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십자가는 죽음을 이기는 사랑입니다.
2021/9/12/일/연중 제24주일
마르코 복음 8장 27-35절
십자가라는 기쁜 소식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 사실은 우리 신앙이 세상에 가져온 커다란 충격입니다. 고통과 굴욕을 상징하는 처형 도구가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조롱거리였습니다. 기원후 2세기로 추정되는 로마 시대의 어느 유물에는 십자가에 못 박힘을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사실 그렸다기보다 못 같은 것으로 벽을 긁어 장난친 낙서에 가까운데, 그 속에는 당나귀 머리를 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옆에는 노예 복장을 한 인물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비뚤배뚤 쓰여 있습니다. “알렉사메노스가 하느님을 섬긴다네.” 아마 알렉사메노스라는 사람의 동료 노예 중 하나가 그를 놀리려고 벽에 이런 ‘만화’ 한 컷을 그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구원자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운명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에게조차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일이 굴러가는 원리에 기대어 풀면 절대 내놓을 수 없는 답안입니다. 십자가는 하느님 섭리의 손가락이 마지막에 가 닿은 곳입니다. 밭을 가는 농부의 굽은 등만 보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일을 마치고 허리를 쭉 폈을 때 고랑과 이랑이 가지런히 정리된 밭이 보이고, 그제야 농부의 일과 작품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십자가를 내다보시며 부지런히 일하셨고, 마침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얼굴을 드시고 쭉 기지개를 펴셨습니다. 그러고는 우리를 돌아보시며 미소 띤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기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나의 사랑이 있다.”
김경민 신부(제주교구 서귀복자성당)
생활성서 2021년 9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