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노가 없었다면 지금 미니스커트, 판탈롱도 없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 최초의 기성복, 윤복희 미니스커트, 판탈롱 패션, 故 육영수 여사 등 영부인 의상, 드라마 ?쩐의 전쟁? 의상…최초의 디자이너 노라 노의 지금도 멈추지 않은 도전과 열정의 다큐 모놀로그 50년!
‘최초’라는 이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성이 있을까.
최초의 디자이너, 한국전쟁의 서슬 퍼런 포연을 가르고 패션에 대한 열정만 달랑 밑천 삼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 대책 없는 도전자는 결국 자신의 삶을 오로지 열정으로 디자인하고 도전을 유행시키는 일에 바쳤다. 결국 그녀는 ‘최초’를 넘어 ‘최고’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노라 노 본인이 10년에 걸쳐 메모 카드를 만들어 자료를 조사하고 기억을 복기한 뒤 복원한 1,000여 장의 기록은 한 여성의 도전과 열정, 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소중한 현대사로 거듭났다. 우리는 노라 노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륙의 딸?? ??케서린 그레이엄 자서전??에 버금가는 한 여성의 위대한 논픽션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디자이너가 증언하는 패션사이다!”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가 더욱 흥미로운 건, 스무 살의 이혼녀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간 1947년부터 현재까지 펼쳐진 패션의 역사를 통해 연극·영화·정치·산업 전반의 흐름을 정리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패션의 어머니’로 평가받는 노라 노 선생의 ‘패션에 관한 철학’ 은 무엇보다 1956년 11월 29일 반도호텔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패션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0달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패션 덕분에 이탈리아 섬유 산업도 덩달아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염두에 뒀던 노라 노는 100% 순수 국내 기술과 제품으로 ‘패션쇼’의 첫 깃발을 꽂은 것이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패션의 대중화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윤복희 미니스커트, 펄 시스터즈 판탈롱 등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창출해 그 흐름에 물꼬를 튼 그녀의 공은 단순히 패션계를 더나 사회·문화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7번가에서 10여 년간 동양에서 온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자체를 브랜드를 내걸고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저력을 보여준 성과는 한 개인의 성공담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은 진정한 여성의 해방을 삶으로 증언하는 ‘진짜 알파걸’ 이야기이다!”
노라 노가 한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시절만 해도, 여성의 직업은 교사 아니면 연예인 정도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탄생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여성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발판이 마련됐다.
실제로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에는 남성보다는 무수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 자신이 코코샤넬을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 “샤넬을 능가할 수 없다. 하지만 아흔 살까지 계속 일한다면 역사상 최장수 디자이너로 기록될 것이다.”라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며 겸손한 농담을 하지만, 실제 노라 노는 패션이라는 무의 분야에서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무수한 도전에 맞섬으로써,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가 아니라 패션을 넘어 그녀 스스로 무수한 여성들의 롤모델로 거듭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미스코리아, 패션모델 등의 여성을 당당한 직업으로 만들어낸 패트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재학 중인 오현주 양을 발굴해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해 한국전쟁 등의 이미지로 얼룩진 ‘코리아’의 이미지를 쇄신시킨 것, ‘모델’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발굴한 변자영, 이희재 등은 오늘날 문화·예술·연예계의 여성이 사회적 리더 역할을 하는 모습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라 노의 선구자적 안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자신의 꿈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여성의 성공이라 여겨지던 시절, 이혼·가장 역할 등 여러 굴레에도 열정과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꿈을 향해 도전한 그 삶 자체가 바로 진정한 ‘여성의 전형’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한 인간이 증언하는 우리의 현대사이다!”
하지만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는 패션과 진정한 여성의 성공담을 넘어, 일제강점기·한국전쟁·군사정권……노라 노 본인이 말하듯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어, 길지 않은 인생에 놀랄 일이 너무 자주 닥치는”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삶으로 써내려간 개인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의 역사다.
1928년 서울 종로 내수동에서 태어나 1944년 일제강점기가 패망해가던 시점, 경기여고를 다닌 재원이 군수공장과 정신대로 끌려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1947년 스무 살 이혼녀의 몸이 돼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만을 안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 뒤 60년이 지난 2007년 지금도 청담동에서 ‘노라 노의 집’을 운영하며 영원한 현역으로 열정을 더욱 불사르고 있는 노라 노의 인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넘어 마치 거대한 고목이 무수한 잎과 둥지를 품고 나이테를 새기듯, 대한민국 현대사 60년의 파노라마를 보듬고 있다.
노라 노의 인생에는 마치 고은의 [만인보(萬人譜)]처럼 보통사람들부터 무수한 정치·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백과사전식 정보가 아니라, 지금도 미용 속눈썹을 제공해주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 용호를 비롯해, 최초의 방송국 개국 공로자인 아버지를 비롯해 전차사고를 당해 실족하고도 자존심과 열정의 모범이 된 어머니 등 보통사람들이 역사의 인물과 조우하고 사건과 갈마들며 ‘교과서’는 놓친 진정한 그 시간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아낸다. 무엇보다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여운형 선생과 그의 딸 여연구 선생이 이웃 아저씨와 소꿉친구가 되살아나고, 파리로 가는 하늘 길에서 만난 청년 윤이상의 모습, 안익태,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 받은 프랭크 시나트라, 율 브리너를 비롯해 국내의 유수한 연예인 등이 노라 노의 열정과 낭만에 동화돼 한 시대의 벽화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그 자체가 중요한 사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 모두를 넘어선 한 개인의 문학적 완성도가 빼어난 기록문학·역사·멘토링 교과서
하지만 이 모든 개인의 의미를 떠나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는 맛깔난 문체와 소설가 박완서 선생도 평가했듯 “지난날을 현재의 정신연령으로 윤색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만 기술한 이 영원한 현역의 맑고 투명한 정신력”으로 복원한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렇듯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는 감동을 원하는 순수한 독자에게는 인간의 성공과 집념에 관한 감동을,인문·사회의 자료적 재미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중상류층을 비롯한 문화·예술사적인 부교재로, 그리고 성공을 꿈꾸는 여성들에게는 인생 멘토링을 배울 수 있는 ‘자기계발’로, 저마다 다양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과 한 여성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넘어 개척시대의 미국 문화사는 물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힌 것처럼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도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자격이 충분한 것이다.
작가소개
저자 | 노라 노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미국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컬리지’를 졸업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패션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 스쿨’에서 수학한 뒤, ‘패션’이란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은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이 '최초의 패션쇼‘는 백 퍼센트 국산 기술과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모직 원단을 사용한 것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1966년 맞춤옷이 전부였던 해 한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다.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고, 1977년 (주)예림양행을 설립해 1978년 뉴욕법인, 1990년 홍콩, 일본에 법인을 설립했다. 2000년 세계 패션그룹 ‘패션 대상’을 수상했고, 여든이 가까운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화제의 드라마 「쩐의 전쟁」 등에 의상 협찬을 하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