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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The Last String Quartets Op.132&135 Brentano String Quartet
착수하고 나서 완성까지에는 2년 반 이상을 경과, 1825년 8월에 겨우 바덴에서 탈고했다.
초연은 1825년 11월 6일, 작곡 순서는 작품127의 다음이 된다. 이 감사의 노래는, 제3악장에 리디아조 만년의 거친 터치의 작품이긴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위대한 사상 충분히 음미해 봄이 마땅하다
1826년 1월 베토벤의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1 년 전부터 그를 괴롭혀 온 심한 복통 때문이었지요.
여기에 눈병까지 겹쳐 괴로움은 더 컸습니다. 주치의인 브라운 호퍼 박사는 포도주나 커피 등 장에 자극을 주는 음식을 금하도록 했지요. 말년에 이르러 베토벤은 바로크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답니다.
특히 바흐와 헨델에 대한 존경이 남달랐습니다. 바흐를 두고 ‘대양과 같은 음악가.’라고 칭송했으며, ‘헨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다. 그는 하모니의 불멸의 신이다. 나는 헨델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작곡을 한다면 헨델의 음악과 같은 양식으로 작곡을 하겠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지요.
현악 4중주곡들 말고도 실제 베토벤이 계획을 세웠던 곡들로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텍스트로 하는 오페라, 진혼곡, 그리고 제10번 교향곡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곡도 완성되지는 못했어요. 친구이자 비서였던 쉰들러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17 년 뒤인 1488년 제10번 교향곡의 초안을 출판한 적이 있으나, 전체가 단지 스케치 상태였던 탓에 아무도 그것을 해독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토벤이 홀츠와 나눈 대화에서는 슈베르트의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베토벤은 슈베르트에 대해 ‘매우 위대한 음악가이다. 그는 노래에 관한 한 천재다.’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조카 칼과의 갈등 깊어져"
조카 칼은 대학에서 기술 학교로 전학한 뒤 처음엔 자주 베토벤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저런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반항해 방문이 뜸해지더니, 다시 둘 사이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답니다. 급기야 칼이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지요. 다행히 권총을 제대로 다룰 줄 몰랐기 때문에 한낱 소동으로 끝났답니다.
그러나 칼이 경찰에게 ‘베토벤이 너무나 못살게 굴어서 죽으려고 했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베토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요. 이를 지켜 본 친구들은 베토벤에게 시골로 내려가 요양을 하도록 권했습니다.
동생 요한도 자신의 집이 있는 닉센도르프에서 쉬라고 제안했지만, 베토벤은 일단 이를 거절했습니다. 칼의 장래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습니다. 상처가 아물고 퇴원하게 되면 군대에 보내기로 결정했지요.
병원에서 나온 뒤 입대할 때까지 닉센도르프에서 베토벤과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결국 베토벤이 닉센도르프로 가기로 동의한 셈이지요. 그 동안 베토벤이 동생 요한의에 가는 것을 꺼린 까닭은 아마도 제수와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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