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요일 오후에 가끔 그 사나이가 모는 차를 타고 강남의 한 교회에 가곤 한다. 그가 이전부터 권했던 우리 고등학교 OB들로 구성된 합창 반 연습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토요일 오후 강변도로는 주말을 맞은 차량들의 행렬로 번잡하기 짝이 없다. 하루는 일산 장항IC에 올라가는 램프에서 강변도로를 보는 순간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눈앞에 주차장이 펼쳐졌다.
큰일 났구나 하며 운전하는 그를 슬쩍 바라보는데 이 사나이는 아무 말 않고 램프 위에서 차를 돌리는 게 아닌가. 그 뒤를 따라 다른 차들도 덩달아 불법 U turn. 그러더니 잠시 후 아주 한적한 자동차도로가 나타났다. 낯선 곳을 싫어하는 내가 그동안 말로만 듣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제2자유로다.
‘내가 원래 택시 운전사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시내에서도 온갖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도 찾아 교통 혼잡을 잘도 피해 다니는 그 솜씨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목소리도 곱지만 마음 씀씀이가 더 곱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동창회 모임에 거의 참석 않던 나를 40여년 만에 일산 지역 동창회에 끌어낸 것도 그 사나이였고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남들 앞에선 부를 엄두를 못내는 숙맥 같은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도 그였다.
관례상 동창생에게는 학형이니 인형 같은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이 예의인 줄 알면서도 내가 지금 굳이 그 사나이, 사내라고 고집함은 그에게 바치는 내 나름대로의 존경심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그렇다.
그는 어제 그 무대에서 한 사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었다.
세상에는 잘난 남자들이 꽤 많다.
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집단이었던 우리 고등학교 출신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 56회 동창들 중에도 우동화군 보다 더 잘생기고 더 부유하고 더 건강하고 더 너그럽고 더 출세한, 출세했던 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어제 모차르트 홀에서 그가 보여준 그의 모든 것은 삶의 질이 꼭 사회통념에 의한 숫자로만 계량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의 막내 딸과 자부가 참여하는 젊은 관악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이 낯익은 소품 두 개를 선사한 후 그가 나타났다. 큰 딸을 데리고.
얼마나 멋있는 장면인가!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어느 사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하는 딸의 반주에 맞춰 우리 귀에 익숙한 가곡, 보리밭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이번 공연을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공을 들였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준비한 줄은 정말 몰랐다. 평소 그의 목소리가 미성이지만 소리의 초점이 잘 응집되지 않음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날 동석했던, 한때 그와 함께 노래에 관심을 보였던 성악 전문가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잠시 후 첫 번째 노래의 반주를 맡았던 그 따님이 이번에는 아버지와 이중창을 선사한다.
이런 사건은 전문 음악가 집안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무대다.
이수인 작사 작곡의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부녀가 손을 맞잡고 정답게 흔들며 눈을 맞출 때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부러움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혹시 이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보신 분, 있으신가?
이 무대를 통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놀랐고, 충분히 즐겼고, 그 남자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할 준비를 마쳤다.
무대의 마지막은 두 개의 성 가곡을 부른 그의 신앙고백으로 채워졌다. <이 곡은 그가 나에게 악보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었기에 나도 그의 무대를 약간은 도운 셈이다.>
내 옆에 자리했던 한 여성은, 아마도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너무 감격하여 아멘, 할렐루야를 연발하고 있었다.
연주회 말미, 앙코르 무대는 그 사내의 모든 것을 다시 보여주었다. 독일가곡, 베토벤의 Ich liebe dich, 그냥 부르기도 쉽지 않은 노래를 전문 연주가 못지않은 피아노 반주 솜씨까지 곁들이면서 그가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또렷이 보여주었다.
이제 또 며칠 후면 이 사나이는 나에게 같이 노래하러가자고 전화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이전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옆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약간 궁금해진다.
뭐, 친구니까 괜찮겠지.
참, 반주를 맡아주신 피아니스트 김정주 선생, 그동안 몇 번 만나기는 했었지만 정말 정성을 다한 연주로 그 무대를 빛 낸 1등 공신이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정치근 시, 이안삼 곡, ‘그리운 친구여’를 부를 때 노래의 흐름을 맞추기 위해 그를 쳐다보는 그 진지한 눈 빛, 지금도 눈에 선하다. 좋은 반주자를 만난 행운도 그 사나이가 이제껏 닦아 온 내공의 일부이리라.
우동화군의 새로운 시작은 나에게 사나이라면, 남자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행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름다운 예술로, 굳건한 신앙으로, 그리고 평생을 통한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보여준 무대였다.
현장에서 스케치한 첫 번째 노래, 보리밭과 후반에 부른 그리운 친구여 붙여 드린다. 화면이 고르지 못한 점은 양해하시기를.
따님, 아영양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보리밭.
그리고 피아노 반주의 김정주 선생. 이안삼 작곡 정치근 시.
첫댓글 동감 동감 !
그 사나이가 펼친 '새로운 시작'의 始末과 그 감동적 의미를 이처럼 진솔하게 설명 할 수 있는 또 한명의 사나이 ! 음악과 신앙과 가족사랑에서 두 사나이의 삶은, 그 지향점이 일치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소유한 진짜 부자들이 일산에 모여 사는 구나!!!
참으로 부러운 삶을사는 친구와 그와 닮은 친구가 나누는 우정 이로군요....
참 _ 보기 좋은 듣기 좋은 소식입니다. 모두들 ... 人生/餘生을 아름답게 사시기를 !
음악은.... 영혼의 이야기라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우동화 학형의 온 가족이 만들어 낸 그 무대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꾸밈없는 진솔한 영혼의 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 주위의 친구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장철성학형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서로의 교류를 통하여, 또 음악을 통하여 서로 이해하고, 삶의 길도, 행복의 길도, 겸손의 길도 알게 되는것 정말 축복이 아닐까요? 이번 음악회의 역활 분담은 우리집사람이 총감독, 아들놈과 며느리가 기획(포스터, 초청장, 순서지, 사진촬영등등), 큰딸은 반주와 이중창, 며느리와 막내딸이 몸담고 있는 아르누보클라리넷앙상불의 연주등이 었읍니다. 음악회를 하고싶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하나되어 모든것을 치루고 나니 정말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동안 온 가족이 무지 스트레쓰받았읍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인터체인지 램프에서 불법 유턴한 사건 때문에 친구들이 난폭운전자로 치부할까봐 약간 마음에 걸렸는데.... 그 사건을 쓴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하는 지를 말하려다보니 그만... 아마 교통 순경이 있었어도 돌아가라고 했을 상황이었다고 제가 다시 증언하는 바입니다.^^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