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까지만 해도 SUV란 용어는 우리에게 낯설었다. 그보다 ‘짚차’라고 즐겨 불렀다. 군용차에 뿌리를 둔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투박한 SUV로, 국내 시장에선 현대 갤로퍼, 쌍용 무쏘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도심형 크로스오버에게 시장 주도권을 내줬고,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투박한 오프로더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프 랭글러, 랜드로버 디펜더, 포드 브롱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등이 주역이다. 공기저항 따위 고려하지 않은 레트로 디자인, 강력한 험로주행 성능, 투박하되 기능에 충실한 설계가 소비자를 열광케 만들고 있다. 공교롭게 위에 언급한 4개 차종 모두 신차다.
국내에선 기아 모하비가 명맥을 잇고 있다. 2008년 출시 이후 지난해 약 10년 만에 부분변경을 치르며 ‘사골’이란 오명도 얻었지만, 화려한 디자인 업그레이드와 풍성한 안전 및 편의장비 보강에 힘입어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가령, 올해 1~7월 누적 판매대수는 1만3,130대에 달하는데, 기아차 RV 라인업 중 카니발 다음으로 많이 팔린다. 즉,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오프로더를 향한 소비자의 뜨거운 수요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기아차가 모하비를 단종하지 않고 상품성을 높여 출시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일부 소비자는 “험로에 갈 일이 얼마나 있다고 저런 차를 사야하나?”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에 가는데 꼭 등산화 아니면 못 가서 등산화 사는 건 아니다. 멋을 위해 사는 사람도 많다. 즉, 보디 온 프레임 방식과 사륜구동 시스템은 감성의 영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제조사가 신제품을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포드는 브롱코를 24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 차엔 요즘 유행하는 전동화 파워트레인도 없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빈약하다. 그러나 미국 내 사전계약 대수가 25만 대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네모반듯한 레트로 스타일과 강력한 험로주행 성능 등 제품의 본질과 기능에 충실한 설계가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일각에선 북미 수요가 공급을 넘고 있어, 한국 출시는 2022년 이후가 될 전망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한, 한 때 사륜구동 SUV 마니아들이 동경했던 미국의 허머도 부활을 알렸다. GM 산하 SUV&픽업트럭 전문 브랜드 GMC가 허머 EV를 출시할 예정이다. 배터리 전기차로, 최고출력 1,000마력의 막강한 성능을 자랑한다. 즉, 레트로한 디자인의 정통 SUV가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프로드 컨텐츠를 보면 늘 고통 받는 브랜드가 있다. 쌍용자동차다. 과거 무쏘와 코란도로 다카르 랠리를 호령했던 쌍용을 기억해, 근래의 라인업을 비판하는 소비자가 많다. 다행히 최근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가 현재 코란도 후속 모델 개발을 진행 중에 있으며 과거 뉴코란도처럼 네모반듯한 정통 SUV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서울모터쇼에 등장했던 쌍용 XAV 콘셉트를 통해 양산 모델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랜드로버가 선보인 디펜더나 포드 브롱코처럼 정통 SUV 스타일을 지녔다. 특히 범퍼 양 끝단에 자리한 주간주행등(혹은 방향지시등)은 과거 뉴코란도의 흔적을 들먹인다. 다소 늦은 판단이긴 하지만, 최근 오프로더를 향한 놀라운 수요를 바라볼 때 쌍용차를 이끌 새 주역으로 관심을 모은다.
다만 이 모델이 나오려면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 등 지금 판매 중인 라인업이 ‘잘 팔려야’ 가능한 얘기다. 모기업 마힌드라그룹이 대주주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현재, 양산 모델을 만나기 힘들 거란 전망도 있다.
개인적으로 쌍용차에 아쉬운 건, ‘뷰:티풀 코란도’를 1~2년 정도 쟁여놓았다가 티볼리의 후속으로 출시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미 기아 셀토스나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등이 준중형 SUV를 넘볼 정도로 커다란 체격을 지녔다. 코란도가 티볼리의 후속이었다면 다양한 ‘동급최고’ 타이틀을 따냈을 테다. 라이트급에선 별 볼일 없던 선수가 페더급으로 내려가면 경쟁력이 ‘확’ 살아나는 격투기 선수에 비유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소비자가 공감하고 있겠지만 쌍용차는 상대의 빈틈을 노려야 한다. ‘공룡’ 현대‧기아차와 주먹을 같이 뻗으면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QM6가 좋은 해답이다. 상대에 없는 LPG 파워트레인을 얹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 다카르 랠리를 호령했던 쌍용자동차, 과연 오리지널 코란도는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