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담론
글가람
밤과 낮이 담론을 시작한다
달과 별은 밤편이고 해는 낮편이다
양지와 그늘이 모두 낮편을 들자 밤이 반론을 편다
파랑 거짓말
노랑 거짓말
하양 거짓말
낮이 반론을 편다
새까만 거짓말
찔레꽃과 목련과 배(벚)꽃은 모두 밤편을 들고
끝없는 반론에
밤낮을 떠도는 바람
조물주가 처음부터
밤과 낮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거늘
편갈이를 왜하냐고 벼락을 친다
눈 뜨면 밤편
눈 감으면 낮편
밤낮은 지구의 앞과 뒤쪽
흑백은 지구의 원초적 우상
--이서빈 외 {새가 허공에 쓴 직유법}에서
‘가재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간의 처지나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은 영원한 한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한편’이라는 말은 영원한 동지에 해당되고, 그밖의 다른 사람은 영원한 적이라는 말과도 일맥이 상통한다.
밤과 낮, 음과 양, 진실과 허위, 선과 악, 적과 동지, 남과 북, 동과 서, 한국인과 일본인, 기독교인과 불교인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흑백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흑백 담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진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밤과 낮이 담론을 시작”하고, “달과 별은 밤편이고” “해는 낮편이다.” “양지와 그늘”이 “낮편을 들자 밤이 반론을 편다.” 밤의 입장에서는 파랑도 거짓말이고, 노랑도 거짓말이고, 하양도 거짓말인 데, 왜냐하면 어두운 밤에는 그 색깔들이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낮이 반론을” 펴고, 그 모든 밤의 반론들을 다 부정한다. 파랑도 진실이고 노랑도 진실이고 하양도 진실인데, 왜냐하면 환한 대낮에는 그 색깔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찔레꽃과 목련과 배(벚)꽃은 모두 밤편을 들고/ 끝없는 반론에” “밤낮을 떠도는 바람”이 “조물주가 처음부터/ 밤과 낮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거늘/ 편갈이를 왜 하냐고 벼락을 친다.”
글가람 시인의 [흑백 담론]은 ‘흑백 담론’의 허위성을 주창하고, 그 편가름의무위성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눈 뜨면 밤편”이 되어야 하고, “눈 감으면 낮편”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밤낮은 지구의 앞과 뒤쪽”이고, “흑백은 지구의 원초적 우상”이기 때문이다.
흑과 백이 하나이고, 밤과 낮이 하나이고, 앞과 뒤도 하나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영원한 하나가 흑과 백, 적과 동지가 되지 않으면 이 세계는 존재할 수가 없고, 우리 인간들 역시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밤과 낮은 영원한 적대자로 살아가야 하고, 흑과 백도 영원한 적대자로 살아가야 하고, 앞과 뒤도 영원한 적대자로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다 한편이고 그 어떤 싸움도 없다면 그 세계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는 진공상태라고 할 수가 있다. 흑과 백은 영원한 적과 동지이며, 이 적대적 대립관계로 영원한 짝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글가람 시인의 [흑백 담론]은 영원한 진리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호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자비한 약탈과 살생 뒤에는 너무나도 자비롭고 친절한 은총을 베풀어야 하고, 쓰디쓴 실패와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갈고 닦으며 고귀함과 위대함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어느 때나 주의 깊게 살피고 긴장하지 않으면 기습공격을 당하고, 무한경쟁에서 패배하면 죽어야만 하고, 이 세상은 언제, 어느 때나 약육강식의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생명체들은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글가람 시인의 [흑백 담론]은 적대적 공생관계이며, 우주평화를 떠받치는 영원한 진리(허위)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