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존재의 시, 랭보의 『일류미네이션』
짧은 기간 시를 쓰고 더없이 깊은 발자국을 남긴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 랭보는 시 그 자체다. 그의 작품은 신비의 결정체다. 문학과 유럽을 떠나며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일류미네이션』은 우리에게 던져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시집의 탄생에서부터 제작 시기와 과정, 순서와 형체, 제목에 이르기까지 온통 베일에 싸인 『일류미네이션』
궁극의 시 ‘일류미네이션’
“궁극”이라는 말은 표현 가능성의 한계 지점에 있다는 뜻이다. 『일류미네이션』은 언어와 소통, 담론과 유희, 말과 침묵이 구분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시는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출판된 지 백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일류미네이션』은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꿈의 기록이다. 현실의 삶과 인식의 관습을 바탕으로 읽을 때 작품의 의미는 혼란 그 자체다. 실재와 환상, 의식과 무의식, 사물과 허상의 여러 차원이 하나의 화면에 혼재하기 때문이다. 『일류미네이션』은 인간에게 던져진 커다란 물음표다. 그 시들 속에는 존재의 의미와 세상의 모순에 대한 성찰이 다양한 의문의 형태로, 온갖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세상의 본질을 가장 간결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한 시집 『일류미네이션』. 『일류미네이션』을 알면 세상의 모든 시를 이해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의미로”
난해한 랭보의 시를 대하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속에서 천재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는 진지한 시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결국 성마른 아이의 글 놀이로 치부하는 태도다. 랭보를 오래 연구한 비평가들도 둘 사이를 오간다. 진지한 담론이든 악동의 유희든 랭보의 텍스트는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문 같다. 합리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대목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 더 많다. 논리적 이해의 결핍은 그러나 독자의 폭넓은 상상력을 촉구하는 요인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모호한 표현들에 대해 의미를 묻는 어머니에게 “문자 그대로, 모든 의미로(방향으로)” 읽으라고 했다는 랭보의 대답은 시사적이다.
복합적인 언어의 의미 파악에 집착하면 “상징들의 숲”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랭보의 상징은 일반적 문학의 범위를 벗어난다. 극히 개인적인 상징에서 간단한 알레고리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다. 상징 하나하나를 풀이하는 것보다 상상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이 낫다.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쫓다 보면 이해의 폭은 차츰 넓어진다. 그것이 랭보가 찾았던 “영혼에서 영혼으로 향하는” “보편적 언어”(le langage universel)의 소통 방식이 아닐까.
시의 본질이 함축이라면 『일류미네이션』은 그 궁극
아르튀르 랭보 연구로 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해 온 저자는 “미지”의 글쓰기를 추구한 결과인 『일류미네이션』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굳이 자연스럽게 풀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한계가 뚜렷한 번역을 반추하도록 프랑스어 원문을 함께 실었고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영어 번역을 부가했다. 또한 독자들이 미지의 영역, 상징들의 숲을 헤매다 영영 길을 잃지 않도록 각 시마다 조심스럽게 해설을 실었다. 시의 본질이 함축이라면 『일류미네이션』은 그 궁극이다. 무한한 침묵의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무구하고 무한한 세상과 진정한 삶의 구현
랭보의 문학적 실존은 짧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울림은 여전하다. 문학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한 깊은 의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글로 “삶을 변화시키기”가 가능한지, 내면의 “여러 다른 삶”과 꿈의 기록이 새로운 세상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그의 글쓰기를 이끈다. 삶의 결은 거칠었지만 그의 작품은 “흠 없는 영혼”을 추구했다. 무구하고 무한한 세상과 “진정한 삶”의 구현이 그의 지향점이다.
랭보에서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을 거쳐 이브 본푸아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견자見者’의 시인들이다. 랭보의 ‘견자’ 시론은 랭보 자신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다른 시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개념이다. ‘견자’는 탁월한 직관과 상상력으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 시인을 지칭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랭보는 ‘감각의 이성적 착란’을 통해, 다시 말해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넘어선 정신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는 모든 관습과 정신의 구속을 부정하고, 감각의 이성적 착란과 환각의 체험을 통해 새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시인의 시적 모험을 구현한 「취한 배」를 비롯하여 “완전히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유명한 구절을 담고 있는 「아듀」가 있다.
나는 새로운 꽃들을, 새로운 별들을, 새로운 육체를,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보려고 했다.
[…] 완전히 현대적이어야 한다.
_아르튀르 랭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견자’ 시론이다. 이 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모든 감각의 이성적 착란’에 의해서, 미지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le voyance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적 착란’이라는 모순어법을 통해,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넘어서 또는 이성의 한계를 초월한 광기의 정신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한 배」는 이러한 시론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 시의 주인공인 “취한 배”는 모든 관습과 정신의 구속을 부정하고, 험난한 모험의 길을 떠난 ‘자유인’의 상징이자, 새로운 시적 언어를 모색하고 창조하려는 ‘예시자’ 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 시는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려는 자유인의 정신적 모험이자 동시에 ‘모든 감각의 이성적 착란’과 환각의 체험을 통해 새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젊은 시인의 시적 모험인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지옥의 환각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지금 지옥에 있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옥에서 존재한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경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구절이 나오기 전에, 지옥에서의 형벌은 현재형으로 서술되고, 지난날에 지옥보다는 천국을, 악보다는 선을, 지옥의 형벌보다는 천국의 구원을 꿈꾸거나 생각했던 것은 반과거나 대과거로 서술된다. 화자는 천국의 구원을 꿈꾸었던 것은 먼 과거이고, 세례를 받은 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단정함으로써 부모를 원망한다. 그는 지옥에서 지내는 생활도 “인생”이기 때문에, “영벌”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진실” “정의” “판단” “완전” 등의 명사는 기독교인의 모럴과는 다른 시민사회의 개념이다.
정령
그는 애정이며 현재다.
그는 애정이며 미래, 힘이며 사랑이다.
그는, 완벽하게 재창조된 척도이자 경이로운 뜻밖의 이치인, 사랑이고, 그리고 영원, 즉 숙명적 품성들로 사랑받는 장치다. 우리는 그와 우리의 양도로 인한 공포를 경험했다. 오, 우리 건강의 향유, 우리 능력들의 도약, 이기적 애정과 그를 향한 열정,ㅡ 그는 무한한 생명 다하도록 우리를 사랑한다 ᆢ
그리고 우리는 그를 다시 부르고 그는 운행한다 ᆢ 만일 숭배가 사라지면, 울린다, 그의 약속이 울린다. "물러가라, 이 미신들, 이 옛 육체들, 이 가정들, 이 세대들. 가라앉은 것은 바로 이 시대다!"
그는 가버리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하늘에서 다시 내려오지 않을 것이고, 여자들의 분노와 남자들의 즐거움과 이 모든 죄의 사함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있음으로, 그리고 사랑받음으로, 그것은 이루어졌으니까.
오, 그와 우리! 사라진 자비심보다 더 너그러운 자부심.
오, 세계여! 그리고 새로운 불행들의 맑은 노래!
그의 시선들,ㅡ 그의 숨결들 ㅡ 그의 육체 ㅡ그의 빛을.
정령은 초자연적 존재, 신성, 수호신, 천재성등의 의미를 포함한다. 형언할 수 없는, 고백할 수조차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 존재는 이상화된 자아의 완성형이고, 글쓰기의 초점이자 정점이다.
예수를 소환하고 그의 행적을 파기하고, 새로운 빛과 사랑, 새로운 이치와 질서, 새로운 복음과 공현을 선포하는 메시아니즘의 과장이 있지만, 본질적 메시지는 인간 정신의 해방, 영혼의 절대 자유다. 정령은 랭보가 늘 꿈꾸었던 자유로운 자유의 화신이다.
온갖 기괴함이 오르탕스의 잔혹한 몸짓들을 능욕한다. 그녀의 고독은 관능의 공학, 그녀의 피로는 사랑의 역학이다. 유년기의 감시 아래, 그녀는, 수많은 시대에 걸쳐, 종족의 열렬한 건강법이었다. 그녀의 문은 불행을 향해 열려 있다. 그곳에서, 현 존재들의 도덕성은 그녀의 열정이나, 그녀의 행동으로 해체된다. ─ 오 피로 물든 땅 위로, 빛나는 수소를 타고 흐르는, 순진한 사랑들의 끔찍한 전율! 오르탕스를 찾아라.
--- 「H」중에서
우아한 목신의 아들! 작은 꽃 열매 화관을 쓴 너의 이마 주위로 너의 눈들이, 그 둥근 보석들이, 움직인다. 갈색 포도주 얼룩진 너의 뺨이 움푹 파인다. 너의 송곳니들이 빛난다. 키타라를 닮은 너의 가슴, 그 금빛 품에 울림소리가 휘돈다. 너의 심장은 이중의 성(性)이 잠들어 있는 그 배 속에서 뛰고 있다. 거닐어라, 밤을 타고, 부드럽게 그 넓적다리를, 그다음 넓적다리를 그리고 그 왼쪽 다리를 움직여라.
--- 「앤티크」중에서
오! 우리의 뼈는 새로운 사랑의 육체로 갈아입는다.
--- 「아름다운 존재」중에서
나는 종탑에서 종탑으로 밧줄을, 창문에서 창문으로 꽃 줄을, 별에서 별로 금 사슬을 잇고, 그리고 춤춘다.
--- 「[단장들]」중에서 중
아침이면 그녀와 함께, 너희는 눈빛 섬광들, 초록 입술들, 빙산들, 검은 깃발들과 푸른 광선들, 그리고 극지 태양의 자줏빛 향기들 속에서 뒤엉켰다, ─ 너의 힘.
--- 「메트로폴리탄」중에서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보석들과 그녀의 육체적 걸작들을 떠받치는 침대 닫집의 발치에 있는, 보라색 잇몸에 털은 우수로 백발이 되고 눈은 콘솔의 수정과 은으로 된 커다란 곰이었다.
--- 「보톰」중에서
삶은 견딜 수 없이 권태롭고, […] 이제 어디로 이끌려가게 될지, 어떤 길로,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 또 어떻게 가게 될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 이곳 삶은 정말 악몽이다. […] 나보다 더 힘겹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늘 알았다.
--- 「작가 연보_가족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나는 밤낮으로 울기만 한다. 나는 죽은 사람이다. 나는 평생 불구가 되었다. […] 결국, 우리의 삶은 불행, 끝없는 불행이다! 도대체 왜 살아가는 것일까?
--- 「작가 연보_이자벨에게 보낸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