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김영란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김영란법의 정식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약칭도 청탁 금지법이다. 하지만 첫 제안자의 이름을 딴 김영란법으로 더 유명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때로 정식 명칭 대신 별칭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금융상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정식명칭인 '종합통장자동대출'보다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되어버린 '마이너스통장'이 바로 그렇다. 은행에서 담보 없이 신용으로 대출받는 방법은 크게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용대출은 한번에 목돈을 빌리는 반면 마이너스통장은 필요할 때 빼서 쓰고 다시 채워 놓으면 된다.
신용한도 내에서는 마치 (자기)돈을 통장에 넣어둔 것처럼 아무 때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별도의 통장을 만들 필요 없이 기존의 계좌에 마이너스(-)로 잔고를 표시해주기에 마이너스통장이란 별칭이 생겼다. 한번 개설해 놓으면 만기 때까지 은행을 또 방문할 필요 없이 계속 쓸 수 있다. 게다가 중도상환수수료도 없고 이자는 마이너스(-)로 표시된 금액에 대해서만 내면 된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직장인이라면 마이너스통장 1~2개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직장인들의 필수 금융상품으로 불릴 정도다.
자영업자에게도 일시적으로 결제자금이 부족하지만 곧 들어올 돈이 있어 대출금을 금세 갚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날짜로 이자를 계산하는 마이너스통장이 아주 유용하다.
예컨대, 결제일이 내일인데 통장잔고는 없고 1주일 후 거래처로부터 납품대금이 들어올 예정이라면 신용대출을 1년 만기로 약정하기보다는 마이너스통장을 쓰고 1주일치 이자만 내는 것이 경제적이다. 대출금액 전체에 이자가 붙는 신용대출과 달리 쓴 금액에 대해서만 이자가 계산되는 마이너스통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편리하지만 가계빚 뇌관 우려도
또 누구나 살다 보면 실직·부도 등 갑작스런 소득의 단절이나 불의의 사고·질병 등으로 인해 뭉칫돈이 나가는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비상금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가입해 둔 금융상품을 깨거나 주변에 아쉬운 소리를 해서 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 놓으면 이런 낭패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점에 더해 요즘 저금리기조에 따라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도 덩달아 하락하면서 팍팍한 살림살이에 모자란 생활비를 마이너스통장으로 해결하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급증하는 마이너스통장이 우리경제의 현안인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일부에서 빚내서 하는 소비를 부추긴다며 마이너스통장에 체크카드를 연계해서 쓰는 이른바 '마이너스 체크카드' 금지 주장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사실 일단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원래대로 채워 넣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마이너스통장을 대출이 아닌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생각해서 야금야금 쓰다 보면 어느새 사용한도가 꽉 차버린다. 통장에 표시되는 '-'에 둔감해져서 '일단 쓰고 보자'식의 소비습관이 몸에 배기 때문이다.
또 신용대출과 달리 매달 나가는 이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자가 알아서 빠지다 보니 한도만 넘지 않으면 그 안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적자인생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빚에 허덕이며 살다 보면 어느새 만기가 돌아오고 몇 년이고 대출연장을 반복하게 된다. 마이너스통장을 써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 마이너스는 영원한 마이너스"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이유다.
잘못 쓰면 '독'
마이너스통장은 분명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 편리한 금융상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칫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인생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마이너스통장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이다.
흔히 이중적인 성격의 사람들을 '야누스'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Janus)'신에서 유래했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은 한 얼굴로는 저무는 해, 다른 얼굴로는 밝아오는 새해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야누스는 극단적인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리키는 '이중성의 대명사'다. 그렇게 보면 마이너스통장도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