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웃에 마음씨 좋은 동네 형이 살았다. 형은 새총의 명수였는데, 까마득한 미루나무 꼭대기
에 앉아 있는 참새도 한 방이면 끝이었다. 형이 참새를 잡으러 갈 때는 꼭 나를 딜고 갔다. 나이 들어
서 생각해보니 엄마와 둘이 가난하게 사는 이웃 동생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었다. 형이 새총을 꺼내 돌삐를 장전하면, 형과 함께 온 친구들은 참새를 주우러 따라가고 나는 낙
엽과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오래지 않아 형은 허리끈에 매달고 온 새끼줄 칸마다 참
새를 주렁주렁 꿰어서 모닥불로 다가왔다.
참새가 알맞게 익으면 형은 항상 내게 가장 많이 나눠주었다. 형과 형의 친구들이 한 마리씩 먹는 동
안 내게는 두 마리를 주는 식이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먹은 참새만 해도 족히 수백 마리는 넘을 듯싶
다. 까마귀, 까치, 매, 비둘기 등 참새보다 덩치가 큰 새를 잡았을 때는 항상 내게 먼저 시식을 시켰
다. 형들이 궁금증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나는 잘 익은 새 고기를 형이
가져온 소금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형들은 내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조심스럽게 한 입 떼 먹어
보고는, 이내 함께 달려들어 통째로 요절을 냈다.
참새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다보니 다른 새들에 비해 속담과 설화도 가장 많다. 시가와 그림에도
수없이 등장한다. 크기와 색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딱 맞다. 가을이면 곡식을 먹는다고 허수
아비를 세워 쫓기도 하지만, 참새가 사람보다 시력이 더 좋아 멀리서도 허수아비를 알아보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다. 참새는 곡식보다 해충을 더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예로부터 적대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낮에 처마 끝에 참새가 들락거리는 구멍을 봐두었다가 밤이 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손전등을 비추어 잡아먹고는 했다.
참새는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조류다. 전 세계적으로 5억 4천만 개 정도의 집단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새를 연구하고 있는 조류학자들은 머지않아 남극에도 진출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작고 귀엽게 생겼지만 겉보기와 달리 참새들은 매우 공격적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
는 파랑새를 위해 집을 지어주면, 오래지 않아 알을 품고 있던 파랑새는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
고 그 집은 참새들이 차지하고 있다. 만약 참새들이 남극대륙에 진출한다면, 남극의 터줏대감인 펭귄
도 몰아내고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의 레온 메긴슨 교수는 ‘자연에서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하거나 영리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참새는 어떤 기후나 지형에도 적
응하는 강인한 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참새의 주거지였던 그 많은 초가가 다 사라졌지만 어딘
가 새 터전을 마련하여 살아간다. 심지어 깨진 가로등 안에 들어가 둥지를 짓고 사는 녀석도 있다. 먹
이도 동식물은 물론 황토나 광물까지 먹어치운다. 멕시코의 한 탄광에는 수십 년 동안 광부들이 던져
주는 빵 조각만 먹고 사는 참새들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사람과 어울려 살다보니 학명도 아예 ‘Passer Domesticus’다. ‘집에 사
는 새’라는 뜻이다. 참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먹이활동을 할 때 잠시 마을을 떠
나지만 마을 인근의 논밭이나 동산이 고작이다. 조심성이 많으면서도 새끼는 꼭 인가 근처에서 부화
시켜 기른다. ‘눈치가 참새 방앗간’이라는 속담도 참새의 그런 특성을 잘 담고 있다. 먹이사슬의 정점
에 있는 인간 곁에서도 가장 널리 퍼져 사는 종이 되었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참새는 인간이 정착생
활을 하기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참새가 인간과 가까워진 시기는 1만 4천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농
사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인간이 고양이科 동물들에게 쫓기며 수렵‧채집으
로 근근이 연명할 때는 가까이 와봤자 얻어먹을 것은 고사하고 참새구이 되기 십상이었을 터이니 말
이다. 팔레스타인의 한 동굴에서 인간의 뼈 화석과 함께 참새들의 뼈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참새구이를 가장 즐기던 왜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참새구이 전문점이 대부분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참새들이 더욱 번창할 듯.
참새가 세상에서 가장 난폭한 포식자인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참새가 특별히 지능이 높아서일
까? 조류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점에 핀트를 맞춰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
서 많은 종의 새들이 서식지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멸종되었지만, 참새는 폐차의 문짝이나 공
장의 높은 굴뚝 속에도 집을 짓고 사는 등 인간에 의해 급변하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 먹이
도 인간이 먹는 것이라면 아무리 새로 개발된 음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인간의 생활패턴
이 아무리 바뀌어도 곧바로 적응하는 것이다.
참새가 북미대륙에 진출한 것은 1852년 한 농부에 의해서였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는 나방을 잡
을 목적으로 영국에서 수입해왔다. 기대한 대로 나방은 참새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금세 그 수가 줄
어들었다. 그런데 참새가 너무 빨리 번식하여 온 농촌으로 퍼져나가면서 나방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나방은 작물의 잎만 파먹지만 참새는 열매에서 뿌리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참새는 20세기에 접어들자마자 멕시코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맨 끝 섬인 델 푸에고까지 퍼져나가 남
극을 제외한 전 대륙과 섬에 고루 정착했다.
「새들의 천재성」 해설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참새란 생활력도 강하고 사람과의 친화력도 있어 그 분포가 상당히 넓습니다. 집에서 야탑역까지 가는 개천변의 개나리 나목에 참새떼가 수없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우선 먹이가 잡식성 이어서 어디든 쉽게 구할수 있고 또 사람이 고의적 박멸을 하지 않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오래 들어온 참새 소리역시 친화력을 주기 때문인것 같습니다.