한사람인 바라다니야는 붓다보다 하루 먼저 베르베나에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붓다의 귀환을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돌아다니며 알렸다
붓다의 귀환을 알게 된 제자들은 모두 정사 밖으로 나와 붓다를 맞이하였다.
황색 승의의 무리가 정사 옆에 정열하는 것처럼 해서 무릎을 꾸부렸다.
붓다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대나무 숲 길을 지나 모두의 앞으로 모습을 나타내었다.
"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비에 맞지 않도록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자, 모두 일어서서 정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돌보는 것처럼 말하고 붓다는 정사로 들어갔다.
제자들도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아사지는 붓다의 더럽혀진 발을 씻어 준 후, 앞에 서서 붓다를 자리로 안내하였다.
제자들도 속속 붓다 앞에 정렬하고 자리를 잡았다.
빗발은 더욱 세차게 내렸다.
비는 정사의 지붕에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정사가 되기 전에는 붓다와 제자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는
고작해야 바위사이의 동굴 밖에는 없었다.
동굴은 좁아서 모두가 자리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기가 되면 붓다로부터 직접 법을 들을 기회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삼보에 귀의하여 길을 찾아 헤매는 일이 있으면
비가 오건 안 오건 언제나 붓다의 법을 들을 수가 있었다.
자연의 환경은 인간에게 있어서 확실히 엄한 것이지만
그 환경을 바르게 정비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면
인간은 자연의 자비를 온 몸으로 받을 수가 있고,
자연의 참 뜻도 이해할 수가 있다.
비나 이슬에 견디어 낼수 있는 집도 없이
그때 그때 돌아다니는 생활로는 인간다운 자연과의 조화조차 기대할 수가 없다.
인간은 새나 짐승과 달리 사물을 창조하는 자유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창조력을 구사하여 의, 식, 주 를 기본삼아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 유행하는 가운데 병에 걸렸거나,
독사에 물렸거나,
어디가 아픈 사람은 없는가?"
붓다는 제자들을 돌아 보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천 수백명의 사로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면서 붓다의 혈색좋은 얼굴을 보며
'모두 건강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전원이 무사한 것 같았다.
" 모두 긴 유행을 하였기 때문에 대단히 피로할 것이다.
나눌 이야기는 태산 같겠지만 오늘은 여유롭게 몸을 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마음의 조화야말로 법의 근본이다.
유행중에 있었던 각자의 체험이나 의문에 관해서는
이 우기 기간 중에 확고하게 자기 마음의 양식으로 하여
보다 넓은 마음, 자비가 넘치는 자신을 완성하여 주기 바란다
내일부터는 모든 의문사항에 대해 말하기로 하자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고 푹 쉬도록 하자."
큰 대청은 등불이 켜져 계속 밝게 비치고 있었다.
붓다의 얼굴도 그 등불에 비쳐 똑똑히 보였으나
이에 더해 붓다의 몸에서는 부드러운 황금색 후광이 보여
이 때문에 붓다는 한결 밝게 보였다.
사로몬들은 자연히 합장하는 것이었다.
인간 석가.. - 다카하시 신지 -
첫댓글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귀한 작품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