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윤재윤
미국에서는 하버드, 예일 등 8개 사립 명문 대학을 '아이비리그'라 부르고, 여기에 스탠퍼드, 듀크 등 4개 대학을 더해 '골든 더즌(12개의 좋은 대학)'이라 통칭한다. 이런 명문 대학을 선망하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압박으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린다.
예일 대학교 교수였던 윌리엄 데레저위츠가 《Excellent Sheep(엑설런트 시프, '똑똑한 양떼'라는 뜻으로 한글 번역판 제목은 '공부의 배신')》를 펴냈다. 명문 대학의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힌 이 책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명문 대학 출신들은 "대학에서 의미 있는 [ 교육을 받지 못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었다."라며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저자는 20여 년간 아이비리그에서 학생과 교수, 입학사정 위원으로 지냈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도 명문 대학의 교육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는 만큼 애정을 가졌기 때문일까, 책에서는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원제 속 '양떼'는 '자기 생각 없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쫓아다니는 무리'를 뜻한다.
이 책은 명문대생의 내면을 두 가지로 묘사한다. 첫째는 두려움이다. 대부분 학생이 깊은 두려움에 갇혀 있다. 겉으로는 활달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들춰내면 그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 좌절, 공허함, 목적 없음, 고독이 있다. 이들은 약물 의존도가 높고 불안 장애가 심하며, 어떤 또래 집단보다도 불행하다는 조사 결과가 여럿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평생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둘째,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조차 할 줄 모른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 시키는 일만 할 뿐이다.
기존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이를 의심하거나 반항할 생각이 없다. 일어나는 일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도 근본적인 고뇌도 없다. 졸업하면 다음 성공을 향해 계속 달리지만, 이 역시 스스로 길을 찾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안전하게 따라갈 뿐이다.
저자는 자신도 잘못된 시스템 아래 살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대학과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 줬다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스무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며 책을 쓴 이유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정독했다. 읽으면서 마음이 흔들려 덮은 적도 여러 번이다. 꼭 나의 경험을 쓴 것 같았다. 나 역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사법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건 너무 힘들었고, 한 관문을 통과하면 새로운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법관으로서 열심히 살아왔지만, 여전히 성공에 대한 열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