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SK 와이번스의 투수 김상진(34)이 해설자로 데뷔한다. SK와의 재계약 실패로 현역에서 은퇴한 김상진은 오는 4월부터 스포츠전문 케이블방송 'MBC-ESPN' 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 경기의 해설을 맡는다. 1995년 역대 시즌 최다 완봉승(8회)을 비롯해 다승 2위, 탈삼진 3위에 오르며 한시대를 풍미한 김상진을 인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때 그 시절'
1990년대 중반. 서울 라이벌인 LG와 OB(현 두산)전은 잠실구장의 3만 500 관중석을 가득 채우는 흥행의 '보증 수표' 였다. 당시 두 투수의 포효가 마운드를 양분하고 있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타자를 압도하는 피칭, 삼진아웃을 잡아낸 뒤 포효하는 포즈까지….' 배트맨과 야생마의 전쟁은 거의 모든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사람들은 삼진 숫자가 늘어날 때 마다 천원짜리 지폐를 건내며 내기에 열을 올렸다. 한국야구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95년, OB 김상진은 이상훈(SK)과 잠실 선발 맞대결을 펼치며 500만 관중시대를 열어젖혔다.
김상진은 1991년 프로입단 첫해에 연습생 출신으로 10승을 따냈다. 고교 졸업 당시 프로구단에 지명도 받지 못한 채 진흙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든 성공신화였다. 이후 100m 달리기에서 혼자 전력을 다해 뛰는 선수처럼 그의 질주는 단연 돋보였다. 95년까지 김상진은 5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거두며 김상엽(전 삼성),정민철(한화), 이상훈과 함께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기둥투수로 성장했다.
언론은 그에게 배트맨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러나 배트맨이 돈 많은 갑부에다 최신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는 전형적인 엘리트였다면 김상진은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에이스로 우뚝섰다. 가슴 한폭판이 뜨거워 지는 야구만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바이바이 슈퍼스타'
95시즌 17승 7패를 기록하는등 OB 우승의 주역으로 전성기를 보낸 김상진은 2000년 자유계약선수 제도의 첫번째 수혜자로 목돈도 손에 쥐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9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 그의 야구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먹튀라는 오명만 뒤집어쓴채 2001년 가을 SK로 재트레이드 된 뒤 지난 해 자유계약 선수로 둥지를 잃었다.
통산 방어율 3.54, 122승(역대 7위)을 일군 불굴의 용사도 살벌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러브를 놓지 못하고 마지막 꿈을 불태웠지만 끝내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숨이 턱 막혔다. 프로에서만 공을 던진 지 15년. 그의 나이 겨우 34세였다.
퇴출의 상처는 천천히 집요하게 그를 찾아왔다. 너무나 갑작스런 통보에 해외 연수라든가 아마 지도자 물색등 어떤 준비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박수받으며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접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김상진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배트맨 포에버'
그는 이제 마운드에 남겨둔 아쉬움을 마이크로 달랜다. MBC ESPN은 LG 투수코치로 옮긴 차명석 코치의 후임으로 지난해 유니폼을 벗은 최태원(전 SK)에게 해설을 요청했으나 그가 피츠버그 싱글A팀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 김상진으로 확정했다. 김상진은 감성이 풍부해 현역으로 뛸 때도 차분하고 조리있는 언변으로 유명했다.
급한 마음에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재기 가능성을 물었다.
'박찬호는 대선수입니다.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닙니다. 박찬호의 몸상태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간섭하거나 코드를 맞추라고 요구해선 안됩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부상이 완쾌돼 예전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니 재기가 무난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켜만 보면 되지 않을까요?'
한때 강속구 투수였던 김상진은 더 이상 150km를 던질 수 없다. 야구 말고는 재주가 없던 그는 이제 '두뇌' 라는 무기로 세상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야구를 시작할 때의 마음도 그랬던 것처럼 다시 죽기 살기로 해 봐야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는 역설의 법칙이 있다. '무명 시절을 뚝심과 성실로 버틴 '배트맨' 김상진의 또 다른 인생역전이 시작됐다.
스포츠서울닷컴 | 최우근기자 cwk7162@
첫댓글 김상진선수 이미지 젠틀해서 좋앗는데 ^^ 기대됩니당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