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 반구정 나루터집 장어구이 처음 자유로가 개통되었을 때만 해도 스피드 광처럼 속도를 내면서 달리는 차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일산 신 시가지는 작은 읍내였고, 자유로는 군용 둑방 길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 출입이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었다. | ▲ 문산 반구정 나루터집의 장어구이. | 자유로의 끝은 문산. 강변으로 가면 반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시대의 명재상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반구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구정나루터집(031-952-3472)이 있다. 개업한 지 35년 정도 된 문산 토박이 집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장어구이. 간장 양념구이, 고추장 양념, 소금구이, 이렇게 세 가지이다. 임진강에서 나는 장어는 그 자체로 유명하지만 올해는 가물어서 그런지 자연산 장어 구경이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장어가 잡힌다해도 자연산은 너무 비싸 먹기가 힘들지만.반구정나루터집에서 맛있는 장어구이를 만드는 비결은 간장 소스에 있다. 어머니 때부터 이어온 양념 맛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개성 있고, 깊이 있는 풍미로 자리잡은 것이다. 간장 소스에는 열네댓 가지의 갖은 양념이 들어가 조화를 이룬다. 음식을 주문하면 숯불을 지핀 풍로에 구워서 준다. 이렇게만 구우면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미리 큼직한 장어를 손질한 후 초벌구이를 해둔다. 초벌구이를 한 후에 양념을 묻혀 가며 다시 굽는 것이다. 두 번에 걸친 구이 과정과 장어 소스의 맛이 어우러지면서 이 집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낸다. 얼큰한 메기매운탕도 별미다. 뜨끈뜨끈한 매운탕의 열기와 매운 맛이 임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더위를 잊게 만든다.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 황복이 올라오는 계절에는 황복찜, 황복회, 지리, 매운탕 등을 한다. ■여주강계 봉진막국수 물막국수 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강을 끼고 있는 절이다. 신륵사에 서서 한가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햇살이 반사되어 아롱거린다. 신륵사에서 양평을 향해 20분 정도 가면 이포대교가 나온다. 이포대교 앞은 천서리. 막국수로 유명한 동네다. 10여 년 전 이포대교가 놓이면서 천서리에는 막국수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건 다리 때문이 아니라 24년 전 문을 연 강계 봉진 막국수(031-882-8300)의 명성에 힘입은 바 크다. 막국수 한 그릇으로 천서리를 북적거리는 막국수 촌으로 만들어버린 솜씨가 놀랍다. 시원한 물 막국수나 매운 비빔막국수 두 가지 다 여름철 먹기에 적합한 음식이다. 막국수. 냉면보다는 거칠고 아무렇게나 막 만든 듯해서 막국수라 부르지만 나름의 소박한 멋이 있는 국수다. 젊은 나이에 월남한 주인 할아버지 강진형(79)씨는 평안북도 최북단 강계 출신이다. 가게를 이어받은 아들 이름은 봉진. 강계 봉진 막국수라는 상호는 이렇게 해서 붙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강원도 홍천에서 살다가 천서리로 이주한 후 막국수 집을 차렸다. 평안도는 메밀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추운 겨울이면 대나무 국수틀에 메밀 반죽을 넣고 면을 뽑은 후 뒷마당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얼음이 뜬 동치미 국물을 퍼다가 막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막국수를 만들어 먹던 실력이 지금의 명성을 만든 것이다. 거칠고 거무튀튀한 국수. 메밀 막국수는 꺼끌꺼끌해서 제대로 먹으면 목구멍에 가래 걸린 것까지 다 속으로 넘어가 식도 청소까지 말끔하게 된다. 껍질 자체를 넣고 빻아도 거뭇한 제 색깔이 나오지 않아 속만 삶아서 가루를 내고, 껍질은 따로 이용한다고 한다. 매운 양념이 들어간 비빔막국수에는 김, 깨, 배, 돼지고기, 오이 등이 들어간다. 인심 좋게 재료들은 다 풍성하다. 비빔막국수에 들어가는 양념은 아주 맵다. 속이 쓰리도록 매운 막국수 양념과 투박한 국수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비빔막국수를 다 먹고 난 후 뜨거운 사골 육수를 부으면 온면 국물이 된다. 사리 하나만 따로 주문해서 국물에 담가 먹어도 맛있다. 비빔이나 물막국수 다 골고루 찾는 편이다. 괄괄하고 화통한 성격의 손님들은 비빔막국수를, 느긋하고 여유로운 손님들은 물막국수를 주로 주문한다고 한다. 이북 출신의 노인네들이 오면 순 메밀 막국수를 뽑아준다. 점성이 약한 메밀로 찰기가 적은 면 맛을 뽑아내는 건 딴 식당에서 보기 힘든 이 집의 노하우다. 막국수를 먹기 전에 기름기를 잘 뺀 돼지고기 편육을 먹는 것도 별미다. 삼겹살 편육을 먹을 때는 비빔막국수의 양념장과 겨자, 그리고 새우젓을 혼합한 양념을 만들어서 찍어먹는다. 돼지고기 몇 점에 뱃속이 배지근해진다.
[책중책] 피서지에서 만난 맛 있는 집… 충청도
| ■속리산 경희식당 한정식 얼마 전 우편으로 책 한 권을 받았다. '70년 손맛, 남경희 할머니의 최고의 한식 밥상'이라는 책이었다. 표지에는 경희식당 남경희 할머니의 곱게 늙은 모습이 담겨 있었고, 책을 펼쳐보니 예전에 쓴 내 글도 하나 실려 있었다. | ▲ 속리산 경희식당의 밥상. | 무조건 1년에 한 번은 경희식당(043-543-3736)에 찾아간다. 속리산에서 난 재료들을 써서 만든 정갈한 밥상이 그립기 때문이다. 밥상 위에는 항상 맵거나 짜지 않고, 삼삼한 양념들로 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려낸 음식들이 올라온다. 손이 많이 간 음식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상 한가운데에는 불고기가 지글지글거리고, 수삼무침, 굴전, 새우전, 겨자장, 밤정과, 버섯볶음, 도라지무침 등은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젓가락이 간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상차림을 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는 축복을 느끼게 한다.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 입구 사하촌에 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속리산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잊어보자.■논산 황산옥 황복탕 충남 논산 일대는 미식가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한 지역이다. 수많은 맛집 가이드북은 논산 지역의 맛있는 집들이 거의 쓰여 있지 않지만, 충청도의 물자와 전라도의 손맛이 만나는 접경지대라 맛있는 집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금강을 따라 한창 황복이 올라올 때다. 지금은 금강 하구둑에 가로 막혀 황복이 강경까지 회유하지 못하지만, 강경에는 수많은 황복 전문점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식당이 황산옥(041-745-4836)이다. 1920년대에 문을 연 황산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다. 얼마 전 옛날 자리에서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말이다. 처음 개업했을 때는 국밥집이었는데, 당시의 황복국밥이 지금은 황복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황복탕은 냉동 복어를 쓰고, 생복탕은 생물을 쓴다고 한다. 탕은 뚝배기에 국물이 부글부글 끓는 상태로 내온다. 꼬리지느러미는 직화를 쏘여 거멓게 탄 상태고, 몸뚱이는 국물에 담겨 있다.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은 투박한 장국밥 맛을 낸다. 황복은 담백하다. 생물로 먹으면 단맛이 더하고, 육질이 훨씬 부드럽다. 한 번 냉동한 황복은 아무래도 퍽퍽한 맛의 잔재가 입안에 남는다. 미나리와 파를 집어넣어 생기넘치는 향기를 낸다. 속이 후련하게 풀릴 정도로 시원한 맛이다. 반찬으로는 웅어속젓이 나온다. 젓갈 도매상이 유난히 많은 강경에서 쫍쪼름한 웅어젓을 곁들여 먹는 황복탕 맛. 멀리서 금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여름 강가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서산 대산읍웅도식당 밀국낙지탕 서산의 굴젓은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물론 고추가 들어오기 전의 일이니 진상했다 해도 지금처럼 매콤한 어리굴젓은 아닐 것이다. 굴은 요즘 제철이 아니지만 안면도 등 서해안으로 가다보면 서산을 지나게 된다. 서산 시내를 빠져 나가자마자 북쪽으로 기수를 틀면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서해안의 섬들이 펼쳐진다. 서산시 대산읍에는 웅도식당(041-663-8497)이 있다. 충청도 서해안 최북단에 있는 섬 웅도의 이름을 딴 식당이다. 웅도는 형상이 곰처럼 생겼고, 제부도처럼 하루 한 번씩 물길이 열리는 신비로운 섬이다. 서산의 대표적인 토속음식 중 하나는 밀국낙지탕이다. 웅도식당에서는 맛있는 밀국낙지탕을 판다. 밀국낙지탕이란 밀이 날 때쯤 나는 자그마한 낙지를 넣어서 끓인 탕이다. 전라도의 세발낙지처럼 작은데, 요즘은 가뭄이 져서 그런지 낙지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철에 잘잘한 낙지를 날로 먹거나 샤브샤브로 먹는 맛은 개운하기 그지 없다. 밀국낙지탕이 없다면 박속낙지탕을 먹는 것도 괜찮다. 박의 속을 파서 집어넣으면 국물 맛은 그 자체로 시원해진다. 냄비 아래에 바지락, 얇게 썰어넣은 박 속, 큼직한 낙지를 넣어서 끓이다가 웬만큼 끓으면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준다. 국물은 맑고 개운하다. 매운 고추를 넣어서 끝맛은 알싸한 느낌이 남는다.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국물은 말 그대로 이열치열이다. 따로 포장해서 팔기도 하는 이 집의 어리굴젓은 싱싱하고 매콤해서 인기가 많다. ■ 예산소복식당 갈비 예산에는 소복식당(041-331-2401)이라는 오래된 갈비집이 있다. 갈비를 주문하면 식당 입구에 있는 숯불에서 구워 준다. 갈비를 완전히 구워 주기 때문에 식당 안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적당한 양념을 가미한 갈비를 시꺼먼 철판에 올려놓고 내온다. 오랫동안 단련된 고기 굽는 실력이 좋아서 항상 먹기 좋은 정도로 구워서 준다. 충청도에서는 이름난 노포다. 예산읍내 중심가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
[맛기행] 충북 제천시 '아리랑 토면'--메밀국수 동치미 국과 메밀국수, 환상의 만남
| 아리랑 토면 집의 주 메뉴는 상호처럼 토면과 토리면이다. 토면, 흙 토 자를 써서 흙국수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실제로 먹는 흙이 있어서 반죽을 할 때 흙을 넣기도 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에서 흙을 넣는 건 아니고 음식 이름이 토면인 이유는 ‘땅에서 났다’는 의미로 쓰인다. 신성한 대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까. 대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메밀로 뽑은 국수가 토면이다. 옛날에 메밀국수는 강원도의 잔치 음식이었다.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 혼기 찬 처녀총각들에게 메밀국수는 잔치국수였던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친정은 정선 아우라지 근처의 여랑이다. 메밀은 항상 고향인 정선을 비롯해 평창, 영월, 인제 지역에서 구입해서 쓴다고 한다.시원한 토면(3500원)을 한 그릇 먹어보자. 차가운 동치미 국물과 싱싱한 메밀국수의 만남. 이 집의 손맛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단순 명쾌한 음식이다. 면에는 메밀 껍질까지 넣어서 거무튀튀한 색이 난다. 메밀 함량이 아주 높다. 점성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전분은 아주 약간 들어갈 뿐이다. 전분의 양이 적기 때문에 반죽을 미리 해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손님이 올 때마다 새로 반죽을 즉시 해서 면을 뽑아낸다. 뜨거운 물에 메밀을 넣고 반죽을 하는 솜씨가 좋아서 언제나 싱그러운 면 맛을 볼 수 있다. 무미에 가깝지만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면과 더불어 토면의 핵심은 국물이다. 그 국물의 주인공은 사시사철 변함없는 동치미 국물. 동치미 국물은 좋은 무를 쓰는 게 으뜸이다. 국물을 우려내는 게 최선의 목적이므로 무를 모양도 낼 필요없이 칼로 쭉쭉 쪼개서 항아리에 넣는다. 소금, 대파, 생강, 양파, 풋고추 등을 넣고 숨이 죽으면 물을 붓는다. 겨울에는 숙성이 되면 하얀 곰팡이가 살짝 낀다. 익은 냄새가 풍기면서 맛이 짭짤해지면 토면용 국물이 된다. 겨울에는 열흘 정도, 여름에는 3~4일이면 동치미가 먹음직스럽게 잘 익는다고 한다. 그 국물을 떠서 물하고 섞은 후 맛을 낸다. 잘 익은 김치 국물을 넣으면 약간 발간 색이 나고, 채소 국물도 버리지 않고 뒀다가 채에 걸러서 국물과 섞기도 한다. 동치미 국물의 단순한 맛에 이렇게 맛을 보충해 새콤달콤한 완성된 맛을 내는 것이다. 토면은 그 위에 고춧가루, 깨소금, 배, 계란 등 다른 고명은 더 올라가지 않는다. 면과 국물만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까다로운 입들’과의 명승부는 이렇게 전개된다. 메밀 함량이 많은 국수이다 보니 툭툭 끊어져야 제맛이 난다. 하지만 이런 메밀국수 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심심하고, 밍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고명 맛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토리면(4500원)으로 말이다. 면과 국물은 토면과 다름이 없다. 대신 그 위에 얹어지는 꾸미들이 화려하다. 도토리묵, 배추김치나 열무김치, 계란 지단, 양념 다대기, 다진 고추, 숭숭 썬 상추, 쇠고기 볶음, 채 친 오이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모양을 낸다. 겉으로 보기에도 화려한 먹음직스러운 국수 한 그릇은 이렇게 완성된다. 국수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덤으로 꼬치갈비(6000원)와 녹두전(5000원)이 있다. 꼬치갈비는 말 그대로 꼬치에 꿰어서 구워먹는 돼지고기다. 간장, 물엿, 배, 양파, 술, 생강, 마늘, 참기름, 후추 등을 섞어서 만든 양념에 2~3일 정도 재어두면 고기가 연해진다. 육질이 부드러운 양념 갈비 맛이 입맛을 당긴다. 시원한 국수와 잘 어울린다. 녹두전도 항상 물에 불려둔 녹두를 준비해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맷돌에 갈아서 전을 부쳐준다. 항상 싱싱한 녹두전 맛을 볼 수 있는 건 그때그때 갈고 반죽하는 정성에 달려 있다.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20년 동안 자리 지킬 수 있겠소? 샤타 내렸지.” - 영업시간·오전 11시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 휴일·설, 추석 연휴 제외, 연중무휴 - 좌석·40석 - 주차·안 됨, 인근 주차장에 주차해야 함 - 카드·안 받음 - 전화번호·(043) 647-86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